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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관계자 외 접근금지
작가 : 풀링
작품등록일 : 2020.7.31

술만 마시면 구구단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 하윤은 우연히 만난 「클럽 황제」라고 불리는 남자와 징글징글하게 엮이기 시작한다.
파격적인 막말과 각종 못 볼 꼴, 그리고 조울증 비스무리한 다중인격까지 3단 콤보를 펼치며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여줬는데...

"저 남자가 새로 오신 대표님이라고?!"

 
24화 오늘 나랑 잘래?
작성일 : 20-10-19 16:55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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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자신도 모르게 치밀어오르는 화가 목구멍에서 터져 나오려는 순간, 누군가 뒤에서 하윤의 입을 막으며 주차장 기둥 뒤로 돌려세웠다

 

 ‘안기현!! 다른 여자가 생겨서 헤어지자고 한 거였어?!!’

 

 배신감에 눈앞이 깜깜해졌다.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지러운 듯 비틀거리는 하윤의 허리를 단단하게 감싸며 부축하는 손길이 느껴져 안심했다.

 

 눈앞에는 최찬이 블랙 수트를 깔끔하게 입고 하윤과 하체가 맞닿은 채, 건조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대표님!!!”

 

 “쉿!”

 

 최찬은 다시 하윤의 입을 막았다.

 

 “계획 없이 덤비면 다칠 수도 있다고 했던 말 기억나요?”

 

 입이 막혀있는 하윤은 고개만 끄덕였다.

 

 “무턱대고 화낸다고 속이 편해질 거 같아요?”

 

 시무룩해진 하윤은 고개를 떨구며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하면 속이 풀릴 것 같아요? 복수 같은 거 하면 시원할 거 같아요?”

 

 솔직히 복수고 나발이고 하윤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언제나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할 뿐.

 

 최찬이 하윤을 진정시키는 사이, 기현이 탄 차는 이들이 서 있는 기둥을 돌아 출구로 향했다.

 

 그때 하윤의 시야에 들어온 조수석의 여자.

 

 ‘한세은 씨?!!’

 

 최명 전무의 비서 한세은이었다.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어 하윤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노무 새끼가 심어놓은 스파이가 한세은이었네!! 어쩐지 명이 선배 스케줄까지 줄줄 꿰고 있더라니!’

 

 분명한 건… 조애리, 안기현, 한세은은 한 패거리로 작정을 하고 하윤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더 깊은 생각에 빠져드는 걸 막기라도 하듯 최찬이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네. 생각해보니 이미 헤어져서 남남인데, 괜히 따지려고 나섰다가 구질구질하게 질척이는 여자가 될 뻔했어요.”

 

 기특하게도 최찬이 막아준 보람이 있었다.

 

 둘은 라운지 엘리베이터를 향해 나란히 걸었고, 하윤은 그의 훤칠한 실루엣에 걸쳐져 있는 각 잡힌 블랙 수트를 곁눈질로 훑었다.

 

 “대표님은 부모님 추모회에 다녀오시나 봐요?”

 

 “네. 난 라운지에 밥 먹으러 왔는데, 진하윤 씨는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어요?”

 

 “아… 그게… 저도… 저녁 먹으러…”

 

 최명와 같이 왔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형이랑… 왔어요?”

 

 눈치 100단 최찬.

 

 “네… 선배가 생일 때마다… 아니… 가끔 저녁을 사주시기도 하는데, 선배로서 후배를 챙기는… 저녁만 먹고 갈 거예요.”

 

 최찬이 오해하기 전에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에 횡설수설하는 하윤.

 

 그런 그녀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최찬의 입에 의미 모를 미소가 희미하게 번졌다.

 

 라운지 전용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하윤은 탔지만, 최찬은 탈 마음이 없는 듯 바깥쪽에서 문을 잡고 서 있었다.

 

 하윤이 커다란 두 눈에 물음표를 띄우니,

 

 “저녁 맛있게 먹어요. 난 갑자기 라운지에서 먹기 싫어졌어요.”라고 말한 최찬은 문에서 손을 뗐고, 엘리베이터는 문이 닫히며 라운지로 올라갔다.

 

 자신과 최명 때문에 생일 저녁을 포기하게 만든 거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찌이잉~

 

 타이밍 좋게 핸드폰 진동이 울린다.

 

 조금 전에 헤어진 최찬의 문자.

 

 -「마음 불편해하지 마요. 입맛이 없었던 거 뿐이니깐.」

 

 「저녁 거르지 마세요.」

 

 -「내 방으로 데려오고 싶은 거 겨우 참았어요. 다음부터는 혼자 와요. 그리고 오늘 생일 축하해요.」

 

 문자 한 통에 심장이 기분 좋게 콩닥거렸다.

 

 「대표님도 생일 축하해요.」라고 문자를 마무리하니, 도착과 동시에 엘레베이트 문이 열렸다.

 

 “어?!! 선배!”

 

 최명이 먼저 도착해서 하윤을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나보다.

 

 “어떻게 된 거야? 걱정했잖아.”

 

 “죄송해요. 선배.”

 

 “무슨 일 있었어?”

 

 최명의 목소리에서는 걱정과 의심이 반반씩 느껴졌다.

 

 “어머!! 하윤씨~ 어서 와요.”

 

 그 사이 멀리서 최민이 지배인답게 먼저 나와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명이가 소개해준다는 사람이… 하윤 씨였구나?!”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당황한 모습인 최민의 눈에는 불안이 어려있었다.

 

 “명아. VIP룸 비워놨어.”

 

 “하윤아. 룸에 먼저 가 있어. 난 누나랑 할 얘기가 있어서…”

 

 “네.”

 

 하윤은 룸 쪽을 방향을 돌리는 순간, 작게 들리는 둘의 대화.

 

 “며칠 전에 부탁했던 씨씨티비 복사본이야. 그런데 이날 커피숍 씨씨티비가 왜 필요한 거야? 회사 일과 관련된 거야?”

 

 최명에게 USB를 건네는 최민의 의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고마워. 이번 사건의 중요한 증거 자료야.”

 

 조금 더 듣기 위해 최대한 천천히 걸어가는 하윤의 귀에는 완벽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핵심단어는 파악할 수 있었다.

 

 ‘커피숍 씨씨티비? 중요한 증거?’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번 사건에서 최명의 결백을 밝혀줄 증거임이 분명했다.

 

 ‘다행이다. 선배가 억울하게 전부 뒤집어쓰고 물러나는 일은 없겠네.’

 

 “하윤아. 룸은 반대쪽이야.”

 

 최명이 방향을 잃고 주방으로 들어가려는 하윤을 붙잡았다.

 

 

 ***

 

 

 “선배. 잘 먹었습니다.”

 

 최찬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던 하윤은 의심스러울 정도로 풀코스의 요리를 야무지게 다 먹어 치우고 마지막 디저트만 남겨두고 있었다.

 

 “하윤아. 내가 할 말이…”

 

 “선배! 제가 먼저 말할게요.”

 

 하윤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최명의 말을 도중에 차단하듯 끊었다.

 

 아마 혼자서 한 병을 다 마신 와인 탓일 것이다.

 

 “이번 사건 때문에 선배가 어떻게 되는 줄 알고 걱정 많이 했어요. 선배한테는 이 회사 전부인데, 이걸 최찬 대표님한테 뺏길 것 같았어요.”

 

 “의외네. 하윤이 넌 찬이 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전 지금까지 선배와 함께 일했는데, 어떻게 알지도 못하는 최찬 대표님 편이 될 수 있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어.”

 

 평소보다 들뜬 어조의 최명은 희망적인 표정이었다.

 

 “이번 사건이 빨리 잘 마무리돼서, 지금까지 힘들게 회사 이끌어 왔던 거 다 보상받고 선배가 빨리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같이 할래? 하윤이가 옆에서 같이 있어 주면 더 행복해질 거 같아. 옆에 있어 줘.”

 

 하윤이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했다.

 

 “선배 옆에는 애리 선배가 있잖아요. 애리 선배처럼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 선배 옆에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최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지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화가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고백도 안 했는데 거절당한 느낌이네.”

 

 씁쓸하게 말하며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지만, 하윤의 착각이었다.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살았지만, 이젠 나를 위해 살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질 거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거야.”

 

 그는 선전 포고라도 하듯 강렬하게 말했다.

 

 똑똑똑

 

 마침 그때. 다행히도 최민이 들어왔다.

 

 “명아. 대리 기사님 지하에 도착했다고 연락 왔어.”

 

 “누나. 고마워. 우리 이제 가볼게.”

 

 “지배인님. 음식 맛있었어요.”

 

 술기운에 비틀거리며 일어났지만, 감사의 인사는 빼놓지 않았다.

 

 “하윤씨. 술 많이 취했네? 집에 갈 수 있겠어요?”

 

 최민은 하윤을 부축하며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누나 걱정 마. 내가 데려다줄 거야.”

 

 “하윤 씨. 조심해서 가고 또 놀러 와요.”

 

 엘레베이트까지 배웅 나온 최민은 잘 데려다주라며 끝까지 최명에게 당부를 했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최명과 하윤.

 

 그런데 도착했다던 대리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7 x 7… 8 x 2…”

 

 부축하고 있던 하윤은 끝내 구구단을 시작한 걸 보니, 이미 필름이 끊어 먹은 게 분명했다.

 

 최명은 엘레베이트 옆 소파에 하윤을 앉히고 소파 어깨에 그녀의 머리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하윤아 잠시만 여기 앉아있어. 대리 기사 찾아올게.”

 

 대리기사를 찾으러 주차장으로 나간 최명은 계속 하윤이 잘 있는지 돌아보며 차가 세워진 쪽으로 뛰어갔다.

 

 

 ***

 

 

 한편 같은 시각.

 

 찌이잉~ 찌이잉~

 

 스위트룸 거실에서 쌓인 서류 더미 속에 파묻혀있는 최찬의 핸드폰에 진동이 요란하게 울린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간.

 

 ‘누가 매너 없이 이 시간에 전화를 해?!’

 

 귀찮은 듯 팔을 쭉 뻗어 핸드폰을 손에 쥔 최찬의 눈에 들어온 발신자는

 

 「크림빵」이었다.

 

 ‘진하윤?!!’

 

 설마 하는 마음에 최찬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7 x 7?”

 

 “칠칠? 여보세요? 진하윤 씨?”

 

 -“8 x 2?”

 

 “팔이…? 십육!”

 

 이 와중에 구구단 정답을 맞추고 있는 자신에 놀란 최찬은 퍼뜩 정신을 차린다.

 

 “진하윤 씨!... 진하윤!... 하윤아!!”

 

 -“왜!!”

 

 술 취한 아기 목소리에 구구단은 하윤을 특정하기 충분했다.

 

 “술 마셨어요? 지금 어디예요?”

 

 -“찬아~~ 요기 너므 깡깡해. 헉!! 무셥… 악! 귀싱이… $&@!&$#!*”

 

 완전 맛이 간 목소리다.

 

 “하윤아. 잠시만 정신 차려봐.”

 

 최찬은 한쪽 손으로 쓸어올린 앞머리를 고정 시킨채, 안절부절못하며 넓은 거실을 왔다갔다 활보하고 있었다.

 

 -“7 x 7은 49잖아!”

 

 “맞아. 맞는데… 도대체 지금 어디야? 혼자야?”

 

 -“요기가… 어디냐묭…? 요기가 어디징?”

 

 “뭐가 보이는지 말해봐! 건물이나 글자. 간판 같은 거 보여?”

 

 최찬은 어린아이 달래듯 부드럽게 천천히 꼬드기듯 물었다.

 

 -“아!! 요기 글자가….”

 

 글자를 판단할 수 있는 정신은 남아있어서 다행이였다.

 

 “얼른 읽어봐.”

 

 -“강.개.자. 오.애. 추.립.근.지.”

 

 “관계자 외 출입금지?”

 

 용하게 알아들었다.

 

 이 어려운 걸 해낸 최찬.

 

 어둡고. 귀신. 관계자 외 출입금지.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인 최찬은 이 단어 조합으로, 재능 낭비에 가까운 추리를 한 결과.

 

 하윤이 있는 곳이 「비상계단」이라는걸 짐작 할 수 있었다.

 

 “지금 비상계단이야? 몇 층이야?”

 

 -“……”

 

 “여보세요? 진하윤!”

 

 -“……”

 

 대답이 없다.

 

 “하윤아!!!”

 

 -“왜!!”

 

 신기하게 “하윤아.”라고 부를 때만 대답을 하는 하윤을 위해 “하윤아. 전화 끊지 마.”라고 살살 달랬다.

 

 “그랭. 안끄너.”

 

 최찬은 계속 핸드폰 액정에 시선을 두고, 호텔 방에 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었다.

 

 “라운지로 연결해 주세요.”

 

 -“네 라운지입니다.”

 

 다행히 바로 최민이 받았다.

 

 “누나. 진하윤 씨 몇 시에 나갔어?”

 

 -“10분 전쯤 나갔어.”

 

 “혼자 나갔어?”

 

 -“아니. 명이가 대리 기사 불러서 데려다주기로 했는데, 왜? 무슨 일인데?”

 

 “나중에 통화해.”

 

 최찬은 급하게 전화를 끊으며, 소파에 걸쳐져 있는 후드티를 대충 걸치고 뛰쳐나갔다.

 

 몇 층 계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나간 지 10분이라면 분명 호텔 안이라고 생각한 최찬은 자신의 방인 30층부터 비상계단을 훑고 내려갔다.

 

 하윤을 발견한 곳은 비상계단이 끝나는 지하 5층.

 

 소나기를 맞은 듯 최찬이 땀범벅이 되어 있을 때쯤이었다.

 

 “풉!” 최찬은 잠들어 있는 하윤의 상태를 보고 생각지도 못한 웃음이 터졌다.

 

 계단에 녹아내린 연체동물처럼 세로로 누워 굉장히 아늑한 표정으로 잠이 든 하윤.

 

 눈으로 직접 하윤을 확인한 최찬은 안심이 되는 동시에 긴장 확 풀리며, 계단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 와중에 하윤은 어찌나 쌕쌕대며 잘 자는지.

 

 그녀의 얼굴에 붙은 긴 머리칼을 쓸어 넘기니 볼이 발그레한 귀여운 얼굴이 나타났다.

 

 그 얼굴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최찬은 상체를 세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갑자기 잠든 줄만 알았던 하윤이 팔을 활짝 펴더니, 최찬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고, 방심한 상태에서 당한 최찬을 그대로 끌려갔다.

 

 하윤의 입술이 그의 귓불에 닿아 간지럽히며,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또박또박 속삭였다.

 

 “찬아. 오늘 나랑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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