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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은혜로운 열애사
작가 : 우연리
작품등록일 : 2017.6.2

"귀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죠?"

은혜가 물었다.

"춤 추는 건 본 적 있습니다."

차트를 넘기던 무열이 대답했다.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끌어 올리려다 그냥 벗어 버렸다. 은혜만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어땠는데요?"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은혜와 무열이 조소를 머금었다. 삐딱한 그들의 입술은 동시에 답을 뱉었다.

"최악이죠."



귀신이 들리는 여자 주은혜와 귀신이 보이는 남자 최무열의, 미스터리로맨스릴러 은혜로운 열애사.

 
보이는 것도 전부가 아니다 (2)
작성일 : 17-06-23 22:01     조회 : 254     추천 : 0     분량 : 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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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하다. 무열은 마스크를 내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부터 오후가 되도록 수술의 연속이었다. 긴장이 풀리니 뼈가 다 녹아내리는 것 같다.

 

  손바닥으로 지친 얼굴을 쓸어내리려다 딱딱한 장애물에 막혀 그만 두었다. 도수도 없는 유리알. 아무리 써도 불편하기만 한 안경이었다.

 

  렌즈에 지문이 묻어 시야가 답답했다. 마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안경을 벗어 초록색 수술복 상의로 렌즈를 대충 닦아 냈다.

 

  깨끗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앞이 보일 정도는 되었다. 곧바로 다시 쓰려던 손을 멈췄다. 그는 안경을 쥔 채로 잠시 자유로워진 미간을 문질렀다.

 

  눈을 지그시 감고 충만한 평화를 만끽하였다. 아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진정한 어둠. 편안하다.

 

  하지만 가까워 오는 인기척에 그는 짧은 자유를 반납해야 했다.

 

  "아, 최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나긋한 목소리에 무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안경을 쓴 채였다. 그는 다른 사람 앞에서 절대 안경을 벗는 일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빨리 가줬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볼을 붉힌 간호사는 먼저 무열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절로 굳으려는 인상을 단속해야만 했다.

 

  "……해서, 이번 주말에 혹시 시간 있으세요?"

 

  "없습니다."

 

  차갑게 일갈하는 무열의 반응에도 간호사는 생글 생글 웃었다.

 

  "비번이시던데."

 

  "……."

 

  "무슨 약속이라도……?"

 

  이미 무열의 비번 날까지 조사한 주제에 사람을 은근 떠보는 모양새가 제법 여우같았다. 언뜻 치는 눈웃음도 연습이라도 한 마냥 자연스럽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 지안 종합 병원의 자칭 타칭 최고 미인, 진선미 간호사는 자신 있었다. 무열을 가질 자신이.

 

  아니, 지안 종합 병원장의 아들을 꼬실 자신이!

 

  잘생긴 외모나 유능함도 물론 무열이 탐나는 이유 중 하나지만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을 물려받을 남자인 것이다.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

 

  다년간의 노하우로 집결된 선미의 몸짓, 손짓, 심지어 눈짓 하나에 넘어 오는 남자는 수두룩 빽빽했다. 물론 타고나고 관리해 온 미모가 뒷받침 해 준 결과였다.

 

  흔히들 말하는 새초롬한 고양이 상의 얼굴로 순진하게 굴면서도 때로는 대담한 분위기까지 휘감으면, 짜잔! 남자들은 홀라당 넘어올 수밖에 없는 매력 완성!

 

  그 콧대 높은 무열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남자. 선미에게 있어 남자란 손쉬운 요리와도 같았다.

 

  자, 병원의 모든 여의사와 간호사들의 어택에도 끄떡없던 너의 명성을 내가 무너뜨려 주마. 선미의 어여쁜 얼굴이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약속, 없으시죠?"

 

  "딱히 약속은 없지만."

 

  이거 봐. 남자라면 이 선미님을 거절할 수 없는 것이야, 호호호! 조금만 건드리면 금방 넘어올 게 분명했다.

 

  기세등등한 선미가 나머지 공격으로 밀어 붙이기도 전에 무열이 먼저 입을 떼었다. 그의 낮은 목소리는 의외의 발언을 내밀었다.

 

  "애견 서적을 사러 갈 예정입니다."

 

  "……네?"

 

  "필요한 것 같아서요."

 

  애견 서적? 그녀가 상대해 본 남자 중 어느 누구도 데이트를 신청할 타이밍에 애견 서적 따위를 거론한 적이 없었다.

 

  허나 당황도 잠시, 그녀가 누구인가. 그 이름도 진, 선, 미. 남자를 정복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다.

 

  환한 미소를 겨우 유지한 그녀가 재빨리 어울릴 만한 화제로 말을 돌렸다. 떨리는 목소리는 숨길 겨를이 없었지만.

 

  "가, 강아지 키우시나 봐요. 어, 어머, 귀엽겠……."

 

  "키우지는 않습니다."

 

  "……."

 

  그러한 그녀의 노력에도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대체 뭐지, 이 시츄에이션은.

 

  소개팅 나온 남자가 대뜸 할머니가 돌아 가셔서 애인 사귈 여유가 없다고 해놓고, 다음 날 얼굴 책에다 올린 할머니 칠순 잔치 준비하는 사진을 본마음이 이럴까?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 차인 거야? 내가, 이 내가, 이 선미가?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넋을 놓아 버린 선미를 뒤로 한 무열이 먼저 수술실을 벗어났다. 그의 발 치에는 작은 강아지가 여전히 따르고 있었다.

 

  강아지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환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 그동안 몇 차례 병원을 찾은 경찰들이 그가 칼을 든 강도에게 당한 피해자라 전해 주었다.

 

  엉망이 된 피해자의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까지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 무열은 어차피 보이지도 않을 강아지를 넌지시 발로 가렸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무열은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리는 강아지를 틈틈이 내려다보았다. 며칠간에 그의 몸에 익은 습관이었다. 그러고는 괜히 안 본 척, 포커페이스를 덧씌운다.

 

  "애견 서적……."

 

  사실 방금 선미와 대화하기 전까지는 생각도 않았던 말이었다. 그냥 여자의 화려한 얼굴에 눈이 아파 고개를 숙이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친 까만 눈망울에 문득 떠올라 내뱉었을 뿐이다.

 

  선미에게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강아지를 키우지는 않지만,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흠. 무열은 목을 가다듬으며 복도를 시원스레 걸어 나갔다.

 

  그럴 리 없지만, 왠지 뒤를 따르는 작은 발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실재하지 않는 소리에 그의 입 꼬리가 조금 간지러웠다.

 

 

  *

 

 

  "누나! 어제 들어 온 신작 어딨어요?"

 

  "왼쪽 가판대에 올려놨잖아."

 

  "아, 맞다. 찾았어요!"

 

  계단 사이로 내민 원의 얼굴이 씨익 웃으며 자취를 감추었다. 원에게 1층을 맡기고 2층으로 올라와 있던 은혜 역시 미소를 지었다.

 

  가끔 헤매기는 했지만 이제 나흘 밖에 되지 않은 알바생치고 원은 나름 훌륭했다. 여리여리한 겉모습과 달리 누가 남자애 아니랄까봐, 제법 힘도 세고 손도 야무졌다.

 

  무엇보다 같이 있으면 웃음이 헤퍼지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은혜는 요 며칠 사이 팔자 주름이 깊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느껴야 했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웃기만 해본 적이 언제인지. 다 이 서점 덕분인 것 같았다. 뒤늦게 이루어진 꿈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무리해서 차린 서점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아직 갚아야 할 대출은 까마득하지만. 여차하면 수가 없는 것도 아니니, 지금은 그저 소소한 행복을 마음껏 즐겨도 괜찮다.

 

  게다가 요즘 들어 쓸 데 없는 소리까지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원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서점을 오픈한 뒤로 그녀는 불면증과 거리가 먼 깊은 숙면을 누리고 있었다.

 

  그게 꼭 요 예쁜이들 덕분인 것 같단 말이지. 은혜는 작은 책 한 권을 들어 손끝으로 책장을 퉁겼다. 차르르 넘어 가는 소리가 은혜에게는 어떤 음악보다 아름다웠다.

 

  신작을 찾던 마지막 손님까지 상대하고 슬슬 마감을 준비하던 원이 오감으로 책을 감상하는 은혜를 찾아올라 왔다.

 

  "어우, 서점도 불금이 있나 봐요. 갑자기 손님이 많아지네."

 

  그야말로 폭풍 같은 금요일 저녁 시간이었다. 원은 앓는 소리를 내며 어깨를 두드렸다. 확실히 오늘이 좀 바쁘긴 했다. 축 늘어진 원의 어깨를 주물러주던 은혜가 넌지시 그가 바라는 말을 던져 주었다.

 

  "야식이라도 먹고 갈래?"

 

  "오, 진짜요? 아싸!"

 

  눈을 빛낸 원이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나흘 동안 지내본 결과, 원은 상당한 대식가였다. 당최 그 얇은 몸 어디로 다 들어가는지 도통 모를 정도로 먹어댔다.

 

  그와 첫 식사를 하던 은혜는 알바생의 식대를 전부 책임지기로 한 것을 조금, 아주 조금 후회했었다. 그래도 어쩌랴. 먹는 걸로 구박하기에는 너무 이쁜 녀석인 것을.

 

  "뭐 먹고 싶어?"

 

  "으음. 시키게요?"

 

  "그럼 나가서 먹을까? 알바 나흘 만에 회식이라니 너 땡 잡았다, 야."

 

  "뭐든 좋지만……."

 

  메뉴를 골똘히 고민하던 원이 번뜩 생각난 듯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내 은혜의 팔에 엉기며 말했다.

 

  "집 밥. 오랜만에 집 밥 먹고 싶은데에."

 

  "백반 먹자고?"

 

  "아니요, 파는 거 말고 진짜 집에서 한 거."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은혜의 얼굴에 원이 결국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이 눈이 조금 처진 여자는 맹한 구석이 있었다. 돌려 말하는 건 알아먹지 못한다.

 

  "누나가 해주면 안 돼요?"

 

  "내가?"

 

  "진짜 먹고 싶어서 그래. 집 밥 안 먹은 지 거의 1년은 넘은 것 같아요."

 

  "갑자기 무슨……."

 

  당황한 은혜가 원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불쌍한 척 징징대며 들러붙는 어린 남자를 거절할 능력은 없었다.

 

  결국 상대방에게 어영부영 휘말리기가 주특기인 그녀가 원을 이끌고 3층 집으로 향하게 되는 데까지 5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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