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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기타
청동거울의 비밀
작가 : 최극
작품등록일 : 20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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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낡고 오래된 청동거울(이하 동경)이 하나 있다. 별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그러나 묘하게도 곳곳의 수포자국이 흉물스러운, 수 천 년 전의 흔적 한 조각. 이것은 한 여인의 비극적 신기로 주조된 영물이다. 인간이 아직 신을 넘어선 존재를 알지 못하는 그 시대, 운명의 신이 예정된 행로를 보여주는 데로 순응해야했던 그 시대에, 한 여인이 동경에 신기(神氣)를 불어넣음으로써 운명에의 도전을 결심한다. 사랑을 위해서.

 
[6화] 돝 (기원편)
작성일 : 17-06-01 21:12     조회 : 57     추천 : 1     분량 : 70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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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생해. 피부와 조직이 모두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연호와 혜주가 돌아간 뒤.

 김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석연구원인 오박사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이 발견한 미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오박사의 중심전공 분야는 고대 근동의 미라 연구이다.

 

 

 “2500년 전 미라는 여러 군데에서 발견되었어. 중국에서 얼마 전 생전 모습 그대로 썩지 않고 보존된 미라가 발견되기도 했구. 자네도 잘 알다시피 러시아에서 발견된 시베리아 공주의 미라도 있고.”

 “기억하네. 최근에 3D로 공주의 상반신을 완전히 복구했지.”

 “응. 그런데 다시 매장하기로 결정했다더군.”

 “그 공주가 저주를 내린다는 그 미신 때문인가?”

 “응. 그녀가 발굴된 이후로 러시아에 대 재앙과 지진이 왔다고 믿고 있으니까.”

 “그렇군.”

 “그나저나 자네가 궁금한 게 뭐야. 고작 나한테 미라 연구사에 대해서 물어보려고 먼 길을 달려온 건 아닐 테고?”

 “실은 이 미라의 발굴 된 형태가 아주 이상해서 말이야.”

 “왜 고인돌에서 발견된 게 아닌가?”

 “작은 조약돌 더미에 수직으로 묻혀 있었네.”

 “뭐!”

 

 

 오박사가 깜짝 놀라며 김박사를 바라본다.

 

 

 “자세히 말해봐. 수직으로 어떻게 묻혀 있었나?”

 “쓰개와 청동방울에 의관은 제대로 갖추었네. 분석결과 20대 중후반의 남자로 추정했고 근육질의 다부진 몸매여서 사냥과 전쟁에 주로 나갔던 전사계급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고 있네. 팔 한쪽을 잃은 것 빼고는 전신이 멀쩡하다네”

 “돌무덤이라고 했지? 혹시 자잘한 돌멩이들었나?”

 “그래. 마구잡이로 쌓아올린 작은 조약돌이었네.”

 “머리끝까지 완전히 뒤덮고 있었단 말이지?”

 “그래. 완전히 뒤덮여 있었어.”

 

 

 김박사의 설명을 듣고 난 뒤

 오박사는 잠시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전사는 죽어서 묻힌 게 아니야.”

 “뭐라구?”

 “그 전사는 벌을 받아 매장 당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인가!”

 

 

 이번엔 김박사가 놀랐다.

 

 

 “청동기인들은 신을 믿었네. 신을 믿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곧 영생을 믿었다는 말이지. 그들이 고인돌 방식을 취해 매장에 정성을 기울인 이유는 하나일세. 죽은 뒤 다시 부활하리라 믿었기 때문이지.”

 “청동기인들이 부활신앙을 믿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나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생물이라면 죽은 뒤에는 환생할 것이라 믿었네. 모든 만물에 영혼이 깃들고 돌고 돈다는 순환을 믿었지. 단 태양을 향해 온전히 누운 모습으로 죽음을 받아들여야 다시 환생할 수 있다고 믿었네.”

 “태양?”

 “응. 그래서 지배계급은 고인돌 아래 온전히 누운 모습으로 안치되었지. 물론 노예나 피지배계급은 죽은 뒤 아무 곳에나 던져져 짐승의 먹이가 되는 자연의 순환법칙에 따랐지.”

 “음”

 “그런데 자네가 발굴한 전사의 미라는 환생을 바랄 수 없는 형식으로 묻혔네.”

 “누군가 그의 환생을 막기 위해 돌멩이 무덤에 함부로 묻었다는 건가?”

 “그렇지.”

 

 

 오박사를 만나고 나온 김박사의 발걸음이 초조해졌다.

 역시 김박사의 예상이 맞았다.

 매장방식의 독특함에서부터 이 미라는 보통 미라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만약 이 미라가 수십 년 간 그가 추적해온 그 미라라면.

 

 김박사는 우선 혜주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혜주에게 이 사실을 빨리 알려야했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앞서서 전설 속의 그 물건을 손에 쥐어야만 한다.

 

 그런데 혜주의 전화기는 신호음만 울리고 연결이 되질 않았다.

 김박사가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도 답이 없다.

 한연호라는 놈과 나간 뒤 도대체 어디를 간 건지!

 

 불안하게 서성이던 김박사의 머리속에 퍼뜩 생각이 스쳤다.

 혜주는, 한연호가 S그룹의 수석조향 연구원이라고 말했었다.

 S그룹은 여기서 10분 거리도 안 된다.

 김박사는 급하게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 * *

 

 

 

 인턴! 결과분석표 다시 작성해!

 야 인턴 똑바로 못해!

 인턴아 제발 머리 좀 제대로 굴려라!

 정신 차려 인턴!

 

 아침부터 송지수는 잔소리 폭풍에 시달리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선 출근 직후부터 오후 4시가 넘어선 지금까지

 선임연구원들은 송지수를 닦달하며 들들 볶았다.

 그도 그럴 것이 시제품이 다음 주까지 나와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고

 어찌된 일인지 한연호 팀장은 출근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 바람에 부장에게 불려간 강주임이 된통 깨져서 돌아왔다.

 강주임은 그 화풀이를 후임들에게 몰아쳐댔다.

 후임들은 그에 대한 분풀이를 인턴인 송지수에게 하는 중이었다.

 

 

 [드르르. 드르르]

 

 

 지수의 핸드폰 진동음이 아까부터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엄마였다.

 지수는 무시한 채 퍼퓸 분석표 재정리에 매달렸다.

 하지만 핸드폰은 계속해서 몇 번이고 다시 울렸다.

 강주임이 이글거리는 레이저 눈빛을 지수에게 쏘아대기 시작했다.

 지수는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왜 자꾸 전화야!”

 “내려와 당장.”

 “지금 일하는 중이야 끊어.”

 “그 사람이 나타났어.”

 

 

 순간, 지수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 사람.

 엄마가 할머니가 할머니의 엄마가 할머니의 엄마의 엄마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사람.

 

 “어제 그 사람이 나타났어. 그러니까 와.”

 “내가... 왜?”

 

 

 전화는 끊어졌다.

 엄마는 가타부타 설명이 없었다.

 그저 지극히 당연하고 마땅한 복종을 요구하고 있었다.

 지수는 핸드폰을 든 채 멍하니 서있었다.

 

 

 [아가, 우리는 선택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란다. 그분이 우리를 수호자로 정했으니 우리는 그냥 수호자다. 그것이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란다. 아가 너의 존재는 그분으로 인해 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음성이 지수의 귓가에 다시 들려온다.

 지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난 아니야. 내가 가지 않겠다면 난 안 가는 거야!

 

 

 [아가씨]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불렀다.

 놀란 지수가 휙 뒤돌아 그를 보았다.

 50대쯤일까. 이지적인 남자가 서있었다.

 

 

 “한연호라는 조향사 있습니까?”

 “아... 지금은 안계신데요. 실례지만 누구신지?”

 “급한 일인데요, 어떻게 연락이 안되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오늘 출근을 안하셨어요.”

 “출근을 안했어요?”

 “네.”

 “이상하군. 오전에 분명히 혜주랑 같이 출발했는데.”

 ‘혜주? 한 팀장님 애인인데? 그렇다면 이분은?’

 

 

 지수는 꼼꼼히 김박사를 살펴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지적인 눈매와 다소 큰 이마하며 혜주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그나저나, 팀장님과 그 여자가 지금 함께 있다는 건가?’

 

 

 지수의 인상이 갑자기 우울하게 변한다.

 한 팀장님이 그 여자와 같이 있다는 사실에 왜 신경이 쓰이는 걸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둘은 어차피 애인사이인데 주말을 같이 보낼 수도 있지 뭐.

 

 

 “실은 제가 우리 딸과 연락이 안 되서요. 오전에 박물관에 들렸다가 나간 뒤로 오후 내내 연락두절이네요. 한연호 조향사는 혹 돌아왔을까 싶어서요.”

 “아... 네. 김혜주씨가 따님 되시죠?”

 “우리 딸을 어떻게 아가씨가?”

 “얼마 전에 우연히 뵜습니다.”

 “아 그렇군요. 거참... 세석평전으로 다시 돌아갔나.”

 

 

 김박사가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갸웃한 순간

 지수가 김박사를 휙 쳐다본다.

 

 

 “세석... 평전이요? 지리산 말씀하신 건가요?”

 “예. 어제 그곳에 있다가 오늘 오전 우리 박물관에 왔거든요.”

 “세석평전에는 왜요?”

 “글쎄요. 딸애 말로는 야생들풀을 수집하러 간다고 했습니다만”

 

 ‘세석평전. 팀장님이 그곳으로 간 거였어? 그런데 왜 돌아오지 않는 거지?’

 

 

 김박사는 생각에 잠긴 지수를 바라보았다.

 보이시한 느낌의 미소년 같은 풋풋함이 느껴지는 아가씨였다.

 그런데 오른 손이 왜 저 모양이지.

 생각에 잠긴 지수가 자신도 모르게 오그라든 오른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그 바람에 김박사는 지수의 오그라든 손을 보고 말았던 것이다.

 

 지수는 김박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몰랐다.

 그저 뭔가 불분명한 단서들을 선명하게 만들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지수는 생각에 생각을 모아 우주에서 보내는 묘한 기운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전화 목소리부터였어!

 

 [어.제. 그 사람이 나타났어.]

 

 그래! 엄마가 전화에서 말했었다.

 어.제. 그 사람이 나타났었다고.

 그리고 어.제. 팀장님이 세석평전에 있었어!

 

 

 

 * * *

 

 

 

 2500년 전

 

 수리부족 마을 입구에 환호성이 가득했다.

 부락민들 모두가 마을 입구에 나와 탁춤을 추며 전사들을 맞이한다.

 전사들의 맨 앞에는 대족장이, 그 뒤에는 동경을 목에 건 수랑이 서있다.

 그리고 수랑의 뒤에는 호가가 서있다.

 호가는 자신의 서열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가를 씰룩였다.

 호가 뒤에는 전리품을 어깨에 멘 전사들이 의기양양한 함성을 지르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전장에서 이겨 노예로 삼은 타부족민들이 끌려오고 있었다.

 

 앞서 가던 대족장이 발걸음을 멈췄다.

 저만치서 맨발의 자운비가 달음질을 쳐 달려온다.

 자운비는 그대로 대족장의 품에 쏙 안겨 아버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 무사히 살아 오셔서 너무 기뻐요.”

 “오냐 아가야.”

 

 

 대족장도 군장 신분을 내려놓고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어 자운비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자운비는 한 팔을 뻗어 아버지의 뒤에 선 수랑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랑이 그 손을 꼭 잡았다.

 

 

 “그 얘기 들었나? 수랑님 동경이 태양빛을 받는 순간 적들이 모두 맥을 못 추고 쓰러졌대.”

 “자운비님이 직접 주조하신 동경이니 오죽하겄는가 그 영기가.”

 

 

 부락민들이 수랑의 어깨를 쳐주며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 순간.

 호가의 얼굴에는 썩은 미소가 씰룩이고 있었다.

 전장에서 맹렬하게 싸우던 수랑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부락민들이 나불거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수랑이 목에 건 동경은 햇빛을 발하자 눈이 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에 적들이 눈을 가리며 고통스러워했던 것이다.

 

 

 “제일 어린 돝을 가져오라.”

 (*돝 = 돼지, 를 뜻하는 고대어)

 

 

 대족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사 중 하나가 전리품으로 얻은 돝을 대족장 앞에 바쳤다.

 

 

 “수랑은 앞으로 나오라.”

 “예, 군장어른.”

 

 

 대족장의 명에 따라 수랑이 예를 갖추고 무릎을 꿇었다.

 대족장은 세형청동검으로 수랑의 어깨에 성스러운 강복을 내렸다.

 그리고 팔두령(청동방울)을 세차게 흔들며 신의 축복까지 내린다.

 

 

 “수랑, 오늘 그대는 수리부족 최고의 전사였다.”

 

 

 대족장이, 선언과 함께 새끼 돝을 수랑에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군장어른.”

 

 

 수랑이 예를 갖추어 새끼 돝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끼익끼익- 돝이 귀여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치려 안간힘을 쓴다.

 

 

 “내일의 가을걷이를 위하여 오늘은 마음껏 먹고 마시라. 공방인들도 반달돌칼의 작업을 중지하고 풍족히 먹고 마시라.”

 

 

 대족장의 선언이 이어졌다.

 부락은 이내 순식간에 축제의 도가니에 빠졌다.

 

 막사 안에 들어온 호가는 세형동검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쓰개를 벗어 발로 짓밟았다.

 대족장! 감히 내 앞에서 수랑을 오늘의 최고전사라 칭하다니!

 전사의 수장이 눈앞에 버젓이 서있는데 감히 수랑을!

 호가는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바들바들 떨었다.

 

 

 [안에 있느냐.]

 

 

 막사의 휘장을 걷고 들어온 이는 호가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였다.

 호가는 입술을 씰룩이며 마지못해 예를 표했다.

 

 

 “전장에서는 어떻게 된 일이냐.”

 “별 일 아닙니다.”

 

 

 아버지의 눈빛이 엄하게 호가를 쏘아보았다.

 최고전사의 칭호를 사촌동생인 수랑에게 빼앗기다니!

 아버지가 호가에게 멍청한 놈이라고 질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형님, 호가를 나무라지 마십시오.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제 아들 수랑의 불찰이 큽니다. 사냥과 전장에서는 서열이 위인 형의 승리를 도와야 하거늘, 이놈이 탐욕으로 가득 차 오만하게 굴었으니 응당한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습니다.”

 “부족회의에서 부율에 따라 정할 일이니 너는 나서지 말라.”

 

 

 수랑의 아버지는 순간 움찔 놀랐다.

 이 문제를 부족회의에 올린다면 수랑은 큰 벌을 받을 수도 있다.

 형님이 나의 아들 수랑을 진정 죽이려 드는가.

 수랑의 아버지가 호가의 아버지 앞에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형님, 제가 원율에 따라 엄히”

 “그만!”

 

 

 호가의 아버지가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제지의 손짓을 분명히 했다.

 수랑의 아버지는 입을 다물었다.

 형님의 비위를 건드리는 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지배계급과 피 지배계급이 선명한 이 사회는 생존의 살얼음판.

 위에 있는 자는 아래 있는 자를 마음껏 취하고 버릴 수 있다.

 따라서 서열이 아래인 자신의 가족이 사는 길은 단 하나뿐.

 죽는 시늉을 해서라도 철저히 복종해야 한다.

 그래야 생존 할 수 있다.

 

 

 [잡아라-]

 

 

 막사 밖이 시끌벅적 소란해졌다.

 호가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수랑의 부친이 막사 밖으로 나왔다.

 새끼 돝이 부락 전체를 휘젓고 다니고 있었다.

 그 뒤를 전사들이 낄낄 웃으며 뒤쫓다가 하나둘씩 몸을 날렸다.

 하지만 새끼 돝은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다.

 엎어졌다가 일어난 전사들의 얼굴은 진흙투성이.

 부락민들이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수랑도 부락민들 사이에서 호방하게 웃으며 즐거운 표정이다.

 

 호가 옆에 선 수랑의 아버지는 사색이 되었다.

 수랑이 저토록 호방하게 웃고 있다니. 제 목을 아예 내놓고 있구나!

 

 돝을 뒤쫓던 전사들이 모두 지쳐 나동그라졌다.

 돝도 헉헉이며 잠시 숨을 고른다.

 이때, 맨발의 자운비가 살금살금 돝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풀썩 몸을 날렸다.

 

 

 “잡았다!”

 “꾸르르르---”

 

 

 자운비가 의기양양 일어나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하지만 웬걸 자운비의 손에는 지푸라기만 한 가득.

 어느 새 돝은 쏜살같이 달려 도망쳐버렸다.

 

 

 “아 이놈의 돝! 너 가만 안 둬!”

 

 

 자운비가 아이처럼 씩씩대며 발을 구른다.

 부락민들이 다시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내가 명하노니 돝 너는 당장 이리 대령하라!”

 

 자운비가 짐짓 위엄을 갖춘 연기를 해보인다.

 그러자 부락민들이 환호하며 자운비에게 춤을 보여 달라 청하기 시작했다.

 자운비는 부락민들 사이에 앉아있는 대족장을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자운비가 손발로 탁 탁 탁 박자를 맞추며 탁춤을 추기 시작한다.

 경쾌하고 날렵한 그녀의 춤사위.

 부락민들 모두 발과 손을 구르며 그녀의 춤에 박자를 맞추기 시작한다.

 자운비가 뱅글뱅글 팽이처럼 몇 번이고 돌기 시작했다.

 부락민들의 박자가 빨라지고

 모두가 흥에 겨운 어지럼증에 취한다.

 빠르게 더 빠르게 돌아가는 자운비가 어느 새 수랑 앞에 섰다.

 그리고 수랑의 손을 잡아끈다.

 수랑이 대족장을 본다.

 대족장이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수랑도 힘차게 손발을 맞추며 자운비와 마주 춤을 춘다.

 

 화덕에 붉은 불길이 하늘 높이 솟는다.

 수랑과 자운비가 팽이꽃이 되어 뱅글뱅글 돈다.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사랑에 가득 찬 두 남녀.

 자운비의 손가락 끝이 수랑의 손가락 끝을 잡을 듯 스치고

 수랑의 얼굴이 자운비의 얼굴을 스쳐간다.

 어디선가 달근한 꽃내음이 한가득 나는가 싶다.

 부락전체가 선남선녀의 춤향기에 취했다.

 

 막사 옆에서 지켜보던 호가는 품에서 세형단검을 꺼냈다.

 그리고 한손에 잡고 있던 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돝은 좀전에 호가의 품으로 뛰어들어와 스스로 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너는 내 전리품이어야 한다. 오로지 나의 것!”

 

 

 6화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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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극 17-07-14 00:38
 
돝, 은 국어로는 '돼지'를 뜻하지만,
영어로는 dout (맹목적 사랑)를 뜻합니다.

- 최 극 Drea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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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오그라든 손 (기원편) 2017 / 6 / 1 81 1 6751   
2 [1화] 보이지 않는 눈 (기원편) 2017 / 6 / 1 136 1 5883   
1 [프롤로그] (4) 2017 / 6 / 1 540 2 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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