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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은혜로운 열애사
작가 : 우연리
작품등록일 : 2017.6.2

"귀신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죠?"

은혜가 물었다.

"춤 추는 건 본 적 있습니다."

차트를 넘기던 무열이 대답했다. 콧등을 타고 내려온 안경을 끌어 올리려다 그냥 벗어 버렸다. 은혜만 있는데 뭐 어떠랴 싶었다.

"어땠는데요?"

"굳이 말로 해야 압니까?"

은혜와 무열이 조소를 머금었다. 삐딱한 그들의 입술은 동시에 답을 뱉었다.

"최악이죠."



귀신이 들리는 여자 주은혜와 귀신이 보이는 남자 최무열의, 미스터리로맨스릴러 은혜로운 열애사.

 
들리는 게 전부는 아니다 (3)
작성일 : 17-06-12 17:12     조회 : 265     추천 : 1     분량 : 4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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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줌마?"

 

  대답이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뛰쳐나간 뒤로 춘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딜 또 신나게 뛰어 가셨대. 은혜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겠지만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어디 갔지?"

 

  우선 걸리적거리는 이어폰을 잡아 뺐다. 텅 빈 휴게실은 여러모로 조용했다. 아마 아무도, 아무 것도 없는 모양이다.

 

  이상하네, 어디로 갔지. 은혜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허공에다 아줌마, 하고 더 크게 불러 보았다.

 

  「왜ㅡ!!!!」

 

  "……!"

 

  순간, 귀가 찢어질 듯한 고음이 울려 퍼졌다. 흡. 은혜는 이를 사려 물었다. 춘자의 목소리가 아니다.

 

  웃음기가 가득한, 소름 끼치는 목소리.

 

  「깔깔깔!」

 

  악귀다.

 

  "……."

 

  당황하지 않은 척 굴어야 한다. 놀라지 않은 척. 들리지 않는 척. 그저 장난일 뿐이다. 아직 은혜의 정체를 알아채지는 않았다.

 

  까딱 방심하면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올 것 같았다. 숨을 약하게 들이 마셨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가, 가, 빨리 가. 제발.

 

  「깔깔깔깔……!」

 

  주변을 맴돌던 웃음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을 때에야 은혜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하아……."

 

  실수했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놓고 말을 걸다니. 장난기 많은 귀신에게 나 잡수, 하고 던져 넣은 꼴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이어폰을 다시 끼웠다. 방심하면 안 돼. 안된다고. 알면서도 그런다. 얼얼한 귓가의 통증이 머리까지 스물 스물 기어 올라왔다.

 

  모든 귀신이 은혜와 만난 춘자처럼 구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있다, 소원을 이루는 것보다 단순 재미를 탐하는 귀신들이.

 

  그리고 그런 귀신들이 가장 위험했다. 항상 웃거나 춤을 추는 등, 즐거워하는 귀신들은 미친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은혜 역시 데일 뻔한 적이 여러 번이다. 산 사람 괴롭히는 것을 단순 즐거움으로 삼는 악귀들에게는 그녀조차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은혜는 그들에게 있어 성능 좋은 장난감과도 같다.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절대 은혜를 떠나지 않을 거다.

 

  한 마디로, 악귀에게 정체를 들키면 끝장이다. 마른 침을 삼킨 은혜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나 먼 과거가 자꾸 그녀를 밑바닥까지 끌어 내리려 들었다.

 

  「킥킥킥, 저 년이지?」

 

  「그래. 뻔뻔하기도 하지. 우리보다 무서운 게 산 사람이라니까.」

 

  「그러게 말이야. 나 같으면 그냥 콱, 뒤져 버렸을 텐데.」

 

  「왜 아직 살아 있나 몰라.」

 

  「나쁜 년. 독한 년. 자기 언……. 소리…….」

 

  콰득. 은혜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느새 추적추적 들러붙은 과거의 망령을 떨쳐 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때는 어렸고 혼란스러웠다.

 

  「죽어!」

 

  조절하는 법 따위도 몰랐다.

 

  「죽어 버려!」

 

  모조리 듣고, 상처 받고, 겁을 먹었다. 무엇보다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나? 은혜는 생각했다. 나는 달라졌나. 나는 변했을까. 나는 어른이 되었나. 나는…….

 

  답은 금방 나왔다. 아니. 전혀. 비틀린 입술이 조소를 머금었다. 끝이 살짝 처진 그녀의 눈꼬리가 유려한 곡선을 그렸다.

 

  이제 귀신이 익숙해졌다고. 어느 정도 중도를 지킬 줄 알게 됐다고. 웃으며 귀신을 상대할 줄 알게 됐다고.

 

  그래서 뭐?

 

  변한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녀는 정신은 어린 소녀의 것 그대로이고, 죽은 망령과의 삶이란 여전히 아득하기만 했다.

 

  「어머, 아가씨. 여기 있었네.」

 

  잔뜩 들뜬 춘자가 돌아왔다. 은혜는 미간을 찌푸렸다. 돌아오자마자 종알거리는 목소리에 머리가 쑤시듯 아팠다.

 

  만성적인 두통이 은혜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중간 중간 멀리서 스쳐 지나가는 속닥거림이 바늘이 되어 그녀의 예민한 고막을 마구 찔러 대었다.

 

  ……싫다. 그냥 다 싫었다.

 

  지나가던 악귀의 장난질에 놀아난 것도 싫고, 귀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도 싫고, 보이지도 않는 아줌마 때문에 힘든 것도 싫었다.

 

  참았던 스트레스가 와르르 무너졌다. 깊은 기억 속 묻어 놓은 무덤을, 악귀라는 도굴꾼이 휘저어 놓고 가 버렸다.

 

  은혜답지 않은 신경질적인 고함이 튀어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다.

 

  "어디 갔었던 거예요!"

 

  「…….」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데……. 병원은 싫어요. 싫단 말이야. 아줌마도 이미 봐서 알겠지만, 득실거린다고요. 짜증나. 시끄러워 죽겠어. 이런 곳에 내가 왜……!"

 

  「미안해, 아가씨.」

 

  "……."

 

  「미안해.」

 

  순순히 들려오는 사과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건 결국 은혜였다. 아, 울고 싶다.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녀는 용암처럼 울컥 솟구치는 울음을 꾹꾹 집어 삼켰다.

 

  "……아니요, 아니에요."

 

  다 내 잘못이죠. 은혜가 작게 속삭였다. 괜한 화풀이였음을 인정한다. 평소엔 곧잘 참으면서 때때로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특별한 능력이 생겼더라도, 긴 시간이 흘렀더라도, 은혜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었다. 귀신이 두렵고 무서운 평범한 인간.

 

  「그래, 아가씨가 다 이 아줌마 때문에 고생하는 건데. 미안해. 그냥 병원 좀 둘러 봤어. 말없이 가서 미안해. 새삼 물어 보진 않았지만, 아가씨는 들리기만 하는 거지? 어유, 내가 생각이 짧았어.」

 

  "……."

 

  「우리 아들내미 일하는 곳이라 생각하니까 들떠서는……. 내가 주책을 떨었네. 그냥 마지막이니까 보고 싶어서 그랬어. 정말 미안해. 아줌마가 잘못했어.」

 

  꼭 어린 아이 달래듯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은혜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악귀와는 다른 다정한 음성.

 

  그저 죽은 사람.

 

  갈 길을 잃은 미아.

 

  가엾은 영혼…….

 

  은혜의 긴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따끔한 아픔이 느껴지자 오히려 울음이 자취를 감추었다.

 

  흥분 하지 마, 주은혜. 언제까지 어린 애처럼 굴 거야. 언제까지 그 어린 시간에 붙잡혀 있을 거야.

 

  심호흡 한 번, 미소 한 번.

 

  그래. 이제 어른이잖아. 어른이 되어야 해. 어른, 나는 어른, 하고 되뇐 그녀가 입술을 움직였다.

 

  "아니요. 제가 죄송해요. 갑자기 소리 질러서……."

 

  「아이고, 아니야. 다 아줌마 잘못이지. 미안해.」

 

  격하게 손사래를 칠 아줌마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피식, 은혜가 소소한 웃음을 터트렸다.

 

  한참을 서로가 내 잘못이오, 사과하는 훈훈한 공기에 찬바람이 스며들었다. 은혜는 바람이 타고 들어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닫혀 있던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선 남자는 초췌했다. 초췌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홀쭉하게 들어선 볼이 안쓰러워 보였다.

 

  은혜는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게 바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아들의 모습이구나.

 

  남자는 힘없이 발을 놀렸다. 다가오는 하얀 가운에 이름 석 자가 박혀 있었다. 민영우.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아줌마의 아들이었다.

 

  영우는 훅 불면 사그라들 것 같은 얼굴로 은혜를 훑어보았다. 그의 충혈 된 눈동자는 보기만 해도 쓰라릴 정도였다.

 

  한참 은혜를 바라보기만 하던 영우가 목구멍을 긁어 쇳소리 같은 언어를 내뱉었다.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그는 어딘가 악에 받친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 이름으로, 장난친 게 그 쪽입니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요."

 

  뒤늦게 아차 싶었다.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미리 그럴 듯한 변명이라도 준비할 걸.

 

  허둥지둥하던 은혜의 시야에 곱게 싼 보자기가 들어왔다. 하긴 변명은 무슨. 김치를 준다는 것부터가 이미 글렀다.

 

  어떻게 말을 꺼낼까. 뭐, 돌아가신 어머니가 바로 여기 계세요. 그 분의 마지막 소원이 그 쪽한테 김치를 가져다준다는 거라 제가 이렇게 왔답니다. 이렇게 말을 할까?

 

  ……그럼 바로 아래층의 정신과로 끌려가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은혜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 보니 조용했다. 어제부터 내내 입을 다물지 않던 춘자가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또 어딘가로 가버린 건가. 아니, 아들이 왔으니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아줌마, 은혜가 작게 속삭였다. 도움은 안 되겠지만 뭐라고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

 

  “…….”

 

  "어, 그게……."

 

  식은땀이 등골을 따라 흘렀다.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은혜는 이미 저승 강을 왕복으로 건넜을 거다.

 

  무서워 죽겠네.

 

  영우는 아무 말 없이 은혜를 노려보고 또 노려봤다. 심신이 지친 남자는 고슴도치처럼 날카로웠고, 은혜는 고스란히 그 가시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어어어.

 

  "아줌마?"

 

  진땀을 빼던 은혜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서둘러 귓구멍을 막고 있는 이어폰을 잡아 뺐다. 그러자 더욱 잘 들렸다.

 

  아줌마의 오열이.

 

  「내 새끼……. 우리 아들, 어야노. 엄마도 없이. 혼자 어야노. 불쌍한 내 새끼. 어야노…….」

 

  어어어어, 어어어…….

 

  음절이 뚝뚝 끊겨 차마 소리라고도 할 수 없는 오열이었다. 창자를 쥐어뜯기는 고통이 서린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였다.

 

  내 아들, 내 새끼, 불쌍한 내 새끼.

 

  갈 곳 잃은 은혜의 고개가 바닥으로 떨궈졌다.

 

  ‘불쌍해서 어떡해. 내 새끼. 가엾은 내 새끼. 불쌍한 내 아이…….’

 

  은혜는 언젠가 이런 울음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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