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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Romantic Cliches
작가 : 이순정
작품등록일 : 2022.2.3

해봄은 어느 날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듯 익숙한 얼굴과 마주한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생각하고 넘겼던 남자는 어렸을 때 같은 아파트에 살았었던 민현이었다. 다시 재회한 후 전처럼 가까워진 두 사람은 점점 가까워지고 그 가운데 민현은 해봄에게 작은 도움을 요청한다.

 
Episode 4. 첫사랑
작성일 : 22-02-06 00:33     조회 : 190     추천 : 0     분량 : 7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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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4. 첫사랑

 

 

 

 

 "야, 류해봄. 너 그거 들었어?"

 

 과방 소파에 누워 나른한 얼굴로 잠을 자던 해봄에게 진희가 다소 심각한 얼굴로 다가왔다. 얼굴 위에 덮고 있던 책을 끌어내리며 바라보자 해봄의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속삭인다.

 

 “희주선배가 누구랑 사귀는지 아냐고, 류해봄.”

 

 아. 넌지시 띄운 운에 해봄은 진희가 무슨 말을 할 지 알아챈다. 아마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제일 먼저 알았을 거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킨 해봄이 누워있느라 엉망이 된 머리를 정리하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생각보다 사람들한테 늦게 알렸네.

 

 "알아.”

 “안다고?”

 “희승오빠랑 사귄다고 하지 않아?”

 “너 알고 있었어?”

 “누구보다 내가 제일 먼저 알았을 걸.”

 “……”

 

 해봄의 말에 진희가 입을 일자로 다문다. 마지막 말에서 무언가를 알아챈 시선에 해봄이 아무말 하지 말라는 듯 그냥 웃었다.

 헤어지기 전부터 눈치는 채고 있었다. 데이트를 하는데도 집중하지 못했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를 않았으니까. 예전 같았으면 자리를 비울 때 아무렇게나 던져두던 핸드폰을 화장실에 갈 때마저 가지고 가는 걸 보고 직감했다.

 아, 여자가 생겼구나.

 

 「해봄아, 그게..!」

 「……」

 

 그런데 짐작만 하고 있는 것과 직접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 달랐다.

 어느 날 늦은 골목길에서 함께 손을 잡고 걸어오던 두사람과 정면으로 마주친 날, 저를 보며 제 이름을 부르는 두 사람이 해봄은 참 가증스러웠다. 사람에게 상처주는 일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뒤에서 몰래 만난 주제에 이제와서 미안한 얼굴을 한다는 게.

 

 「다 설명할게, 해봄아.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변명하려고 하는 거면 너무 꼴사납다, 둘 다.」

 「……」

 「이제와서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거야? 한 가지만 해, 사람 헷갈리게 하지 말고.」

 

 변명하려는 이유는 너무나 뻔했다. 착한 사람이 되고 싶겠지. 나쁜 짓을 했어도 욕은 먹고 싶지 않겠지. 구질구질해. 자신의 앞에 나란히 앉은 두사람을 보며 해봄은 쏟아지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켜냈다.

 지지마. 류해봄, 지지마. 주문처럼 수도 없이 제게 말했다. 지지 말자고.

 

 “설마, 두 사람.. 전부터 사귀고 있었던 거야? 너랑 희승오빠랑 사귈 때부터?”

 “그냥 너만 알고 있어.”

 “야, 류해봄! 너 왜 그걸 이제야 말해? 아니, 그 이야기를 애들한테 왜 안 해!”

 

 이제서야 헤어짐의 전말을 알게 된 진희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쭈그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됐어. 그냥 넘어가자. 그런 걸로 감정 소비하지 말고.”

 “학교 다니는 동안 그 년놈들 얼굴 보게 될 텐데 너는 화도 안 나냐?”

 

 안 날 리가. 설마, 그럴 리가.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던 얼굴만 떠올리면 밤에도 열이 뻗쳐서 잠이 안 왔다. 진희의 말처럼 확 까발리고 희대의 쌍년놈 소리를 듣게 만들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그러자니 너무 허무해졌다. 대체 그게 뭐라고. 그렇게 되면 행복했던 지난 날조차 엉망이 될 게 분명하잖아. 해봄은 고민 끝에 혼자만의 기억이라도 그 추억을 소중한 채로 남겨두기로 했다.

 

 “됐어. 어차피 그 두 사람 졸업반이라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

 “… 야, 류해봄. 너 진짜 서운하다? 이런 걸 왜 이야기를 안 해?”

 

 올린 시선 위에 울먹이는 얼굴 하나가 있다. 해봄이 울지 말라는 듯 웃으며 두 팔을 뻗었다.

 

 “미안해. 그냥 너 속상해 할 게 뻔해서 말 안 했어.”

 

 꼭 자신이 이별한 것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는 진희를 있는 힘껏 끌어안은 해봄이 울지 말라는 듯 위로하며 등을 토닥였다.

 

 “나 괜찮아. 울지 마.”

 

 

 * * *

 

 

 진희에게 괜찮다고 하긴 했지만 괜찮을 리가 없다. 두 사람의 소식을 들은 후 계속 기분이 좋지 않다.

 술이나 먹을까. 연락처를 뒤적여봐도 마땅한 사람이 없다. 이럴 때는 늘 진희와 함께였는데. 와,내가 이렇게 친구가 없었나. 술이 먹고 싶은데 먹을 사람이 없다.

 혼자 마셔야 되나. 가만히 걷던 해봄이 아파트 단지로 향하는 입구 근처 편의점을 지나치다 문득 민현을 생각해낸다. 집에 있으려나?

 

 “… 어,”

 

 연락을 하려고 핸드폰을 꺼냈는데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핸드폰에 권민현 연락처가 없어. 당연히 교환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물어본 적이 없다.

 당황한 해봄이 핸드폰을 가방 안에 넣으며 눈앞에 보이는 경비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해봄이 아니야? 무슨 일이야?"

 "아, 저 503호에 인터폰 좀 해주세요."

 

 같은 아파트에 사니까 이거 좋네. 핸드폰 번호를 몰라도 연락할 수 있는 거. 집에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인터폰을 거는 경비 아저씨를 보다가 손에 쥔 봉투로 시선을 내린다. 방금 전에 편의점에서 산 맥주다. 생각해보니까 부모님이 여행을 가셔서 일주일 동안 혼자 있는다고 했던 것 같다. 마실 데도 없는데 잘 됐다.

 

 “여기. 연결 됐어.”

 “감사합니다.”

 

 건네진 인터폰이 낯설다. 사실 어렸을 때만 써봤지 핸드폰이 생긴 뒤부터는 한번도 안 써봤다.꼭 처음 써보는 것처럼 신기하다.

 

 “민현아, 나 해봄이.”

 

 당황했겠지. 어떤 반응이 나올까. 해봄이 시선을 내리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민현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 누나? 왠 인터폰?

 "너한테 연락하려고 보니까 네 연락처가 없더라?"

 - 진짜? 아, 우리 교환 안 했었나?

 “응. 아, 권민현. 너 오늘 뭐해. 약속 있어?”

 - 왜, 무슨 일 있어?

 “나 지금 좀 위로가 필요한데.”

 - ……

 “술 같이 마셔줄 수 있어?”

 

 당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목소리에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다. 오히려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편안하게 대꾸한다. 뭐야, 당황하지도 않고 재미없게.

 목소리가 참 좋다. 인터폰 너머로 들려오는 민현의 목소리는 너무 높지도, 하지만 너무 낮지도 않았다. 딱, 적정 수준의 목소리.

 해봄은 이런 목소리를 갖고 있던 남자를 한 명 알고 있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 하나에 해봄은 왠지 눈가가 시큰거렸다.

 

 - 올라와. 기다리고 있을게.

 

 

 * * *

 

 

 술이 필요하다고 하니 그냥 놔뒀더니 아예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신다. 처음 딴 맥주를 앞에 두고 대충 해봄의 말상대를 해주던 민현이 주량을 넘어선 듯 보이는 해봄에 결국 손을 뻗었다.

 벌써 3캔째. 지금이 4캔째고 그것도 거의 다 마셨는지 뺏은 캔이 가볍기만 하다.

 

 “누나. 취한 것 같은데 그만 마셔.”

 

 다정하지만 어투가 단호하다. 한 캔만 더 마시면 안 되냐고 묻자 눈빛이 서늘해진다.

 

 “안돼, 그만 마셔.”

 

 누가 동생이고 누가 누나인지.

 해봄이 술에 취해 풀어진 얼굴로 웃으며 손으로 뺨을 문질렀다. 술기운데 열이 오른 뺨이 뜨끈했다. 눈이 살짝 풀린 채 두손으로 얼굴을 받친 해봄이 맞은편에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앉아있는 민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툭 내뱉었다.

 

 “너 바람 피워본 적 있어?”

 

 남은 맥주를 마시고 빈 캔을 옆으로 밀던 민현이 뜬금없는 해봄의 말에 가만히 시선을 기울였다. 바람? 잘못 들은 건가 해서 다시 한번 묻자 이번에도 역시 근본 없는 질문을 한다.

 

 “양다리 걸친 적은?”

 “……”

 

 민현이 대답을 하는 대신 해봄의 의도를 가늠하려는 듯 가만히 해봄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턱을 괴고 거리를 좁힌다.

 딱 한 뼘 정도의 거리에 꽃받침을 한 해봄이 있다. 술기운에 달아오른 뺨은 빨갛고 무거워진 눈꺼풀이 느리게 감겼다 떠지기를 반복했다.

 술기운에 물어본 가벼운 질문이라고 하기에는 공기가 무겁다. 턱을 괸 상태의 민현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바람, 양다리. 꼭, 자기 경험인 것처럼 말하네.

 

 “그런 쓰레기 같은 짓 할 리가 없잖아.”

 “… 그치. 쓰레기 같은 짓이지, 그런 건.”

 “왜 그런 걸 묻는데? 누가 그랬어?”

 

 술기운에 감긴 눈을 가만히 두는 해봄에게로 민현이 아주 천천히 손을 뻗었다. 살짝 아래로 기울어진 고개 덕에 얼굴을 가린 까만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귀 뒤로 넘겨준다. 움직여 스친 손가락에 해봄이 감았던 눈을 떴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이제서야 술기운이 올라오는 건지 정신이 몽롱해서 눈이 잘 떠지지도 않는다. 자꾸만 감기려는 두 눈을 느리게 뜬 해봄이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힘을 푼 채 웃었다.

 

 “화났어?”

 “내가?”

 “얼굴이 화난 얼굴인데, 너.”

 “……”

 

 술기운에 뭉툭해진 발음으로 해봄이 말했다. 자신의 감정을 굳이 숨길 생각 없는 민현은 굳이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제야 대충 짐작이 가거든. 류해봄이 지금 왜 이런 상태인지.

 남자친구는 없다고 했었지. 그럼 남자친구였던 어떤 쓰레기 때문에 류해봄이 이러는 거구나. 결론을 내리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 여자친구는?”

 “그 때도 물어봐서 없다고 대답했잖아.”

 “아, 그래? 취했나 보다. 나 취하면 했던 말 또 하고 그러거든."

 

 얼굴이 그대로 아래로 고꾸라졌다. 식탁에 엎드린 해봄의 목소리 조금씩 작아졌다.

 민현이 해봄의 동그란 머리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손을 뻗었다. 톡톡. 가볍게 쓰다듬는 손길에도 해봄은 별다른 반응이 없다. 여전히 턱을 괸 채 민현이 가만히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까맣고 짙은 눈동자가 옆으로 엎드린 탓에 설핏 드러난 해봄의 얼굴을 바라본다.

 손끝에 스치는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움직일 때마다 해봄이 뿌린 향수향이 코끝을 스쳤다.

 

 "민현아.”

 “응.”

 “너 고백해 본 적 있어?”

 “그건 왜?”

 “너는 고백해도 차여본 적 없을 것 같아서.”

 “……”

 

 그러니까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저기압인 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감은 잡았다. 사귀던 남자친구때문에 류해봄 상태가 지금 이렇다 이거지.

 가만히, 부드럽게 해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민현의 시선이 못마땅함으로 조금 짙어졌다.

 

 “… 차였어?”

 “뭐.. 결과론적으로는 찼는데, 이걸 찼다고 할 수는 없겠지.”

 “……”

 “권민현 너 고백해 본 적 없구나?”

 “응. 없어.”

 

 그럴 줄 알았다. 저 얼굴이면 고백하기도 전에 고백을 받았겠지.

 해봄이 깊은 숨을 내쉬며 감았던 눈을 떴다. 학교를 나오면서 저 멀리서 봤던 두 사람의 모습이 환상처럼 스쳤다. 숨어서 만나다가 공개적으로 팔짱 끼고 다니니까 좋았겠지. 좋아 죽겠는 얼굴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래서 CC는 하지 말라고 했던가. 결국 두 사람의 연애 소식의 종착지는 자신이었으니까.

 그래도 한 때는 자신도 사랑받는 여자친구였다. 먼저 좋아한 건 자신이었지만 사귀자는 말을 한 건 희승이었다. 희승의 바람을 눈치채기 전까지는 행복했었다.

 자신은 그 때도 역시 희승을 좋아하고 있었으니까. 마음이 식는다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게 서글펐다. 내 감정은 그대로인데 상대방의 감정은 이미 식어 사라져버렸다는 게.

 

 “차여본 적도 없지.”

 “응.”

 “와, 부러워라..”

 

 민현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해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덕분에 살살 머리카락을 만지던 민현의 손이 갈 곳을 잃고 식탁 위를 방황했다.

 엎드려 있던 탓에 술에 취해 빨개졌던 볼이 더 빨개졌는데 해봄은 알지 못하는 눈치로 애꿎은 머리만 계속 정리했다. 눈으로 해봄이 하는 행동을 계속 쫓으며 민현이 소리 없이 눈을 곱게 접었다.

 민현이 맞은편의 해봄을 바라본다. 알딸딸하게 술에 취해 풀려 있는 눈이 자신을 향해 있었다. 술에 의해 적당히 달아오른 볼이 꽤나 예뻤다.

 

 "누나는? 고백 받아본 적 있어?"

 “당연하지. 나를 뭘로 보고."

 “……”

 “믿을지 모르겠지만 누나가 인기 꽤 있다, 민현아.”

 

 풀 죽어 있던 해봄의 얼굴이 다소 우쭐대는 얼굴로 바뀌었다.

 류해봄은 예전에도 이랬다. 감정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해봄은 슬퍼하다가도 금방 기뻐하고 그러다가도 또 슬퍼하다가 다시 기뻐했다.

 민현은 잘 웃고 잘 우는 해봄이 좋았다.

 

 「민현아. 기죽지 마.」

 

 그리고 환경이나 조건에 상관없이 저를 보며 웃어주는 해봄이 좋았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야. 나중에는 네가 훨씬 멋진 남자가 될 거니까.」

 「……」

 「그 때 되면 쟤네들이 오히려 너랑 친해지려고 안달 낼 걸?」

 

 작고 왜소한 탓에 덩치 큰 남자애들의 타겟이 될 때가 많았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학교에서는 티를 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많이 울었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본 해봄이 저를 꽉 안아주며 말했다.

 너는 정말 근사한 남자가 될 거라고.

 

 「그러니까 힘내라고, 권민현! 아, 그리고 너 운 거는 비밀로 해줄게. 남자도 슬플 때는 울고 그래야지.」

 

 그래도 꼴에 남자라고 몰래 운 걸 다른 사람한테 말할까 봐 걱정하는 걸 알았는지 작게 말하고 웃는 그 얼굴이 예뻤다.

 

 “누나, 그거 알아?”

 

 술기운에 뜨끈해진 두 볼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던 해봄의 시선이 대답 대신 민현에게 향했다. 지금도 그래. 자기 자랑을 하면서도 쑥스러운 듯 웃는 얼굴이 예뻤다.

 다시 만나게 됐을 때도 그랬다. 우연히 마주친 엘리베이터 안에서 민현은 단번에 해봄을 알아차렸다. 류해봄이다.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얼굴과 눈이 마주쳤을 때는 인사를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인 듯 시선을 흘리는 해봄을 보며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뭐, 내가 많이 변하긴 했지. 알아보지 못하는 해봄이 이해는 갔다. 오랜만에 본 친척도 가끔 자신을 못 알아보곤 했으니까.

 

 "누나가 내 첫사랑인 거.”

 “… 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다. 해봄의 당황스러움이 얼굴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민현이 웃으며해봄과 시선을 맞췄다.

 

 “그냥, 그렇다고.“

 "……"

 “술 더 안 마실 거지? 치운다?”

 

 사람 설레는 말을 툭 던져 놓고 정작 자기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민현이 식탁에 아직 남은 맥주를 들고 냉장고로 향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민현의 등으로 향했다. 첫사랑이라. 당황스럽기는 해도 기분은 좋다. 권민현 첫사랑이 류해봄이란 말이지.

 희승 때문에 저 바닥에 처박혔던 자존감이 다시 솟구친다. 그래, 나 경쟁력 있는 여자라고.

 

 “자고 갈래?”

 “뭐?”

 

 분위기에 취하기도 했고 한껏 오른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해봄이 툭 던진 민현의 말에 해봄의 목소리가 커졌다.

 별 생각 없는 말이었는데 반응이 제법 크다. 냉장고 문을 닫은 민현이 건조해 바삭거리는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겼다.

 

 “왜 그렇게 놀라? 술 많이 마셨으니까 혹시 아주머니가 싫어하시면 자고 가라고 한 건데. 오늘 집에 부모님도 없으니까.”

 “너.. 그게 놀라는 포인트인 거 몰라?”

 “뭐가. 내가 누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그렇게 앞뒤 다 자르고 말하면 누구라도 그렇게 알아듣는다고, 권민현.”

 

 아, 깜짝 놀랐네.

 격한 반응에도 동요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뱉는 목소리에서 다시 평정을 찾은 해봄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내가 착각하면 어쩌려고? 진짜 이건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대사였다고.

 해봄의 투덜대는 말에 가볍게 웃으며 민현이 다가왔다.

 

 “그래서 자고 갈 거야, 아니면 갈 거야? 갈 거면 데려다줄게.”

 “근데 나 자면 어디서 자?”

 “내 방에서 자고 가. 내가 안방에서 자면 되니까.”

 “음..”

 

 술을 좀 많이 마시기는 했다. 민현의 말처럼 술 많이 마시고 취한 꼴로 들어가면 엄마는 분명 화를 낼 게 뻔하고.

 생각을 마친 해봄의 시선이 슬쩍 민현에게 향했다. 말없이 닿은 시선에서 대답을 읽은 민현이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일어나, 그럼.”

 

 민현이 앉아있는 해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물끄러미 내려보던 해봄이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키만큼 커진 손바닥이 쉽게 해봄의 손을 감싸 일으켰다. 얘는 손도 크네. 비틀거리는 걸음을 애써 바로 하며 해봄이 맞잡은 손에 시선을 고정했다.

 왠지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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