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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셀다 론도의 여왕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천 년의 여왕과 지상 최후의 용 이야기.

 
3. 꽃이 지는 곳 (14)
작성일 : 17-06-19 10:55     조회 : 270     추천 : 0     분량 : 7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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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잭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정신이 혼몽했다. 넘어진 샤를롯테를 일으켜주고 싶은데 마음만 간절할 뿐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며 그는 자신의 마지막을 예감했다.

 

 

 행복한 인생이었지. 전쟁통에 부모를 여의고 라후아에서 생사의 고비를 넘길 때만 해도 자신같은 거렁뱅이의 삶에 볕들 날이 오리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전쟁고아들이 그랬듯 자신도 구걸과 사기, 범죄의 소굴에서 치열하게 살 것이라고만 여겼다.

 

 다행이었다. 자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불사를 수 있는 정열적인 삶을, 내가 살았다. 그거면 됐지. 그게 자신의 행복이었으니까.

 

 -샤를롯테님, 무사하셔야 할 텐데…

 

 

 가만히 눈을 감은 잭의 앞에 둔탁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우드는 조용히 꺼져가는 잭의 영혼을 거두곤 샤를롯테가 있을 결계 속으로 발을 디뎠다. 샤를롯테와 맹약을 나눈 두 기사, 하우드와 엘드리치만 드나들 수 있도록 자신이 직접 만든 결계였다.

 

 

 "샤샤!"

 

 

 하우드는 만신창이로 쓰러져 있는 샤를롯테를 보고 냉큼 그녀를 끌어안았다. 뺨을 살짝 두드려봐도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보고 받았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좋지 않았다. 론도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한 숨결이 그를 두렵게 했다.

 

 "그때 널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어. 널 두고 가는 게 아니었어! 난 너의 기사인데, 어찌 널 두고 다른 인간들을 지킨단 말이냐!"

 

 

 냉혹하기 그지 없던 붉은 눈동자에 눈물이 맺혀 샤를롯테의 얼굴을 적시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이 조심스레 샤를롯테의 뺨을 매만졌다. 거의 느껴지지 않는 맥박에 하우드는 자신의 혀를 깨물어 피를 내고는 그대로 샤를롯테에게 입을 맞추었다.

 

 미처 넘어가지 못한 피가 샤를롯테의 입가에 한 줄기 흔적을 남기며 흘렀다.

 

 "눈을 뜨면, 나와 다른 곳으로 가자… 네가 좋아하는 꽃이 가득한 남부의 가르티안 왕국은 어때? 아니면 동대륙으로 넘어가 조용히 살자. 더는 인간들의 발이 닿지 않는 바다 너머 외딴 섬도 좋고, 아니, 네가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좋다. 샤샤!"

 

 

 불안에 떨던 용은 그 순간, 자신을 거세게 옥죄어 오는 기운에 눈을 부릅떴다. 그제야 발 밑에 피로 그려진 봉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봉인은 이미 발동되고 있었다.

 

 "샤샤!"

 

 용의 발작적인 외침에 샤를롯테의 눈도 가느다랗게 떠졌다.

 

 "하우드…"

 

 힘없이 뻗어진 샤를롯테의 손을 부여잡았다. 진짜 하우드구나. 샤를롯테가 조용히 웃었다.

 

 "이 봉인이 다 무어란 말이냐! 왜 네가, 네가 그래야만 하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건 그 인간들이다!"

 

 

 붉은 눈에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샤를롯테는 멍하니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하우드가 우는 건 벌써 두번째 보는구나. 전부 나때문이라는 건 마음이 아프지만…

 

 

 "하우드가 곁에 있어주니 조금도 무섭지가 않네… 든든하다. 역시 내 기사야."

 

 "그래, 내가 널 지켜준다 하지 않았느냐! 근데 어떻게, 말도 없이 내게 이럴 수가 있어!"

 

 

 그렇기에 결정한 일이었다. 자신이 안드라페를 지켜야 하는 론도인 이상 하우드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휘둘릴 것이다. 그건 참을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고.

 

 사랑해, 하우드. 널 더 이상 속박하지 않을 거야. 자유로운 용답게 살았으면 해.

 

 

 "가능…하면, 봉인을 깨지 말아줘. 사람들이, 나를 잊고… 안드라페가 무엇인지 모를 만큼… 아주 긴 시간이 흘러도… 내가 깨어나면 또 분쟁의 씨앗이 될거야……"

 

 "아니, 내가 모두 정리할 것이다. 이 땅의, 셀다 론도의 역사를 모두 지우고 모두 평온에 안주할 때 너를 깨울 것이다. 걱정하지마, 샤샤. 그 땐 내가 네 옆에 있어줄게."

 

 

 너의 슬픔, 괴로움, 분노가 전부 내가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힘들다.

 

 봉인이 한층 샤를롯테의 발목을 삼켰다. 점점 다가오는 현실에 겁이 났다. 영원히 잠든다는 건 앞으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겠지. 엘드리치는 무사할까. 날 믿어주던 마지막 사람들이니 행복했으면 좋겠다.

 

 발동된 봉인은 투명한 결정처럼 샤를롯테와 안드라페를 점점 집어 삼켰다. 그럴수록 희미해지는 의식에 샤를롯테는 중얼거렸다.

 

 "하우드… 이제 끝이니까… 이살롯…………………엘드리치를, 잘, 부탁해……"

 

 더는 그 손에 피를 묻히지 않기를. 모든 분노와 증오, 원망은 자신이 끌고 갈 것이니 하우드만은 편안하기를. 남은 엘드리치도 잘 부탁해. 또 혼자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니 곤란한 일들이 많을 거야.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이는 말에 하우드가 비릿하게 웃었다.

 

 

 "그래, 샤샤. 네가 오랜 잠을 자는 동안 아무도 널 건드릴 수 없게 이 자리에서 널 지킬 것이다. 넌 내가 복수에 불타 사람들을 학살할까 두려워하지만, 이미 이살롯은 대가를 치렀으니… 더는 이살롯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걱정하지마… 네가 눈을 떴을 때, 지금처럼 내가 옆에 있어줄게."

 

 "-에디를……"

 

 "그래, 몬테의 일족은 내가 지켜주마. 우린 모두 너의 기사가 아니냐."

 

 

 빌어먹을 엘드리치! 살기로 번뜩이는 용의 눈을, 샤를롯테는 보지 못했다. 이내 투명한 결정 속에 완전히 갇힌 샤를롯테의 모습을 보며 용은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르렁거렸다.

 

 

 완성된 봉인의 순간, 용의 포효가 지축을 뒤흔들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크라우스트 성과 이샤숲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용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모두 죽여 없앨 것이다. 이살롯의 인간들은 피로써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대대로 끔찍한 지옥을 맛보게 해 줄 것이다.

 

 

 용은 시끄럽게 근처를 날아다니는 까마귀를 잡아 챘다. 그리고는 자신이 거둔 잭의 영혼을 억지로 집어 넣었다. 까마귀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숨을 거두었고 선혈이 튄 곳에 온통 검은 빛의 까마귀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잭 오즈. 넌 샤를롯테를 위해 끝까지 남은 몇 안 되는 인간이지. 네게 새로운 생을 줄테니 나를 도와야 할 것이다."

 

 

 그 날 영혼과 이름을 내 건 계약이 성사 되었다.

 

 

 * * *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 과거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샤를롯테는 주먹을 모아 쥐었다. 전부 거짓으로 점철된 기억이었다. 망가지고 비틀리다 못해 왜곡된 기억들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셀다 론도는 없다. 여왕 샤를롯테는 셀다 론도의 멸망과 함께 죽었다. 그 사실은 심장을 후벼 파듯 고통스러웠지만 인정해야 했다.

 

 과거와는 달리 고양이의 모습을 한 안드라페가 가느다랗게 울음소리를 내며 샤를롯테의 허벅지에 앉았다.

 

 "충격으로 실신한 너를 뱀이 옮겼다 놨어. 뱀이 알게 되었으니 하우드도 곧 올 거야."

 

 

 그렁그렁 모였던 눈물이 눈을 깜빡이자 뚝 떨어졌다. 샤를롯테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안드라페는 신경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 놈이 화를 내봤자 별 수 있을까. 이미 난 너와 계약했으니 자유의 몸이야!"

 

 자유의 몸? 샤를롯테의 시선이 데구르르 안드라페에게 굴러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안드라페는 오직 론도의 손 안에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자유라고? 의심의 눈초리로 안드라페를 바라보자 신이 나 보이는 그는 꼬리를 붕붕 흔들며 귀를 쫑긋거리고 있었다.

 

 

 "안드라페."

 

 조용히 부르자 한 마리의 흰 고양이가 샤를롯테를 쳐다보았다.

 

 

 "난 네 힘이 필요했었어. 이 세계에 내려오면서부터 말이야."

 

 "무슨 소릴 하는거야?"

 

 

 태연하게 모른 척하면서 슬쩍 고개를 돌리는 꼴이 역겨웠다. 안드라페에 의해 뒤집힌 정신에 욕지기가 치밀었지만 샤를롯테는 숨을 다시 한 번 골랐다.

 

 "아리엘은 네가 타르달타의 손에 넘어가면 악용될 수 있다고 그랬어. 그 뜻은 넌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말이지. 실제로 아리엘은 너와 감응해서 차원의 문도 열었잖아."

 

 "아-주 바보는 아니었네… 그래서?"

 

 "난 여태까지 널 수십 번 그 이상으로 불렀는데, 넌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았지. 네가 이지를 갖고 있다는 것도 오늘에야 알았어. 네 말대로라면 난 너의 예전 계약자였잖아? 근데 그땐 날 무시했으면서 지금은 계약하자고 조르는 이유가 뭐지."

 

 

 샤를롯테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줄곧 안드라페를 불렀다. 몬테의 일가들을 책임지게 되면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불렀었다. 지식의 서고라니 어떤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갖은 수를 써보며 안드라페를 깨우려고 했다. 스스로를 봉인하려 했을 때마저 안드라페는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저 고양이의 탈 안에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이 아니었다면 당장 내쫓았을 것이다.

 

 

 "네 정체가 뭐야? 넌 왜 나와 계약한거야?"

 

 안드라페는 입가를 몇 번 씰룩거리다 야옹,하고 울었다. 부르르 떨리는 수염이며 정처없이 맴도는 시선을 보아하니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 괘씸한 것이 또 같잖게 샤를롯테를 꾀어 수작을 부리는군."

 

 작은 바람이 일더니 순식간에 침실에 등장한 하우드는 거칠게 고양이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샤를롯테의 시선이 붉은 눈과 마주쳤다.

 

 두근 두근… 점점 빨라지는 맥박소리와 긴장으로 달달 떨리는 손끝이 쑥스러웠다. 안드라페에 대한 의심과 불쾌감은 한 순간에 날아가고 오직 시야엔 검은 용만이 담겼다.

 

 

 "내가 아직도 네 계약자인 줄 알아? 그렇게 위협해도 나한테 손 하나 까딱 못 하는 거 알거든!"

 

 "흐음…"

 

 안드라페는 의기양양하게 작은 발바닥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하지만 그 조그마한 몸체 때문인지 허공에서 허우적대는 모습이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우드는 실소하며 안드라페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져간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무자비한 모습이었지만 샤를롯테의 눈엔 하우드의 이목구비밖에 보이지 않았다.

 

 "샤샤."

 

 둘만 남은 침실에서 하우드는 샤를롯테의 옆에 걸터앉아 그녀를 불렀다. 나직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또다시 눈이 마주치자 하우드는 그대로 샤를롯테의 얼굴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입맞춤이 길어질수록 샤를롯테의 얼굴은 점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동안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졸졸 따라다니더니… 벌써 포기한 건 아니겠지?"

 

 하우드는 샤를롯테의 이마며 코 끝에 연신 키스를 하곤 웃었다. 샤를롯테는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

 

 

 "-이상해."

 

 "무엇이?"

 

 "우린 아주 오래 전에 만났는데, 마치 오늘 처음 만난 것 같아…"

 

 

 잃은 기억의 조각을 찾은 후 바라 본 하우드의 모습은 단순한 죄책감과 그리움 이상의 것이었다. 오래 전에 잊으려 했던 감정들이 서로 제 존재감을 과시하며 소용돌이쳤다.

 

 

 정말 이상했다. 어제도 그제도 하우드를 보았었는데- 아주 예전부터 하우드를 좋아했었는데. 지금, 이 곳,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하우드를 보며 또다시 사랑에 빠져 버렸다. 분명 같은 존재인데 다르게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박동한다. 너의 손길 하나에 몸이 굳어버린다. 그런데도 지금이라면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해."

 

 

 알 수 없는 용기가 새어나왔다. 하우드, 널 좋아해. 너보다 더 사랑스러운 존재는 없을거야.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 널 내 옆에 억지로 가두게 될까봐 무척 무서웠던 날들이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내가 네 곁에 묶이려고 해. 네가 언제나 날 지켜주었듯이, 내 기사가 되어 스스로 나의 것이 되고자 했듯이. 이젠 내가 너의 것이 될거야.

 

 

 단순한 자책감이나 속죄의 감정이 아니야. 난 너와 살아갈거야.

 

 "…뭐?"

 

 

 네가 내게 숨을 쉬는 법을 알려주었었지. 아무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우는 법을 알려 주었어. 울보였던 나를 달래기 위해 서투른 몸짓으로 꽃을 건네 주었고.

 

 

 "하우드."

 

 

 사람들이 무서워 성 밖을 나서지 못하던 내게 더 넓은 세계를 알려 주었어. 나무도 땅도 모두 얼음으로 된 땅, 식지 않는 불길이 치솟는 산, 사계절 내내 꽃이 지지 않는 나라…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면 꼭 가보자며 웃던 너는- 창문에 푸르게 내려앉은 달빛보다도 상냥했어.

 

 

 울창하게 우거진 밤의 이샤숲을 함께 거닐던 추억을 아로새기며 우리는 무얼 해도 언제나 함께였지. 만나지 못하는 밤이면 너의 꿈을 꾸었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했고 나는 그렇게 사랑을 배웠다.

 

 

 "네게 반한 것 같아."

 

 

 어떤 말로도 이 감정을 전할 수 없을 것 같아 초조하다. 언어란 이렇게나 간사하지.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 마음을 전하기엔 부족한 것들 뿐이다. 샤를롯테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떠진 하우드의 붉은 눈동자를 곧게 응시하며 재차 말했다. 너를 사랑해, 겁쟁이였던 내가 이제야 말을 해서 미안해. 숱하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어.

 

 

 "다시… 다시 말해다오."

 

 

 사랑해, 하우드.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말없이 떨어지는 눈물은 그 붉음도 묻어나올 것처럼 잔약하고 애달팠다.

 

 

 

 

 

 서로가 솔직해지기로 한 밤이었다. 기실 어두침침하기만한 카타콤에서 낮밤은 따로 없었지만. 샤를롯테가 편히 하우드의 어깨에 기대었다.

 

 "이제 성룡이 된 거야?"

 

 "그래, 얼마 되지 않았지. 가능하면 깨어난 널 보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요람'에 갈 수 있는 건 아닌 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미 섭리를 거역했으니 이곳에 있는 것이겠지? 샤를롯테는 하우드가 멀리 떠나게 될까 무서웠다.

 

 "성룡이 되면- 더는 용이 아니라 다른 존재가 된다고 들었는데."

 

 점점 기어가듯 말하는 샤를롯테에 하우드가 비식 웃었다. 눈치 빠른 그가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요람의 문턱에서 떨어져 오도가도 못하는 용들의 신세가 그런 것이지. 난 처음부터 자격이 없었다. 굳이 지상을 떠나, 어쭙잖게 요람에 가서 영체마저 소멸하느니 이곳에서 너와 같이 있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아주 오래 전, 파사딜의 저주와도 같던 말이 떠오른다.

 

 「 하우드, 넌 절대 용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자신은 이성적이지 않으니 절대 요람에 갈 수 없다. 그것이 뭐 어쨌단 말인가. 답지 않게 인간의 질서니 뭐니를 봐주는 신같은 건 절대 되고 싶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뭐가 나쁜가. 감정이야말로 존재의 약동인 것이다.

 

 

 용은 이성(rationality)의 동의어가 아니다. 그걸 깨닫지 못했을 땐 스스로가 용이라는 사실이 못견디게 증오스러웠다. 왜 본질을 억누르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용 역시 이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용에 대해 더는 말하기 싫은 듯 하우드는 자연스레 말을 바꾸었다.

 

 

 "-난 무서웠다. 네가 그렇게 잠들어버린 이후 계속 그곳에 있었어. 이살롯의 왕좌에 수없이 주인이 바뀌고 많은 계절이 지나도 셀다를 도저히 떠날 수 없었다."

 

 

 미치광이 엘가는 수없이 이름을 바꾸며 도망다녔고 끝내는 자취를 감춘 그는 인류를 위해 희생한 대현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엘가의 이름으로 남은 책들은 불로와 불사를 뛰어 넘어 시간을 관통하는 또다른 시간에 대해 논하며 인간들을 추동했다.

 

 

 헤일 이살롯 시대의 자손들이 또다시 이샤숲을 뒤지며 너의 흔적을 찾아다녔다. 전쟁 이후 짓밟혔던 숲은 이제 겨우 회생해가고 있었는데 자신을 고고학자라 칭하던 인간들은 숲을 헤집고 땅을 뒤엎었다. 망국 셀다 론도의 보물을 찾겠다는 도적놈들도 기승을 부렸다.

 

 

 네 안식을 방해하는 것들은 필요가 없어. 처음엔 숲을 침범하는 것들을 모조리 죽였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계속 욕심을 부리며 포기를 모르고 숲을 찾아왔지. 이샤숲에 더러운 것들의 피가 묻을수록 난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인간의 손에 더럽혀질 것이라면 흔적도 없이 불태우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 손길이 닿은 나무 한 그루도 그들에게 넘길 수 없었어. -그렇게 이샤숲은 불모의 땅이 되었고 다시는 초목 하나 자라지 않게 되었다. 육안으로 허허벌판밖에 보이지 않으니 인간들도 더는 숲을 찾지 않았다.

 

 

 무덤덤하게 내뱉는 하우드의 얼굴은 자조적이었다.

 

 

 "왜 아직도 인간에 분노하냐고? 우리의 원한은 그 때 끝을 냈어야 했다고?"

 

 …상냥한 너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난 아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인간들이야말로 그때 끝냈어야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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