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월 23일 수요일
버스의 창밖은 어느때와 똑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표정들을 지으며 걷고 있었다. 한참동안 창밖의 사람들을 관찰하니 어느새 난 집 앞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익숙하게 골목길을 따라 걸어갔다.
불과 1시간전 즘에 지나쳤던 골목길과는 비교할 수 없게 넓은 골목길이었다. 또한 이 골목길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약 30미터 간격으로 가로등이 거리를 밝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은 골목길을 지나 커다란 하얀 대문앞에 멈춰선 나는 하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하얀 대문 안의 정원 길을 지나 사람보다 살짝 큰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에는 검은 구두가 놓여 있었다. 그가 어디 나가지 않고 집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가 이 집을 나서야만 내가 편하게 행동을 취하겠지만 한동안은 그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음을 알기에 그 생각은 잠시 접어 두었다.
집 안으로 들어서고 거실을 지나 위층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그의 안방문을 보았다. 마치 사람이 아무도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반대편의 서재문을 바라보았다. 문 틈 사이에서 불이 희미하게 비춰 나오고 있었다. 아마 그는 안방이 아닌 서재 안에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빛의 존재를 확인한 나는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방에 들어선 나는 방문을 잠갔다. 나는 방안의 내 책상 앞에 앉아 왼손에 쥐고 있던 책과 오른손의 비닐봉투를 책상위에 올려 놓았고 책상위에 있던 책들은 한쪽으로 치워 놓은 뒤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책을 잠시 살펴 봤었다. 내 추측은 빗나가지 않고 책의 정가운데는 칼로 오려낸 듯이 직사각형 모양으로 잘려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usb가 알맞은 크기로 꽂혀 있었다.
노트북을 가져와 usb를 꽂고 전원을 켰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을 하나씩 보았다.
18년도, 19년도, 20년도, 그리고 21년도, 총 네 개의 파일이 있었다. 각 년도가 적힌 파일 안에는 아버지에 대한 행적들이 기록되어져 있었고 기사를 캡쳐 한 사진도 들어 있었다.
그 기사들은 모두 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1월 1일 살인사건, 아직까지도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사건이다. 매년 1월 1일,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한 가정이 아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살해를 당한다. 그래서 매년 12월 31일에 경찰들은 이 사건의 대비로 바빠졌었고 1월 1일의 범인이 잡히지 않게 되어 또다시 사건이 일어나면 범인을 못 잡는 경찰에 대한 시위가 전국에서 일어났다. 결국 1월 1일은 한 가정이 살인을 당하는 한국의 설날과 같은 기념일이 되어 버렸다.
나는 파일들을 하나씩 열어보며 차분히 확인했다.
나는 18년도 사건기사들과 그의 행적들을 대조해보고, 또 다른 년도들도 모두 그렇게 대조해 봤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1월 1일에 피해자의 집 근처에서 찍힌 그의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씩 다 대조하다 그 방에 걸려있던 사진들이 떠올랐고 나는 깊은 생각에 빠져 버렸다.
생각해보면 그는 항상 연말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1월 초나 중순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하지만 그가 어디로 여행을 간다는 말은 해준적이 없었다.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나는 확신했다. 하지만 내가 이 사실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평범한 일개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이 사실들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내 힘만으로 그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