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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붓을 들 것이다.
작가 : 번트엄버
작품등록일 : 2020.9.29

평범했던 주인공이 한여자를 만나 화가를 꿈꾸며 겪는 인생 스토리 입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화가로 살아남기 위한 생존기 입니다.

 
5화. 다른 주유소.
작성일 : 20-09-29 13:24     조회 : 76     추천 : 2     분량 : 7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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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다른 주유소.

 

 

 

  한양 주유소를 나온 세종이와 나는 하릴없이 20여 일을 일을 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장마철이었고 뭔가 모르게 서비스 쪽에서 일하기는 싫었고 편의점 알바도 싫었다.

 

  하릴없이 시간은 흘렀다. 작업실로 꾸며 놓은 내 방은 원래의 내방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었다. 방학을 맞이해서 친척 형이 대전에서 올라와 있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형은 나와 줄곧 같은 방을 쓰고 있었다. 이종 사촌 형인데 이모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집이 경매로 넘어간 이모네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엄마의 바로 밑에 동생이라 우리 집하고 내가 어려서부터 왕래가 잦았던 터라 형과는 친 형제 같이 친하게 지냈었다. 형과 함께 지내는 것은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중2 처음으로 생긴 내방은 형과 같이 쓰는 방이 되어버렸다.

 

  전화가 왔다. 세종이다.

 

  “ 야. 주민아. 너 평촌역으로 지금 와.”

 

  “ 뭐야? 갑자기 전화를 해서는 평촌역으로 오래.”

 

  “ 어. 우리 아빠 아시는 분이 평촌역에 주유소를 연대. 그래서 우리가 세차 경험이 있다고 말을 해놨다고 하더라고.”

 

  뭐? 또 세차냐? 그 4일도 경험이라면 경험이지. 내용을 들어보니 내부 세차 뭐 그런 건 없고 시급 알바라고 했다. 주유소가 커서 주유원만 열 명이 넘는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주유소가 본사 직접 운영과 지역 개인 주유소간의 과열 경쟁이 치열하던 시절이었다. 기름만 넣어도 생수에 음료수, 휴지 등등 엄청난 사은품을 뿌렸었다.

 

  면접은 수월했다. 경험은 일천 했지만, 그나마도 그 유경험자가 드물었기 때문. 사장님과 부장님, 그리고 과장님만 본사 파견 정규직이고 나머지들은 다 계약직이었다. sk본사에서 나오신 분들이라 그런가? 자영업에 점철된 한양주유소 사장님과는 뭔가가 달랐다. 권위는 있지만 권위주의는 없었다. 대학생 알바라고 반말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세종 씨와 주민 씨는 이따가 세차기계 설치 기사님이 오셔서 작동 방법이랑 오류 났을 때 대처법 등을 인수인계받으셔야 돼요.”

 

  “ 네. 기계가 완전 새 거네요. 한 번도 안 쓴 건가요?”

 

  “ 네. 그제 설치해 놓은 거랍니다. 세종 씨, 주민 씨 잘 부탁드려요.”

 

  “ 저희가 잘 부탁드립니다.”

 

  설치기사는 한 시간 남 짓 있으면 온다고 했다.

 

  사거리에 모퉁이에 위치한 주유소는 위치가 좋았다. 당시 평촌은 입주가 다 완료된 신도시였다. 시청까지 이전한 터라 제법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주유소와 정비소가 붙어 있었고, 내부 세차를 할 수 있는 장비들이 주유소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500원만 넣으면 어떠한 기계들이든 간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길었던 장마는 끝이 나고, 계절은 무더운 여름으로 치닫고 있었다.

 

 

 

  “아. 세차 중에 라디오를 켜시면 어떡해요?”

 

  뒤쪽에서 세종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어떡해. 완전히 부러져 버렸네. 어떡해.”

 

  기계 속에서 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순간, 심심하셨는지 라디오를 튼 것이 화근이었다. 물기에 젖은 융이 빠르게 회전하며 돌아가는 힘을 어찌 가느다란 안테나가 버티겠는가?

 

  “바로 저쪽으로 가셔서 정비받으시면 됩니다.”

 

  세차장에서 바로 나오면 그 오른쪽 옆이 바로 직영 정비소가 있었다.

 

  ‘이럴 때 좋구나.’

 

  생각하는 것도 잠시, 손님들이 밀려온다. 오픈 행사로 주유가 3만 원 이상이면 세차가 무료인 까닭이다. 주유소들의 과열경쟁은 서비스 경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소비자 입장이라면 어차피 넣는 기름일 테고 생수에 음료수, 과자 따위도 주니까 좋을 수밖에. 과다한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는 현장이었지만 뭐. 우린 시급 알바이고 심심하게 손님이 오기만을 가다리고 있기보다는 바쁜 것이 오히려 시간도 빨리 가고 좋았다.

 

  “ 주민아. 이 건빵 한 봉지를 어떻게 먹으면 맛있게 먹는지 아냐?”

 

  재미 가득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세종이가 건넨 말이다.

 

  “ 글쎄, 배고플 때 먹는 거 아니냐? 시장이 반찬이니까.”

 

  “ 워. 뭐 나쁘지 않은 해답이었어. 내가 가르쳐 주지. 봉지를 뜯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계속 입속으로 밀어 넣는 거야.”

 

  서비스로 주던 건빵은 작은 봉지에 스무 개 남짓 들어 있었다.

 

  “이렇게 한 봉지를 다 넣고 처처히 씨버.”

 

  보는 내가 다 목이 마르는 기분이다.

 

  “ 계속 먹다 보면 목이 막혀 죽을 거 같아.”

 

  보는 내가 다 죽겠다. 이놈아.

 

  “ 한 봉지를 한 번에 먹는 거야. 그때 진짜 목이 막혀 죽겠다 싶을 때 이 자몽주스를 한방에 마셔버리는 거야. 그럼 시원하게 내려가면서 맛도 죽여.”

 

  별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지만 설명하는 녀석의 표정에서 진정성이라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해봤다.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한 일곱 개 정도 들어가니까 입속에 들어가 있는 채 다 씹지 못한 건빵들이 내 침을 다 흡수해 버렸다. 봉지 속을 들여다보니 아직 열 개는 남은 거 같았다. 계속 씹어가며 한 개씩 한 개씩 밀어 넣는다. 혀로 굴려서 침이 안 묻은 앞쪽에 있는 건빵을 옮기고 싶은데 혀에 쥐가 날 것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열심히 씹는다. 입안에 포화 상태가 되자 식도를 따라 슬며시 내려갈 때쯤에 봉지를 보니 두 개가 남아 있었다. 아. 한계가 온 거 같은데. 캔을 따서 마셔야겠다. 캔을 따려는 순간,

 

  “ 안 돼. 안 돼. 이제 다 왔어.”

 

  어이없게 응원을 해주고 있는 세종이.

 

  눈물 찔끔 나는 것을 참으며 열심히 저작 운동을 한다. 어라? 계속 씹으니까 침이 더 나오면서 한결 편해졌다. 이제 한 개만 먹으면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마지막 한 개를 욱여넣고 자몽주스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신다.

 

  형체가 남아있을 것 없이 하나가 되어버린 탄수화물 덩어리가 입 안 가득 식도까지 꽉 막힌 상황에서 자몽주스가 들어가니 마치 막힌 변기가 뻥 뚫리듯이, 머리카락으로 꽉 막힌 세면대가 뚫리 듯, 자몽주스는 마치 뚫어 뻥 같이 입 안 가득 머금고 있던 하나가 되어버린 건빵을 내려 보내 주었다.

 

  “ 아 죽는 줄 알았네. 헥. 헥.”

 

  “ 야 죽이지 않냐? 뭔가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냐?”

 

  이 변태 같은 녀석 같으니라고.

 

 하지만 진짜 나쁘지는 않았다. 뭔지 모를 후련함이 그렇게 나쁘지 않은 까닭이다. 이렇게 소소한 재미로 주유소의 세차원으로 세종이와 보름째 보내고 있었다. 날짜는 7월 중순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 전화 왔네. 잠깐만.”

 

  “여보세요. 어 충재야. 웬일이야?”

 

  “어. 주민아. 너 지금 어디야?”

 

  수화가 저편에서 충재의 목소리가 들린다. 뭔지 모를 다급함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나. 여기 평촌역이야.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어?”

 

  “아. 그래. 이따가 학원 마치고 내가 그쪽으로 갈게.”

 

  오랜만에 주말이니까 술이라도 한 잔 하자는 것일까? 아니 충재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여기 온다니.”

 

  “ 이따가 만나서 얘기 하자.”

 

  ‘ 무슨 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온다니까 기다려 봐야지.

 

  “ 세종아. 이따가 충재가 온대.”

 

  “ 충재 그 녀석이 웬일이냐?”

 

  “ 학원 녀석들 본지 벌써 두 달이 다 돼가네.”

 

  “ 그러고 보니 특강 들어갔나?”

 

  “ 아직 이르지. 다음 주부터 들어가겠네.”

 

  시간이 흘러 마칠 시간이 다 되어갔다. 전화가 온다.

 

  '이번에는 철이 녀석이네.'

 

  “ 어. 웬일이야? 충재 만나기로 했는데.”

 

  “ 주민아. 나도 같이 왔어. 2번 출구로 나가면 되는 거냐?”

 

  “ 어. 2번으로 올라와. 기다리고 있을게.”

 

  철이와 충재는 나의 학원 동기이자 강사 동기이기도 하다. 입시생으로 같이 경쟁을 하던 시기에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녀석들과는 강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친해지게 되었다. 강의를 처음 하다 보니까 공유해야 될 문제들도 많았고, 서로 독려하며 학원을 키워 보자고 늘 다짐을 하던 동료들이 되어 있었다. 실력들이야 다들 출중해 다들 입학할 때 장학금을 받은 녀석들이다.

 

  “ 이쪽이야.”

 

  출구 앞에서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다가 얼굴이 보이자 반가움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 야. 주민이. 진짜 오랜만이다. 밖에서 일해서 많이 탔구나.”

 

  “ 그렇지. 그늘이 별로 없다.”

 

  “ 주민아. 잘 지냈지?”

 

  충재 녀석이 인사를 한다.

 

  “ 뭐. 보시다시피 일은 인제 완전히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 세종이는?”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철이가 세종이를 찾는다.

 

  “ 아직. 어 저기 나오네.”

 

  “ 잘됐다. 세종이도 같이 얘기 좀 하자.”

 

  “ 야 오세종. 여기야 여기.”

 

  철이가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 여 어. 오랜만이다. 다들.”

 

  “ 세종이도. 많이 탔네.”

 

  “ 뭐. 그렇지 머. 다들 밥 안 먹었지?”

 

  “ 그렇지. 학원 끝나고 바로 왔으니까.”

 

  “ 그럼. 여기 조금만 걸어가면 곱창 집 있는데 거기 가서 회포나 풀까?”

 

  “ 얼마나 가면 되는데?

 

  “ 한 십분 정도?”

 

  “ 그래 그럼 가보자.”

 

  한참을 걸었다. 잠깐이라고 말했던 거리는 전철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 사실 평촌역에서 범계역까지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세종이는 자전거로 출, 퇴근을 하고 있어서 자기는 빨리 가서 자전거를 집에서 세워놓고 온다고 하고 먼저 가 버렸다. 계속해서 걸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친구들이 찾아온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 주민아. 너 다시 학원에 나와야겠다.”

 

  “ 무슨 소리야?”

 

  “ 너 휴학했다며. 주말 강사 말고. 이제 다음 주면 특강 들어가잖아.”

 

  “ 그렇지. 근데 강사들 꽉 차 있잖아.”

 

  “ 아니. 씨발. 원장이 너 자른다고 우리한테 말도 안 했었잖아.”

 

  충재는 모태신앙이 있는 친구다. 욕 하는 거 첨 본다.

 

  “ 주민아. 네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 이제 와서 뭔 소리들이야. 주말에 학생들이 없어서 그런 거잖아. 난 별로 상관 안 했는데.”

 

  “ 그거는 그거고. 너 배샘 소식 못 들었지?”

 

  “ 배샘. 보고 싶네. 잘 지내시지?”

 

  배샘은 우리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부터 우리 학원에서 소묘를 가르쳐 주신 분이다.

 

  “ 배샘. 수술해야 돼서 학원 그만두셨어.”

 

  “ 뭐? 그 건강한 사람이 왜?”

 

  “ 그게. 문제가 생겼어.”

 

  이야기들 듣다 보니 내용은 이랬다. 배샘 아버지는 영등포 경찰서장으로 우리에게는 악명이 높은 사람이었다. 열심히 사는 자식들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조각 과로는 한국에서 최고의 대학을 간 배샘 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많이 했다.

 

  “ 너 따위가 대학 나오면 대학 나온 노숙자가 되겠지. 뭐 하러 다녀?”

 

  이런 식으로 자존감을 짓밟아왔다. 배샘이 대학 다닐 즈음 재혼까지 하셔서 자식들과 멀어진 틈을 매울 생각도 없는 괴짜 중에 괴짜였다. 근데, 그런 아버지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배샘이 자신의 간을 떼어 주게 되었다는 것. 조금 이해가 안 갔다.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하는 아버지에게 자신의 소중한 간을 어쩌다가 떼어줄 생각을 했을까? 당시의 나로 써는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열심히 설명을 해준 덕에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 그래서 특강을 시작으로 학원에서 수업 도와달라는 거야?”

 

  “ 원장 선생님. 완전히 후회하고 계신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네가 정말 필요하다고 하시더라.”

 

  그래 내가 필요하다니 기분 좋은 말이다. 하지만 배샘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살면서 누군가가 간 이식 수술을 했다는 말을 들어 보지 못 한터다.

 

  “간을 어떻게 이식한다는 거야?”

 

  “ 우리 장기 중에 유일하게 스스로 자라는 게 간이라는 장기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배샘 아버지의 간은 암 덩어리가 모든 간에 분포하고 있어서 제거 수술만 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다른 장기에 전의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했다. 배샘과 유전자가 맞아 삼분의 일 정도 이식을 하면 스스로 자라 그 기능이 약하긴 하지만 점점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론이 그렇다고 하니 믿어 보는 수밖에 없지만 배샘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두려움과 외로움은 얼마나 크겠는가?

 

  “ 그래서 수술은 언제래?”

 

  “ 수술도 급하게 잡힌 거 같아. 어제 입원하셨대.”

 

  충재 녀석은 배샘을 무척 따르던 친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배샘이 조각을 전공하고 있었고. 충재는 공업디자인과에 입학한 터라 재료부터 작업 과정까지 물어볼 것이 많았을 것이다. 묻거나 배워야 할 대상이 갑자기 사라졌으니 그 허망함이 가장 클 터였다.

 

  “ 걱정이겠다. 뭐 이런 일들이 갑자기 생기냐?”

 

  대화를 하는 동안 우리는 이미 범계역에 도착해 있었다. 세종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 가만 그러면 내가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면 세종이만 주유소에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일을 구하는 것부터 적응하는 것까지 옆에서 모든 것을 같이 해 온 세종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선택지는 분명했다.

 

  “야. 어디야? 영풍문고 앞으로 와.”

 

  세종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 아. 시간 맞춘다고 열나게 달렸더니 땀난다. 땀나.”

 

  “ 네가 말한 곳이 어디야? 원래 곱창은 중앙시장이 최고인데.”

 

  그래 맞다. 안양 중앙시장에 위치한 곱창 골목은 안양의 명물이다.

 

  “ 그렇지. 그 맛이 제 맞지. 근데 여기도 만만치 않다. 그거 먹자고 차비 들여 나갈 수는 없고 오늘은 여기서 즐겨보자고.”

 

  “ 곱창이 다 곱창이지. 배고프다. 어서 가서 먹자.”

 

  곱창 집은 여느 집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곱창은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음식이다. 주머니가 서로 가볍다 보니 어디 가서 술 한 잔 하려다 보면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았는데 곱창볶음은 머릿수보다 1, 2인분 적게 시켜도 나중에 밥을 볶아먹을 수 있어서 배를 채우기에도 술안주로도 좋았다. 그 맛도 일품이지만 적은 비용으로 주린 배와 술 한 잔 하기에도 딱 이었다.

 

  “ 사장님 여기 밥 좀 볶아 주세요. 3인분이면 되겠지?”

 

  “ 어 그 정도면 충분하지.”

 

  한참을 먹을 나이지만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적당히 시키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 저기. 세종아.”

 

  “ 어 말해. 사내 새끼가 뭐 그렇게 뜸을 들이냐?”

 

  “ 배샘이 갑자기 수술을 하게 돼서 학원에서 내가 필요한가 봐.”

 

  한참을 떼지 못했던 입인데 술을 한 잔 마시니 용기가 났다.

 

  “ 배 씨가 왜? 그 건강한 사람이.”

 

 세종이는 배샘이 없는 장소에서는 배 씨라고 부른다.

 

 자초지종을 다 설명했다. 세종이 역시 배샘을 걱정하고 있었다.

 

  “ 뭐. 어쩔 수 없네. 주민이가 가서 애들 도와주는 수밖에...”

 

  저도 서운하겠지만 세종이는 쿨 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장 내일모레부터 수업할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나만 다시 들어가면 쉽게 해결될 문제였다.

 

  “ 난 괜찮으니까. 나중에 강사 자리 또 나오면 그때 나나 써줘.”

 

  상황을 받아들인 녀석은 침착했다.

 

  “ 그래. 내가 들어가서 너의 자리를 만들어 주마.”

 

  우리 학원은 새끼 강사들이 많았다. 차비 정도만 줘도 하겠다는 녀석들이 있어서 원장 선생님은 쉽게 새끼 강사들을 키울 수 있었다. 그중에 의욕 있고 학원일 배우고 싶어 하고 연구 작도 많이 하며 학원의 발전에 기여하는 강사들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강사가 되긴 했지만 학과 수업 쫒으랴, 과제하랴, 학원에 소원한 강사들도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강사들은 수업을 오래 하지 못했다.

 

  “ 그 말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였냐?”

 

  “ 그래도 고맙다. 이해해줘서.”

 

  세종이가 예민하게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민들을 많이 했었다.

 

  “ 고맙긴.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

 

  “ 이번 특강에는 나만 들어가지만 다음 특강에는 세종이도 들어가자.”

 

  “ 워. 주민이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고맙네.”

 

  학원 일보다 밴드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라 세종이는 원래 학원 강사에는 관심이 별로 없었다.

 

  “ 농담 아니야. 학원 몸집 키워서 네가 와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겠어.”

 

  이렇게라도 말하고 나와야 했다. 한 달 여간 같이 일하며 고생한 친구에게 갑자기 내가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니 녀석은 쿨 한 척 하지만 속내는 아마 실망을 했을 것이다. 일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친구랑 낄낄거리며 놀 수 있던 공간. 나 역시 이 공간이 그리울 것이다. 그리고 추억도 쌓았다. 짧았지만 강렬했던 나와 세종이의 주유소 입성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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