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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저는 어느 로판에 빙의한 거죠?
작가 : 김김쓰
작품등록일 : 2022.1.16

이름부터 완벽한 평범의 길을 걷던 김지혜, 빙의조차 평범한 백작영애에게 했다?
특징조차 없는 주근깨투성이 이 영애는 도대체 누군데요?
남들은 빙의하면 악녀도 되고, 부자도 되고, 성녀도 된다는데 나는 여기서도 흔한 사람 1 역할을 맡고 있다.

빙의한 책을 찾기를 포기하고 돈 많은 난봉꾼의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풀리는 빙의의 실마리들.
난봉꾼은커녕 세상이 망하는 걸 막기 위해 철벽 미남 2명을 모두 꼬셔야 한다?!

썸의 여신, 베스의 훌륭한 조언은 어려워서 성질대로 했더니.

"사업에 관련된 계약만 해야하나요?
제 영혼이나 당신의 지능과 같은 것과는 계약을 맺을 생각이 없나요?"

나사가 풀린 마법사와,

"다, 다음에 한 번 가가같,이 한 번 가보는게 어떨지 네 생각이 궁금하다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있는 편이었어."

생각보다 더 쑥맥인 검사가 다가오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구해야하는 빙의녀의 삶을 제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거사 좀 치뤄보자 우리?
응? 100년을 기다렸잖아?"

빌런이 100년간 계획한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엘리온의 이야기.


#동생바보 #딸바보 #평범 #빙의 #멸망 #먼치킨 #흔녀의_2회차_삶 #힐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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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1 19:03     조회 : 186     추천 : 0     분량 : 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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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보니 4강이었다.

 

 "아가씨이~ 이게 뭔일이에요!

 아가씨 엄청 멋졌어요!!"

 "안나! 봤지? 에헴.

 이게 챔버 가 클라스야!"

 "아가씨 밖에 함성소리 들으셨어요?

 대단하죠?

 저것도 반만 지르는 소리에요!!

 나머지 반은 턱이 빠져서 소리도 못 내더라고요!

 진짜 완전 멋져요!"

 

 안나의 호들갑과 함께 흐트러진 머리와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여러 대결을 통해 이미 옷이 많이 망가져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야했다.

 

 "안나, 이 옷은 네가 미리 챙겨온거야?"

 "음? 이 옷은 뭐죠?

 제가 챙겨온 옷은 이건데요?"

 

 안나는 내게 잘 어울릴 법한 베이지색과 고동색의 전투복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내 이름이 걸려있는 저 형광주황색 전투복은 무엇이란 말인가.

 나를 꼭 피해가라는 느낌의 안전복같이 생겨서는, 입으면 밤이 되고 비가 와도 나만 보인단 말이야, 할 것 같았다.

 지나가던 진행요원에게 안나가 물었다.

 

 "저기요!

 이 패션센스 꽝인 이 전투복은 뭐죠?"

 "4강에 오른 학생들은 모두 그것을 입고 대결에 임하셔야합니다."

 "세상에!

 저 흉악함을 입고요?!"

 "진정해 안나.

 이 옷은 움직임을 너무 돋보이게 하는 것 같은데."

 "네, 무술대회 자체가 교육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모두가 즐기는 동시에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진행요원이 진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래, 쟤가 무슨 죄냐.

 

 "알았네.

 안나 갈아입자."

 "아가씨...... 제 손으로 이 옷은 입혀드릴수가 없어요.

 너무 흉측해서......"

 "언제는 뭘 입어도 예쁘다더니?"

 "......"

 

 그렁그렁한 눈으로 억지로 입히기 시작했다.

 옷은 통풍이 잘 되지 않는지 땀복같았다.

 

 '이런 옷을 걸치고 잘도 싸우라고......'

 

 무능력한 아카데미의 행사진흥회를 고발하리라 마음먹으며 쌍둥이를 끼고 다시 대결장을 향했다.

 

 4강의 상대는 우승 후보로 꼽히는 4학년 검술부 학장, 소더스 마터였다.

 워낙 유명한 학생이고, 실력으로 학장을 단 데다 이미 기사단 입단까지 정해진 실력자였다.

 승리욕이 강해 승부에서 가끔 추잡하게 군다는 소문은 있었으나,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소문이 부풀려진 줄 알았는데, 실력도 상당하더군?"

 "감사합니다.

 많이 배워가겠습니다."

 "이하동문일세.

 최선을 다하지."

 

 차갑다는 소더스도 형광노란색 전투복을 입고 있으니 왠지 약간은 허술해보였다.

 나도 저렇게 얼빵하게 보일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더러웠다.

 

 소더스는 검과 함께 작은 서브 검을 왼손에 들었다.

 저 서브 검 외에도 정확한 수를 알 수 없는 암기도 가지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다.

 평소 잘 꺼내지 않는 서브 검을 꺼낸 것을 보니 생각보다 진심으로 임해야 할 것 같았다.

 달칵.

 바로 나도 날을 꺼내세우자 관중석의 열기가 점점 달아올랐다.

 반대편 대결장에서는 같은 형광색 옷을 챙겨입은 체리가 대결을 시작하고 있었기에 각자 응원하는 사람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었다.

 

 소더스는 쉽지 않은 상대였다.

 힘도 좋았고 변칙적인 공격을 즐겼다.

 틈이 생겼다 생각해 찔러 들어가면 서브 검이 반대편에서 나를 향해 온다거나, 거리를 벌리려 하면 암기가 날아온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아주 짜증스럽고 답답한 경기였다.

 워낙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나는 슬슬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머리도 써봤는데, 약점을 찾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땀을 닦아내는데 점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이 기가 막히게 비효율적인 땀복 때문에 탈수 증상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서 공격을 막으려 해봤지만,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소더스도 똑같이 땀을 흘리면서 공격을 제대로 하고있지 못하다는 점이었다.

 

 '하, 미치겠네. 이제 셋으로 보여. 기권하는게 안전하겠는데.'

 

 심판을 보며 기권을 외치려던 순간 세상이 이지러지며 다리에 힘이 풀렸다.

 

 "엘리!!"

 

 멀리서 은빛이 내게 달려왔다.

 함께 달려오는 검은 머리도 보였다.

 시끄러운 목소리들이 부딪히며 지시를 내리는 걸 보니, 4강 대결자들 모두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멀어지는 의식 사이로 내 손을 꼭 잡는 단단한 손길이 느껴졌다.

 

 '누구지? 아빤가? 단장인가?'

 

 그 생각을 끝으로 나는 정신을 잃었고 깬 것은 사흘 후였다.

 

 "으......무......ㄹ......."

 "아가씨!"

 

 안나의 귀청떨어지는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시끄럽다거나 귀를 막을 힘도 없었다.

 

 "무....무....."

 "물이요!

 백작님과 백작부인을 모셔와.

 제인, 어서!"

 

 제인이 떠나기도 전에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

 "누나!! 으헝헝"

 

 다들 나를 안고 한참을 떠들어대는 통에 나는 물을 마실 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물과 스프를 먹고, 의사의 안정을 취하며 회복만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이야길 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된거에요?"

 "엘리 진짜 우리 다 너무 놀라서......

 카엘도 놀란 나머지 기절을 했고......흑흑.

 너희 둘 다 실려왔을 때 이 어미 마음이 얼마나...... 흑흑."

 

 엄마가 말을 잇지 못했다.

 항상 올곧고 우리의 어떤 애교 공격에서도 강인함을 유지했던 엄마였기에, 나는 놀라고 안쓰러웠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말을 이었다.

 

 "아카데미에 정식으로 항의를 해놓았다.

 이 일은 왕궁에서도 좌시할 수 없는 일이라 제대로 된 조사를 하겠다고 했어.

 너희에게 지급된 옷에 독이 발라져 있었다.

 소금물에 반응하는 희귀한 독인데, 아마 너희가 땀을 흘리면 반응하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

 다른 학생들은 탈수 증상 정도로만 보여서 아마 네가 아니었다면 다들 큰 사단이 났을게야."

 "탈수 증상인데 왜요?"

 "네 증상이 너무 심각해서 다들 독을 의심하고 찾아낸 거야.

 그 독이 처음엔 탈수 증상 비슷하게 나타나고 말지만, 해독하지 않으면 가장 약한 장기를 공격해 3개월 이내에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구나.

 해독자체는 쉬운데 그 독을 의심하기 어렵고, 반응하는 환경도 한정적이라.

 잘 안쓰이는 독이고, 망가지는 장기들이 제각각이라 아마 못 찾아냈을거라고 하더구나."

 "그럼 우리 참가자 전원이 그 독에 당했다고요?"

 "4강 올라간 학생들만.

 실력자들만 당하게 한 것을 보니 다른 국가에서 벌인 일일 수도 있다고 보고 광범위한 조사를 시작했어.

 걱정말거라.

 내, 그 놈들만 찾아내면...... 곱게는 안 보낼테니."

 "엘리이... 흑흑.

 당분간은 집에만 있거라.

 내가 어떻게 너를 내보내니."

 

 엄마의 흐느낌은 멈출 줄 몰랐다.

 

 "당분간은 그럴게요.

 후유증 같은 건 없대요?"

 "그게 문젠데......

 잘 안쓰이기도 하고, 쓰이면 치사율이 높아서 후유증 여부를 모른다고 하는구나.

 지켜봐야 한다더라."

 

 어떤 놈들인지 쓰는 수법이 아주 더러웠다.

 경기 진행에 개입할 정도면 한 명의 소행은 아닌 것 같았다.

 아주 이상했다.

 '마지막 너머'에도 체리가 독에 당했었다는 말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준비를 하는 조직이라면 쉽게 포기할 리가 없을텐데.

 

 계속 이것저것 물어본 결과, 진행위원회에서는 옷을 지급한 적 조차 없다고 했다.

 옷을 입도록 종용했던 진행요원들은 이미 사라져버린지 오래였고, 누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술 대회를 이렇게 초토화를 만들었을지 감이 안 잡혔다.

 눈이 퉁퉁 부어있는 가족들을 내보내고 쉬고 있는데 안나가 조용히 내 곁에 왔다.

 

 "아가씨, 제가 진짜 그 새ㄲ... 자식들을 잡으면 잔뿌리 하나까지 다 털어버릴거에요. 훌쩍."

 "안나, 너까지 울지마.

 해독은 잘 됐고 이제 나는 회복에 최대한 신경쓸거야.

 나 아픈거 싫어하는 건 안나, 네가 더 잘 알잖아?"

 "네. 베스 아가씨도 어제 오셔서 한참 우시다 가셨어요.

 내일은 편지 하나 보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럴게.

 그런데 독에 당한 건 어떻게 바로 알아낸거야?"

 "아, 맞네요!

 그 분 얘길 깜빡할 뻔 했네요.

 은빛머리 마법사님이 바로 알아내셨어요.

 저희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저렇게 보시더니 단순 탈수로 마력이 이렇게 폭주할 리가 없다고 당장 왕궁의를 불러달라고 하셨어요.

 저택에 오시던 검은 머리 선생님은 달려오시다가 다른 학생들도 하나 둘 쓰러지니까 다른 학생들을 보러 가셨고요.

 그래도 아가씨를 가르치던 분인데 다른 학생에게 가셔서 제가 얼마나 서운했는지 몰라요."

 

 당연히 체리에게 갔겠지, 싶어서 쓴 웃음을 지었다.

 개인교습으로 얼마간의 정이 쌓인 듯 싶었는데 소용없었네.

 

 "비밀이지만 그 분은 아카데미 교수님이셔.

 나에겐 키셀이 있으니까, 믿고 다른 학생들도 체크하러 가신걸거야."

 "그래도 그렇죠.

 양심은 있으신지 꽃은 보내오시긴 했어요."

 

 안나의 입술이 동서남북으로 삐죽거렸다.

 귀여운 안나 덕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다시 좀 잘게.

 내일 보자 안나."

 "네, 아가씨.

 쉬세요."

 

 안나가 나간 뒤 까무룩 잠이 들었다가 다시 깨고 나자 새벽이었다.

 3일을 넘게 잠을 자고 났더니 더 이상 잠도 오지 않았다.

 확실히 낮보다는 몸이 많이 회복된 것 같기도 하고 상쾌한 공기도 맡고 싶어서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벌써 선선해지기 시작한 여름 밤 바람이 훅 밀려들어왔다.

 

 느낄 시간도 없던 심장 뛰게하던 바람의 끝자락이 날 스쳐갔다.

 심장뛰던 연애를 원해서 들어온 아카데미였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싶어 멍하니 정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정원은 다양한 초록빛으로 가득했다.

 발코니에 기대 서서 도대체 누가 그런일을 저지른 건지 한참을 생각하며, 원작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에휴, 지금 기억날 이벤트면 애저녁에 기억이 났겠지.

 이렇게 큰 일이었는데.

 소설이랑은 평행우주 정도인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돌아가려 몸을 돌렸는데, 간만에 일어나서인지 몸이 휘청했다.

 툭. 나를 받쳐주는 손길에 깜짝 놀라 방어태세를 갖췄다.

 

 "엘리, 괜찮아?"

 

 어떻게 들어온 건지 키셀이 나를 받치며 바라보고 있었다.

 

 "으응, 괜찮아. 키셀, 여긴 어떻게...?"

 "난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가, 엘리.

 네가 원하는 곳도 어디든 데려가줄게."

 

 따스하게 웃어보이려고 노력한 것 같았는데, 울음을 잔뜩 참고 있는게 보였다.

 

 "이야기 들었어.

 고마워.

 내 생명의 은인이네."

 

 평소처럼 장난스럽게 웃어보이려고 했는데, 입 안이 잔뜩 말라서인지 입술이 잇몸에 붙어서 아련한 미소만 지어졌다.

 

 "엘리, 그런 얼굴로 괜찮다고 해봤자 안 믿겨.

 넌 진짜 왜 날 이렇게......"

 

 키셀이 내 얼굴을 조심스레 쓸었다.

 항상 말로만 나를 찬양했던 그가 이렇게 내게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라 움찔했다.

 햇빛 아래 항상 빛나던 그의 은발은 달빛 아래에서 더 찬란하게 빛났다.

 싱그럽던 그의 녹빛 눈동자도 짙은 녹색이 되었고, 높은 줄 몰랐던 그의 콧대가 그림자져서 한폭의 그림같았다.

 미남인 줄은 알았지만, 가까이서 보니 심장이 뛸 정도로 청초했다.

 약간 살이 빠져 푹 꺼진 볼 우물과 푸석하게 말라버린 피부와 입술이 그간 고생을 보여줬다.

 나도 모르게 그의 상한 얼굴에 손이 내려앉았다.

 

 "왜 이렇게 얼굴이 상했어, 키셀.

 마음 아프게.

 범인 잡는데 너도 투입된거야?"

 "응. 낮에는 그 팀에서 범인잡는 일을 하느라 도무지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밤마다 와봤어.

 그래도 운이 좋았다.

 이렇게 널 볼 수 있네.

 아픈데는... 없어?"

 

 더듬 더듬 말을 이으며 눈 밑이 발갛게 달아오르던 그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키셀, 왜 울어.

 나 이제 괜찮은데.

 울지마."

 "엘리...... 엘리온......

 매일 매일 이렇게 와서 네가 괜찮은지 먼발치에서만 보다 갈 수 밖에 없고......

 건장하던 네가 이렇게 파리해져서는......"

 

 '잘못 들었나? 건강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겠지?'

 

 잠시 내 어깨가 건장한 수준인 건지 돌아봤다.

 인정했다.

 앓아누웠던 시간 동안에도 내 어깨의 건장함은 여전했다.

 훅 들어왔던 그의 손길에 긴장했던 내가 잠시 바보같이 느껴졌다.

 

 "일개 파트너인 날 이렇게 소중하게 생각해주다니 감동이다, 키셀."

 "...... 그래.

 네가 없으면 우리 사업은 어디로 가겠어?

 이제 겨우 계약을 했는데."

 "아 맞다.

 그건 잘 끝났어?

 내가 이러고 있어서 미안해."

 "걱정말고 엘리, 얼른 나아.

 사업이든 다른 일이든 내가 필요하면 이리로 쪽지 보내.

 빈 쪽지만 보내도 너인 줄 알고 달려올테니."

 

 한차례 눈물을 쏟아낸 그의 눈빛은 달빛 아래서 어딘지 위험해 보였다.

 말은 한없이 다정했지만, 이제 똑바로 서 있는데도 내 등을 계속 받치고 있는 그의 손길은 다정하지 않았다.

 왜인지 나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유약한 서생 정도로 봤던 그의 어깨는 가까이 보니 안길 수 있을만큼 넓었고, 그 사이 키가 큰 건지 조금 더 올려다 봐야했다.

 마법 없이도 나를 가볍고 안정적으로 받쳐주던 그의 팔이 의식되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그, 그래! 얼른 가봐!

 피곤해 보여.

 다음에 와서 계약 얘기 마저 해줘."

 

 말없이 나를 빤히 바라보던 키셀은 이유모를 미소를 살짝 짓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난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며칠 뒤, 베스가 눈물 바람으로 왔다가, 걱정했다가, 대단했다며 칭찬을 했다가, 농담에 웃었다가 즐거운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다.

 한참을 그러고 나니 입맛도 돌고, 걱정해준 베스에게 고마웠다.

 

 "그나저나 우리 엘리, 능력있던데?!"

 "언니 4강이야, 에헴."

 "아니, 그거 말고.

 다 봤다?

 너 쓰러진 날 마법사랑 교수님 전부 사색이 되어서 너한테 뛰어가던데?

 둘 다 성공한 거 맞지?"

 "음? 키셀이 날 챙겨준 거 아니었어?

 난 그렇게 들었는데."

 "아니야, 내가 또 눈썰미가 좋잖니.

 리베론 교수님도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너한테 갔어.

 그랬는데 마법사가 엄청 방어적으로 굴더라고.

 네 곁에 아무도 가까이 못 오게 하면서 범인이 누군지 확정할 수 없다고.

 교수님한테 타겟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아오라고, 다른 학생들도 체크하고 오라고 소리 지르던데?"

 "아, 그랬어?"

 

 당연히 체리에게 달려간 줄 알았던 리베론이 사제간의 정을 우선시 하다니 다행스러웠다.

 

 "응. 솔직히 말해봐.

 그 때 말했던 그 두 명이 키셀이랑 리베론이지?"

 "이제 이름 막 부르네."

 "어휴, 언제까지 교수님교수님 길게 부르니~

 이 분들도 너무 유명인사라 별명 붙여놔야겠네.

 은강, 검강 어때?

 너한테 달려가는게 꼭 주인 쓰러진 강아지들 같았거든."

 

 혹여 누가 우리 이야기를 듣더라도 누구 이야기인지 알 수 없도록 우리만 아는 별명을 붙여놓는 건 우리만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 둘에게는 그렇게 별명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왜인지 내키지가 않네.

 그래도 날 구해주고 걱정해준 사람들이라."

 "오홍~ 너 진심이구나?

 둘 중 누구에게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알았어.

 네 미래 정인을 별명으로 부르면 안 되지."

 "아니야, 뭐가 진심이라는거야!

 으으, 모르겠다 나도.

 그냥 당분간 열심히만 살거야."

 "그래그래.

 이번 사태 때문에 아카데미가 뒤숭숭하긴 한데 아카데미 내부 소행은 아닌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나봐.

 그래서 당분간 출입 자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4강에 올라가고 승부를 못 낸 학생들 중심으로 축하 파티를 한다네.

 그래서 너도 참석해야 할걸?

 파티는 가을의 초입이라고 들었으니까 멋진 드레스 준비해.

 나도 그 날은 너의 절친의 신분으로써 엄청 멋지게 하고 갈거야!"

 "베스, 네가 열심히 꾸며버리면 주인공이 내가 되겠니?!

 적당히 해줘."

 "하여튼 저거 립서비스는 타고났어. 호호호.

 그런데 끝까지 진행사항은 함구하시겠다?

 이제 좀 서운해질라 그런다 얘!"

 

 서로 낄낄대다가 베스가 내 드레스를 고를 때 꼭 불러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파티 전까지는 출석이 인정된다는 전갈을 받고 당분간 저택 안에서 훈련만 하며 쉬고 싶다는 답변을 보냈다.

 18살, 잠잠하던 내 인생이 폭풍우를 타고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잠시간 숨을 돌릴 시간이 나에겐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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