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는 더욱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3년 전, 조용히 즉위하고 은둔생활을 의심을 받을 정도로 조용히 활동했던 이드릭의 국왕이 직접 사신단으로 방문하다니 놀라울만 했다.

　자드밀의 국왕과 친분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숨어있던 왕이 이렇게나 미남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목소리가 좋다는 것도 놀라웠고, 여하튼 다 놀라웠다.

　"미리 연락을 주시지 않고."

　"제가 축하드리러 오는 자리인데 수선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드릭 국왕의 첫 행차인데 조금 수선스러워도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왕은 진심으로 반가워보였다.

　이드릭의 왕, 카로스 E. 이드릭도 나이에 비해 조용하고 침착한 성격으로 보였다.

　재밌고 새로운 구경은 거의 끝난 것 같고, 나는 탈진 직전의 상태까지 가서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주스에 쿠키를 주워먹을 것만 같았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주인공을 축하하고 싶어 방문한 자리인데, 주인공들은 어디 있습니까?"

　"리베론 경, 챔버 영애.

　이리로 오시게."

　슬금슬금 문으로 움직이던 나는 다시 회장의 중심으로 불려들어갔다.

　이것이 정녕 나와 리베론을 치하하는 파티가 맞는가?

　암살하려는 파티인 것 같은데.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드릭의 왕을 뵙습니다.

　발손 사신단장을 뵙습니다."

　제국 사신단이라고 거들먹거리며 왔다가 옆나라 국왕이 방문할 줄은 몰랐던지, 두 번째로 인사를 받은 발손 사신단장의 심기가 불편해보였다.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하던 그는 리베론 경을 보더니 그대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아본걸까?

　"두 분 모두 반갑습니다.

　대단한 활약상은 옆나라에서도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시간 아무 말 없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드릭 국왕의 눈빛에 묘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챔버 영애, 귀걸이가 대단한 물건이군요.

　능력에 재력까지."

　갑자기 귀걸이 칭찬을 하자 온 몸이 굳는 것 같았다.

　내 귀걸이도 최상급의 다이아몬드를 사용하긴 했지만, 이 곳에서는 최상급 다이아몬드가 빛나도록 그 주변을 작은 다이아몬드나 기타 광석으로 치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귀걸이처럼 다이아 그 자체만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렇기에 이드릭 국왕이 이 귀걸이의 성능을 알아본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치자 더 긴장감이 들었다.

　눈꼬리는 한껏 휘어있었지만, 나는 지난생부터 사람들의 눈을 잘 읽는 편이었다.

　저 사람은 절대 보이는 것만큼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적어도 저 사람 속엔 구렁이가 15마리 이상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한 나라의 왕이니 당연하려나?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잠시 말없이 서 있자니 그가 만지작 대던 손을 내밀었다.

　어쩌라고, 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자드밀의 영웅과 악수를 할 수 있을까요?"

　"영광입니다."

　이거 완전 성스럽게 생겨서 또라이네, 싶어서 손을 가져갈 때였다.

　갑자기 신고있던 양쪽 구두굽이 똑 부러지는 소리가 나면서 몸이 뒤로 넘어갔다.

　굽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재빨리 몸의 균형을 잡으려했으나, 공기가 짓누르듯 내 몸을 눌러 일어설 수가 없었다.

　누가 날 밀친건가?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했다.

　계단을 볼썽사납게 구르겠구나, 싶을 때 뛰어 올라온 키셀의 손길이 뒤에서 느껴졌다.

　거짓말같이 나를 짓누르던 힘이 없어지고 부드럽게 나를 받은 키셀의 손만 느껴졌다.

　"엘리온 양, 아까부터 구두의 진주가 위태로워 보였습니다."

　"!!!"

　'진주'는 우리의 암호였다.

　위협이 가장 코 앞에 있다는 암호.

　그래서 어디 외출할 때 꼭 진주가 박힌 것을 하나씩 들고 나갔다.

　키셀이 무언가 눈치챘는데, 높은 분들과 함께 있어서 전달을 못하고 마법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티나지 않을 정도로 기감을 살짝 개방했다.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이드릭 국왕 안에서 소용돌이 치는 거대한 마력.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 작게 모여있는 마력 덩어리.

　그는 마법사였다.

　꽤나 대단한.

　그리고 무슨 이유에선지 악수를 하며 나를 공격하려고 했던 것 같았다.

　리딩(Reading)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면 자꾸 전구가 켜지듯 금빛이 둘러져서, 파티에서는 능력을 봉쇄해뒀던 게 화근이었다.

　제대로 개방하고 다니는 것은 익숙해졌는데, 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능력을 조절하는 것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신이 분명 경고해줬는데, 먹을 것만 조심했다니.

　"가, 감사합니다.

　전하, 보시다시피 제가 달리 준비해온 신발이 마땅찮아 잠시 자리를 비워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네."

　뒤뚱거리며 내려오려다 갑자기 몸이 가볍게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이의 시선이 모인 그 곳에서 키셀은 나를 공주님 안기를 해서 휴게실로 발을 옮겼다.

　키셀이 제정신이 아닌줄은 익히 알았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줄은 처음 알았다.

　"네 능력이 완전치 않은데 방심했어, 젠장.

　저 놈이 저렇게 대놓고 너를 해하려 하는 정도면 지금 널 노리는 함정이 더 있을수도 있어.

　휴게실까지만 그냥 안겨 있어줘, 엘리."

　구구절절 옳은 말이라 그냥 조용히 있었다.

　생각보다 키셀은 제정신이었다.

　혼비백산한 쪽은 엄마였다.

　데뷔도 안 한, 정혼자가 있는 딸이, 국왕전하와 외국 귀빈들 앞에서 구두굽이 부러져 넘어지고, 외간남자의 품에 안겨 휴게실로 가는 장면까지 보게된 엄마의 멘탈에 애도를 표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는 무어라 아빠에게 중얼거렸고, 아빠는 바로 밖으로 나갔다.

　나를 따라 도다다 따라오는 엄마와 하녀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곧 잔소리로 피를 보게될 내 고막에도 애도를 표했다.

　"여기서부턴 내가 돕도록 하지.

　고맙네."

　"제 기쁨입니다."

　휴게실 앞에 내려져 엄마와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뒤에서 뛰듯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 기운이 있었다.

　이질적이었다.

　재빨리 감각을 활짝 열었다.

　강한 살기와 긴장감이 어우러진 마력을 두른 하녀였다.

　얼마나 염원을 담았는지 무기에서도 마력이 느껴졌다.

　당황한 키셀이 캐스트를 읊으려 할 때, 재빨리 비도를 치마폭에서 뽑아 던졌다.

　거듭된 훈련으로 상당한 속도를 갖게 된 나의 암기술이 드디어 실전에서 빛을 발했다.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하녀로 위장한 암살자는 샴페인이 올려진 쟁반을 들어 내 비도를 막으려했다.

　물론 그것도 예상했기에 시간차로 두 개 더 던졌다.

　아주 당연하게도 첫 번째 비도는 쟁반으로, 두 번째 비도는 쟁반 밑에 숨겨둔 칼로 처리했지만, 세 번째 비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퍽! 챙! 윽!"

　"꺄아아악!"

　살수가 다리에 비도를 맞고 당황한 사이에 휴게실을 지키던 기사의 칼을 대신 꺼내서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죽지 말라고 다리에 던졌기 때문에 살수가 어떤 선택을 하게될지 몰라서였다.

　생각같아서는 배나 가슴, 머리에 꽂아버리고 싶었지만 증거를 확보해야했다.

　갑자기 내가 누군가에게 암기를 던지고 그 하녀는 칼을 꺼내 막아내자,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휴게실을 지키던 기사들은 갑작스레 벌어진 풍경에 입만 벌리고 서 있었다.

　피튀기는 풍경이 벌어지자 엄마가 휘청이며 부축을 받는게 느껴졌지만, 나는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다 직무 태만으로 잡혀들어가고 싶어?

　당장 이 여자 안 묶고 뭐해?

　나한테 칼 뺏긴걸로는 부족했나?"

　나는 살수의 움직임을 막아서서 소리 질렀다.

　그제야 멍하니 바라보던 기사들이 허둥지둥 묶을 것을 꺼냈다.

　그 때 내 눈을 피해 살수는 재빨리 칼날을 손으로 쥐어 내렸다.

　손에 피가 흥건해졌지만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라 대응을 머뭇거렸다.

　실수였다.

　그녀의 손은 곧 거뭇거뭇해졌다.

　"젠장!"

　재빨리 살수의 손을 잘라냈지만 이미 늦었다.

　입술과 눈까지 거뭇해지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돌아가고, 그게 끝이었다.

　저렇게 강력한 독을 발라서 나를 노렸다?

　나를 꼭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어째서 이렇게 급박하게 나를 꼭 죽이고자 하는거지?'

　긴장감과 두려움도 몰려왔지만 동시에 의문이 생겼다.

　심지어 계획도 세워서 달려들었다.

　거기에 이 일에 이드릭의 국왕도 연관된 것 같았고, 숨길 의지조차 없어보였다.

　'이제까지는 조용히 움직였던 그 세력과 관련이 된건가?

　그렇다면 갑자기 왜 이렇게 과감해졌지?'

　".....!!!"

　키셀도 의아함을 느꼈는지 갸웃대고 있었다.

　곧 황실 근위단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칼 뺏긴건 굳이 얘기하지 않겠어.

　어머님도 많이 충격을 받은 상태니까 난 이만 귀가해 보겠다.

　조사는 추후에 받겠다고 잘 전달해.

　증인도 충분하니까 알아서 잘들 하겠지."

　기사들 발치에 칼을 던져놓고 엄마를 부축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키셀, 이따가. 와.

　할 말 있으니까."

　조용히 속삭이고 돌아나왔다.

　그제야 소란스러운 소리에 달려오는 리베론이 보였다.

　"경."

　"엘리! 괜찮아?"

　"암살 시도가 있었습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하고 일단 나와 어머니를 호위해주시죠."

　눈을 둥그렇게 뜬 리베론은 뭔가를 묻고 싶은듯 했지만, 내 심각한 얼굴과 반쯤 혼절한 엄마를 보더니 일단은 호위하기 시작했다.

　2번으로 끝날리가 없고 분명 또 준비한게 있을 것 같아서 부탁한 일이었다.

　이쪽에서 틈을 안주면 다른 시도는 포기할 수도 있었다.

　리베론 경과 서둘러 달려온 호위들에게 둘러싸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감각을 열고 있을 훌륭한 명분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리딩을 시작했다.

　처음에 4명 정도였던 호위가 10명으로 늘어나고 나와 어머니를 촘촘히 감싸기 시작할 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릴 향해 달려오자 나의 리딩 능력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강한 악의나 살기를 빠르게 골라내겠지만, 사태가 사태인지라 많은 사람들의 마력이 다양한 흥분된 감정들로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아수라장 속에 섞여 다가오는 하나의 마력이 있었다.

　딱히 아까처럼 강한 살기가 느껴진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마력이 역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었다.

　"리베론, 11시방향!"

　본능적이었다.

　비도를 던질 정도의 확신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내가 말하는 동시에 달려오던 근위병을 리베론이 경계하기 시작했기에, 안심하고 다시 리딩에 집중했다.

　제 아무리 황실 근위병이라 하더라도 리베론의 실력이 훨씬 우세할거라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때였다.

　경계하던 근위병의 몸에서 마력이 소용돌이 치는게 느껴졌다.

　'젠장!'

　마법이었다.

　뭘 쓰려는 건진 모르겠지만, 마법을 사용하려는 게 분명했다.

　근위병이기에 당연히 물리적인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 생각한게 실수였다.

　'아티팩트인가? 마법사?'

　그의 몸 가운데서 소용돌이 치던 마력은 점점 살수 전체를 삼키기 시작했다.

　스스로 마력을 컨트롤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력을 컨트롤해서 일정대상을 공격하는게 아니라면?

　"폭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