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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신화를 쓰자 - 세계수편
작가 : 연도단
작품등록일 : 2017.7.6

외딴 섬에 위치한 신국고등학교.
폐쇄적인 고등학교에 생긴 이변.
학생들의 몸에 깃든 신화적 존재들.
이변으로 인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학교에서 지배하려는 세력과 지배에 저항하는 세력이 충돌한다.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5
작성일 : 17-07-09 22:17     조회 : 265     추천 : 0     분량 : 9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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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5.

 

  현석과 나란히 복도를 걷던 여운은 영민과 현석의 대화를 떠올리며 묻는다.

  “궁금한 게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현석의 부탁은 우물쭈물 망설이던 현석을 울컥하게 했다.

  “오히려 이쪽에서 부탁하고 싶은데요?! 앙?!”

  정색하고 따지고 드는 현석에게 여운은 진심인지, 능청인지 알기 어려운 미소로 현석의 분노를 받아넘긴다.

  “네? 이상하네요. 유리 어항처럼 속을 다 내보이고 있는 저에게 궁금한 게 있을 리가 없을 텐데요?”

  티 한 점 없는 푸른 호수같이 한없이 맑고 청명한 여운의 눈은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진심으로 믿고 있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여운을 바라보는 현석의 눈은 진심으로,

  “하~아?!”

  어이없어하고 있다.

  현석은 탐색하듯 여운의 여기저기를 뜯어보며, 자신이 파악한 얼마 되지 않는 그의 신상정보와 그를 만난 이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았다.

  - 1. 금발에 푸른 눈을 한 혼혈. 2. 신국고등학교 학생 아님. 3. 리더와 안다고 했지만 확실하지는 않음. 4. 룬 스펠을 무효화 하는 괴상한 힘 사용. 5. 신조차 넘지 못하는 차원 괴리를 넘어옴. 6. 가면처럼 얼굴에 씌워진, 속을 알 수 없게 만드는 미소. 7. 대화의 주체를 혼동 하게 하는 거슬리는 저 괴상한 경어.

  “유리 어항은... 개뿔! 미스테리함이 콘크리트를 때려 부어 만든 쉘터급이잖아?! 아주 대포동 미사일까지 튕겨낼 기세네!!”

  조금 전 전투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등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운에 대해서는 괴상한 것, 의심스러운 것, 모르는 것투성이다.

  “그럼 좋아. 기브 앤 테이크로 하자고.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녀석에게 이것저것 떠벌릴 수 없으니까.”

  현석의 제안에 여운은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하는 게 공평하겠군요.”

  여운이 제안에 응하자, 현석은 선심 쓰듯 말한다.

  “먼저 물었으니, 첫 질문은 양보할게.”

  “네. 그럼 사양 않고...”

  여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다음 질문한다.

  “아까.. 그 영민이란 분과 대화 중에 ‘노블’이라는 단어와 ‘논 노블’이라는 단어로 서로를 지칭하시던데... 뭔가 의미가 있는 단어들인가요?”

  “너... 정말로 이 학교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구나? 리더의 지인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석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어디까지 아는지 말해 줄래? 그래야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짧아질 것 같아서.”

  “음... 제가 아는 건...”

  신국고등학교가 모종의 사건으로 인하여 뒤틀어진 차원에 갇히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것.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겠지만, 북구 신화에 나오는 신들과 요툰의 데이터가 학생들이 가진 무언가로 전송되어 힘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제가 도움 요청을 받고 왔다는 것까지가 제가 아는 전부입니다.”

  여운의 말을 경청하던 현석은 고개를 끄덕인다.

  “대략적인 상황 정도는 파악하고 있네.”

  “여러분들이 신의 힘을 얻었을 때, 저는 ‘에다’를 얻었으니까요.”

  현석은 여운의 옆구리에 끼워져 있는 태블릿PC를 본다.

  “고대신화가 기록되어 있는 ‘에다’의 소유자라면, 이 괴상한 상황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는 게 이상할 것도 없겠네.”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한다.

  “좋아. 그럼, 이 학교의 생태계 정도만 이야기해주면 되겠군.”

  현석은 꽤 길어질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답지 않은 차분한 목소리로 시작한다.

  “신국고등학교는 한국사회의 고위층, 재벌 같은 상류층의 자제들을 위해 설립되었어.”

  신국고등학교의 정체성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길게 이어진다.

  “네가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이 비밀스러운 학교를 어떻게 찾아냈고, 왔는지는 의문이지만, 방법이 뭐였든 이 학교를 찾아온 너라면 느꼈을 거야. 우리 학교, 이 신국고등학교가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비밀스럽고 폐쇄적인 곳이라는 걸. 그럴 수밖에 없지. 이 학교는 상류층 자제들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현석의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인다.

  “무자비한 지배를 망설이게 하는 정의(正義)로부터!! 상식(常識)부터!!

  현석의 분노는 점점 고조되어간다.

  “또한 이 학교를 이용해서 자식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어떠한 존재로 만들고 있어.”

  현석의 눈에 이글거리는 새빨간 분노가 살짝 흔들린다. 분노의 불길을 살짝 흔들리게 한 것은 희미한 감정이었다. 가슴 아래 깊은 곳에 깔린 뿌리 깊은 감정...

  “지배를 위한 완벽한 괴물로.”

  - 공포.

  여운은 분노의 그림자 아래서 어른거리는 공포를 차분하게 응시한다.

  “그럼, 노블은...”

  “그래! 맞아! 그들이 노블이야. 학교를 지배하는 괴물들. 그리고 그 괴물에게 저항하고 있는 우리가!”

  분노로 메여있던 현석의 목이 탁 트인다.

  “논 노블이지.”

  논 노블에 대해 언급하는 현석의 얼굴에는 긍지가 느껴진다.

  “뭐, 나를 포함한 논 노블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노예가 되겠다고 자처해서 이 학교에 들어왔었지. 일반인들이 이 학교에 입학하기 위한 최저조건인, 대한민국 성적 상위 1% 되기 위해, 피를 토하는 노력을 하면서까지 이곳에 들어오려 했어. 단지, 그들의 노예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이곳에 들어와서도 그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필사적이었어. 그건 인정해.”

  현석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감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가 그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으니까. 우리가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민주주의도, 정치도, 임기가 정해진 한시적인 힘에 불과하잖아? 하지만 그들은 달라. 돈으로 세워진 영원불멸의 제국으로 대한민국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으니까.”

  현석은 여운을 얼굴을 바라보며 힘없이 웃는다.

  “하하... 맞아. 포기했었지. 거대한 힘 앞에서 겁먹었었지. 그리고 생각했었어. 거대한 제국의 그림자 아래에 있으면, ‘최소한 사람으로는 살아갈 수 있을 거야.’라고. 하지만 ‘그날’ 이후, 비록 늦긴 했지만 깨달아버렸지.”

  그날을 언급하는 현석의 눈은,

  “그들이 시선 속에 있는 우리는 노예도, 심지어 사람도 아닌...”

  공포와 모멸감이 섞인 복잡한 감정이 어른거리며 흔들린다.

  “가축이었다는 것을.”

  한없이 가벼운 인간으로만 보였던 현석의 얼굴은 무겁게 굳었다.

  “생각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후우..!! 이제...”

  현석은 가슴에 맺힌 무언가를 모두 토해낼 기세로 숨을 크게 내쉰다. 크게 숨을 고른 그는 속없이 가벼운 본래의 현석으로 돌아왔다.

  “네 차례야!”

  ...라고 외치는 현석에게서 어째선지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을걸!’과 비슷한 종류의 승부욕이 느껴진다.

  “네. 물어보세요.”

  “후후후..!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이야!”

  현석은 팔을 쭉 뻗어 손가락을 여운에게 겨눈다. 그리고 ‘받아라!!’라는 육성이 들린다는 착각이 들 정도의 완벽한 팔각도를 유지한 채 묻는다.

  “우리를 저 벽 너머로 내보내 줄 수 있나?!”

  현석이 작심하고 던진 회심의 질문에 현석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무립니다.”

  “응? 네? 뭐라고요?”

  현실도피와 당황이 적절하게 믹스된 현석의 반응. 무리라고 말하는 상황 자체를 부정하던 현석의 현실도피에 여운은 친히 쐐기를 박아 넣는다.

  “차원 괴리를 넘는 건, 지금은 무립니다.”

  “알아! 나도 들었다고!”

  두 번이나 부정당했음에도, 현석의 눈에서는 미련이 흘러넘쳐 뚝뚝 떨어진다.

  “어째서야? 넌 저길 넘어왔잖아.”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답변은 무리라는 말뿐입니다.”

  “나는 네 질문에 성심성의껏 이야기해 줬는데! 넌 고작 ‘무립니다.’라는 말 한마디 뿐이야?!”

  여운은 실망과 억울한 감정이 뒤섞인 현석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하며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제 대답은 같습니다.”

  “크흐... 저기를 넘어온 너라면 방법을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체념하는 현석의 시야에 여운의 태블릿PC가 잡혔다.

  “그래. 에다!! 고대의 이야기와 지식이 담겨있는 에다에는 방법이 적혀있지 않을까?”

  다시금 희망으로 반짝이는 현석의 눈을, 여운은 냉정하다고 느껴질 만큼 차분하게 마주한다.

  “제가 가진 고(古)에다는 쓸모없는 물건입니다.”

  “그게.. 무슨?”

  여운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석에게 태블릿PC를 넘긴다.

  “에다. 현석님도 열람할 수 있도록 보안설정을 변경해주세요.”

  - 승인 완료. __ 여운님_-__현석님께 공개를 허가하도록 보안설정을 변경하겠습니까?

  “네. 엑세스 권한 일부를 공개하겠습니다.”

  - 보안설정-_-- 변경 완료. 검색항목을___- 입력하십시오.

  “에다에 기록된 내용을 모두 열어주세요. 현석님이 모두 볼 수 있도록.”

  - 네. 현석-- 님__ 게스트로 접속하겠습니다.

  접속이 끝나고, 화면에는 에다에 저장된 모든 정보가 카테고리화 되어 나열된다.

  현석은 에다에 기록된 신들의 지식이 화면을 가득 메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현석의 생각대로 목차만 수만 개가 검색되어 화면에 출력된다.

  “이 많은 걸 도대체 나보고 어떻게 보란 말이야?”

  현석의 볼멘소리에도 여운의 태도는 흔들림이 없었다.

  “보세요. 그럼 왜 제가 보시라고 했는지 알게 될 겁니다.”

  현석은 반신 반이 하면서 제일 처음 항목인 창세(昌世)를 터치했다. 그러자,

  “이, 이건..?!”

  현석의 눈앞에 순백의 공간이 펼쳐진다.

  “아,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아..? 이게 무슨...?”

  당황한 현석은 아래 항목까지 터치해 내용을 확인한다.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 아래, 또 그 아래, 아래의 아래도 확인해 봤지만,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눈이 부실 정도의 하얀 공간뿐이다.

  “뭐야.. 이건..? 그냥 빈 종이 뿐이잖아!! 에다라며!! 모든 신화가 기록된 그 에다잖아!!”

  “에다는 단순히 신화를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여운은 현석의 손에 쥐어져 있던 태블릿을 거의 빼앗듯 넘겨받는다.

  “신 그 자체가 기록된 책입니다.”

  “신... 그 자체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현석에게 여운은 설명을 이어간다.

  “신화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이라면 알 겁니다. 오딘은 자신들의 멸망. 즉, ‘라그나로크(Ragnarǫk)’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발키리로 하여금, 발할라에 에인헤랴르(einherjar)를 모으게 한 것이고요.”

  “그, 그 정도는 나도 알아!”

  당황하는 현석의 얼굴은 대놓고 ‘난 그딴 거 몰라! 알 필요도 없고!’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여운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딘은 라그나로크에 대비해 병력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죠. 그래서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묘안?”

  “네.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그들의 영원한 삶을 보장해줄 묘안. 그것은...”

  여운은 태블릿PC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긴다.

  “에다에 신들의 일부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는 존재의 파편을 무한히 반복되는 이야기에 심었습니다.”

  “존재의 파편을 심어...?”

  여운은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한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던 그는 불쑥 이야기를 이어간다.

  “신들의 존재는 신앙심으로 유지됩니다. 또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하고 찾습니다. 그렇게 신이라는 의미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신앙심? 의미? 갑자기 무슨 소리야?”

  “오딘은 신의 파편을 에다에 심었습니다. 정확히는 에다의 신화 속에 신의 일부를 넣어 계속해서 이야기되도록 만든 거죠. 그렇게 책 속의 신들은 신화라는 형태로 사람들에게 어떠한 형태로든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존재를 계속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신은 기억되는 한, 이야기되는 한, 믿어지는 한,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으니까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서 이야기 속에 자신들의 존재를 이식한 것이...”

  여운은 호흡 없이 어이진 이야기에 살짝 가빠진 숨을 고른다.

  “흐음... 네. 맞습니다. 그것이 그의 묘안입니다. 자신들이 멸망하더라도 계속해서 존재할 수 있도록. 설령...

  여운의 입가에 감돌던 미소가 일순간이었지만 사라진다.

  “영원히 갇히게 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원히 갇힌다고? 지금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잖아?”

  찰나 간 사라졌던 미소가 다시금 여운의 입가에 그려진다.

  “빠져나올 대책 없이 자신들을 가둬둘 만큼 오딘이 바보일 리가 없죠. 물론, 그들의 멸망시킬 ‘어떤 존재’에게서 보호할 수단을 이것저것 걸어놓긴 했지만, 나올 구멍 정도는 마련해 뒀습니다.”

  현석은 무언가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스마트 폰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신들의 데이터가 뿌려진 ‘그날’의 사건 때문에, 오딘이 만들어 놓은 나올 구멍이라는 게 열린 건가?”

  “‘그날’의 사건이라는 건, 에다에 기록된 모든 존재가 해방되어, 학생들이 소유한 통신기기를 통해 신의 파편들이 데이터 형태로 학생들에게 뿌려진 ‘그날’을 말씀하시는 거죠?”

  “음. 뭔가 했던 말을 또 반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맞아.”

  현석은 ‘학생회장’의 폭주로 모든 것이 뒤틀린 ‘그날’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책이 빈 것은 책 속의 신들이 해방되었기 때문...?”

  “네. 맞습니다. ‘에다’는 자신 안에 기록되어있는 모든 존재를 토해내고는, 빈껍데기인 상태로 저에게 왔었죠.”

  현석은 여전히 석연찮은 듯 재차 묻는다.

  “폐지 급인 에다를 가지고, 여기는 어떻게 들어 왔고, 아까 룬 스펠을 무력화시킨 기술 또 어떻게 쓴 거지?”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렸을 텐데요? 신들에 대한 것만 없을 뿐. 나인버스(아홉 우주)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남아 있습니다. 앞선 힘들은 그것들을 이용한 것뿐입니다.”

  여운의 철저한 부정에 희망을 잃은 현석은 시무룩해 하면서도, 대답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 그런 거였구나...”

  현석은 고개를 무릎까지 푹 숙이며 한숨을 길게 내쉰다.

  여운은 나라 잃은 얼굴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분사하고 있는 현석과 조심스레 대화를 시도한다.

  “저기... 죄송하지만..”

  “미안. 잠시만 내버려 둬 줘.”

  “아..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그만!”

  현석은 반쯤 울먹이며 소리친다.

  “넌 내 기분을 몰랏!!”

  여운은 현석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그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렇습니다. 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여운은 좌절감에 흔들리는 현석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리고 이제까지 없었던 강한 어조로 현석에 진심에 외친다.

  “현석님!!”

  현석은 여운의 뜨거운 진심을 느낀다.

  “그래!! 말해봐!! 얼마든지 드루와! 훅! 훅!”

  여운은 팔을 쭉 뻗어 그들 앞에 펼쳐진 복도 끝 저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희의 앞에는 분명!”

  “분명!!”

  현석은 고조되는 감정에 복받쳐 여운의 말을 복창한다.

  “누군가 있습니다.”

  여운의 말에 뜨겁게 감응한 현석은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그래! 우리 앞에는 희망이 펼쳐질... 응?”

  현석은 감동의 도가니탕에 발끝을 살짝 담갔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는 묻는다.

  “아.. 그러니까 방금 나한테, ‘우리들의 앞에는 희망이 펼쳐져 있다!’던가, ‘좌절하지 마!’라던가, ‘너의 옆에는 내가 있잖아!’라던가 같은 ‘너와 나의 우정 크로스!’ 이벤트를 발생시킬 만한 폭풍 감동 유발 대사를 날리거나 한 건 아니지?”

  “네. 아닙니다.”

  담백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단호한 여운의 부정은 현석을 단숨에 현실로 돌려놓는다.

  “음... 분명 기억하기로는...”

  현석은 여운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복도 저편으로 시선을 옮긴다.

  “누군가 있다고... 했었나? 우리 이외의?”

  “네.”

  해가 반쯤 넘어간, 어스름이 깔린 복도는 검은 그림자에 덮여있다. 현석의 시야는 어둠이 짙게 깔린 복도 저편까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느리지만 일정한 속도로 다가오는 어떤 존재가.

  “그런 건, 빨리 말했어야지!!”

  괜한 억지를 부리며 불안감을 억누르려 했지만,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져 갈 뿐이다. 현석의 얼굴에 초조함이 그대로 드러났던 탓인지, 여운 역시 별 반응 없이 복도를 주시한다.

  현석은 자신의 억지에 가까운 타박에 대한 미안함을 느낄 심적인 여유조차 없었다. 그는 눈앞의 어둠에 최대한 집중하며 상황을 분석한다.

  ‘우리가 지나온 복도에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잠복해 있었다면, 기회는 많았어. 그렇다면 우리가 지나온 길에 누군가 있었을 확률은 낮다. 일직선인 복도에서 우리를 지나쳐간 존재에 대해서 느끼지도 못했고. 그렇다면 외부에서 들어온 무언가가? 설마.. 새로운 적? 아니면 아군?’

  절대적으로 전력이 열세인 아군이 적진인 교내를 배회하는 위험한 짓거릴 할 리가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의미 없이 이런 곳을 배회할 여유 자체가 없다.

  ‘나야 뭐, 정찰조 비슷한 거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녀석들이 이곳에, 그것도 이 시간에 있을 리가 없어. 그렇다면...?!’

  아무리 긍정 회로를 돌려봐도, 복도 저편에서 접근하고 있는 존재는 적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서둘러 몸 상태를 점검해 봤지만,

  “역시나 무린가...”

  여운과 잡담하며 걷는 것이 최선일 정도로 최악이다. 현석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여운을 힐끗 본다.

  그는 여운이 리더가 필요로 하는 그 사람이 맞는지조차 확신 못 하고 있었다. 자신을 구해주고 특별한 힘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친구들이 처한 최악의 상황을 타개해줄 비장의 카드로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 지켜야 해.

  ‘내 목숨 역시 ‘그날’ ‘그 녀석’에게 받은 거야. ‘그 녀석’에게 받은 목숨, 마지막까지 ‘그 녀석’이 지키려 했던 것을 위해서 쓰겠어.’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지킬 것과 지켜야 한다는 결의뿐.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수단은 결의로 자신에게 최면을 걸어, 약해져 있는 몸을 쥐어짜 내는 길 뿐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현석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을 스치는 까끌까끌한 옷감의 감촉을 지나, 더 깊은 곳에 다다르자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걸린다.

  “이 녀석을 끌어내는 수밖에는...!”

  현석은 차갑게 식은 폰을 꽉 말아 쥐며 결의한다. 그때, 주머니 너머로 따듯한 감촉이 느껴져 온다.

  “너...?”

  여운은 주머니 속 현석의 손을 꽉 쥐며, 적어도 현석에게 있어서는 최초이자, 그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됩니다.”

  화내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운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뜨거운 열기는 분노를 웅변하고 있었다.

  이제껏 한 번도 드러낸 적 없었던 여운의 격한 감정표출에 현석이 당황하는 사이,

  - 뚜벅 뚜벅

  구두와 복도 바닥이 마찰하는 소리는, 이제 그 진동까지 피부로 느껴진다는 착각이들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현석은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전투태세를 갖춘다. 여운 역시 한발 물러서며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곳에서 멀어진다.

  - 뚜벅 뚜벅

  창문에서 스며드는 검붉은 노을과 복도에 드리운 그림자의 경계를 뚫고 하나의 인영이 빛 속으로 나와 자신을 드러낸다.

  어둠 속에서 솟아오른 듯이 튀어나온 존재는 여학생이었다.

  남자 학생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차별화된, 굴곡진 신체의 선을 드러낸 상의 교복에, 상의와 잘 어우러진 체크무늬 치마. 복도의 어둠에 녹아든 검은 생머리. 날카롭게 휘어진 차가운 눈매. 그리고 그녀의 날카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날렵한 크롬테 안경.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여학생은 두 사람을 차가운 눈으로 쏘아본다. 여학생의 차가운 얼굴을 반사하는 현석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떨린다.

  “너, 넌..?! 그럴 리가..?! 불가능해..”

  현석은 눈앞의 존재를 현실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하지만 현석의 현실부정도, 존재에 대한 경악도, 그의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는 한 마디를 막지 못한다.

  - 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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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장: 신화(神話)를 쓰다. - 1 2017 / 7 / 14 268 0 3405   
9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9 2017 / 7 / 13 258 0 5296   
8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8 2017 / 7 / 12 258 0 8670   
7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7 2017 / 7 / 11 254 0 4893   
6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6 2017 / 7 / 10 252 0 7962   
5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5 2017 / 7 / 9 266 0 9672   
4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4 2017 / 7 / 8 252 0 9437   
3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3 2017 / 7 / 7 273 0 5190   
2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2 2017 / 7 / 6 296 0 6764   
1 1장. 잘린 머리 레지스탕스 - 1 2017 / 7 / 6 640 0 7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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