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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이비에타-여기사의 두 번째 선택
작가 : 홍단
작품등록일 : 2017.7.9

"당신은 목숨을 걸 만한 남자를 만나, 죽음 같은 사랑을 할 것이다."

400년 전 전란의 시대 나라를 구했던 여기사 이비. 그러나 어렸을 때 들은 예언의 영향인지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이비에타'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환생하게 되어 새 삶을 살고자 하나, 전생과 똑같은 내용의 예언이 또 다시 자신을 옭아맨다.

예언을 피하기 위해 400년 전의 자신이 세운 기사단으로 도피하지만, 기사단은 부패로 몰락해 있어 이비에타를 짜증나게 만들고, 이 와중에 전생의 연인의 환생과 만나게까지 되는데. 이비에타는 예언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을까?

 
1화
작성일 : 17-07-09 19:04     조회 : 503     추천 : 0     분량 : 8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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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어렸을 때 내게는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부모님이 계셨다. 부모님은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셨다. 두 분은 전란 중에 만나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셨고, 전란을 종식시키고 나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셨다.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축복해 주었다고 들었다. 나 또한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부모님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아버지께서 어느 순간 사라지셨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께서 그 일 이후 몇 년도 안 되어 돌아가셨다는 것뿐이다.

 

  사람들도 어느 순간부터 나를 축복해 주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은 나를 ‘거미의 딸’이라고 불렀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거미의 딸’이란 별명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어머니께서 아버지를 살해하셨기에, 남편을 잡아먹었다는 의미에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거미의 암컷은 수컷을 잡아먹으니까...

 

  다만 한 명의 나이 든 시녀가 어머니께서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죽인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시녀가 펑펑 울면서 이야기해 주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확실한 것은 남겨진 나는 너무나도 괴롭고 외로운 인생을 살았다는 사실뿐이다. 조롱과 고독으로 얼룩진 인생을, 죽었다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나더라도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부디 나의 후손 중에서는 나와 같은 이가 없어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아나 칼베르크 라르힐리덴 백작의 유언장 중에서

 

 *

 

  ‘칼베르크 기사단’. 레가르드 왕국의 남부 국경지대를 수호하는 유서 깊은 기사단의 이름이다. 이 기사단의 건립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랜 옛날, 언제부터 존재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륙의 북동쪽을 차지하고 있던 나라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나라의 이름을 ‘류리크’라 불렀다. 류리크는 그 영토의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가장 빠르고 날랜 말을 타고 가도 서쪽 끝에서 동쪽 끝에 이르려면 달이 여섯 번 기울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날씨가 무척이나 추워 겨울에는 바다가 얼어 버릴 정도였으며, 작물들도 제대로 자라지 않아 부강한 나라는 못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고로 대륙의 어느 나라도 이 땅덩어리만 크고 쓸모없는 나라와 교류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이는 대륙의 북단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인 레가르드 왕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 류리크에는 최악의 마녀가 왕위에 오르면서 이 모든 국면은 반전되었다. 후에 ‘이리나 대제’라고 칭해지는 이 마녀는 류리크가 세계 최고로 부강한 제국이 되기를 꿈꾸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하여 그 마녀가 취한 정책은 - 겨울에도 얼지 않는 항구, 즉 부동항을 차지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류리크에는 부동항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마녀는 부동항을 얻기 위해 지금까지 관심을 끊고 살던 대륙의 다른 나라를 침범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침범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것이 현재의 리쉬타 왕국이었다.

 

  리쉬타 왕국이 류리크의 전쟁 대상으로 낙인찍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400년 전 당시 리쉬타 왕국은 형식상으로는 ‘신성 리쉬타 제국’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속 안을 들여다보면 약 200개의 소국들이 연맹을 형성한 연합 국가에 불과했다. 200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이 형식상의 황제를 두고 있을 뿐인 국가. 그렇기에 결속력이란 것이 한 개의 왕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군대를 모으려 해도 나라들이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판단 아래 움직일 게 뻔하니까 말이다. 특히 유사시라면 더더욱.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할 때까지도 레가르드를 포함한 주변의 왕국들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류리크와 그 여제를 비웃고, 조롱했다. 류리크가 어떻게 행동할지가 번연히 보이는데도 말이다.

  사실 이런 판단이 절대 틀리다고 볼 수가 없었던 것이, 당시 신성 리쉬타 제국이 가진 무력이 상당한 수준에 달하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성 리쉬타 제국은 강력한 마력의 신비를 온존하고 있는 나라였다. 그것도 타 왕국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수준의 마력을 말이다. 상처를 회복시키며 폭발을 일으키고 마음을 조종하는 그런 마력의 힘을 감히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의 땅만 큰 나라가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류리크의 마녀가 침공을 개시하였을 때, 사람들의 추측은 완전히 엇나가고 말았다. ‘류리크의 한 기사가 검을 휘두르면 정예 기사 몇 명이 물을 베듯 썰려 나갔다.’, ‘류리크의 여자들이 기묘한 힘을 부리자 정예 기사들이 온몸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환각에 미쳐 자살하는 기사가 수천이었다.’ - 이 외에도 수많은 기록들이 당시의 참상을 설명하고 있다.

 

  류리크의 마녀가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으나, 류리크의 정예 부대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학자들은 힘의 차이가 ‘인간과 개미의 차이와 같다’고 주장할 정도로, 그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각 소국들의 맹주들은 연맹의 황제의 말을 전혀 들어먹지 않았다. 끝까지 저항하는 놈들도 있었고, 백성들을 방패막이삼아 도망치는 자들도 있었으며, 항복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상당수의 맹주들은 한 가지 방식을 취하였는데, 그건 바로 ‘터전을 버리고 도망치되, 자신들보다 약한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그 땅을 빼앗고 새 터전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들의 힘은 류리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어떠한가? 그들은 강력한 마력을 갖고 있었고, 그 정도면 다른 나라를 공격하여 자신들이 살 본거지를 꾸리는 데 충분했다. 소국의 맹주들은 본거지에서 도망쳐 그대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 손이나 빨며 구경이나 하던 나라들은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작은 섬나라인 레가르드 또한 이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참혹한 전란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400년 전 전란의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수많은 나라들이 스러져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류리크는 부동항이 있는 땅을 얻는 데에 만족하고, 더 이상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았다. 그런 탓에 전란이 미쳐 날뛰는 시대에 류리크만큼 안정적인 나라가 없었다고 한다. 전란의 시대를 만든 주범인 주제에 말이다.

 

  어쨌든 그런 미친 시대에 레가르드 왕국은 왕국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름답던 산천은 새빨간 불꽃에 타들어가고 해안의 하얀 모래는 새빨간 피로 물들었다. 나라의 자랑이던 하얀 암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궁전은 화마에 검게 그을리고 말았다.

 

  온 들판에 시체가 쌓이고 어딜 가든 격렬한 투쟁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힘은 너무나도 강하였고, 오랫동안 평화롭기만 했던 레가르드의 사람들은 그 앞에 무력하기만 했다.

 

  그 때 레가르드를 구원한 것은 바로 두 명의 영웅이었다. 각각 ‘시구르드’와 ‘이비’라는 이름을 가진 두 검사.

 

  시구르드는 레가르드의 북쪽 산지에 위치한 공국의 젊은 후계자였다. 풀 네임은 ‘시구르드 글레이프니르 펜릴’. 그가 속한 공작가는 옛날부터 레가르드 최고의 검사 집단으로 통했다. 레가르드의 사람들은 그들을 북쪽 산의 왕이었다는 전설 속의 거대한 늑대의 후손들이라고 믿었으며, 그 증거가 그들의 피에 흐른다고 믿었다.

 

  시구르드는 그런 공작가 내에서도 유례가 없이 강력한 남자였다. 어릴 때부터 이미 검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고 가문의 사람들은 그가 역대 최고의 재능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가문 최강의 기사가 되지 않겠느냐는 가문 사람들의 기대에 걸맞게 시구르드는 레가르드 역대 최연소 기사로 서임되는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로도 시구르드는 그의 초월적인 전투 능력을 인정받아 최연소 기사단장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런 시구르드를 전설상의 늑대의 현신이라고 부르며 경외하였다. 그가 기사단장이 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전란이 불어 닥쳤고, 그는 가문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직접 전장에 뛰어들어 수많은 침략자들을 도륙하였다고 전해진다.

 

  두 번째 영웅인 이비는 시구르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 왔던 검사였다. 이비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성을 수여받기 전까지는 성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평민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갑자기 나타난 자인지라 전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어떠한 인생을 살아왔는지도 알려진 바가 없다. 레가르드의 몇몇 학자들은 이 여검사가 용병 일을 하며 살지 않았을까 추측하기도 했다.

 

  이렇듯 어떤 출신인지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이비는 시구르드와는 다른 의미로 압도적인 실력을 가졌던 여검사였다고 전해진다. 가문에서 ‘글레이프니르’라는 미들네임을 수여받은 자만이 쓸 수 있는 명검을 들고 유려한 검술을 통해 적을 무찌르던 시구르드와는 반대로, 이비는 항상 낡아빠진 검을 일일이 숫돌에 갈아 쓰거나 전투 현장에서 빼앗은 검을 들고 마구잡이로 적을 쓰러뜨렸다고 전해진다.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의 검술이든지 다 사용하였다고. 침략자들은 처음에는 그런 이비의 검술을 보며 비웃어댔지만, 나중에는 이비의 묶어 올린 금색 머리카락만 보아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둘은 레가르드의 기사들을 규합하여 남쪽에서 올라오는 침략자들과 끊임없는 싸움을 벌였다. 나중에 전세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하자 둘은 합동으로 작전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 둘이 함께 적진으로 잠입하여 레가르드 왕가의 1왕자를 구해 온 사건은 4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전설적인 사건이다. 결국 두 영웅들은 분투 끝에 침략자들을 몰아내고 레가르드를 구원하였다.

 

  레가르드의 왕가는 이 두 명의 영웅을 기려 최고의 공신으로서 우대하였다고 한다. 특히 평민 출신의 여검사 이비에게는 ‘라르힐리덴’이라는 성을 수여하고 남쪽 게르헨 지방의 백작으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였다. 이비는 영지를 수여받은 것을 엄청난 영광으로 여겨 지방 이름인 ‘게르헨’을 미들 네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비 게르헨 라르힐리덴 백작은 이후 있을 지도 모르는 전쟁을 대비하여 기사단을 설립하여야 함을 주장하였고,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수도의 남단에 기사단이 세워지니 이 기사단이 바로 칼베르크 기사단이다.

 

  칼베르크라는 이름은 이비 게르헨 라르힐리덴 백작의 딸인 ‘시아나 칼베르크 라르힐리덴’의 이름에서 따 왔다고 한다. 칼베르크 기사단은 총 3번에 걸친 혹독한 시험을 실시하고, 시험을 모두 통과한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 최고의 기사들을 길러 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건 400년 전의 이야기일 뿐. 현재 칼베르크의 상태는 눈 뜨고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다.

 

  400년 동안 레가르드는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전쟁 이후 이비 게르헨 라르힐리덴 백작이 세운 칼베르크 기사단은 전란 이후 피폐해진 나라를 ‘처음에는’ 잘 관리하였다. 소규모 내란을 진압하거나 전쟁 후 등장한 망령들을 처리하는 일을 훌륭히 수행하여 사람들의 존경을 모으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는 안정되어 기사단의 일이 줄어들었고, 이 와중에 시구르드와 이비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기까지 하자 기사단은 구심점을 잃고 급속도로 부패했다. 칼베르크의 건립에 깊이 관여하고 이비와 함께 기사단을 관리하였던 펜릴 공작가에서조차 나중에는 기사단의 부패를 견대지 못하고 수도 북단에 새로운 기사단을 세워 독립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칼베르크는 권위를 잃고 추락하였으며, 400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유서 깊다는 것 외에는 정말 별 볼일 없는 기사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사실상 돈만 많은 귀족들의 견공자제들이 작위 세탁을 위해, 혹은 불명예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나서 그런 짓을 한 것을 세탁하기 위해 돈을 주고 들어오는 기사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였다. 정말 극소수의 진짜배기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런 썩어빠진 기사단의 시험일, 시험관들은 심심하다는 표정으로 서류 몇십 장을 휘적대며, 거의 눕듯이 의자에 기대어 앉아 대화하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이미 한 잔 했는지 술병이 몇 개 늘어져 있다.

 

  “이번 시험일에도 기사 후보생님들이 많이 오셨더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치르러 오니 아마 이 기사단은 오래도록 번영할 거야. 돈으로!”

 

  “이번에 어마어마하게 기부한 자작가도 한 곳 있던데. 기사단장님이 특별히 2단계 시험에서 검으로 두부 자르게 하고 통과시켰다고 들었어.”

 

  “뭐 별로 대단찮을 얘기를... 돈 안 내고 들어오는 놈이 몇이나 있다고. 웃겨, 이런 이름뿐인 기사단에 뭘 기대하고 돈을 내지 않고 들어오려 하는 건지. 이번에도 그런 얼간이가 있냐?”

 

  “이번에도 한 명 있던데.”

 

  “진짜? 누구?”

 

  “어디 보자... 아까 봤었는데, 벌써부터 꽤 유명세를 몰고 다녀서 알고 있었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시험관 중 하나가 서류를 잠시 뒤적이다가 마침내 ‘찾았다!’라는 소리를 낸다.

 

  “누구야? 이름이 뭐야? 저번처럼 평민 나부랭이가 신청한 거 아냐?”

 

  “아니, 잠깐... 어? 이름이...”

 

  “뭔데.”

 

  “이비에타 아르티스 라르힐리덴. 17세. 라르힐리덴 백작의 장녀라는데.”

 

  “아, 그 망한 백작가... 지가 이 기사단 설립한 선조라도 되는 줄 아나. 계집애 주제에. 17세면 혼인을 이미 하고도 남았을 나인데, 지금까지 구혼처 한 곳도 없어서 쪽팔린다고 온 거 아냐?”

 

  “낄낄, 그러게 말이야... 기사단장이 꽤 화난 거 같더라고. 자기 소개란에 너희 따위한테는 땡전 한 푼 못 주니까, 시험이나 보겠다고 써놓았더라. 어디서 나온 똥배짱인지... 그거 보고 열이 꽤 뻗친 거 같더라고.”

 

  “돈을 안 줬다는 거에 더 빡친 게 아니고?”

 

  두 시험관은 뭐가 웃기다고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는다. 그렇게 웃기를 수분이 지난다. 이윽고 웃음이 소강상태가 되자, 서류를 잡고 있던 시험관이 다른 시험관에게 다시 말을 건넨다.

 

  “그래서, 기사단장이 이번에 아예 3차 시험에 직접 손을 좀 썼다는 거 같더라.”

 

  “뭐? 어떤 식으로?”

 

  “지금 진행 중인 3차 시험이 진검을 가지고 견습 기사와 승부하는 것인 건 알지? 뭐 진검이라 해도 비교적 무딘 검으로 승부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시험관인 내가 그걸 모르겠냐. 멍청하긴. 쓰러뜨리는 쪽이 이기는 거잖아. 근데 그게 왜?”

  “이번에 그 계집애 상대로 발뭉 씨를 내보낸다는 거 같아.”

 

  “발뭉을?”

 

  이들이 ‘발뭉’이라 부르는 자는 칼베르크의 견습 기사 중 하나다. 들어온 지 우수한 실력으로 입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견습 기사 신분에 머물러 있는 남자. 하지만 누구도 그의 실력을 보고 나면 만년 견습 기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이 남자는 돈을 내지 않고 시험을 정식으로 통과하여 들어왔다. 돈을 내지 않은 자는 정석대로 1차 필기시험을 통과하고, 2차 시험에서 검으로 통나무를 잘라내야 하며, 3차 시험에서 견습 기사와 정식으로 싸워야 한다. 그런데 그걸 통과하여 들어 왔으니 돈 주고 두부나 오이 같은 거 자르고 들어 온 다른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체격 조건조차 칼베르크의 허접한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발뭉은 웬만한 키 큰 남자들도 위로 올려다보아야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게 가능한 거구를 가진 자다. 거구에 걸맞게 힘도 장사라서, 족히 강철을 몇 근은 녹여 부어 만들었을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는데 몇 분을 휘둘러도 전혀 지치는 기색을 보인 적이 없었다. 현 칼베르크의 기사단장조차도 발뭉의 실력에 못 미친다는 카더라도 있을 정도다. 그런 능력자이기에 기사단 내부 몇몇 사람들은 그가 견습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뭉 씨’라고 높여 부르곤 했다.

 

  “발뭉 씨도 돈 안 내고 들어 온 녀석이니까, 기사단장이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 그래서 아직도 견습에나 머물러 있는 거고.”

 

  “거기다 평민이잖아?”

 

  “그렇지... 저딴 골빈 계집애나 상대하게 되었으니 발뭉 씨 입지도 알만 하지. 거기다가 발뭉 씨에게는 원래 쓰던 검을 쓰게 하고 그 계집애한테는 일부러 이 다 빠진 검으로 지급한다고 하는 카더라까지 있어. 사슬 갑옷까지 옷 안에 입혀 놓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 그렇게까지 할 일이 있나? 한 방 주먹으로 톡 때리기만 해도 까무러칠 텐데.”

 

  듣고 있던 감독관이 혀를 끌끌 찬다. 그런 그에게 말을 하고 있던 감독관이 상체를 살짝 숙이고 목소리 톤을 낮춰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마치 누가 들으면 곤란하다는 듯이.

 

  “그게 말이지. 1, 2차 시험관 애들이랑 이야기하면서 들었던 건데...”

 

  “뭔데 그래.”

 

  “1차 필기시험에서 수석으로 통과를 했대. 문제 자체가 다른 돈 낸 녀석들보다 훨씬 어려웠을 게 자명한 데도 말이야. 뭐 여기까지는 똑똑한 계집인가 보다 할 수 있지만...”

 

  “있지만 왜.”

 

  “2차 시험에서 통나무 써는 거 있잖아. 옆에서 다른 놈들 두부나 오이 써는데 그 계집애만 통나무를 썰어야 했지. 평범한 검 한 자루 지급해 줬고. 그런데 그 계집애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검을 가볍게 치켜들더니 바로 통나무를 내리찍어 두 동강을 내 버렸다는 거야.”

 

  “말도 안 돼! 그 발뭉조차도 한 번에 토막 내지는 못했다고! 잘못 들은 거겠지.”

 

  “그 때 시험 관리하던 친구가 직접 보고 말해 준 거야. 걔가 무슨 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겠냐?”

 

  “흠, 그래서 지금 기사단장이 그 정도로 준비를 해 놓는 거구만. 요행수를 부린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 정도로 준비를 하는 거로군. 참 정성이야, 정성. 그 정성으로 수련을 하면...”

 

  “앗, 저 녀석인가 봐! 계집애야!”

 

  시험관이 말을 자르고 책상 너머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지른다.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한 소녀가 각반을 차고 몸에 딱 맞는 대련용 복식을 입은 채 시험장 중앙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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