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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다림
작가 : joinB
작품등록일 : 2020.9.21

그가 사랑했던 조선의 푸른 하늘과 땅과 바람은 여전했다.
널 잃었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이른 걸음을 걸어가버릴 수밖에 없던 나는 아직도 여전했다.
널 떠났던 그날로부터 난 멈춰있다.

세상은 우리의 사랑을 항상 다른 이름으로 가로막았다.
널 위한 것이라고 했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딱, 그만큼만 나는 너에게 상처주지 않으려 했다.
세상과 멀어진 지금, 멀어지려 하는 지금, 이제야 깨닫는다.
그게, 상처라는 걸.
너를 외롭게 했다는 것을...

나도 너도 기다린다.
사랑에 빠졌던 그 날의 사랑으로부터...

 
63. 부친 전상서
작성일 : 22-01-27 13:34     조회 : 30     추천 : 0     분량 : 9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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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어전회의. 성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굳은 얼굴의 그는 우선 인사부터 임명했다. 우선, 도승지에 홍영목을 임명했다. 그리고 영목이 성의 입과 눈이 되기 시작했다.

 

 “불충한 죄로 홍문관 대제학 김구준과 홍인찬 등을 유배형에 처한다.”

 

 대신들은 갑작스런 유배형에 놀란 듯 보였다.

 대전. 성은 영목과 마주했다.

 

 “너도 그들의 유배형이 걸리느냐?”

 “아닙니다.”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예. 10여 년을 기다리셨잖습니까? 모를 리가요.”

 “그 일로, 피를 보지 않겠다고 선왕들과 맹세했다.”

 “걱정 마십시오. 명분은 있습니다.”

 

 대비전. 성희는 구준의 유배 소식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까불더니. 주상께 가야겠구나. 채비해.”

 “예?”

 

 편상궁이 갸웃하며 물었다.

 

 “내 오라버니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유배씩이나 당했잖느냐!”

 

 그리고 성희는 가마를 타고 유유히 대전으로 향했다.

 

 “할마마마.”

 

 성희는 성의 앞에 나타났다.

 

 “어째, 용안은 괜찮아 보이십니다. 아침 문후를 올 수 없다 들어서요.”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합니다.”

 “주상의 옥체가 더 중하지요. 헌데...”

 

 성희는 울상을 지었다.

 

 “제 오라비가 무슨 죄가 있어 귀양을 보내셨습니까?”

 “아... 송구합니다. 상소문이 끊이질 않아서요.”

 “상소, 문?”

 

 성희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성은 능청스레 아주 염려가 된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제 어머니 그러니까, 혜빈께서 몸이 좋지 않으시어 궐에 없다고 방자하게 굴었다지 뭡니까? 누가 뭐라 해도, 혜빈은 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제 어머니잖습니까? 글쎄, 문안을 한 번도 드리지 않았다네요.”

 “예? 아, 아니 주상! 그게 무슨 큰 죄라고-”

 “불효는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할마마마께 효도하듯, 제 어머니께 효도하듯 말이지요. 중전이 매일 문후를 올리고, 상을 차리고, 하물며... 할마마마의 옥체가 염려되어 직접 속옷까지 빠는데. 신하라는 자들이 보고 배우진 못할망정. 감히 왕의 친모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는다니요. 괘씸하지 않습니까?”

 “그래도 내 오라비잖습니까? 대제학은 나, 왕대비의 오라비입니다.”

 “저라고 어쩔 도리가 없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또한...”

 

 성은 시익 웃어보였다.

 

 “왕에 대한 불충에, 혈육이 웬 말입니까? 할마마마.”

 “이러다 나도 가두겠습니다?”

 “할마마마. 누가 뭐래도 저는 할마마마의 손자입니다. 그런 험한 말씀 마소서. 소자의 마음이 아픕니다.”

 

 ***

 

 중궁전. 유아는 짧은 서신을 읽고 있었다. 궐엔 보는 눈이 많아 어떤 것이든 신중하게 보여야했다. 그녀가 내명부의 수장이라도, 왕대비가 살아있는 이상은 그렇게 해야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전하를 만나 봬야겠구나.”

 

 그때, 연실이 작은 상을 들고 아주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마마! 제가 간만에 솜씨를 좀 부려봤습니다.”

 “수라간에 있었어?”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먹지도 못하시질 않습니까? 마마께서 좋아하시던 겁니다.”

 

 연실이 상보를 들어 올리자, 김치 찜이 큰 돼지고기 덩어리와 함께 맛있게 익어있었다.

 

 “맛있겠다.”

 

 유아가 자리에 앉아 찜을 먹으려 냄새를 맡는 순간,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웁!”

 

 유아의 구역질에 연실은 사색이 되었다.

 

 “왜요? 뭐가 잘못됐어요?”

 

 연실이 유아의 반응에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주위의 그 누구도 구역질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이러지?”

 

 당황하긴 유아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울렁거리는 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연실은 순간 자신의 머리를 휙 하고 관통한 듯한 깨달음에 멈칫했다.

 

 “혹시...? 회임?”

 “뭐?”

 “아니. 얼굴 마주하기도 힘든 분들이- 헙! 그럼...?”

 

 연실의 머릿속에도 유아의 머릿속에도 떠오른 그때. 약 한달 전, 신씨와 연실의 사랑채에서 단 둘만의 시간을 보내던 그때였다.

 

 “어의를-”

 “아니야.”

 “엥? 왜요?”

 “쉿! 다들 조용히. 입조심 해.”

 “왜요?”

 “당분간은 아무도 알아선 안 돼. 확실하지도 않고.”

 

 그리고 유아는 성에게로 갔다.

 

 ***

 

 백씨는 유아의 부탁으로 김청원의 처와 아들들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의 눈과 귀는 그 집의 노비들이었다. 이들이 모이는 곳은 외거노비를 허락받은 말순이의 집이었다. 김청원의 첫째 아들은 오늘도 술을 진탕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밤을 꼴딱 새고 점심때가 되어서야 들어온 것이었다.

 

 “어쩌자고 아직도 이래?”

 “어머니! 대비는 언제 자리를 준답니까?”

 “네 놈이 이러는데, 자리를 준다한 들 유지나 하겠니?”

 “제가! 말했잖습니까? 주기만 하면 내가 아주 잘~ 해 낼거라니까요?”

 “정신 차려! 으이구, 꼴보기 싫어!”

 

 청원의 처는 첫째 아들을 보고는 아주 화난 표정으로 안방에 들어갔다. 첫째 아들은 그 말을 들은 것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히 자신도 참을 수 없었던 듯 따라 들어갔다.

 

 “그러니까, 차라리 대비가 아니라 중전과 거래를 하면 좀 좋아요?!”

 “시끄럽다! 나가.”

 “차라리, 중전에게 대비 일을 다 말하고 자리를 달라고 하죠, 뭐!”

 “헛소리!”

 “중전은 줄 거라고요. 이게 보통 일은-”

 “조용히 해!”

 “툭하면 조용히 해라, 시끄럽다! 제대로 된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대비가 죽일까 두려워 그랬다고 하면, 될 겁니다. 중전이라면 그냥 넘어갈 거라고요.”

 “나가라지 않느냐!”

 

 둘의 말싸움을 밖에서 듣는 이들은 다음 아닌 이 집안의 노비들이었다. 노비들은 곧 이들의 대화를 말순이의 집으로 옮겨왔다. 백씨와 청씨, 신씨가 말순이의 집에 모여 계획을 시작했다.

 

 “마마껜 서신을 보냈어.”

 “운검 통해서 보셨을 거네.”

 “김청원 영감이 남긴 건, 대비의 과거가 확실 할까?”

 “이걸로 협박을 하려고 하다가 잘못 되었단 거지?”

 

 김청원은 성희의 비밀을 알아냈다. 허조대왕도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허조대왕의 상선이었다. 그는 성희가 왕비가 된 이후, 갑자기 궐을 떠났다. 그 이후 상선은 봉수의 아버지가 맡아왔다. 전 상선이 떠나면서 성희의 비밀도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그 비밀이 대체 무엇이기에, 김청원은 목숨까지 잃어야 했을까? 심지어 중전의 아버지가 되기까지 3일을 앞두고.

 

 “이걸 어떻게 확인해? 확인 한다고 해도, 증좌가 없잖아. 죄다 거짓이라고 하면, 반박할 수가 없다고.”

 “소문을 퍼트려볼까?”

 “이걸?”

 “가벼운 것부터 시작해보지, 뭐.”

 “뭘?”

 “부원군이 살해당했다.”

 

 청씨가 미소를 지었다.

 

 “소문 퍼트리기 좋은 곳을 알지.”

 “어디?”

 “반촌.”

 “유생을 노리잔건가?”

 “젊은 혈기는 언제나 세상을 바꾸는데, 좋은 힘이 되지 않나?”

 “그러다 일이 커지네.”

 “지금의 전하껜, 일이 커지는 게 좋은 것일세.”

 

 ***

 

 유아와 성이 마주보고 앉았다.

 

 “중전. 무슨 일입니까?”

 “간만에 용안을 뵙습니다.”

 “그러네요.”

 “용무가 급하신 듯하여, 짧게 말씀 올리겠습니다.”

 “말씀하세요.”

 “궁녀 성씨를 상궁으로 봉하겠습니다.”

 “예?!”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폭탄 발언이었다.

 

 “궐에 소문이 파다하던데요. 혹, 성은을 입은 겁니까? 저 모르게.”

 “부인!”

 “제 곁에 있는 아이입니다. 비록 궁녀이긴 하지만, 마음씨도 곱고, 어른 공경할 줄도 알고. 눈치도 꽤 있지요. 제가 아끼는 아이입니다. 물론, 전하께선 오래전부터 아끼셨지만.”

 “부인...”

 

 성은 유아의 표정 변화를 살폈다. 눈치를 봤다. 덤덤한 표정이라 더 무서웠다.

 

 “어찌 그러시오. 내게 후궁이 있길 바라시오?”

 “아니요.”

 “헌데-”

 “헌데, 저는 이제 중전이지 않습니까? 후궁도 들이지 않고 전하께서 신첩만 찾으시면, 세상 사람들이 제 치마폭 운운 할 겁니다. 후사를 위해서라도 그리해야죠.”

 “우린 아직 젊소.”

 “그 아인 더 젊죠.”

 “내가 잘못 했소. 요즘 내 행동이 예전 같지 않구려. 반성하겠소.”

 “아니요. 잘 하고 계십니다. 저와도 이리 얼굴을 마주 한 지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지 않으십니까?”

 

 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것만 허락해 주십시오. 궁녀 성씨는 승은상궁이지만, 계속 제 곁에 두겠습니다.”

 “어째서?”

 “똑똑하고 착한 아이니까요. 그렇게 말귀를 잘 알아듣는 아이는 잘 없더군요.”

 “뜻대로 하시오.”

 “그럼. 정무 보소서. 신첩은 이만 물러갑니다.”

 

 유아는 그렇게 쌩하니 방을 나섰다. 성은 바늘방석에 앉은 것 같았다. 승은상궁 소식은 대비전에도, 혜빈의 사가에도 전해졌다.

 

 “아하하하하!”

 

 성희는 뭐가 그리도 재미난 지 웃음이 터졌다.

 

 “중전도 별 수 없구나. 아무래도 그 성상궁이라는 아이를 내가 좀 만나야겠다.”

 

 편상궁은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사돈 집안에 딱 나이가 적당히 든 아이가 있다고 들었다. 얼굴을 좀 봐야겠구나.”

 “어쩌시려고요?”

 “후궁. 중전이 주상과 점점 멀어지지 않느냐?”

 “후궁을 들이시려는 건?”

 “외로운 주상께 말벗이나 소개해야지.”

 

 한편, 윤희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윤희는 영목의 여동생, 미령과 함께 있었다. 미령은 윤희의 앞에 엎드려 있었다.

 

 “해서, 대비가 너에게 기회를 약속했다고?”

 “잘못했습니다.”

 “아니다. 네가 무슨 죄를 지었겠느냐?”

 “예?”

 “대비와의 연은 이제 끝내라. 너는 홍가의 사람이다. 기회를 줘도, 내가 주마.”

 “허면...?”

 “중전이 될 순 없다. 이미 나라의 국모는 정해졌느니라. 허나, 후궁은 될 수 있다.”

 “후궁이요?”

 “싫으냐?”

 “아니요. 아니요! 정말, 전하의 여인이 될 수 있습니까?”

 “그래. 내가 만들어주마.”

 

 ***

 

 “할 수 있겠느냐?”

 

 중궁전. 유아는 성상궁과 독대 중이었다.

 

 “마마. 저는 승은을 입은 적도 없습니다.”

 “내가 너를 질투하는 것 같아?”

 “아니요.”

 “알면 됐어. 전하께서 나와 함께 하지 못하시는 이유가 그들 때문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 이유를 아는 사람도 궐엔 잘 없지. 넌 오랜 시간 봐 왔잖아. 전하께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도 왜 우리 부부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목숨을 바쳐 지키겠습니다.”

 “우선, 오늘 저녁엔 이걸 좀 전해주렴.”

 

 유아는 백씨에게서 받은 짧은 서신을 성상궁에게 전했다.

 

 “전하께 직접 전해드려.”

 “예. 마마.”

 “그리고 밤새 전하의 곁을 지켜드려. 난 오늘 저녁에 은밀히 궐을 나가야하니.”

 “예? 위험하십니다.”

 “알아봐야 할 일이 있어. 아주 중요해.”

 “옥체 보전하소서.”

 “그러니 들키지 않게, 사람들 시선을 끌어.”

 “예. 마마.”

 “고맙구나.”

 

 저녁. 성상궁은 대전으로 향했고, 유아는 궐 밖으로 향했다.

 

 “전하.”

 “어, 그래.”

 “사람들을 물려주소서.”

 

 단 둘만 남게 된 방 안. 성은 괜히 긴장했다. 성상궁이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제 역할은 이것입니다.”

 “이게 무엇이냐?”

 “앞으로 두 분의 전서구가 될 것입니다.”

 “뭐?”

 “아무렴 마마께서 정말 질투라도 하신 줄 아시나봅니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그 여인은 해가 갈수록 참 새롭단 말이야.”

 

 성은 유아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러니, 제가 끼어들 수가 없지요. 전하께만 전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밤새 나가지 못합니다.”

 “어째서?”

 “마마께서 잠시 출궁을 하셔야 한다고...”

 “뭐?”

 “알아볼 중요한 일이 있다 하셨습니다.”

 “밖에 운검 있느냐?”

 

 성의 부름에 수가 나타났다.

 

 “잠시 궐을 좀 나갔다 와.”

 “네?”

 “나갔다 와.”

 “네.”

 

 수는 곧 유아의 뒤를 따랐다. 그 시각, 유아는 만영의 상단에 있었다. 곁엔 호들갑을 떠는 연실이 있었고, 페데르가 유아의 맥을 살펴보고 있었다.

 

 “쉬~잇!”

 

 페데르는 신중하게 맥을 살폈다. 지켜보던 만영은 더 긴장이 된 듯 두 손을 모으고 기다렸다.

 

 “흠...”

 “어때?”

 

 유아는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만약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노라 마음먹었다. 페데르의 표정은 아주 심각했다. 답답해진 만영이 페데르를 재촉했다.

 

 “맞아, 아니야?”

 “... 맞아요.”

 

 페데르가 환하게 웃었다.

 

 “유아야, 축하해. 회임이야. 뱃속에 아이가 있어.”

 “우왁!”

 

 만영은 기뻐 소리를 빽 질렀다. 모두가 기뻐했다.

 

 “다행이야.”

 “조심해야 해. 아이를 보호하기에 좋지 않아. 건강하지 않다고.”

 “알았어. 고마워. 조심할게.”

 

 유아의 회임. 수는 이 소식을 방 밖에서 듣고 있었다. 유아가 방에서 나오자 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운검. 왜 그래?”

 “아... 어찌 보호를 해야 할지.”

 

 유아는 웃음이 터졌다.

 

 “가자.”

 “예, 마마.”

 

 그때, 유아의 앞에 우겸이 나타났다. 환하던 유아의 표정이 일순간 식어버렸다.

 

 “중전마마.”

 “영상.”

 “이 늦은 시각에 어찌 궐 밖에 계시옵니까?”

 “친목모임이지요.”

 

 유아는 우겸이 불편했다.

 

 “전하께서도 아십니까?”

 “그럼요.”

 

 유아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바로 뒤에 서 있던 운검, 수였다.

 

 “영상이야말로, 이 시각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저도, 친목 모임이지요.”

 

 우겸의 시선이 닿은 곳은 유아의 옆에 서 있던 만영이었다. 만영은 유아의 눈치를 살폈다.

 

 “참,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유아는 우겸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럼. 전 가볼게요, 이모.”

 “조심히. 살펴가세요.”

 

 유아가 우겸을 지나쳤을 때, 우겸이 유아를 불러세웠다.

 

 “후궁첩지는 어찌 그러셨습니까?”

 

 유아는 답하지 않았다.

 

 “적에게 기회를 주시는 꼴이 되었습니다.”

 “적이요?”

 “외척들 말입니다.”

 “무엇이 염려가 되십니까?”

 “전하께 해가 될 것입니다.”

 “계집으로 정치를 하려는 자들 말이군요.”

 “중전마마께서 뜻이 있으시려나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전하를 막는 벽이 된다면, 제가 막지요.”

 

 유아는 만영의 상단을 떠났다.

 

 ***

 

 새벽 1시가 넘은 시각. 유아는 궐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때, 유아의 일행 앞에 나타난 무언가. 사람이었다. 수는 잔뜩 긴장한 채 칼집에 손을 얹었다. 언제라도 바로 칼을 뽑을 태세였다.

 

 “마마.”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익숙했다.

 

 “스승님?”

 

 유아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녀의 반평생을 스승의 목소리를 매일 듣고 지냈다. 유아의 부름에 백씨가 나타났다.

 

 “이 시간에 여긴 어떻게?”

 “알아냈습니다.”

 “어떻게...?”

 “대비를 낳은 어미가, 아직 살아있습니다.”

 “!!!”

 

 성희는 오라버니, 구준이 그녀의 유일한 핏줄이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살아있다니?

 

 “대비의 어미가, 천민이더군요. 그 집 노비였습니다.”

 “그럼, 아버진 그 존재를 알았단 건가요?”

 “부원군께선 그것을 찾으려다 화를 당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곧, 도성 내에 부원군이 살해당했단 소식이 파다할 겁니다. 유생들이 중론을 만들지도 모릅니다. 유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마께서 이 사실을 전하께 전해드려야 합니다.”

 “그래요...”

 

 유아의 표정은 썩 좋지만은 않았다.

 

 “어찌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연실은 이유를 알았다. 그리고 짜증을 냈다.

 

 “지금이 어떤 시점인데. 나라 잔치를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그 일을 왜 이제 들먹여요?”

 “연실이 네가 끼어들 데가 아니다.”

 “회임하셨다고요!”

 “뭐?”

 

 백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시선은 곳 유아의 배로 향했다.

 

 “마마.”

 “아닙니다. 진행하세요. 개의치 말고.”

 “허나, 마마-”

 “전하의 치세를 위함입니다. 빠르면 빠를수록. 언제고 우리가 이렇게 쑤시고 다니는 걸 그들이 모를 리가 없어요. 김구준 대감이 유배를 갔다고 안심할 게 못 됩니다.”

 “예, 마마.”

 

 ***

 

 아침. 대비전. 유아는 빨래터에 있었다.

 

 “마마. 소인들이 하겠습니다.”

 “아니다. 너희들 할 일 해.”

 “마마. 매번...”

 “대비마마의 것이다. 내 손으로 하길 원하시잖니.”

 

 그리고 아침 수라를 마친 후, 유아는 빈 전각으로 향했다. 앞으로 이곳은 혜빈, 윤희가 지낼 곳이었다.

 

 “고생이 많구나.”

 “마마. 먼지가 많습니다. 처소로 돌아가시지요.”

 “정리는 잘 되었느냐?”

 “그럼요.”

 

 오후가 되자, 윤희가 탄 가마가 도착했다. 유아는 일찌감치 윤희를 마중했다.

 

 “어마마마.”

 “중전.”

 “옥체 미령하심은 쾌차하셨다 들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그래요. 서신으로 안부를 물어 좀 서운하긴 했으나, 중전이 함부로 궐밖 출입을 할 수는 없기에 이해합니다.”

 

 유아가 고개를 숙였다. 윤희의 표정은 싸늘했다.

 

 “송구하옵니다.”

 “이리 얼굴을 보았으니 됐지요. 앞으로 자주 보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예, 마마.”

 

 뒤늦게 윤희의 마중을 나온 성도 마침 마주쳤다.

 

 “어마마마.”

 “주상!”

 

 윤희는 그제야 환한 웃음을 성에게 보였다.

 

 “그동안 중전이 어미의 걱정을 얼마나 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참으로 어진 국모예요.”

 “그랬습니까? 중전이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럼요. 앞으로 내가 잘 돌봐드려야지요.”

 

 본격적인 시집살이는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유아는 뱃속에 아이를 가진 것을 누구에도 알리지 않았다. 알리지 않는 것이 나았다. 그러나 사실을 아는 소수의 궁인들은 안절부절 이었다. 보다 못한 연실이 유아가 들고 있는 빨래 방망이를 뺏어 들었다.

 

 “더는 안 됩니다.”

 “김상궁.”

 “계속 소인 말도 듣지 않으시고, 조심도 안 하신다면. 제가 전하께 가서 고하겠습니다.”

 “김상궁!”

 “앞으로 소인이 할 것이니, 다신 찬물에 손 담그지 마세요.”

 “허나-”

 “말 안 들으실 겁니까?”

 “알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연실은 성상궁에게 은밀히 책 하나를 건넸다.

 

 “전하께 전해드려야 한다. 그리고 딱 한마디만 전해. 부원군이 전하께 드리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정말요?”

 “응. 귀한 책이래. 전하께서 책을 좋아하시니, 어렵게 구하셨는데 전하시려다 그만 돌아가신 거야.”

 “마마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응. 하지만, 전하라고는 하지 않으셨어. 아직 많이 힘드시니까.”

 “예.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성에게 안전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성상궁에게서 책을 받은 성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부원군이 나에게 전하려던 것이라고?”

 “예. 중전마마께서도 알고 계시다 합니다.”

 “이런...”

 “그리고, 전하.”

 “또 무엇이냐?”

 “중전마마께선 절대 말하지 말라하셨는데, 요즘 제가 보니 너무 위태로워 안 되겠어서...”

 “뭘?”

 “아시잖습니까? 대비전 빨래도 하시고, 수라간에서 요리도 하시고, 혜빈 처소에선 매일 책을 대필하시거나, 책을 읽거나, 하루 종일 안마만 하시다 돌아오시고요.”

 “하... 그만 하거라.”

 “그러시면 안 됩니다. 중전마마께선.”

 “알고 있느니라.”

 “알고, 계셨습니까?”

 “그럼.”

 “허! 전하.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 그 정도는 막아주셔야지요. 하다못해 피접이라도 보내서 시집살이라도 막아야, 아기씨가 건강하게 자랄 것 아닙니까?”

 “뭐? 아기라니?”

 

 성상궁은 갸웃했다.

 

 “아신다고...?”

 “중전이, 회임을 하였느냐?”

 “이를 어째...”

 

 성은 벌떡 일어났으나, 성상궁이 빌고 빌었다.

 

 “전하. 제발 모른 채.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이건 경사다. 어찌-”

 “전하. 회임사실이 알려지면, 가만히 두지 않을 겁니다.”

 

 성상궁의 시선은 성이 바닥에 떨어뜨린 책으로 향했다. 그리고 성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대비...”

 “예?”

 “그러고도 남겠지. 그림자를 다시 살려야겠구나.”

 

 다음 날, 경기도 바닷가 섬의 유배지로 어명이 도착했다. 그곳엔 한가로이 낚시 중이던 김구준이 있었다.

 

 “어명입니다. 죄인 김구준의 죄를 사하고, 홍문관 대제학의 복귀를 명하노라. 서둘러 입궐하여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죄를 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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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44. 일장춘몽 2022 / 1 / 27 33 0 7467   
43 43. 온 몸이 부서지는 2022 / 1 / 27 37 0 4986   
42 41. 미치도록 2022 / 1 / 27 33 0 7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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