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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버려진 시간들
작가 : 장서진
작품등록일 : 2017.6.6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야기.
이미 버려졌거나 혹은 누군가를 버리고 싶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02.
작성일 : 17-06-06 03:36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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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나를 위한 말이 존재할까, 혹은 그런 존재가 있을까.

 

  나는 온몸에 피멍이 드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틀리면 공주도 관노로 내쫓기는 시대에 나 하나 혼인하는 일이 뭘 그리 대단하고 이상한 일이겠느냐만, 자꾸만 나를 덮치는 절망감은 떨쳐낼 길이 없었다.

 

  나는 기어코 울음을 터뜨리고야 마는 막내의 정수리에 오랜 입맞춤을 해주었다. 가장 울고 싶은 건 나 자신이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 가슴이 에는 듯 아프고 바닥에 내쳐지더라도, 절대 울어서는 안 되었다. 울면 지는 것이요, 동시에 무너지는 것이었다. 때때로 나를 버리고 싶은 순간이 오더라도 남에게 눈물만은 보이지 말자 다짐한 터였다. 처음으로 아버지 손에 맞던 날, 남몰래 밤하늘을 보며 혼자 한 결심이고, 약속이었다.

 

  시간이 부족하다 재촉하는 터라 더 이상 어물거리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동생들이 나를 억세게 붙잡았으나, 힘껏 내치고는 방으로 와 짐을 챙겼다. 가져갈 만한 것이라고는 어머니가 내 몫으로 남긴 비녀나 나의 배냇저고리, 언니의 낡은 댕기가 전부였다.

 

  나보다 더 어린 나이에 먼저 혼인을 갔던 언니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면서, 본인이 가장 아끼던 댕기 하나를 남겨주었다. 매번 자신의 물건을 물려받아 쓰는 나를 안쓰러워하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새것을 사주고 싶어 했으나 돈이 모일 만하면 노름빚으로 탕진해버리는 아버지 때문에 언니는 끝끝내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하고 시집을 갔다. 아주 먼 곳으로 간 것도 아닌데, 이후로 언니는 영영 소식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 집 어른이 풍으로 앓아누웠다더라, 남편이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한량이더라, 하는 이야기만 나돌았다.

 

  최대한 애를 써 짐 같은 짐을 싸고 문을 나섰다. 다섯째가 내 짚신을 품에 끌어안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생각해보니 동생들 밥을 차려준다고 바삐 움직이던 참이었는데, 결국에는 배를 주리게 하고 말았다. 어린 아이들의 야윈 얼굴이 어제보다 더 거뭇해보였다. 나는 정주간에 들어가 가마솥에서 물을 떠왔다. 한 발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것을 억지로 끌고 와 얼굴이며 목, 팔꿈치 같은 데를 박박 힘주어 씻겼다. 막내가 아픈 소리를 내며 울먹이는데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디 가서 험한 소리 안 들으려면 무엇보다 깨끗해야 해. 청결한 사람에게는 우선 신뢰가 가게 돼 있는 법이야. 그 후에는 행실이 올발라야 하고…….”

  “같이 살면서 오래 오래 가르쳐주면…….”

 

  나는 다섯째의 말을 단호히 막아섰다.

 

  “답답한 소리 하지 마. 내 주변에는 벌써 혼인한 애들 천지야. 그리고 양반이라고 하잖아? 그럼 적어도…….”

  “팔려가는 게 그리도 좋니? 지금 누이 얼굴이 사지에 팔려나가는 짐승의 얼굴인데,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너 지금 배고파서 성질난 거 아는데, 나 갈 때까지 조금만 참아줘라. 동생이 보고 배울라.”

  “그렇게 걱정이 되면!”

  “막말로 조선 팔도에 좋아하는 사람이랑 혼인하는 여인이 몇이나 되겠니? 다들 부모가 나서 짝지어주는 게 태반인데! 나라고 별반 다르겠어? 내가 뭐 얼마나 잘났다고, 뭐 얼마나 특별하다고! 다들 이렇게 살아, 종현아. 나라고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야. 그리고 너도 이제 열두 살이잖아. 동생 잘 돌볼 수 있잖아, 그치?”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반박도 못하고 선 동생을 두고 막내를 마저 씻겼다. 차마 밥상까지는 차려줄 수 없었기에 나는 옆집에 들러 오늘 하루만 아버지와 동생들의 끼니를 챙겨 주십사 부탁했다. 나보다도 이 일을 먼저 알고 있었는지 옆집 아주머니는 몹시 안쓰럽게 나를 보며 내일도 모레도 챙겨주시겠다 하였다.

 

  모두가 어렵게 사는 처지였지만, 옆집 가족은 언제나 우리를 도와주었다.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무엇이든 성심껏. 나는 한 번도 그 은혜에 보답한 적이 없어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마음을 다해 큰절을 했다. 나를 보고 아주머니께서 몹시 우셨다.

 

  본디 혼례라는 것은 신부의 집으로 신랑이 와 식을 치르고 초야를 치른 뒤 다음날 시댁으로 가야 마땅하겠으나, 신랑에게 사정이 있어 나는 내가 가야만 했다.

 

  곧 도착한다던 가마는 내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머리를 단정히 빗기도 전에 도착했다. 가마꾼은 물론이고 가마 뒤로 서 있는 여종들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 뒤로는 생전 본 적도 없는 쌀가마니와 비단꾸러미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본 적 없는 행차에 동네 사람들 여럿이 몰려나와 우리 집을 둘러쌌다. 막 밥을 먹고 나온 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변 사람들 중 누군가가 양반집 늙은이에게 가는 거 아니냐며 수군거리자, 갓을 쓴 사내가 “거 말조심 좀 하시오!”하며 그를 다그쳤다.

 

  마을 사람들이 술렁대는 반응 속에 생전 가져본 적도 없는 값비싼 물건들이 집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그 가운데 가마가 있었다. 나는 가마꾼이 가마 문을 여는 것을 보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한 번 동생들이 붙잡았으나, 이미 마음을 모두 비운 상태였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나는 살러 가는 것이다. 팔려가는 것이 아니야.”

 

 라고 말하고는 단호히 가마에 올랐다. 문이 닫히기 전, 아이들과 눈이 마주쳐 살짝 웃어보았으나 입꼬리는 떨리기만 하고 올라가지는 않았다.

 

 

 *

 

  정신을 놓았다 차리기를 몇 번,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가마는 흔들림을 멈추었다. 나는 가마가 땅에 닿자마자 문을 열고 내려 속을 게워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으므로 얼굴이 터질 듯 구토해도 나오는 건 멀건 위액이나 침뿐이었다. 한참동안 진을 빼고 나니 온몸이 후들거렸다.

 

  뒤로 자빠져 넘어지려는 것을 누군가가 받쳐 주어 간신히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감사 인사를 하러 뒤를 돌아보니 웬 기골이 장대한 사내가 서 있었다. 몸도 크고, 손도 투박하니 컸으나 얼굴만은 선이 유려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에게 허리 숙여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러나 그는 대답도 않고 제 갈 길을 향해 걸어갔다. 터벅거리며 걷는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고단함이나 고통,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잠깐 동안의 만남이었지만 어쩐지 쉬이 털어지지 않았다.

 

  날이 늦었으므로 모두들 지친 상태였기에 근처 주막에 들러 방을 잡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내 방은 따로 잡아두었고, 가마꾼이나 여종, 일꾼들은 자기네들끼리 짝을 이루어 머물기로 했다. 그중 가장 어린 여종아이 하나가 좁은 방에 볼멘소리를 하자, 어미로 보이는 여인이 아이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며 단호하게 다그쳤다.

 

  “저 혼자 쓰기에는 방이 너무 넓습니다. 몇 명이 나누어서 쓰는 게 어떨는지요.”

 

  안쓰러운 마음에 넌지시 말을 꺼내보았지만, 여인의 태도는 강경했다. 그녀는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며, 주인어른의 명이 있어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주인어른’이란 내 시아버지가 될 어른을 이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에게 억지로 떠밀려 방에 들어왔다.

 

  어지럽고 복잡하기만 한 하루였다. 나는 이러한 날을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일상이 반복된다고 지겹다 여긴 적도 없지만, 그건 그것대로 이건 이것대로 견뎌내기 힘들었다.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던 ‘혼인’이라는 것이 어느 날 문득 날 덮쳤고, 나는 우시장에 팔려가는 송아지마냥 가마에 태워져 이곳까지 이르렀다. 누구나 은애하는 이와 혼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이렇게 혼례를 하러 가는 여인은 없을 것이었다.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자 마음 한 가운데가 바닥으로 푹 꺼졌다. 서출이든 양반이든, 혹은 양민이든 천민이든 나를 위한 조금의 배려도 없는 이 혼사가 과연 잘한 일일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신랑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나는 괜스레 아버지가 내게 했던 일을 그가 나에게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혼인이란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또 하나의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라고 했다.

  같은 집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언니와 나는 남자 형제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그리며 자랐다. 아버지는 언제나 늘 술과 노름에 절어 있었어도 집안의 기둥 같은 아들들에게는 일절 손대지 않았다. 대신 힘없고 만만한 딸들을 때렸다.

  내 위로 두 명의 오라버니가 있었으나 한 명은 아버지와 다름없는 노름꾼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리공부를 하겠다며 떠난 터라 우리 집은 언니가 거의 맏이였다. 큰오라버니가 혼인하여 집에 새언니라도 있었으면 좀 나았을 텐데, 오라버니는 열여덟이 될 때까지 혼인은 고사하고 일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명국에 가겠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곧이어 둘째 오라버니도 스승을 따라 나가버리니 집은 그야말로 난국이었다. 이후 둘은 언니가 시집을 갈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오늘에까지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시간으로 따지면 형제들 중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맞은 것은 나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술병이 고약해 무슨 일이라도 치른다면, 어린 동생들은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웃에서 도와준다 한들 식구만큼 깊이 관여할 수 있을까. 큰오라버니든 작은오라버니든 누군가는 얼른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버지의 마수로부터 동생들을 지켜야했다. 만약에라도 동생들이 잘못된다면, 나는 그 어느 누구든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전 생애를 통틀어 누군가 나에게 ‘용서’란 것을 가르쳐 준 적이 있던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눈앞이 까마득했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이 들어왔지만 도무지 씹어지지가 않았다. 뜨거운 맹물에 밥 한 숟갈 움푹 떠 말아먹고야 나는 겨우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남은 음식은 일하는 사람들이 먹고, 나는 간장종지만큼 먹고 나서야 상을 물렸다. 누군가가 나를 챙겨주는 것도 전에 없는 호사였지만 좀처럼 적응되지가 않았다. 사실 오늘 하루 종일 일어났던 대부분의 일들이 나에게는 의문투성이고 불가사의한 것들이었다.

 

  얼마나 더 게워내고, 그 울렁거림을 참아야 나는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설 수 있을까. 아무도 내게 말을 붙이지 않고 알려주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며칠을 견뎌내야 그 끝을 맺을 수 있을까. 서출이라고는 하지만 일단은 양반인데, 내가 양반과 잘 어울려 지낼 수 있을까. 혹여 첩실로 들어간다면 정실에게 미움 받지는 않을까. 사내아이를 낳지 못하면 쫓겨나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소박맞은 아내가 되어 홀로 늙다 죽는 것일까.

 

  이부자리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니 번잡스러운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다. 등은 따뜻하고 이불도 도톰한데 자꾸만 차고 날카로운 것들이 내 안을 긁어대는 것 같았다. 한 번은 아버지 생각을 했다가, 또 한 번은 동생들 생각을 했다가, 마지막에는 길에서 잠깐 마주쳤던 그 사람 생각을 했다가……. 그러다가 나는 또 찰나의 순간에 보았던 그 사람 손을 조심히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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