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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버려진 시간들
작가 : 장서진
작품등록일 : 2017.6.6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
이미 버려졌거나 혹은 누군가를 버리고 싶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04.
작성일 : 17-06-07 00:32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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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남자주인공 시점.

 

 

 

 

 어둠을 뚫고 새 우는 소리가 들린다. 산은 밤만 되면 요란해진다. 산새 우는 소리와 이따금 그르렁거리며 짖는 짐승들 소리로 나는 새벽에도 자꾸 잠이 깬다.

 

 땀이 뻘뻘 날 정도로 아궁이에 불을 세게 때놓은 탓에 입안은 텁텁하게 말라오고, 몸은 기력을 다 빼앗긴 것처럼 나른하기만 하다. 이런 식으로 몇 번 잠을 뒤척이고 자리끼를 찾다보면 어느 새 밖이 밝아온다. 새벽닭조차 울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나는 빛을 본 후에야 깊은 잠이 든다. 있는 힘껏 한숨 자고 일어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은 다시 어두워지고, 산은 또다시 어지러워진다. 나처럼, 혹은 내가 쫓아낸 저 아이처럼.

 

 눈이 크고 밝은 사람이었다. 피부는 조금 흰 편에 이목구비는 작고 오밀조밀했으며, 두 뺨엔 약간의 혈색이 돌았다. 몸집은 작았지만 얼굴이나 목, 어깨를 이루고 있는 선들은 붓으로 그린 듯 부드러웠다.

 

 고생을 많이 했는지 어린 나이임에도 손에는 군데군데 일상의 고단함이 잔뜩 배여 있었다. 나는 바닥에 널부러진 짐을 주섬주섬 챙겨 나가는 그녀의 앙상한 두 손을 보며 약간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애초에 원치 않던 인연인 것을. 당사자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 없이 그저 부모와 집안의 이해관계로 맺어진 부부의 연이었다. 아직은 부부라고 말할 수 없으나, 지금쯤이면 두 집안사람들은 그녀와 내가 혼례는 물론이고, 초야도 치른 이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내가 이렇게 한 여인을 차디찬 바깥에 버려두고 혼자 방 안에 들어앉아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터.

 

 나 역시 이렇게까지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이곳을 떠날 수 없다며 필사적으로 말을 내뱉는 저 여인을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었다.

 

 혼인 전에 내 집안사람들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었을지, 이 일을 대가로 무엇을 받았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 없었다. 설사 내가 모르던 사실이나 사정을 전부 알게 된다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무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고, 누구와도 얽히기 싫었다.

 

 무엇보다 ‘그 집안사람’들이 맺어준 억지인연에 내 평생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또한 미래는…… 내가 아니면 안녕을 보장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스런 지경인 것 같았다.

 

 이따금 뒷간에 가거나 일을 하러 나오면 그녀는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누워있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하고. 겨울이라 밤바람이 보통 찬 게 아닐 텐데도 그것을 용케 견디고 있었다. 정신을 잃지 않고 눈을 뜬 것만 해도 대단해보였다. 하물며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하루를 버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저러다 시체가 된다 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문득 그녀의 사후를 생각하니 다 생각하니 심중 한 가운데가 복잡해졌다. 그치들에게 당혹감을 안기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지만, 그 일에 산 자의 목숨을 바칠 만큼 나는 모질지 못했다. 죄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것이 아닐 터. 그저 기구한 운명에 처하도록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유일한 죄였다.

 

  나는 산란한 마음을 짓누르며 신발을 꿰어 신었다. 어느덧 산에는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

 

 

 자는 건지 죽은 건지 비에 젖은 땅이 찰박거리는데 그녀는 영 미동이 없었다. 가까이 가 얼굴을 확인하니 낯빛이 창백하고, 입술이 푸르죽죽했다. 불안한 마음에 맥박을 짚어 그녀의 생사를 확인했다. 미약하나마 맥박도 뛰고 숨도 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힘껏 안아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축 늘어진 몸이 쇳덩어리라도 된 것처럼 몹시 무거웠다.

 

  “미련한지고. 머리 올리는 일이 무에 그리 중요하다고.”

 

  가마솥에 끓인 물을 목간통으로 옮겨 담고 약간은 찬물과 섞었다. 이곳에 온 뒤로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목간통은 물때가 끼지 않아 반질반질하고 매끄러웠다.

 

 나는 물을 한 가득 받아놓고 방에 뉘어놓았던 그녀를 정주간으로 데려왔다. 젖은 옷을 오랫동안 입고 있어 체온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놀랄까 싶어 미지근한 물을 먼저 얼굴과 목에 묻혀주고 천천히 옷을 벗겼다. 정신이 없는 탓에 그녀는 반항도 않고 철저히 나에게 기댔다.

 

 속곳만 남겨놓고 옷을 모두 벗겼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여인의 하얀 속살이 아니라 그 위를 얼룩덜룩 장식하고 있는 오래된 흉터들이었다. 다치고 낫고, 또 다시 다치는 일을 반복한 듯 보였다. 거센 구타의 흔적들. 나는 문득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감싸던 그녀의 행동을 떠올렸다. 돌아갈 수도, 말할 수도 없는 너무나 명확한 이유였다. 나는 할 말마저 잃은 채 어금니를 앙다물었다.

 

  그녀가 챙겨온 옷들은 대부분 진눈깨비에 젖어 당장은 입을 수 없었다. 서툰 손길로 그녀를 씻기고 난 뒤 대충 물기만 닦아주고 이불 위에 눕혔다. 나는 두꺼운 솜이불까지 덮어주고 나서야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누군가를 이리 살뜰히 신경 써 본 일이 있었던가. 더욱이 만난 지 얼마 안 된 여인을 이리 가까이 보고 만지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었다. 만약 그녀가 밤중에 호랑이 저녁밥이라도 되었다면…… 이 두 손으로 어린 소녀의 잔해를 정리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일단 죽지는 않아 다행이지만, 앞으로의 일은 장담할 수 없었다. 다시 내쫓는다면 오늘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게 뻔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혹은 집안의 뜻대로 혼인을 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당장은 괜찮을지 모르나 평생은 무리였다. 홀로 이 산에 들어올 때, 사사로운 연을 모두 끊겠다던 다짐을 나는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었다. 가족은 물론이고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작 집에서 보내준 여인 하나 때문에 여러 해 동안 지켜온 나의 신념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다음날, 나는 끙끙 앓으며 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 그녀는 새벽 내내 두통과 열에 시달린 것 같았다. 집에 마땅한 게 없어 더운 물과 약간의 미음을 준비해 먹이고, 다시 이불 위로 뉘였다. 대충 만져보아도 신열의 정도가 심했다. 보드라운 수건에 물을 적셔 몸을 닦아주자 곧 그녀의 숨이 편안해졌다.

 

  처음으로 여인의 벗은 몸을 보는데도 두근거리는 마음은 전혀 없고, 그저 안쓰럽기만 했다. 옷을 입고 있을 때에도 무척 가녀렸던 몸은 나체가 되니 더욱 앙상해졌다. 그나마 얼굴에 젖살이 남아있어 빈해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잠드는 것을 보고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손수 손질한 멧돼지 가죽을 팔고 그 돈으로 그녀에게 먹일 약을 사올 참이었다. 야윌 대로 야윈 그녀의 몸은 곧 죽는다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어머니…….”

 

  꿈을 꾸는 듯했다. 자면서도 고통스러운지 그녀는 간간이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나는 채비를 마무리하고, 곁에 앉아 조용히 잠꼬대를 들었다. 자는 중에도 말소리는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가끔은 도망을 치는지 숨을 헐떡거리며 몸을 격하게 비틀었다. 혹시 잘못될까 싶어 어깨를 쥐고 흔들자 그녀가 서서히 눈을 떴다. 눈물방울이 연이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는 꿈이라도 꾼 모양이지?”

  “집채만 한 호랑이가 나타나 절 물어뜯는 꿈을…….”

  “실제로 그러할 뻔한 것을 내가 구해준 것이다. 얼른 몸 추스르고 일어나기나 해.”

  “어디, 가시는 겁니까?”

  “알아서 뭐하려고. 네가 죽기 전까지는 돌아올 테니 걱정 마라.”

  “곧 죽을 것 같은데…….”

  “말장난치는 걸 보니 다 나았구나. 어쨌든 나갔다 올 테니 더 쉬어라. 공연한 일 만들지 말고.”

 

  나는 그녀의 이마에 올려두었던 물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결 편해진 표정에 내 마음도 차츰 안정되었다. 올 때 유과라도 사올까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일평생 과자라는 건 사람들 말로만 들어봤다 했다. 애잔한 마음이 들려는데, 한 마디 덧붙이는 말이 자못 고통스러웠다.

 

  “동생들이 어찌 될지도 모르는데 저만 마음 편히 지낼 순 없어요.”

 

  이내 기운이 빠져 잠드는 그녀를 보며 나는 멀거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정신 따라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여인의 모습은 몹시 희고 따뜻해 보였다. 나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그녀의 이마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뜨겁게 남아있는 열이 연약한 생명력처럼 손바닥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불현듯 나는 이 온기가 가지고 싶어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정체 모를 활기가 내 안에 조금씩 들어차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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