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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은혜로운 열애사
작가 : 우연리
작품등록일 : 2017.6.2

"귀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죠?"

은혜가 물었다.

"춤 추는 건 본 적 있습니다."

차트를 넘기던 무열이 대답했다.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끌어 올리려다 그냥 벗어 버렸다. 은혜만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어땠는데요?"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은혜와 무열이 조소를 머금었다. 삐딱한 그들의 입술은 동시에 답을 뱉었다.

"최악이죠."



귀신이 들리는 여자 주은혜와 귀신이 보이는 남자 최무열의, 미스터리로맨스릴러 은혜로운 열애사.

 
보이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3)
작성일 : 17-06-25 16:48     조회 : 227     추천 : 0     분량 : 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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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례합니다!"

 

  "그래, 실컷 실례하렴."

 

  자포자기한 은혜를 뒤따르는 원의 걸음은 경쾌했다. 그는 은혜와 함께 서점 문을 닫고 계단을 오르는 내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잠깐 은혜는 남자를 이렇게 집에 쉽게 들여도 되나 고민했으나, 원의 앳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고민을 한 자신이 더 위험하게 느껴졌다. 애기를 상대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은혜는 주저 없이 3층 문을 열어 재끼고 새로운 보금자리에 첫 손님을 맞이하였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대는 원을 서둘러 거실 소파에 앉혔다.

 

  원은 은혜와 놀고 싶어 하는 듯 했으나, 아무래도 늦은 시간이니 얼른 먹이고 보내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자신을 버려둔 채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은혜를 원이 불러 세웠다.

 

  "도와줄까요?"

 

  "됐어, 그냥 TV나 보고 있던가."

 

  "아, 불안한데. 칼에 베이는 거 아니에요?"

 

  은혜에게 밥을 차려 달라던 패기와는 반대로 그녀가 걱정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안 다쳐. 간단하게 볶음밥 괜찮지?"

 

  "다 좋아요. 조심만 하세요."

 

  가볍게 웃어넘기는 은혜와 달리 원은 불안하게 그녀의 뒷모습을 살피었다. 그가 겪은 나흘 동안의 은혜는 맹하고 어리숙한 행동을 가끔 선보였다.

 

  바닥에 쌓아 둔 책 더미에 발이 걸려 넘어질 뻔 한다던가, 생각 없이 뜨거운 커피포트의 몸체를 만져 손을 데일 뻔 한다던가 하는 실수는 예삿일이었다.

 

  "……."

 

  원은 앞치마를 하고 칼을 찾아 드는 은혜를 관찰하듯 지켜보았다. 그의 젊은 사장님. 요즘 같은 시대에 서점을 차리는 특이한 여자.

 

  맹한 그녀이지만 때때로 묘하게 연상의 냄새를 풍길 때가 있다. 실제 나이보다 견고한 세월의 벽이라는 걸 세우는 것이다.

 

  특히 책장에 얼굴을 파묻는 그녀에게서는 다가가기 힘든 거리감이 느껴졌다. 은혜의 생각, 추억, 과거 등이 그녀의 주변을 떠도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녀가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럴 때마다 원은 잠자코 기다렸다. 어딘가 멀리 떠나간 은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얌전히 기다리고 있자면 조금 안달 나기도 했다. 은혜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까봐.

 

  "김치 볶음밥이 좋아, 그냥 볶음밥이 좋아?"

 

  "난 김치 볶음밥 잘 만드는 여자가 좋더라."

 

  "못 살아, 진짜."

 

  원이 엉터리 노래 선율에 맞춰 대답하자 은혜가 크게 웃었다. 그래서 원도 웃었다. 별 거 아닌 일에도 은혜가 웃으면 괜히 기분이 들뜨는 것 같았다.

 

  냉장고에서 간단한 재료를 꺼낸 은혜가 칼로 손질을 시작했다. 손가락이라도 자르진 않을까하던 원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의 칼질은 안정적이었다.

 

  "오오. 의외인데……."

 

  "뭐, 인마?"

 

  어느새 거실에서 부엌으로 건너 온 원이 은혜의 근처를 알짱거렸다. 은혜에게 실례인 말이지만, 정말 의외였다.

 

  "누나 요리 잘 하나 봐요?"

 

  "그냥 좀 오래 해봤으니까."

 

  금방 다져진 재료를 기름 두른 팬에다 쓸어 넣고 볶았다. 손으로 팬을 흔드는 폼이 제법 그럴 듯 했다. 간단하게 간을 하고 밥까지 넣어 둘둘 섞어내자 김치 볶음밥이 뚝딱 만들어졌다.

 

  원이 가져다 준 접시에 대충 덜어 놓고 막 구워낸 계란 프라이까지 올리니 과히 화룡점정이었다. 원은 눈을 빛내며 얼른 식탁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많이 먹어."

 

  대식가인 원과 소식가인 은혜의 김치 볶음밥 양은 거의 3배 차이가 났다. 그럼에도 자리에 앉은 은혜는 원의 접시에다 자신의 몫을 더 덜어 주었다. 삼시 세끼도 잘 챙기지 않는 그녀에게 야식은 별나라 이야기였다.

 

  한 입 크게 숟갈을 문 원이 순간 행동을 멈췄다. 그의 반응에 불안해진 은혜가 서둘러 제 접시의 볶음밥을 먹어 보았다. 나쁘지 않은데. 입맛에 안 맞나. 한참이 지나고서야 비로소 원이 입을 느리게 씹으며 말을 꺼냈다.

 

  "……누나."

 

  "왜, 맛없어?"

 

  "결혼해요."

 

  "까분다."

 

  깜짝이야. 맛이라도 없는 줄 알고 놀랐다. 원은 감동한 얼굴이었다. 사실 은혜에게 집 밥을 요구할 때만 하더라도 별 기대는 없었다.

 

  그냥 은혜가 맨 밥만 줘도 감지덕지 먹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맛있을 줄이야. 맹한 은혜가 이런 요리 실력을 가졌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완전 맛있어요. 누나 요리 진짜 잘하네요."

 

  "요리는 무슨. 그냥 김치 볶음밥인데."

 

  "원래 이런 게 진짜 맛있기는 힘든 거죠."

 

  원이 진심으로 은혜의 솜씨를 칭찬했다. 부끄럽긴 해도 기분은 좋았다. 은혜는 자신의 볶음밥을 복스럽게도 먹는 원의 접시에 거의 다 부어 주었다. 어유, 이쁜 것.

 

  "많이 먹고 얼른 커라."

 

  "여기서 얼마나 더 크라고요?"

 

  "아직 애기니까 더 커야지."

 

  "애기 아니라니까."

 

  툴툴대면서도 원의 숟가락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을 어여쁘게 바라보고 있자니 원이 불쑥 은혜의 입가에 숟가락을 들이 밀었다. 소복하게 쌓은 김치 볶음밥이 그녀의 입술을 두드렸다.

 

  "자, 누나도 먹어요. 누나 너무 안 먹는 거 알아요?"

 

  "아냐, 됐어. 너나 먹어."

 

  "얼른요. 자, 아."

 

  "괜찮……."

 

  말을 하기 위해 벌린 입술에 맛깔스러운 침입자가 들어섰다. 얼떨결에 받아먹은 은혜가 꼭꼭 씹어 먹자 원이 흐뭇하게 웃었다. 반찬 투정하는 아이에게 밥을 먹인 엄마 같은 미소였다.

 

  "혹시 다이어트 해요? 그런 거 안 해도 누나 엄청 말랐어요."

 

  "딱히 다이어트 하는 건 아닌데……."

 

  "그럼 밥 좀 많이 먹어요. 무슨 새 모이 먹듯이 먹어. 보는 사람 안쓰럽게."

 

  안쓰러울 정도였나. 마지막 쌀 한 톨까지 씹어 삼킨 은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어릴 때부터 먹는 것 자체를 별로 안 좋아했다. 나쁜 버릇은 세월이 지나도 고쳐지지 않았다.

 

  그래도 끼니를 챙기기는 해야 하니 은혜는 부엌을 일찍 접했다. 하루 한 끼나 제대로 해 먹으면 많이 먹는 것이었다. 어린 은혜는 최소한으로 먹고 살기 위해 요리를 시작했다.

 

  원은 밥을 한가득 푼 숟갈을 다시 은혜에게 들이 밀었다. 은혜는 고개를 붕붕 저었다. 단순히 먹기 싫은 게 아니라 진짜 배가 불렀다. 야식을 처음 접해본 그녀의 위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거절당한 손을 어쩔 수 없이 되돌린 원이 본격적으로 수저를 놀렸다. 접시에 코를 박는다는 게 이런 표현이지. 게걸스럽지는 않지만 그는 음식을 식도에 쏟아 붇는 느낌으로 밥을 먹어댔다.

 

  빠른데다가 군더더기가 없었다. 꼭 밥과 전투를 하듯 먹어 치운다. 밥을 잘 먹지 않는 게 은혜의 버릇이라면, 원은 밥을 미친 듯이 흡입하는 버릇이 있었다. 혹여나 체할라 은혜가 핀잔을 주었다.

 

  "천천히 먹어. 아무도 안 뺏어 먹는다니까."

 

  "어릴 때 맨날 형들한테 뺏겨서 그래요. 우리 집 식구들이 다 식탐이 있거든."

 

  하루에 열 댓 번은 들은 말이었다. 원은 자기가 빨리 먹는 습관이 든 게 다 형들 때문이라고 항상 투덜댔다.

 

  그에게는 형이 셋이나 있는데다가 모두 원만큼 식성이 좋다고 했다. 은혜는 상상했다. 원처럼 먹는 남자가 넷이 있는 식탁을.

 

  은혜는 질린 얼굴을 가로로 저었다. 상상의 결과물은 그야말로 험악한 전쟁터였다.

 

  몇 분이 지났을까. 원의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나고 평화가 찾아왔다. 그는 포만감 가득한 배를 장난스럽게 두들겼다. 너무 잘 먹었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설거지를 하겠다며 소매를 걷어 붙였다. 원은 은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접시를 치운 뒤 커피까지 타서 돌아왔다. 밥값은 해야지 않겠냐며 애살스럽게 구는 그를 차마 뜯어 말릴 수 없었다.

 

  그는 식탁에서 기다리던 은혜에게 따뜻한 머그잔을 쥐어 주었다. 원두커피에 우유를 넣어 은혜의 취향에 맞춘 라떼였다.

 

  "아, 그나저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맛있게 잘 탔네. 라떼를 홀짝 홀짝 마시던 은혜가 되물었다. 마주 앉아 아주 새까만 커피를 들이 킨 원이 잔을 내려 놓았다. 카라멜 마끼야또라도 마실 것처럼 생긴 그는 예상 외로 진하게 내린 쓴 원두커피를 좋아했다.

 

  "우리 서점 이름이 왜 야곱 서점이에요?"

 

  "음……. 반항의 의미로?"

 

  "네?"

 

  알 수 없는 대답을 중얼거린 은혜가 모호하게 웃었다. 또다. 또 벽이 세워진다. 원의 젊은 여사장은 누구보다 단순해 보이면서도 누구보다 복잡해지곤 한다.

 

  그 보이지 않는 미지의 벽에 밀리는 게 싫었다. 원은 일부러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농담을 건네면 은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어 줄 것이다.

 

  "뭔가 칙칙하잖아요. 누나 이름 따서 은혜 서점 어때요?"

 

  "글쎄. 난 내 이름 별로 안 좋아해서."

 

  "왜요? 예쁜데."

 

  원이 식탁에 팔꿈치를 얹고 꽃받침을 하며 느물하게 웃었다. 어우, 느끼해. 질겁을 하는 은혜에게 그는 오버하며 윙크까지 날렸다. 결국 은혜가 웃음을 터트리자 그도 눈을 곱게 휘었다.

 

  역시 은혜가 웃는 게 좋다.

 

  ……웃는 게 예쁘다.

 

  늦은 밤, 야곱 서점의 단 하나 뿐인 직원은 아무도 몰래 다가 온 도둑 마음을 슬며시 가슴 속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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