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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한식에 반하다
작가 : 씨큐씨큐
작품등록일 : 2022.1.4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요식업계 일인자를 꼽으라면 단연 백한식으로 통한다.
백한식은 신이내린 미각과 특출난 미모 덕에 스타덤에 올랐을진데.
그만 코로나 후유증으로 미각상실이 오고야 말았다!
절대미각을 잃고 언론을 피해 시골로 숨어들어 은둔생활을 시작한 백한식,
동네 중국집 딸내미 정다은에게 그만 정체를 들키고 만다?
여기 본격 먹방 로맨스가 시작될지니.
배고픈 자여, 당장 클릭을 멈추라.

 
프리티 우먼
작성일 : 22-01-19 11:11     조회 : 59     추천 : 0     분량 : 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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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이빗 쇼핑이 처음인 정다은은 그저 얼떨떨할 따름이었다. 매장을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띄면 착용해보고 구매하는 것이 당연지사였는데, 이렇게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퍼스널 쇼퍼 룸이라니!

 이 부담스럽게 친절한 직원들 사이에서 생경한 표정으로 얼어붙은 다은을 보자 한식은 또 속으로 웃고 말았다.

 

 “어때? 자본주의에 찌든 꼬봉 어린이?”

 “내가 언제….”

 

 다은은 말을 멈추고, 직원들 눈치를 보았다. 더 이상 놀리지 말라는 눈빛의 다은을 보니 더더욱 골려주고 싶어지는 백한식.

 

 ‘어디 한 번 좀 놀아 볼까.’

 

 한식이 긴다리를 휘감아 꼬았다. 당당하고 허세 넘치는 자신감에 찬 표정.

 

 “이 아가씨한테 어울릴 만한 룩이 필요합니다. 옷, 구두, 가방. 모두 이번 시즌 신상들로 보여 주시죠.”

 “네.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응대하던 직원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그제야 다은이 주책맞은 제스처로 대접받은 차를 벌컥 들이켰다.

 

 “대박! 나 이런 거 텔레비전에서만 봤어요. 진짜 숙수님은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네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룸 안의 곳곳을 살피며 작게 감탄사를 뱉는 정다은이 왜 이렇게 귀엽게 느껴지는지. 다은이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한식을 바라봤다.

 

 ‘역시 금은보화를 좋아하는게 맞긴 하군.’

 

 눈이 마주치자 다은더러 보란 듯, 향수 광고를 찍을 때 연습해둔 차밍한 느낌으로 차도남의 포즈를 취하며 스륵 눈을 감은 백한식.

 

 “호들갑은. 내가 매장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몰려서 쇼핑을 제대로 하기 어렵지 않겠어? 뭐, 워낙 인기 있는 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쇼핑은 이렇게 비공개로 할 수 밖에….”

 

 보통의 여자라면 이렇게 멋진 백한식을 우러러보며 입을 헤 벌릴테지.

 그런 정다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더욱 극적인 느낌을 끌어내고 있는데, 때 마침 들려오는 휴대폰 사진 소리.

 

 - 찰칵. 찰칵.

 

 ‘그래. 이렇게 멋진 나. 사진으로 담아두지 않곤 못 배기겠지.’

 

 슬쩍 눈을 뜨고 다은을 돌아본 한식. 그런데 다은은 백한식 따윈 안중에도 없이 셀카 삼매경이지 않은가.

 

 “…꼬봉. 내 말 듣고 있어?”

 “우와. 대박! 여기 조명 죽이네. 너무 고급지게 나옴!”

 

 아무래도 안 듣는 것 같다. 애써 힘주었던 포즈가 조용히 부스러지는 기분. 풀 죽은 한식이 부산스러운 다은의 몸짓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 만다. 한식의 입장에선 고작 백화점일 뿐인데 뭐가 저리 신났는지.

 슬며시 다은의 옆자리에 건너가 휴대폰을 빼앗은 백한식.

 

 “아, 왜요! 한참 잘 나오는데!”

 “꼬봉, 이렇게 위에서 찍어야 잘 찍히는 거야.”

 

 긴 팔로 각도를 높이자, 다은과 한식이 나란히 화면 속에 들어왔다.

 

 - 찰칵.

 

 “눈 감았잖아요! 에이. 그리고 나 턱 짤렸는데? 쫌 수그려봐요. 그리고 같이 찍을 땐 숫자를 세야 매너죠.”

 “그래?”

 

 - 찰칵.

 

 “아! 노매너, 증말!”

 “크큭. 알았어. 다시! 하나, 둘, ….”

 

 한식이 다은 쪽으로 몸을 낮추며 좀 더 얼굴을 밀착시키자, 다은의 머리카락이 백한식의 목덜미를 간질였다.

 아앗. 살짝 닿는 그 보드라운 감촉이 마치 복숭아 같다고 느끼는 순간, 심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낀 한식.

 

 - 두근.

 

 “뭐야. 왜 안 찍어요?”

 

 - 찰칵.

 

 사진 속에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잘생긴 한식과 입을 헤 벌린 다은이 찍혔다. 제 표정이 우스꽝스러워서 열 받은 정다은.

 

 “아 진짜! 말하는데 찍는게 어딨어요! 자기만 멀쩡하게 찍고.”

 

 한식이 큭큭댔다.

 

 “하여간 못됐어!”

 

 입술을 빼죽대는 다은을 자꾸만 다정하게 보게 된다. 자꾸만 더 눈에 담고 싶다는 이상한 욕망이 피어난다. 또다시 마음속에 복숭아 향이 풍겼다.

 

 ‘이상하군.’

 

 직원들이 F/W 신상들을 가지고 룸으로 돌아왔다.

 정다은은 눈앞에 펼쳐진 고가의 명품들을 보며 정말 다른 세계에 온 것이 맞구나 실감했고. 한식이 자연스럽게 옷걸이에 걸린 옷을 훑어보며 다은을 위한 옷을 골랐다.

 살짝 루즈한 보송보송 롱니트 원피스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가벼운 캐시미어 코트.

 가슴 속 가득 들어 찬 복숭아향의 영향일까. 주저 않고 고른 색채가 꼭 복숭아를 닮은 것 같았다. 톤 다운된 핑크빛이 다은에게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하며 미소짓는 백한식.

 

 “꼬봉, 이렇게 입고 나와 봐.”

 

 다은은 잠자코 안내하는 직원들을 따라 종종걸음을 걸었다.

 다은이 옷을 갈아입고 오는 동안 백한식은 카탈로그를 살피는데 안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휴대폰 액정의 ‘오세덕’ 이름을 확인 후 전화를 받았다.

 

 “어.”

 - 형! 나 지금 가는 중.

 “얼마나 걸려?”

 - 한 30분 걸리려나?

 “그래? 웬일로 일찍 오네?”

 - 오늘 여자친구도 온다면서.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나.

 “궁금해?”

 - 그럼! 내가 형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만데. 안그래도 형 기자회견 보다가 자지러졌잖아.

 “왜?”

 - 몰라서 물어? 형 나르시시스트잖아! 그런 사람이 홀딱 반했다는데 안 궁금하고 베기냐고.

 

 한식이 낮은 웃음소리를 냈다. 그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일었다.

 

 “나 입고 왔어요. 어때요?”

 

 다은의 목소리에 뒤를 도는 백한식. 이런. 가슴 속에 피어오르던 복숭아꽃 향기가 크게 휘몰아쳤다.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힘차게 펌핑질을 하기 시작하는데.

 

 “어….”

 - 형, 대체 어떤 사람이야?

 “이뻐. 아주.”

 - 뭐? 우와. 형! …!

 

 세덕이 호들갑을 떨며 무언가 큰 소리로 외쳤으나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는 듯, 한식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귀에서 때어내며 통화를 끝내 버렸다.

 다은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런 고급 소재의 옷은 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했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매일같이 질끈 묶었던 머리를 살짝 풀고 나온 것이 전부인데.

 그런데 백한식이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번에 예쁘다는 소리를 할 줄이야!

 

 “진짜 예쁘다고요?”

 

 쑥쓰러운 기분에 몸을 베베 꼬며 되물었지만 한식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아, 통화하던 중이었어.”

 

 이 사람, 진짜 얄밉다.

 

 “뭐야아. 난 또 나 이쁘다는 줄 알았잖아요.”

 

 다은이 김샜다는 표정을 짓는데 문득 깨물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한식.

 

 ‘그래. 인간 복숭아로군.’

 

 심장이 더욱 빨라졌다. 한식의 가슴 속은 복숭아 향으로 가득했고, 자칫 하면 그 향기에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한식이 별안간 숨을 들이키더니 다은 앞에서 사뿐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완벽한 프로포즈 자세.

 

 “뭐 …에요?”

 

 아무 말 없이 다은을 올려다보는 백한식.

 

 ‘뭐야. 이거 지금 프로포즈 자세임? 왜왜?’

 

 다은의 얼굴이 실시간으로 어리둥절해졌다가 발그레 해졌다. 한식은 가만히 그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저 붉어지는 양 볼을 깨물고 싶다고 생각을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구두는 이게 어울리겠군.”

 

 미리 골라둔 심플한 디자인의 구두를 다은의 발 앞에 대어주는 한식.

 

 “아. 놀랬잖아요.”

 “뭐가.”

 “아니에요.”

 

 ‘대체 난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거야. 이런데 처음와서 너무 들떴나 봐.’

 

 프로포즈를 상상하다니! 자기가 생각해놓고도 부끄러워 창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심정이 된 다은이었다.

 주저하던 다은이 조심스럽게 발을 내밀었고, 한식이 편안하게 구두를 신겨주었다. 쏘옥 들어가는 다은의 발.

 정말 딱 맞지 않는가.

 

 “왠지 신데렐라 된 기분이네요.”

 “그럼 내가 요정인가?”

 “네?”

 

 ‘왕자님이 아니고 요정?’

 

 다은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허름한 신데렐라한테 드레스 입혀 주는 거 요정 맞잖아.”

 “….”

 

 이 남자는 묘하게 대화의 핀트가 엇나간다. 자꾸 김새게.

 

 “그런데 말야, 꼬봉. 이 몸이 요정이 되려면 알라딘 램프요정 정도는 되야 하거든?”

 “?”

 

 순간 한식의 주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혼자만 빛을 받으며 집중된 것처럼. 그는 고고하게 고개를 들고 아주 멋들어진 폼을 잡으며 VVIP 블랙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여기 있는 제품. 모두 계산하도록 하지.”

 “네에?”

 

 다은이 소리를 지르며 입을 떡 벌렸지만, 직원들은 익숙하다는 듯이 물건들을 담기 시작했다. 저 엄청난 양의 물건들을 몽땅 사들인단 말인가!

 

 ‘이게 다 얼마야? 옷이랑 구두랑 가방까지 이렇게 많은데? 이걸 다 산다고? 말려야 해!’

 

 다은이 당황해서 직원들을 향해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한식을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이 남자, 아직까지도 괴상한 포즈를 하고 있다. 게다가 그 모습이 제법 멋지지 않은가.

 열 받게도 본인이 잘생긴 것을 아주 잘 아는 눈치였는데. 정다은은 그 위압감에 차마 말을 못 붙이고 가만히 지켜만 볼 수 밖에 없었다.

 저 진지한 얼굴. 마치 자신의 멋짐에 취하기라도 한 것만 같구나.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이건 동화 보다는 영화가 맞겠어. 프리티 우먼.’

 

 

 ***

 

 

 한식을 따라 오르는 골목 어귀에 새겨진 동네 이름이 낯설지 않았다. 정다은이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어? 여기 이현복 셰프님 식당 있는 동네잖아요! 우리 혹시 거기 가는거에요?”

 

 한식이 피식 웃었다.

 

 “아니.”

 “아, 하긴. 예약이 막 엄청 밀렸다더라고요. 지금 예약해도 내후년에나 갈 수 있을걸요?”

 

 어딘가 실망한 다은의 표정을 보면서 한식은 자존심이 상한 것 같은 투로 말했다.

 

 “꼬봉. 나는 예약 안 해도 현복 형님네 식당이라면 언제든 갈 수 있는 사람이야.”

 “네? 진짜요? 왜 말 안했어요?”

 “네가 안 물어봤잖아.”

 

 ‘내가 사인 받아다 달라고 했으면 이현복 팬인거 뻔히 알텐데! 어쩜 저렇게 얄밉게 구냐.’

 

 자신을 노려보는 다은의 뾰로통한 표정을 보며 이상한 기분에 사로 잡히는 백한식.

 

 ‘하긴, 중식하는 앤데 현복 형님 음식 한 번 쯤 먹어보고 싶긴 하겠지. 그런다고 비슷하게 만들지도 못할 실력이면서 열정만 너무 앞선다니까. 사인 받아다 달라고 한 것도 가게에 장식하려고 했던 거 아니었나? 셰프 사인을 마케팅으로 쓰려면 내 사인이 제일 좋을텐데, 하여간 꼬봉은 머리가 나쁘다니까.’

 

 서로가 서로에게 알 수 없는 눈빛을 쏘아대며 현복의 집 대문 앞에 다다랐다.

 

 “여기야.”

 

 - 띵동.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대문이 열렸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집 안에서 세덕이 뛰어나왔고, 큰 소리로 한식을 반겼다.

 

 “형! 왔어?”

 

 세덕은 말과 다르게 한식은 쳐다보지도 않고 다은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뛰어왔다.

 

 “어. 세덕이 너 벌써 와 있었냐?”

 

 한식이 탐탁치 않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으나 이를 무시하고 다은과 인사를 나누는 세덕.

 

 “안녕하세요? 오세덕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정다은 이에요.”

 “아, 이름도 예쁘시구나. 어떻게, 형수님으로 불러야 할까요?”

 “아뇨. 그냥 편하게 이름 불러주세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름은 처음 듣는다니. 백한식은 대체 내 얘기를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걸까 궁금해지는 정다은.

 

 “오세덕. 내가 언제 무슨 얘길했다고 그래? 쓸떼없는 말은….”

 “아, 왜! 아까 그랬잖아. 이쁘다고, 아!”

 

 한식은 세덕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찔러보지만 저 입방정을 막을 순 없었다.

 

 “한식이 형이 쫌 속마음 말 안하고 그러죠? 자기 여자친구 이쁘다고 아주 그냥…. 아, 아파! 그만 찔러!”

 

 다은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오세덕 셰프가 눈앞에 있는 것도 신기한데 저렇게 가벼운 사람이었다는게 더 신기했다. 정다은이 베시시 웃으며 툭닥대는 세덕과 한식을 따라 집 마당을 가로질러 걸었다.

 누구를 마주칠지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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