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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셀다 론도
작가 : 녹차양
작품등록일 : 2017.6.19

셀다 론도의 여왕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천 년의 여왕과 지상 최후의 용 이야기.

 
3. 꽃이 지는 곳 (13)
작성일 : 17-06-19 10:53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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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잭은 굳게 성문을 걸어 잠그고 샤를롯테를 침실로 데려갔다. 추격대의 화살에 맞아 왼쪽 어깻죽지는 이제 움직일 수 없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잭은 복도 벽에 주저앉아 침음을 삼켰다. 지금쯤이면 추격대들도 이살롯왕의 사망소식을 들었겠지. 혼란스러운 와중에 이곳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었다. 혹시 모르니 용이 뒤처리를 한다 그랬고.

 

 

 창백했던 샤를롯테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살롯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엘가! 엘가! 그때 그 빌어먹을 노인네를 잡아 죽였어야 했다! 하필 그 시각에 자리에 없다니, 재수도 좋지. 전부터 샤를롯테의 힘을 마법이라면서 무례하게도 연구해보겠다고 덤벼들던 작자였다. 번번이 엘드리치에 의해 끌려나갔지만… 그때 그 음흉한 속내를 알아챘으면 좋았어야 했다.

 

 

 

 잭의 끝없는 자책이 이어지는 동안 샤를롯테의 눈이 힘없이 떠졌다. 늘 보던 은촛대, 붉은 카펫… 자신의 침실이 분명했다. 사라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 같은데 꿈이 아니었구나. 그 끔찍한 곳을 정말 벗어난 것이다. 샤를롯테는 아직도 선뜩하게 떠오르는 헤일 이살롯과 엘가의 얼굴에 진저리를 쳤다. 눈을 감아도 자신을 모욕하던 말들과 살가죽이 뜯어지는 듯한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두려움과 슬픔이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한때나마 인간의 찬란했던 생명을 시기했던 자신이 우스웠다. 짧기에 강렬하다고? 아니, 그들은 단지 수단과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 없었던 것 뿐이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있는걸까. 내가 그들과 함께 살아온 십여년의 세월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무리 노력해도 언제나 돌아오는 건 불신과 외면.

 

 지친다. 피곤해. -이상할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셀다 론도 (Celda Rondo). 그리운 고향(셀디아, Celdilla) 론도. 샤를롯테의 허망한 꿈에 그치지 않았던 망국의 이름.

 

 볼티르 부인이 옆에서 속삭인다. 품위없이 축 늘어져서 무얼 하냐고. 당장 일어나 당당한 여왕의 모습으로 돌아가라고.

 

 환상 너머의 부인의 모습은 입가에 피가 낭자했다. 샤를롯테는 실소했다. 당당한 여왕? 셀다 론도는 내 망가진 이상향에 불과했고 처음부터 그곳에 당신이 바라던 위엄 넘치고 지혜롭고 위풍당당한 여왕은 존재하지 않았어.

 

 나도, 한때는 순진하게 믿었었지. 날 필요로 해준 것은 당신네들이 처음이었고- 그게 고마웠던 적도 있었어. 당신들을 위해 쉼없이 달려왔어. 모래를 헤집어 숲을 가꾸어 뜨거운 태양을 가릴 그늘을 만들어주었고, 비좁은 의자 한 칸에 앉아 하루종일 신하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밤을 지샌 적도 있었지. 날 싫어하는 귀족들을 회유하기 위해 잘 못하는 거짓말도 아무렇지 않게 했어.

 

 나는 다만, 이 곳의 구성원이 되고 싶었어. 이 땅을 고향으로 삼고 싶었지.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가끔은 지쳐서 쉬고 싶었어. 하우드와 카르밀라 정원을 거닐며 웃고 싶었고 한가롭게 카드놀이도 하고 싶었지. 하우드와 엘드리치를 위해 손수건을 만들어 주고 싶었고 사라를 위해 시를 짓고 싶었어.

 

 하지만 가벼운 장미 면류관이 씌어지는 날이면 난 가면을 써야 해. 답답한 드레스를 입고 웃으며 잔을 들었어. 그처럼 어깨가 무거운 적이 없었지. 그래도, 언제나 잘 해보려고 노력했었어…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 진심을 너희들도 알아주지 않을까해서-…

 

 부인, 그래도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다시 왕의 탈을 써야 해?

 

 볼티르 부인의 환영은 말없이 샤를롯테를 직시했다.

 

 난 더는 못해. 너무 힘들어서, 조금도 싸울 수 없을 것 같아.

 더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샤를롯테는 비척비척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았다.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나빴지만 개의치 않았다.

 

 볼티르 부인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샤를롯테님!"

 

 샤를롯테가 문을 열고 나오자 잭이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 바람에 다친 어깨에 끔찍한 고통이 엄습해 와 잭은 결국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며 어깨를 부여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잭의 모습에 샤를롯테가 숨을 들이켰다.

 

 "잭! 네가 여길, 아니, 너 지금 온통 피가…!!"

 

 화들짝 놀라 마치 습관처럼 잭의 상처에 힘을 불어넣으려던 샤를롯테는 잭의 만류에 멈칫했다. 잭은 머쓱하게 씩 웃고는 가볍게 말했다.

 

 

 "제 피가 아니에요. 그냥- 오랜만에 몸을 움직였더니 근육통이 온 것 같아서요."

 

 "분명 엘드리치를 따라 가라고 했지 않느냐! 어찌, 돌아왔어…"

 

 

 아주 어릴 적부터 샤를롯테의 손에 보살펴진 잭이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애틋했다. 자신으로 인해 다쳤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찡하고 목이 메여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모두 떠난 자리에 꿋꿋하게 남아준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사라는?"

 

 "시녀님은 하필 병사들에게 발각이 되셔서, 따돌리신 후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시녀님 걱정은 마시고 들어가서 좀 쉬세요."

 

 하지만 샤를롯테는 마음이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이살롯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끌고 갈 것만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한시라도 빨리 안드라페를 숨겨야 했다.

 

 

 "잭. 날 지하 창고까지 부축해주겠니?"

 

 "창고엔 갑자기 왜요?"

 

 

 머뭇거리던 잭이 샤를롯테의 왼쪽팔을 들어올리곤 한발자국씩 천천히 걸음을 뗐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힘없이 따라오는 샤를롯테의 발이 사뭇 가엾다.

 

 샤를롯테의 다리는 심한 화상으로 거무죽죽하고 발목엔 세로로 길게 흉이 져 있었다. 퉁퉁 부은 발은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잭은 잇새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삼켜야 했다. 자신이 더 이상 샤를롯테의 짐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녀는 이미 한계에 위태로이 서 있기 때문에!

 

 

 "이살롯이 아는 얘기를- 네가 몰라서야 되겠느냐. 안드라페에 대해 알려주마…"

 

 몸을 움직이자 상처가 악화된 듯 샤를롯테는 몸을 거의 잭에게 맡긴 채 속삭이듯 웅얼거렸다. 말에 힘이라곤 하나 없었다. 잭은 샤를롯테에 몸을 바싹 붙였다. 숨을 내쉬는 소리인지 말소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안드라페는 론도의 일족인 자신이 지켜야 하는 것, 그 안에 세상의 진리며 지혜며 온갖 것이 다 들어 있단다. 하지만 금기의 것도 들어있기에 인간의 손에 들어가면 어떻게 이용될 지 알 수 없어. -생각해보면 이 전쟁도 결국은 나로 인해 일어난 것이구나. 결코 믿고 싶지 않았는데… 그 소문이 틀린 건 아니었나봐. 이 안드라페를 안전한 곳에 숨겨놓지 않으면 발각되는 것도 시간문제야. 안드라페의 존재를 아는 인간들은 다시금 날 찾아내, 안드라페를 가져갈 것이니까.

 

 

 하지만 이 땅에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없어요. 어디에 숨겨야 하죠? 이살롯만큼 강대한 나라가 따로 없고, 그들이 노리고 있는 이상 저희를 도와줄 세력은 없을 것입니다.

 

 

 잭은 자꾸 허물어지는 샤를롯테의 상체를 다시금 안아들었다. 샤를롯테의 몸은 불덩이같았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무서웠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샤를롯테의 숨이 간헐적으로 끊어질 때면 잭이 재차 말을 걸었다. 샤를롯테님, 샤를롯테님!

 

 응석부리는 듯한 외침에도 샤를롯테의 눈은 좀처럼 떠지지 않았다.

 

 

 -잭. 아마 난 오래 잠들 것 같아. 내가 보고싶다고, 울지말고, 엘드리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사람들이랑, 살아야 해. 너랑 같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과.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무서운 말씀은 하지 마세요. 예전부터 전 언제나 샤를롯테님의 곁에 있었잖아요. 앞으로도 그럴거예요. 절 보내면 샤를롯테님은 외로워서 맨날 우실걸요?

 

 

 하하… 맞는 말이네. 내 곁엔 하우드와 사라, 너 뿐이구나.

 

 

 지하에 도착한 샤를롯테는 간신히 눈을 떠 창고의 두번째 경첩에서 오른쪽으로 다섯번째 벽돌을 두드렸다. 힘없는 손가락 두드림이었지만 벽은 순식간에 작은 방으로 변했고 어둡기만한 방 안에는 은은하게 빛을 내는 구슬이 또렷이 보였다. 잭은 한눈에 그것이 안드라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샤를롯테는 잭의 손을 떼어내고 절룩거리며 방으로 들어섰다. 혹시나하고 안드라페를 매만졌으나 역시 그녀에게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손끝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칼로 베이고 봉합을 반복한 피부는 쉽게 피를 쏟아냈다. 잭이 놀라 달려들었으나 보이지 않는 결계들은 잭을 튕겨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잭이 미친듯이 샤를롯테를 불렀다. 샤를롯테가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샤를롯테님! 뭐 하시려는 거예요! 샤를롯테님! 하지만 잭의 부름에도 그녀는 눈길하나 주지 않았다. 말없이 바닥에 봉인의 진을 그렸다. 잭이 알면 절대 안 된다며 난동을 부리겠지. 미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지만 샤를롯테의 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붉은 피가 궤적을 그릴 때면 그 옆에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그려진 기하학적인 무늬, 처음 보는 글자. 한동안 허리를 굽혀 진을 그리던 샤를롯테는 술식이 완성되자 쓰러지듯 바닥에 넘어졌다. 론도의 피로 그리는 술식이니 강력하게 발동될 것이다. 오래 전에 다른 론도가 사용했었던 걸 훔쳐본 적이 있었는데 제대로 기억한 것이면 좋을텐데. 샤를롯테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안드라페를 가지고 있는 이상 이런 상황은 언제고 찾아올 것이다. 그걸 두번 다시 겪느니, 소중한 사람들을 또다시 곤경에 빠뜨리느니, 차라리 자신이 짊어지고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 처음부터 자신은 이 세계와 잘 맞지 않았었어. 좀 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방 너머로 자리에 주저 앉은 잭이 보였다. 마지막 인사를 해야하는데 무리를 한 몸이 비명을 지르며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잭. 입을 달싹였지만 쇳소리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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