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혁이 형사팀에 들어온지 2달이 지났다.
그 기간동안 준혁은 술값 떼먹고 도망친 사기꾼, 오토바이 훔쳐 타다가 잡힌 고등학생, 술 먹다 말고 패싸움한 일용직 인부 조사 같은 작은 사건들을 마무리하여 1)송치(送致)하며 조금씩 일을 배워 나가고 있었다.
준혁이 어느 정도 형사생활에 적응이 되기 시작하던 3월 말 무렵, 용진에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뚜르르르
"감사합니다. 형사2팀장 경위 김용진입... 아 예, 예. 음.. 일단 제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고 사무실을 나가는 용진을 희연이 불렀다.
"팀장님 어디 가세요?"
"여청(여성청소년과)에서 공조수사 관련해서 의논할게 있다고 잠깐 와달래서 그 쪽 사무실에 갔다올게"
"예? 무슨 사건 생겼어요?"
무료해하던 희연이 눈을 반짝거렸다.
"자세한 얘기는 일단 가서 들어봐야겠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예, 다녀오세요"
밖으로 나가는 용진을 바라보던 희연이 한참 조서를 받고 있는 준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분위기만 봐도 딱~ 큰 사건의 냄새가 나는데 쟤는 쳐다보지도 않고 돈도 안되는 거에 집중하네"
희연이 쉬지 않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준혁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니까 같이 술 잘 마시다가 갑자기 때린 이유가 단지 그 것 뿐이라 이 말입니까?"
"아니 형사님. 단지 그것뿐이라뇨.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화가 나야 정상아닌가예?"
폭행 조사차 출석시킨 피의자 김민교의 말에 준혁이 한숨 쉬었다.
"정리 한번 해볼게요. 진술인과 피해자는 직장 선후배 사이이고, 일을 마치고 둘이서 꼼장어에 소주 한잔하러 가서 얘기 중 이었는데 갑자기 후배인 피해자가 일본으로 1주일간 여행을 가는데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10배는 더 잘 살아서 흥분된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였고,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서 앞에 있는 소주병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2대 때렸다. 맞습니까?"
"예예. 정확하게는 일본 오니기리에서 오키나와를 먹는다고 했던가"
"오키나와에서 오니기리를 이겠죠. 그래서 겨우 그 얘기에 기분이 나빠서 소주병으로 사람의 머리를 2번이나 내리쳤습니까?"
"아니 형사님! 소주병으로 머리를 2대나 내리쳤다니까 제가 무슨 살인범 같네예, 그냥 가볍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툭, 툭 두대 훈계하듯이 때렸다고예. 이제는 우리나라가 더 잘산다는 식으로 얘기해주면서. 왜 자꾸 사람을 강력범으로 몰고 갑니까, 예?"
"됐고요. 그래서 진술인의 폭행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다쳤는지 알고 있습니까?"
"하.. 몰라요. 별 쌔게 치지도 않았는데 뭐 얼마나 씩이나 다쳤겠소"
민교의 말에 준혁이 상해진단서를 내밀어 보였다.
"보이시죠? 4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비골골절 및 안와골절 등. 가볍게 툭툭 쳤는데 뼈까지 부러집니까? 예?"
"아니 이사람이 진짜!"
민교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경찰관요! 거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한거 아니요! 몇가지 물어만 본다고 전화로 바쁜 사람 불러다 놓고 사람을 범죄자 취급 하지를 않나, 씨팔! 당신 그놈한테 돈받아먹은거 아녀? 어? 한통속 아니여!?"
"조사 중이니까 앉으세요"
순간 사무실에 있는 직원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준혁이 말했다.
"앉긴 뭘 앉아! 씨벌 기분 나빠서 더 이상 못있겠다. 집에 갈거니까 니 혼자 조사를 하시든 마시든 알아서 하세요 형사 나으리"
사무실 밖으로 빠져나가려는 민교를 보며 희연이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에헤이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옆에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선생님 말이 다 맞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옆동네 쪽국놈들보다 못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참을 수가 있나. 저는 이해합니다"
희연의 얘기를 들은 민교가 표정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아 이쁜 아가씨가 뭘 좀 아네. 근데 아가씨는 여기 왜 왔소? 이런대 올 아가씨로는 안보이는데"
"하하, 저도 형삽니다 형사"
"이야 이렇게 이쁜 형사님도 다있나. 거 그럼 내 조사받는 수사관 이 아가씨로 바꿔주쇼. 아님 그냥 집에 갈라니까. 영장을 가져오던지"
민교의 말에 준혁이 한숨만 쉬고 있자 희연이 바로 대답했다.
"아 물론이죠. 이쪽으로 오세요"
민교를 자리로 데려가던 희연과 눈이 마주친 준혁이 쓰게 웃었다.
'아직 멀었구나..'
조사를 시작하는 희연을 바라보던 준혁이 사무실 밖으로 나갔고 그 뒤를 준혁의 형사조장인 경일이 뒤따랐다.
"하아..."
경찰서 옥상으로 올라온 준혁이 한숨 쉬었다.
"한대 빨래?"
준혁을 뒤따라온 경일의 물음에 준혁이 흠칫 놀랐다.
"..행님?"
니코틴 연기를 크게 들이켰다가 내뱉은 경일이 준혁을 바라봤다.
"뭘 그것가지고 기가 죽어있냐? 1년차에 국민새끼님 패대기쳐 쳐넣은 패기넘치는 순경은 어디갔어?"
"그게..."
무언가 대답하려던 준혁이 다시 한숨 쉬었다.
"땅 꺼지겠다. 니맘 다알아 임마"
경일이 다시 한번 니코틴 연기를 내뿜으며 하늘을 바라봤다.
"행님"
"왜"
"진짜 뭐가 옳은 건지 모르겠어요"
"뭐를?"
"물론 옛날 아버지 시절 경찰관들처럼 무분별하게 권력을 남용해서 국민을 잡아넣는 미친 역사가 반복되어서는 안되겠죠. 하지만 이정도로 공권력이 추락해있는데 과연 제가 뭘 할 수 있을까요?"
"..."
침묵하는 경일을 바라보며 준혁이 계속 얘기했다.
"저는 제가 징계받던 그 순간에도 진짜 기분 더러웠지만, 개같았지만 제가 했던 행동을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습니다. 근데 진짜.. 경력도 얼마 안된 신임 짬찌가 이런말 하는 것도 웃기지만.. 힘드네요"
"준혁아"
준혁이 말없이 경일을 바라봤다.
"니가 무엇인가 하려고 노력하지 마라.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윗사람의 생각에 의문을 갖지마라"
용진과 비슷한 경일의 대답에 준혁이 쓰게 웃으며 대답하려고 했다.
"하지만.."
"?"
"도저히, 진짜 도저히 이것만은 참을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침묵하고 묵과한다면 평생 후회로 남아서 너 자신을 괴롭힐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온다면..."
"..."
"그 때는 니 마음속에 있는 소신과 정의를 행동으로 실천해, 눈 앞에 있는 새끼를 때려 죽이든 살리든"
"...!"
"그게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 경찰관이니까"
사무실로 돌아온 준혁과 경일을 맞이한 것은 성난 표정으로 민교의 팔을 꺾고 있는 희연의 모습이었다.
"아앜! 아아앜! 경찰관이 국민 잡네! 앜!"
"국민? 볼펜으로 대가리를 찍어버릴라 개자식이"
희연이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뭐? 볼펜으로 대가리? 개자식? 이 미친년이...아앜! 아파! 씨팔! 아프다고!"
욕설을 내뱉는 민교의 팔을 더욱 세게 꺽어버린 희연이 뒷 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예, 개자식님. 저 미친년 맞구요. 당신을 미친년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로 강제추행죄로 체포합니다. 돈 많으시면 변호사 선임하셔두 되고요. 체포가 부당하다고 느끼시면 법원에 체포적부심 신청하셔도 되고요. 변명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하세요. 개자식님"
"이 미친..앜! 씨팔 놔! 안놔!?"
"닥치고 조용히 따라오세요. 팔 더 꺾이기 싫으면"
"..으읔"
자신의 조장인 병재의 도움을 받아 민교를 유치장으로 데려가는 희연을 멍하니 쳐다보던 준혁에게 경일이 한 쪽 눈을 찡긋 감았다.
"저 봐, 모든 경찰관들이 참고만 사는건 아니라니까?"
"예.. 근데 저래도 괜찮을까요?"
"걱정말고 지켜봐. 너의 능력있는 선배님이 저놈을 어떻게 조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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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치 : 수사한 서류를 검찰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