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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이름부터 완벽한 평범의 길을 걷던 김지혜, 빙의조차 평범한 백작영애에게 했다?
특징조차 없는 주근깨투성이 이 영애는 도대체 누군데요?
남들은 빙의하면 악녀도 되고, 부자도 되고, 성녀도 된다는데 나는 여기서도 흔한 사람 1 역할을 맡고 있다.

빙의한 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돈 많은 난봉꾼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풀리는 빙의의 실마리들.
난봉꾼은커녕 세상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미남 2명을 모두 꼬셔야 한다?!

썸의 여신, 베스의 훌륭한 조언은 어려워서 성질대로 했더니.

"사업에 관련된 계약만 해야하나요?
제 영혼이나 당신의 지능과 같은 것과는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나요?"

나사가 풀린 마법사와,

"다, 다음에 한 번 가가같,이 한 번 가보는게 어떨지 네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편이었어."

생각보다 더 쑥맥인 검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해야하는 빙의녀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거사 좀 치뤄보자 우리?
응? 100년을 기다렸잖아?"

빌런이 100년간 계획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온의 이야기.


#동생바보 #딸바보 #평범 #빙의 #멸망 #먼치킨 #흔녀의_2회차_삶 #힐링

 
14
작성일 : 22-01-25 21:32     조회 : 181     추천 : 0     분량 : 7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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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스는 나의 '완전 잊고 있었어! 나 어떡하지! -E-' 쪽지 한 장에 수업을 스킵하는 의리를 보여주며 우리 저택으로 달려왔다.

 본인이 고른 3순위까지 드레스와 장신구를 모두 들고 오느라 짐이 한 가득이었다.

 보통은 쇼핑을 하며 함께 입어보고 고르고 하지만 내가 워낙 정신이 없는 탓에 베스가 대신 고생을 하게 되었다.

 

 운동을 하길 참 잘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패션쇼는 진행이 됐다.

 가끔 안나가 골라준 성숙한 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베스의 환호성도 더해졌다.

 

 "어머어머 나도 검술이나 배울까?

 우락부락해지는 줄 알았더니 어떻게 그렇게 군살만 쏙 빠졌지?

 엘리, 한 번 앉아봐.

 우와우와, 배가 하나도 안접히네?

 살이 눌러도 안 들어가!

 어머 너무 신기하다 엘리."

 "에이 뭘."

 

 머쓱해져서 대충 겸양을 떨었지만 수련이 헛되진 않았는지 내 몸매는 탄탄하기 그지 없었다.

 탄력과 유연성만 좋은줄 알았는데, 쓸데없는 근육도 잘 안 붙는 체질이었던지 수많은 수련에도 보기 싫은 근육은 별로 없었다.

 

 "이야 입혀볼 맛이 난다!

 우리 엘리, 이번 파티에서 뭐라도 일궈내려면 이렇게 과감한 드레스 팍팍 입어줘야 하는거 아니야???

 남자분들이 안 그래도 널 보며 설레하시는 것 같던데~

 이 드레스로 불을 확 질러줘???

 어머어머, 엘리.

 저 비치는 드레스는 뭐야?

 아니, 이런거 입으면 반쯤 죽었던 남자들도 심장이 다시 뛰겠는데?"

 "풉 베스영애, 오늘따라 입담이 걸쭉하시네요?"

 

 항상 바른 자세로 인자한 미소로만 웃고 있는 베스가 이렇게 반쯤 드러누워서 방탕한 멘트를 뱉을 줄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저렇게 밝고 거침없는 아이가 완벽한 영애의 역할 안에서 살려면 얼마나 힘들지.

 내 앞에서만이라도 항상 솔직하고 소녀같이 웃는 베스가 나는 참 좋았다.

 차를 들고 깔깔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다가, 베스의 시선이 한 드레스에서 멈췄다.

 

 "엘리, 잠깐만 저 드레스!

 그래 그거!

 그거 입고 나와봐!

 나 느낌이 쎄게 왔어."

 "이거?

 이런게 어울릴까?

 알았어!"

 

 그 날 안나까지 모두의 의견이 만장일치로 드레스가 선정되었다.

 

 

 파티 전 날, 이런 저런 마사지들과 팩을 마치고 점심 먹을 쯤이 되자 지루해졌다.

 안나는 피부 탄다며 정원에도 못 나가게 했고, 아카데미를 나가지 않으니 사업 얘기도 더이상 들을 수가 없었다.

 고민하다 키셀이 보고 싶어졌다.

 

 '시간 괜찮으면 차 마시러 오지 않을래? -E-'

 

 쪽지를 보내놓고 나서야 바쁠텐데 그냥 약속을 잡는 쪽지를 보낼 걸 그랬나 싶었다.

 다시 쪽지를 쓰려고 펜을 들었는데, 안나가 들어왔다.

 

 "아가씨, 키셀님이 오셨습니다."

 "벌써?"

 "네, 기사들 말로는 정문 앞으로 아예 쪽지 전달한 종자를 데리고 이동마법을 써서 왔대요."

 

 성격도 참, 피식 웃으며 응접실로 안내해 달라고 했다.

 급히 옷매무새를 손보고 응접실로 나가자 키셀이 반듯이 앉아있었다.

 

 "엘리! 안 그래도 차가 한 잔 마시고 싶던 차였어."

 "그렇다고 이동 마법을 써?"

 "뭐 어때, 닳는것도 아니고.

 그냥 연습하는 셈 치면 되지."

 "에휴, 키셀.

 너 때문에 못 산다.

 그냥 너 본지 오래되서 보고싶어서."

 

 싱긋 웃자, 키셀의 얼굴에 얹혀있던 미소가 사르르 사라졌다.

 처음보는 굳어버린 그의 얼굴에 내가 뭘 잘못했나, 당황스러웠다.

 

 "키셀?"

 "아, 아니야!

 넌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구나."

 

 분명 내 칭찬 같은데 전지적 관점같은 얘기를 하며 얼굴 한 쪽이 무너져버린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나도 고민이 많아.

 키셀, 무슨 일 있어?"

 "그런 건 아니고......

 다음에 말해줄게.

 일단 앉아봐.

 사업 진행사항 보고를 해드리겠습니다 사장님."

 

 왜인지 마음 한 켠이 아파보이는 키셀을 그대로 놔두자니 내 마음도 욱신거렸다.

 언젠간 얘기해주겠지, 하며 사장님 모드의 스위치를 켰다.

 

 "좋았어, 키셀.

 보고해!"

 "시제품 완성은 완료됐어.

 이 저택 기준 사용인들 전체에게 지급될 계절별 3종류 2벌씩, 인당 6벌이 모두 완성이야.

 며칠 안 걸렸고, 내일 이 저택으로 배달될 예정이야.

 전체적으로 이 사업의 사장은 더셀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 이름으로 보낼게.

 네 이름은 이 사업에 아예 없어.

 그리고 나는 마케팅 부서 담당 정도로 해서 이름 올려놨어.

 일단 여기 샘플 한 셋트를 가져왔어.

 어때, 엘리?"

 

 구석구석 뜯어보았다.

 마감도 훌륭했다.

 원단도 이정도면 괜찮은 수준에 속했고, 튼튼하게 박음질 되어있었다.

 

 "생각보다 더 괜찮다.

 역시 대단해 키셀.

 신축성이 있는 원단은 아무래도 단가가 높으니까 사이즈별로 팔이나 등 허리 쪽은 좀 넉넉하게 품을 준 것도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아.

 이렇게 입고 나가면 태는 좀 떨어지긴 하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브랜드 네임은 여기 가슴팍에 금실로 새겨줘."

 "금실?

 워낙 원가가 낮아서 그래도 괜찮겠다.

 평소 원가의 1/15이야.

 1/10 값에 팔아도 날개 돋힌듯 팔릴거야."

 "우와! 생각보다 더 많이 아꼈네?"

 "그것보다는 아티팩트로 만들 수 있는 옷의 품질이 생각보다 좋다는게 맞는 말일거야.

 그런데 엘리, 이렇게 품질이 좋으면 사람들이 한 옷을 오래입게 될 텐데.

 사업이 유지가 될까?"

 "1개 살 돈으로 10벌을 살 수 있으면 사람들은 적어도 5벌은 사게되겠지.

 지금 너무 못 입고 사는거야.

 그리고 그 때가 되면 패션의 시대가 열릴거야!

 걱정하지마.

 이 산업은 더 커지게 되어있어."

 

 작당 모의를 하는 악당처럼 음흉하게 웃자 키셀도 따라 웃었다.

 

 "너의 확신에 찬 프레젠테이션이면 벌써 사업이 성사되고도 남았을텐데.

 정말 멋지다 엘리.

 나도 더 열심히 할게."

 

 그 뒤에 날 버리지 마, 같은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았지만 거대부호의 단꿈에 젖어서 곧 잊어버렸다.

 

 "그래, 우리 저택에 일단 뿌리고 난 후, 주말이 지나면 사용인들에게 평판이 좋은 저택들부터 컨택해봐.

 디자이너들에게 유니폼 디자인은 받았어?"

 "응, 통일감 있게, 하지만 흔하지는 않게!

 어두운 톤 위주로 받았어."

 "알아서 잘 했네.

 아예 그 디자인들을 책으로 엮자.

 여러 권으로 준비해둬.

 샘플 보낸 후 구매의사 보이면 견적서와 함께 가져가서 문장 박아 만들어드린다고 하고."

 "응응, 그 후에야 시중에 파는 거지?"

 "응, 일링 상단에는 시간을 달라고 해.

 귀족의 사용인 정도면 평민들 중에는 안정적으로 잘 사는 편에 속하니까.

 좋은 홍보가 되어줄거야."

 "넵,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사업은 조금 느리지만 내 생각대로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었다.

 아마 나는 이렇게 아이디어만 내고 있지만 중간중간 생기는 돌발 상황에 대해서 키셀이 처리를 잘 해줘서 내 귀에까지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문득 내가 해주는 것도 없는데 키셀은 어떻게 열정적으로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대놓고 물어보는 초보적인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랬다가 손해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이 훌륭한 인재가 도망가버리면 절대 안 된다!

 

 "키셀, 그리고 내가 궁금한 게 있어."

 "응 뭐야?

 뭐든 대답해줄게."

 "이 문양 뭔지 알아?"

 

 키셀은 내가 그린 문양을 보고 놀란 눈치였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

 

 "이 문양 어디서 봤어?"

 "우리 저택 조각상에서.

 왜? 이상한거야?"

 "아, 아냐.

 혹시 내게 보여줄 수 있어?"

 "응, 그럼!

 가자 지금!"

 

 안나에게 잠시 정원산책을 하겠다고 했다가 양산을 쓰고 장갑까지 끼워져서야 내보내졌다.

 이러다 더위를 먹는게 더 안 좋지 않을까?

 한소리 했다가 안나의 매서워지는 눈길에 어영부영 콧노래를 부르며 키셀과 정원으로 나왔다.

 조각상이 있는 정원 끝까지 가는 동안 키셀은 무슨 이유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고 그렇게 깊숙히 숨어있는 조각상 앞에 함께 섰다.

 

 조각상 앞에서 키셀은 한참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치워보고 만져보았다.

 너무 소중하게 쓸고 있어서 말을 걸 수 없었다.

 조각상을 소중히 쓰다듬는 키셀은 아프고 슬프지만 행복해보였다.

 약간은 장난스럽고 가끔은 어두워지는 그가 가면을 벗어버린 것 같았다.

 항상 나를 염두에 두고 나의 눈치를 살폈는데, 지금은 오롯이 세상에 그와 그 조각상 뿐이었다.

 

 "엘리, 고마워.

 정말 고마워.

 네가 내 삶에 들어오고 모든게 바뀌었어."

 "키셀, 저 조각상이 너와 무슨 관련이 있는거야?"

 "엘리, 이 문양은......

 내 스승님의 문양이야."

 

 한참을 뜸들이던 그는 곧 입을 열었다.

 스승님이라니?

 그에게 스승님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다들 마법사의 명맥이 끊긴 줄 알지.

 그래서 내가 스승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고.

 내 스승님은 평생 한 명의 마법 제자만을 두는 작은 계파의 마법사셨어.

 워낙 조심스레 이어지기도 했고, 가진 마력이나 다루는 능력이 대단하지 않아서 세상에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주로 단절된 곳에 살아왔는데......

 마을에 잠시 내려오셨을 때 고아로 자란 나를 한 눈에 알아보셨고 나를 키우셨지.

 나는 부모도, 내 핏줄도 몰라.

 내 체질이 왜 이런지도 모르고.

 하지만 스승님이 스승 그 이상의 존재였다는 건 알아.

 내 어머니나 다름없었어, 스승님은."

 

 말없이 키셀의 팔을 도닥였다.

 마법사의 부활에만 열을 올리던 사람들은 키셀의 삶과 아픔에는 관심이 없었다.

 

 "스승님의 문양을 이 곳에서 발견하게 될 줄은 몰랐어.

 평생 스승님의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지금 스승님은 어디 계시는데?

 이 조각상을 직접 만드신걸까?"

 "이건 보호 마법을 발동시키는 아티팩트야.

 스승님은...... 보호나 치료마법 전문이셨거든.

 그 정도로 따뜻한 분인데......

 스승님이 어디 계시는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만약 이 세상에 자유로이 계시다면 이렇게 나를 버려두진 않으실거라는 건 잘 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가족을 생사도 모르고 지낸다는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이리라.

 

 "스승님을 찾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거면 뭐든지 말해줘.

 그런데 왜 스승님의 존재가 비밀이야?

 여기저기 알려서 찾으면 더 쉽지 않을까?"

 "생사도 모르는데, 어떠한 이유로든 스승님의 존재가 이용당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

 나름 대륙에서는 제대로 된 마법을 쓸 수 있는 몇 안되는 마법사거든.

 게다가 내 가족이니까.

 ...... 예전에, 내가 크게 아팠던 적이 있어.

 마법사들이 겪는 성장통이었던거지.

 문헌으로만 보던 증상이라 스승님이 대처 방법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셨어.

 하지만 나보다 더 많은 마력을 운용하는 능력을 가진 높은 클라스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꾸준히 약물을 통해 진정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했어.

 드문 드문 기억이 나.

 나한테 미안해하셨거든.

 본인이 더 능력이 있었다면 이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라고 많이 우셨어.

 자급자족으로 살았던 우리에게 약물을 꾸준히 살 돈은 없었거든?

 그런데도 어떻게 구해오셨는지, 스승님은 항상 약물을 구했단 말이지.

 그렇게 나아갈때쯤, 스승님은 약물을 구하러 나가던 길에 그대로 사라지셨어.

 아직도 가끔. 꿈에 나와.

 스승님이 야윈 뒷모습이......

 나는 가지 말라고 괜찮다고 소리지르는데......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

 가끔은 가셔도 좋으니 한 번만 더 얼굴을 보여달라고 하기도 하는데......

 한 번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가셔."

 

 키셀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서 목소리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어보였던 그에게, 가슴 깊이 묻어뒀던 그리움이 있었다.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리고 약했을 그가, 혼자서 일어서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아 또 마음이 아렸다.

 나까지 울면 안 될 것 같아 눈가에, 또 다리에 힘을 주고 단단히 서서 그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고 싶었다.

 

 "이 아티팩트는 아마 사방에 3개가 더 있을거야.

 신기한 건 이것들 모두 그 자체로도 마법이 걸려있어서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래서 아마 이렇게 방치되어 있었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발견한거야?"

 "나도 모르겠어.

 스승님이 원하는 조건이 충족된 사람은 볼 수 있는 거겠지.

 그 조건이 뭔지는 자세히 알아봐야 하지만.

 이 아티팩트 4개를 모두 발동시키면 그 원 안의 모든 것은 천재지변에도 보호가 돼.

 무엇을 보호하려고 여기 설치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널 만나게 될 운명이었나봐."

 "훗. 그러게.

 정말 세상이 좁다."

 

 또르르 눈물을 흘리던 키셀이 예쁘게 마주웃었다.

 우는 모습도 어떻게 저렇게 청초할 수 있는지, 벌써 기울어지는 여름 오후의 다홍빛에 어울렸다.

 활짝 웃다가 흘러버린 키셀의 눈물을 나도 모르게 닦았다.

 그의 눈가에 닿은 내 손을 의식하는 순간 불타듯 뜨거워져서 재빨리 손을 내리고 손수건을 내밀었다.

 

 "엇, 미...미아....미안!

 아니, 그러니까!

 울지마. 속상해."

 "내가 울면 속상해?"

 

 주인잃은 강아지처럼 애처롭게 울던 그는 어느새 내 앞에 바싹 다가와 나를 곧게 쳐다보고 있었다.

 내 마음을 읽힐 것 같은 눈길에 나도 모르게 눈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아니, 스승님도 속상하실거고.

 나도 내 소중한 파트너의 피 땀 눈물은 우리 사업에만..."

 "엘리."

 

 본 적 없던 단호함으로 키셀이 내 말을 끊었다.

 곧 내게 닿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온 그 때문에 뒷걸음질 치다가 기우뚱 몸이 기울었다.

 양산이 사르륵, 뒤로 속절없이 넘어갔다.

 내가 삐걱댈 걸 예상했던 것처럼 키셀의 단단한 팔이 내 등을 받혔다.

 불 계통 마법을 쓴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내 등에 닿은 그의 팔이 뜨거웠다.

 여름이라서 그런거야! 라고 백 번 외쳤지만 곧 그 뜨거움은 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얼굴까지 퍼진 뜨거움은 얼굴을 터트려 버릴 것 같이 달궜다.

 아마 지금 나는 못생긴 불타는 감자 같은 모습일 것이란 생각에 키셀을 밀어내며 일어섰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항상 가벼운 내 손짓에도 내 뜻에 따라 움직여주던 그는 처음으로 내 손길을 버텼다.

 예외없이 보이던 어두워진 그의 눈빛이 나를 관통했다.

 관통당한 사냥감처럼 숨이 차올라 헐떡일 수 밖에 없었다.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이러다 터지는 것은 아닐까, 아니 그 전에 이런 내 심장을 그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입이 마르는 듯 했다가 침이 고였다가, 온 몸의 신경계가 처음 겪는 상황에 비상을 외치기 시작했다.

 

 "키셀...?"

 "엘리. 넌 모든 것에 솔직하고 당당해.

 그래서 그 뒤에 네가 숨기고 싶은 것은 더 잘 숨길 수 있지.

 네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것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알아.

 기다리려고 했는데,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정말 나를 환장하게 애태우는 법을 알아, 넌.

 내가 졌어, 엘리."

 

 이미 눈 앞이 빙글빙글 돌고, 호흡이 가빠져 오는 내게 알아듣지 못할 말을 쏟아내던 키셀이 곧 나를 세워주고 한걸음 물러났다.

 

 "무,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내가 방금 한 말, 정말로, 진심으로, 제대로 풀어서 들을 준비가 됐어, 엘리?"

 "......"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여기서 키셀이 입을 열면 우리 사이엔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너무 믿을 수가 없어서 듣고 싶었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지금 내게 마음이 기울었다고 말하고 싶은걸까?

 정말로?

 세차게 뛰는 내 가슴이 설렘인지, 떨림인지, 흥분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아무 말없이 서서 빨갛게 물든 나를 보며 키셀은 뒤돌아 갔다.

 나는 멸망을 막고, 돈 많이 벌고, 마냥 행복하고 싶기만 했는데.

 그런 내가 누군가를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런 일은 예상치 못했다.

 나는 이런 감정의 파도도 느낄 수 있고, 누군가의 짙은 감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실존인물이었다.

 왠지 쓸쓸해 보이는 그를 불러서 뭔가를 묻고 싶었고, 뭔가를 얘기해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는데, 평소 뻔뻔하던 내 머리도 얼어서 그대로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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