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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채운몽
작가 : 채헌
작품등록일 : 2017.6.19

조선 최초의 레즈비언으로 기록된 세종의 두 번째 며느리 세자빈 월, 기루 무사 소쌍을 만나 운명인 듯 우연인 듯 사랑에 빠진다. 아니라 해도, 아니 된다 해도 돌아설 수 없었던 그녀들의, 무지개빛 로맨스

 
8장. 운명입니까!
작성일 : 17-06-26 11:29     조회 : 18     추천 : 0     분량 : 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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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들어가셨느냐?”

 

  “아뇨, 아직.”

 

  “사내들이 무어 저리 할 말이 많을꼬. 전하와 저하를 보면 남아일언중천금이란 말도 다 헛것이다.”

 

  월과 석가이는 문틈으로 마당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곧이어 향과 유가 방으로 들어가고, 머슴들이 수레의 책을 향의 방으로 옮기느라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이에요!”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월이 냅다 방문을 열어젖히고 대문 밖으로 뛰어나왔다. 석가이도 꽁지가 빠져라 월의 뒤를 쫓았다.

 

  “탈출 성공!”

 

  월과 석가이가 손뼉을 마주 쳤다.

 

  “그런데 저하께서 마노라를 찾으시면 어째요?”

 

  “궁에 있는 칠 년 동안 단 한 번도 날 찾은 적이 없는 분이다. 아마 내가 영영 돌아가지 않아도 저하께선 모르실 게다.”

 

  “상감마마께서 아시게 되면요?”

 

  “상감마마 이야기는 왜 꺼내느냐?”

 

  월이 인상을 쓰자 석가이가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궐도 아니고 여기서 일어난 일을 전하께서 어찌 아시겠느냐?”

 

  “조선 하늘 아래 상감마마께서 모르시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그건 그렇다만…….”

 

  의기소침해졌던 월이 근심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나왔으니 나중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꾸나. 어찌 얻은 기회인데 우울하게 흘려보낼 수는 없느니.”

 

  월이 비장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석가이가 묘한 표정으로 월을 보았다.

 

  “어찌 그리 보느냐?”

 

  “저도 저지만 마노라께서도 참 대단하시다 싶어서요.”

 

  “새삼스레 뭐가 대단하단 게야?”

 

  “대단하게 대책이 없으시잖아요.”

 

  “뭐어?”

 

  “생긴 건 하늘에서 내려온 천녀처럼 참하고 고우신데 하는 걸 보면 왈짜패 같기

 도 하고, 사고뭉치 어린애 같기도 하고. 꼭 오늘만 사는 분 같어요.”

 

  “그게 상전한테 할 소리냐?”

 

  월이 눈을 흘기자 석가이가 입을 삐죽거렸다.

 

  “칫, 마노라는 전하한테도 못 하는 소리가 없으시면서.”

 

 

  * * *

 

 

  열심히 툭탁거리는 동안 두 사람은 어느 새 저잣거리에 이르렀다. 두 사람의 눈이 세상 구경을 처음 하는 아이들처럼 크게 벌어졌다.

 

  궁은 속삭이는 소리도 번다하게 여겨질 만큼 고요하고 적막했다. 궁 안의 사람들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걸었다.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모양을 하고, 정해진 규칙과 법도에 따라서만 움직였다. 궁에서는 눈도 귀도 한없이 지루했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온갖 소리와 색과 냄새가 제각기 터져 나오고 있었다. 상인들 흥정하는 소리, 여리꾼 손님 끄는 소리, 갱엿 물고 뛰어다니는 어린애들 웃음소리, 쌍육 노는 노인들의 실랑이 소리가 귀를 채웠다.

 

  색색의 옷감과 비단신, 화려한 노리개와 비녀가 눈을 잡아끌었다.

 

  어물이 풍기는 물비린내와 칼칼한 장국 냄새, 기름에 전 굽는 고소한 냄새, 짐꾼들의 땀 냄새와 흙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월은 이 모든 것들이 완전히 처음 겪는 일인 양 새롭게 느껴졌다. 마치 한동안 죽어있던 감각기관이 되살아나 이제야 제 역할을 하는 듯했다.

 

  “저긴 왜 저렇게 사람들이 모여 있대요? 놀이패라도 왔나? 한번 가봐요, 마노라.”

 

  석가이를 따라 뛰는데 갑자기 쿵, 하고 땅 무너지는 소리가 나면서 사람들이 화들짝 물러났다. 집채만한 체구의 사내가 바닥에 개구리마냥 엎어져 있는 것이 사람들 틈으로 보였다. 집채만한 사내는 다름 아닌 양녕의 왈짜패 덩치였다.

 

  그 맞은편으로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선 이는,

 

  “소쌍 악공이셔요!”

 

  석가이의 말에 월이 고개를 뺐다. 하지만 사람들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정말 그 신참 악공이 맞느냐?”

 

  “그렇다니까요. 제가 딴 것도 잘 외지만 잘생긴 사내 얼굴은 특히나 잘 외잖아요. 게다가 제 운명의 정인인데 어찌 그 얼굴을 잊겠어요. 소쌍 악공이 분명해요.”

 

  “헌데 악공이 저잣거리에서 웬 싸움질이냐?”

 

  “그러게 말이에요.”

 

  석가이가 사람들을 제치고 앞으로 꾸역꾸역 나아갔다. 월은 석가이의 등에 붙어서 겨우 걸음을 옮겼다.

 

  “그러게, 사줄 능력도 없으면서 기물은 왜 다 부쉈냐? 행패도 능력껏 부려야 탈이 없지.”

 

  소쌍이 덩치 옆으로 다가와 무릎을 구부리고 앉았다. 덩치의 눈엔 시퍼런 멍이 들었고, 코에선 쌍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에 반해 소쌍은 먼지 한 톨 묻지 않은, 깔끔한 모습이었다.

 

  “우리 형님이 가만둘 줄 아느냐? 너와 그 기루, 죄다 싸그리 엎어버릴 게다!”

 

  덩치가 피 섞인 침을 퉤 뱉으며 으르렁거렸다.

 

  “거 참, 말끝마다 우리 형님, 우리 형님. 그 잘난 느이 형님이 대체 누군데?”

 

  “상감마마의 형님이신 양녕대군이시다!”

 

  덩치의 말에 둘러선 사람들이 헉, 소리를 내었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월과 석가이였다. 월이 쓰개치마를 고쳐 쓰고는 석가이를 잡아끌었다.

 

  “마노라, 어찌 이러셔요.”

 

  “대군께서 나타나시기라도 하면 어쩌느냐. 그럼 너랑 나는 진짜 죽는다. 얼른 가자.”

 

  석가이는 월의 손을 뿌리쳤다.

 

  “전 오늘 목숨 걸고 나온 거여요. 근데 소쌍 악공을 만났잖아요. 우린 진정 운명인 게 틀림없어요. 저는 대군 나으리가 아니라 전하께서 오신다고 해도 소쌍 악공을 꼭 만나야겠어요!”

 

  태연한 것은 소쌍뿐이었다.

 

  “양녕대군이건 쌍녕대군이건 나는 모르겠고, 기물 사서 보내라. 아니면 직접 와서 무릎 꿇고 사죄를 하거나. 느이 잘난 형님이 친히 약조하시는 것 너도 들었잖느냐? 아무리 멍청해도 그것까지 까먹지는 않았겠지? 향원각의 소쌍이 오늘 다녀갔다고 느이 잘난 형님께도 꼭 전해드리고.”

 

  소쌍이 덩치의 퉁퉁한 볼을 툭툭 치고 일어섰다.

 

  “이놈이……!”

 

  덩치가 황소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소쌍이 돌아서는 순간, 쓰러져 있던 덩치가 품에서 단도를 꺼내들고 소쌍을 향해 달려들었다. 구경꾼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월의 옆에 서 있던 석가이도 저만치 달아났다.

 

  “안 돼!”

 

  월이 본능적으로 발을 뻗었다. 월의 발목에 걸린 덩치가 비틀거렸다. 소쌍이 가볍게 몸을 돌려 덩치의 명치를 정확히 걷어찼다. 급소를 맞은 덩치가 컥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소쌍이 빙글빙글 웃으며 덩치의 손에서 단도를 빼냈다. 단도의 손잡이 전체에 금이 덧발라져 있고, 보석이 박혀 있었다.

 

  “와, 이거 되게 비싼 거 같은데 선물로 주려고? 고맙다, 잘 쓸게.”

 

  소쌍은 대답 없는 덩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월 쪽으로 다가왔다. 월이 몸을 틀고는 쓰개치마를 턱까지 내렸다.

 

  “고맙습니다, 아씨. 덕분에 살았네요.”

 

  “…….”

 

  “하하, 낯을 많이 가리시는군요. 괜찮으시다면 어디 사는 누구신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언제고 은혜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보답은, 필요 없습니다.”

 

  월이 다른 목소리를 내려 애쓰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그런 게 아닙니다.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응당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악공, 소쌍 악공!”

 

  저만치서 석가이가 달려오며 다짜고짜 소쌍의 품에 안겼다.

 

  “이리 될 줄 알았어요! 다시 만날 줄 알았다구요! 우린 정말 운명의 정인이 틀림없어요!”

 

  소쌍이 두 팔을 번쩍 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사람을 잘못 보신 듯한데, 저는 악공이 아니……,”

 

  석가이가 손가락으로 소쌍의 입술을 눌렀다.

 

  “쉿! 아무 말도 마셔요. 저의 마음이 악공의 마음, 악공의 마음이 저의 마음. 그러니까 잠시만, 잠시만 이러고 있어요, 우리.”

 

  “대체 뉘신데 이러시는지……?”

 

  석가이를 유심히 내려다보던 소쌍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하, 일전에 궁에서 마주쳤던 분이지요? 괴력의 아씨한테 끌려가시던.”

 

  소쌍이 댕기 끌고 가는 시늉을 해보였다. 석가이가 감동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기억하고 계셨군요. 그래요. 운명의 정인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저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어요. 악공과 함께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을……, 켁!”

 

  석가이의 목이 헤까닥 젖혀졌다. 쓰개치마로 완전히 얼굴을 가린 여인이 석가이의 댕기를 잡아당기고 있었다. 어딘가 익숙한 장면인데?

 

  “그럼 아씨가 그 괴력의 아씨?”

 

  소쌍의 얼굴이 반가움으로 환해졌다.

 

  “아, 맞다! 노리개!”

 

  소쌍이 퍼뜩 생각났다는 듯 품속을 뒤졌다. 석가이가 여전히 고목나무 매미마냥 소쌍을 붙든 채 말했다.

 

  “그새 제게 줄 선물까지 준비하신 것입니까? 그런 것은 필요치 않아요. 저는 악공만 계시면 된다구요. 그래도 굳이 주시겠다면 거절은 않겠어요.”

 

  석가이가 손바닥을 벌리자 소쌍이 낭패라는 얼굴을 했다.

 

  “하아, 하필 오늘 두고 왔습니다.”

 

  “그럼 같이 가서 가지고 올까요? 이참에 집 구경도 하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월이 석가이의 귀를 잡아당기고는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얼른 가자고 했다.”

 

  “안 돼요! 절대 그냥은 못 가요. 오늘 소쌍 악공님이랑 결판을 내고 말 거예요.”

 

  “혹 노란 나비 노리개를 잃어버리시지 않았습니까?”

 

  나비 노리개라는 말에 석가이와 실랑이하던 월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호박으로 만든 쌍나비 노리개 말이냐?”

 

  소쌍이 환하게 웃었다.

 

  “역시, 아씨 것이 맞았군요. 혹시나 하고 주워두길 잘했습니다. 행여나 마주칠까 하여 늘 지니고 다녔는데 하필 오늘은 깜빡 빠뜨리고 왔습니다.”

 

  쌍나비 노리개는 궁에 들어올 때 어머니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차고 있으면 어머니와 함께 있는 기분이 들어 늘 지니고 다녔다.

 

  그날 밤 뒤늦게 노리개가 없어진 것을 알고 석가이와 함께 궁을 몇 바퀴나 돌았었다. 결국 찾지 못하고선 어머니와 또 한 번 생이별을 하는 듯해 얼마나 속울음을 울었던지.

 

  꼭 찾고 싶긴 했지만, 꼭 찾아야 하는 물건이었지만 그렇다고 저 자를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악공인지 싸움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건 양녕대군과도 건너건너로 아는 사이라니 더 이상 엮여선 안 되었다.

 

  “괜찮으시다면 내일 돌려드려도 될지요. 저자로 나오시면……,”

 

  “소중한 것이긴 하나……, 내일은 나올 수가 없네.”

 

  “그럼 사는 곳을 알려주시면 제가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건 더더욱 아니 되네!”

 

  월의 목소리가 크게 터져 나오는 바람에 지나는 사람들까지 흘끔거렸다.

 

  “그, 그냥……, 자네 가지시게. 아주아주 귀한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게나. 여인도 좋아할 것이네.”

 

  월이 입술을 깨물며 말하고는 석가이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올 수 있어요! 내일 만나요, 우리!”

 

  월이 소쌍이 보이지 않게 몸을 돌리고 인상을 팍 썼다.

 

  “내일 어찌 나온다고 그런 말을 하는 게야?”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 않어요. 방법이야 찬찬히 생각해보면 되죠.”

 

  석가이가 소쌍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월이 쓰개치마를 뒤집어 쓴 채 고개를 흔들었다. 월과 석가이의 상반된 대답에 소쌍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리 하시지요. 저는 내일 오시에 저자 입구 느티나무 아래서 기다리겠습니다. 오실 수 있으면 오시고, 오실 수 없다면 아니 오시면 됩니다. 오시지 못하더라도 전혀 상관없으니 내일 아씨 편한 대로 하시지요. 어떻습니까?”

 

  “좋아요, 좋아요. 완전 좋아요!”

 

  석가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라했다. 소쌍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얼마쯤 가다 소쌍이 뒤를 돌아보았다.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 두 사람이 보였다. 재미있는 여인들이야. 소쌍이 쿡, 웃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한편 월과 석가이는 다정하긴커녕 살벌하게 툭탁거리며 걸어가는 중이었다.

 

  “넌 어쩌려고 내일 만나자고 한 게야?”

 

  “오늘처럼 몰래 빠져나오면 되죠.”

 

  “오늘이야 진양대군이 오는 바람에 눈을 피하기 쉬웠다지만 어디 내일도 그렇겠느냐?”

 

  “그럼 마노라께선 종학에 계셔요. 제가 휭하니 갔다 올 테니까요.”

 

  휭하니 갔다 오기는. 아까 보니 휭하니 가버릴 기세더구만.

 

  “제가 느티나무 아래서 악공을 만나서 노리개를 딱 받아가지고 오겠다니까요? 마노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찌 저를 못 믿으셔요?”

 

  “너니까 못 믿는 게지.”

 

  아웅다웅하며 대문으로 들어서던 월과 석가이가 유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지, 진양대군.”

 

  월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유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쓰개치마를 쓴 월과 석가이를 번갈아 보았다.

 

  “빈궁 마노라,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옵니다.”

 

  “저, 저녁 먹은 것이 체한 듯해 잠시 밤산책을 하고 왔습니다. 조용하기에 벌써 가신 줄 알았습니다.”

 

  당황한 월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하하, 형님 저하와 오랜만에 회포를 푸느라 시간이 이리 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월과 석가이가 어서 가라는 듯 서둘러 비켜섰다. 문간을 넘던 유가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빈궁 마노라 석반상에는 다른 음식을 올렸나 봅니다? 형님 저하께서 속이 좋지 않다 하시어 저와 형님은 흑임자죽을 먹었는데 말입니다.”

 

  월의 얼굴이 단번에 굳었다.

 

  “그, 그것이…….”

 

  유가 씨익 웃었다.

 

  “죽이 아주 맛나 다음에 또 먹으러 와야겠습니다. 역시 수라간 나인들 솜씨는 훌륭합니다. 여염집 하녀들과는 비교가 아니 된다니까요.”

 

  월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쉬시옵소서, 빈궁 마노라.”

 

  유가 말에 올라탈 때까지도 미소를 지우지 않고 월을 보았다.

 

 

  * * *

 

 

  “향원각에서 사람이 왔더라고?”

 

  양녕의 어깨 위에 앉은 보라매가 날개를 퍼덕거렸다. 옥니박이가 덩치가 소쌍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이야기를 고한 참이었다. 양녕이 휘익, 휘파람을 내불자 보라매가 횃대 위로 날아갔다. 등갈색의 깃털이 허공에 날렸다.

 

  “이것들이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입니다. 그날 그 정도로 봐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물건을 사내라고 행패를 부리다뇨. 어찌할깝쇼? 지금이라도 가서 죄다 엎어버리고 올깝쇼?”

 

  당장이라도 그리 하라 할 줄 알았는데 답이 없었다. 옥니박이가 의아한 눈으로 양녕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형님?”

 

  “으하하, 내 사람을 제대로 보았구나. 하하하!”

 

  “혀, 형님?”

 

  옥니박이가 드디어 이제 형님이 미쳤구나 하는 눈빛으로 양녕을 힐끔거렸다.

 

  “내일 향원각으로 가자꾸나.”

 

  “형님까지 가실 거 뭐 있습니까? 제가 애들 데리고 후딱 댕겨오겠습니다.”

 

  “그 많은 물건들을 이 밤중에 어찌 옮긴단 말이냐?”

 

  “예? 무슨 물건……?”

 

  옥니박이가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듯 눈을 끔벅거렸다.

 

  “설마, 형님, 그 물목들을 다 사신 겝니까?”

 

  “그럼! 기방 법도 하나 못 지키는 오입쟁이가 오입쟁이더냐? 내 다음 날 집사를 시켜 다 사두었느니라.”

 

  “허면 어찌 오늘 보내시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이 물목을 보내주기로 약조한 날인데.”

 

  “내 고것이 어찌 나오나 보려고 일부러 그랬느니라. 그런데 당돌하게도 기둥서방을 보내지 않았느냐? 기개와 배짱이 보통은 넘는 년이다. 마음에 든다, 아주 마음에 들어!”

 

  양녕이 눈을 가느다랗게 빛내며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천향이라 하였던가. 내 너를 반드시 가져야겠구나.”

 

  양녕이 지렁이 한 마리를 던지자 보라매가 살처럼 날아와 지렁이를 낚아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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