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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25화 진하윤. 도발하지 마.
작성일 : 20-10-19 16:56     조회 : 263     추천 : 0     분량 : 4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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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위가 뒤집힌 것 같은 메스꺼움과 혈액까지 끈적끈적해진 거 같은 탈수 현상으로 불쾌하게 눈을 뜬 하윤.

 

 ‘여긴…? 대표님 방…?’

 

 하지만, 방을 크게 둘러본 그녀의 얼굴엔 곧장 만족스러운 미소가 가득 번진다.

 

 서너 명이 눕고도 남을 만한 특대 킹사이즈 베드에 호텔 특유의 보송보송하며 빳빳한 촉감의 새하얀 침대 시트가 기분 좋게 사각거렸다.

 

 누운 채로 쨍한 햇빛이 들어오는 통유리에 파란 하늘만 보이는 걸 보니 최소 30층 이상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숨 막히게 황홀했던 지난밤.

 

 계단에 술 취해 쓰러져 있는 자신을 인형 들듯이 가볍게 안아서, 이 방까지 데려온 최찬의 절제력 잃은 눈빛이 기억났다.

 

 이 너른 침대에 사뿐히 내려놓고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는 최찬은 뜨거운 입김을 천천히 내뱉으며, 감미롭게 속삭였다.

 

 “오늘은 도저히 집에 못 보내겠다.”

 

 귓가를 간지럽히던 그의 입술은 하윤의 귓불을 지나 쇄골까지 부드럽게 훑으며 미끄러져 내려왔고, 그녀의 의식은 뜨겁고 가쁜 숨소리를 내며 아득하게 몽롱해졌다.

 

 ‘나… 대표님과 잔 거야?’

 

 이불을 얼굴까지 덮어쓰고 “꺄~~”하며 돌고래 소리 비스무리한 비명을 지르며, 이불 안에서 발을 동동거린다.

 

 그때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

 

 “지각하기 싫으면 지금 일어나는 게 좋을걸?!”

 

 분명히 조금 전까지 아무도 없었던 방안에서 뜬금없는 남자 목소리를 마주한 하윤은 뒤집어쓰고 있던 시트를 확 걷으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대표님!!”

 

 침실에 붙어있는 크로젯에서 시트 색깔만큼이나 새하얀 와이셔츠를 대충 걸치고, 소매 핀을 채우며 걸어 나오는 최찬.

 

 단추를 채우지 않은 셔츠 사이로 보이는 각진 복근이 유난히 반질반질하게 도드라져 보였다.

 

 지난밤, 저 훌륭한 근육들의 감촉이 아직 손끝에 남아있는 거 같아 하윤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하윤의 로맨틱한 기억을 차단이라도 하듯, 그의 차가운 말투가 귀에 꽂히듯 날아왔다.

 

 “출근 안 할 거예요?”

 

 아주 긴 밤을 함께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한 그의 무표정에 설렘 가득했던 어제의 기억이 다 재가 되어 흩어지는 기분이다.

 

 ‘그냥… 하룻밤 가볍게 즐긴 거였어?’

 

 침대 위 관계의 목적을 달성한 나쁜 남자의 전형적인 태도였다.

 

 이용당했다는 생각에 억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곧 서른인 나이에 울고불고 죽니 사니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하윤이 역시 어젯밤 오랜만에 너무 즐겨버린 탓에 책임을 묻기에는 상당히 애매해진 것이다.

 

 이 짧은 시간,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쿨하게 없었던 일로 묻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혼자서 아침 내내 북치고 장구 치고 했던 게 전부 생쇼였다는 게 곧 밝혀질 예정이다.

 

 시계는 아침 7시를 막 지나고 있었고, 평소 같았으면 이미 출근 준비를 끝냈어야 하는 시간이다.

 

 ‘헉!! 오늘은 월요일!!’

 

 집에 가서 다시 출근 준비해서 나오기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열심히 뛰는 수밖에…

 

 핸드백을 주섬주섬 챙겨서 의기소침하게 침실을 나가려는데, 최찬이 하윤의 팔을 잡아 세우더니 크로젯으로 끌고 들어갔다.

 

 한쪽 벽면이 통거울인 작은 옷방.

 

 거울 벽면에 하윤을 밀어붙이며 세웠다.

 

 상체를 조금 숙여 양손을 하윤의 머리 옆 거울을 탕 하고 짚은 최찬은 여전히 싸늘한 무표정이다.

 

 “진하윤 씨. 내가 어제 같은 찬스를 놓쳐서 얼마나 후회하는 줄 알아?!”

 

 속도 안 좋은데 벽에 밀어붙이는 바람에 위가 반동하며 울렁하더니, 술 냄새가 기도를 타고 올라왔다.

 

 ‘찬스가 뭐…? 후회가 뭐 어쨌다고..?’

 

 질문이고 나발이고,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텁텁한 술 냄새를 풍길까 봐 급하게 자신의 입과 코를 막았다

 

 “또 이렇게 회피하시겠다?”

 

 호흡을 내뱉지는 않으면서, 계속 들이마시고만 있는 하윤의 노력이 가상했는지, 옷걸이에 걸려있는 베이지색 원피스를 건넨 후, 그냥 크로젯을 나간다.

 

 “30분 줄게요. 준비해서 나와요.”

 

 언제 갈아입을 옷까지 준비했는지 모르겠지만, 극과 극을 오가는 최찬의 헷갈리는 행동 때문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더 혼란스러운 건,

 

 그 뜨거운 밤을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하윤의 옷은 단추 하나까지 단정하게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귀여운 예고.

 

 샤워를 끝내고 미처 말리지 못한 긴 머리를 닦으며, 시야가 탁 트인 넓은 거실로 나가면서 본편이 시작된다.

 

 스위트 룸에 처음 들어와 본 하윤은 돈 처바른 티가 팍팍 나는 커다란 샹들리에에 시선이 꽂혀있었다.

 

 “어머!! 하윤씨. 원피스 잘 어울리네요. 내 옷이라서 많이 클까 봐 걱정했는데 딱 맞네.”

 

 반대편 침실에서 최민이 밝은 표정으로 나왔다.

 

 “뜨악! 지배인님!!”

 

 아직 놀라기는 일렀다.

 

 하윤의 목소리를 듣고 응접실에서 급하게 뛰어나온 최명은 걱정부터 한다.

 

 “하윤아. 속은 괜찮아?”

 

 “선배! 여긴 왜…?”

 

 그리고 소파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서류 더미를 뒤지고 있는 최찬까지.

 

 “다들… 왜 여기에…?”

 

 하윤의 동공은 한없이 흔들리며 어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

 

 

 대강 어젯밤의 상황은 이러했다.

 

 지하 5층 비상계단에서 최찬에게 들이대는 장면까지는 현실이었다.

 

 “찬아. 오늘 나랑 잘래?”

 

 순식간에 하윤이 목덜미를 감아 끌어당기는 바람에 최찬은 “윽!”하며 짧은 신음을 냈지만, 전혀 놓아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최찬은 하윤이 다치지 않게 계단 사이로 팔을 집어넣어 하윤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았다.

 

 35층을 뛰어 내려온 탓에 여전히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하윤이 정도는 가뿐하게 들어 안을 수 있었다.

 

 “최찬!! 대답 안 할 거야?!”

 

 “이렇게 적극적인 여자였어?!”

 

 “대답부터 해. 응?”

 

 술 취한 사람답게 하윤은 끈질기게 대답을 재촉했지만,

 

 “진하윤. 많이 취했어. 집에 데려다줄게.”라는 최찬의 거절만 돌아올 뿐이었다.

 

 술만 취하면 포기를 모르는 하윤은 다시 한번 더 최찬을 꼬드기기 위해 시도한다.

 

 “오늘이 마지막 찬스일 수 있어. 이래도 나랑 안 잘 거야?”

 

 귀속을 간지럽히며 속삭였고, 하윤의 이런 행동은 그를 흥분시킬 수 있는 조건으로 충분했다.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날리며 심호흡을 하는 최찬은 급기야 자신의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최찬~ 나랑 자고 싶은 거 아니었어?”

 

 “진하윤. 도발하지 마.”

 

 단호한 목소리였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멘탈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 데려다주기 위해서 비상계단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맞닥뜨린 최명.

 

 타이밍 기가 막힌다.

 

 최명 역시 사라진 하윤을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

 

 “뭐야?!! 왜 니가 하윤이를…?”

 

 “형이 데려왔으면 끝까지 챙겨서 집에 데려다줬어야지!”

 

 이미 파탄 난 형제 사이가 파국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였다.

 

 “하윤이 이리 줘.”

 

 최찬에게 안겨있는 하윤을 뺏듯 데려가려는 최명을 피해 빙글 돌아섰다.

 

 “내가 데려다줄게.”

 

 “넌 신경꺼!!!”

 

 먼저 소리를 높인 건 최명 쪽이다.

 

 그때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퇴근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온 최민에게 이 상황을 들키고 만다.

 

 “너희 둘… 지금 여기서 뭐 해? 헉!! 하윤 씨는 왜 기절한 거야???”

 

 전후 사정을 모르고 이 장면만 보면, 딱 오해하기 좋은 광경이었다.

 

 술 취한 여자 한 명을 놓고 남자 둘이 서로 데려가겠다고 싸우는 꼴인 것이다.

 

 최찬과 하윤이 단둘이 있는 건 싫었던 최명.

 

 최명과 하윤이 단둘이 있는 건 싫었던 최찬.

 

 두 남동생과 하윤을 같이 두기 불안했던 최민.

 

 누구 편도 아닌 최민이 내린 솔로몬 같은 결론이 바로, 최찬의 호텔 방에서 넷이 같이 보내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아주 탁월한 선택.

 

 하윤이 덕분에 뜻밖의 정모를 하게 된 최 씨네 세 남매들.

 

 결국, 지난밤의 뜨거운 사랑은 하윤의 야릇한 꿈과 욕구 불만의 현실이 뒤섞이면서 엉뚱하게 각색되고 악마 편집이 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나는 대표님을 꼬드긴 방탕한 여자로 낙인찍혔다…’라고 독백했다.

 

 

 ***

 

 

 오후에 최찬의 임시 대표직을 놓고 주주 회의가 있을 예정이다.

 

 그 때문에 대주주인 최 씨네 세 남매와 하윤은 본의 아니게 같은 차를 타고 출근하게 된다.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윤 씨. 우린 나중에 봐요.”

 

 최민이 환하게 웃으며 인사는 반면, 하윤은 다른 직원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쫓기는 사람처럼 인사를 하고 잔걸음으로 회사로 들어간다.

 

 8시 55분.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며 회사 로비로 들어서는 하윤.

 

 워낙 하루하루가 스펙타클해서 지루할 틈이 없는 하윤에게 더 보탬이 되기 위해 기다리는 이가 있었으니, 전남친 안기현.

 

 커플 적금 찾으려고 부지런하게도 은행 영업시간 9시를 맞춰서 온 것이 분명하다.

 

 “출근 찍고 내려올 테니 기다려!”

 

 “도장 주고 가.”

 

 “허튼수작 하지 말고 조용히 기다려!!”

 

 

 ***

 

 

 나란히 은행 창구 앞에 앉은 하윤과 전남친 기현.

 

 “언니. 10원짜리까지 똑같이 둘로 나눠서 현금으로 주세요.”

 

 하윤은 “똑같이”를 몇 번을 강조했다.

 

 3,000만 원씩 든 묵직한 돈 봉투를 하나씩 나눠 들고 각자 가던 길을 향하려는 찰나, 하윤이 기현을 잡았다.

 

 “잠시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 좀 해.”

 

 “미련 남아서 잡는 거라면 사양 할게.”

 

 “뭐?!! 미친… 처맞기 싫으면 따라와!!”

 

 회사 밑에 은행이라 보는 눈이 많았던 하윤은 기현을 한적한 곳으로 끌고 왔다.

 

 “무슨 말이길래 이런 으슥한 곳으로 유인하는 건데?”

 

 하윤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섬뜩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야.. 진하윤. 무..무섭게 왜 그래?”

 

 “가만히 생각해보니깐 내가 억울해서 안 되겠어. 이 적금은 위자료로 생각하고 내가 다 가져야겠다.”

 

 하윤은 말을 끝내기도 전에 기현이 들고 있던 돈 봉투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야! 진하윤! 미쳤어? 내놔!”

 

 기현은 자신의 돈 봉투를 되찾으려고 손을 이리저리 뻗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가까이에 오지 마. 소리칠 거야.”라고 하윤이 엄포를 놓은 바람에 더 다가갈 수도 없었다.

 

 “좋은 말 할 때 내놔! 반반씩 나누기로 약속했잖아?!! 갑자기 왜 그래?”

 

 “내가… 왜 이러는지… 알려줘?”

 

 하윤은 어디서 배웠는지 감질나게 뜸 들이며 비아냥거리는 화법으로 기현의 속을 시커멓게 태웠다.

 

 “하윤아. 돈 가지고 장난 지치마. 너 이렇게 나쁜 애 아니잖아.”

 

 급기야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게 하윤을 달래며 애매하게 마른 침만 삼키고 있는 기현.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하윤은 풉~ 하고 짧은 실소를 터트리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나한테 기가 막힌 패가 들어왔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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