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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8화) 일급비밀
작성일 : 20-09-26 13:49     조회 : 239     추천 : 0     분량 : 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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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단비 씨. 꽃 배달 왔습니다.”

  연극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헬멧으로 얼굴을 감춘 사람이 패기 있는 태도로 들어와 꽃바구니를 전달해 주고 나갔다. 선배와 남자들이 외부 일정으로 자리를 비워 여자들끼리 있을 때였다.

  “우와. 예쁘다.”

  막내가 꽃바구니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웬일로 정하는 힐끗 보기만 하곤 제 일에 집중했다. 꽃바구니는 갖가지 꽃들을 사용한 듯 보였지만 메인이 되는 꽃이 따로 있었다.

  “이건 백합인가? 맞죠. 이런 백합도 있었네.”

  막내가 메인 꽃을 가리켰다. 꽃은 꽃잎 안쪽에 반점 무늬를 품고 있었는데 무늬 쪽으로 갈수록 연 노란색을, 바깥으로 뻗어나갈수록 하얀색을 띠었다. 꽃술이 밖으로 삐져나올 정도로 길었고, 모양 역시 나팔과 닮아서 백합처럼 보였지만 꽃잎 끝이 뾰족하지 않고 둥그스름해서 완전한 백합 같지는 않았다.

  “백합이 아니라 알스트로메리아야.”

  정하가 컴퓨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슬쩍 본 게 다였으면서 그새 파악을 했다니. 역시 플로리스트 자격증이 있는 여자. 실력은 인정해줘야 했다.

  “아하. 알스트로메리아. 꽃말은 뭔데요?”

  막내는 그 꽃이 마음에 든다며 꽃말을 알고 싶어 했다.

  “새로운 만남.”

  꽃에 관한 거라 무의식적으로 대답하던 정하는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엔 호기심이 가득했다.

  “바구니 안에 카드는 없어?”

  “보나마나 단비 언니 애인이 보냈을 텐데요, 뭐. 맞죠?”

  나의 이별을 회사에는 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하의 관심이 싫었고, 집중하지 못하면 이별 때문이라고 생각할까봐 그런 게 너무 끔찍해서 비밀로 했다. 그러니 사람들은 우리가 여전히 잘 만나고 있을 거라 생각해 이 꽃바구니도 현수가 보낸 거라 믿는 거겠지.

  “어! 카드 여기 있어요. 어서 읽어 보세요. 어서.”

  막내가 한 발 빨리 카드를 찾아냈다. 나도 보낸 이가 짐작되지 않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에게 꽃을 보낼 사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뿐이었으니까.

  <소주연명>

  카드엔 그리 적혀 있었다.

  <소주연명>

  어떤 설명도 없이 딸랑 그것뿐이었지만 나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았다.

  소. 소리

  주. 주나.

  연. 연지.

  명. 명인.

  각자 이름의 앞글자만 따서 만든 우리의 또 다른 이름. 우리는 이걸 사과할 때 주로 썼다. 좋은 말은 그냥 해도 얼른 닿았지만 사과는 아무리 해도 상대에게 닿기가 쉽지 않으니 우리만의 이름으로 진심을 전하는 거였다.

  사실 내 이별소식에 친구들은 며칠 동안 내 눈치를 봤다. 누군가가 실수로 데이트한 얘기를 공유하면 나머지가 구박을 했다. 물론 내가 보는 앞에서는 아니고 뒤에서 모르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다 알고 있었다. 한때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으니까.

  내가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받아보니 썩 좋지만은 않은 배려였다.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너무 쉬쉬하니 숨이 다 막혔다. 게다가 나 때문에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단체 톡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당분간은 그러려고 했는데……이렇게 깜짝 선물을 보내오다니.

  ‘바보들. 단이 빠졌잖아, 단이. 소주연명단. 이게 진짜 우리의 이름이면서.’

  “뭐가 좋아서 그리 히죽거려. 같이 좀 웃자.”

  내가 카드를 들고 웃자 궁금했는지 정하가 순식간에 다가와 카드를 빼앗아 갔다.

  “소주연명? 이게 뭐야.”

  뭐긴 뭐야. 너는 절대로 알 수 없는 거지.

  “저도 보여주세요. 소주연명. 소주하고 연명인가요? 소주로 목숨을 이어간다는 뭐 그런 뜻이에요?”

  막내의 새로운 해석에 나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소주연명단에게 이 얘길 해주면 틀림없이 배꼽을 붙잡고 굴러다닐 터였다. 내 웃음이 길어지자 막내는 이유도 모르면서 같이 웃었고, 정하는 듣기 싫은 소음이라도 된다는 듯이 혀를 찼다.

  “혹시 아까 그 남자가 보낸 거야?”

  내가 카드를 소중하게 가방에 넣자 도정하는 기어이 윤완을 소환했다. 새로운 남자 얘기에 막내가 눈을 반짝거렸지만 나는 해줄 말이 없었고, 그냥 넘기는 내가 못마땅한지 정하는 눈을 흘겼다.

  “분위기가 소란스럽네요?”

  고맙게도 황규성이 방문했다. 대본이 나오지 않아서 당분간은 만날 이유가 없었는데, 그는 지나가는 길에 들려본 거라고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각자 먹고 싶은 게 달라서 규성에게 선택권을 줬다. 나는 그가 저번에 가지 못했던 국숫집에 가자고 할까봐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그는 무난하게 김치찌개를 선택했다.

  우리는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눴다. 막내의 주도하에 주로 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규성은 tv를 잘 안 봐 모른다고 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호응을 잘해줬다.

  “연애는 일부러 안 하시는 거예요? 또 상처받을까봐 두려워서?”

  규성이 등장한 후부터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정하가 예고도 없이 훅 들어왔다. 친한 사이도 아니면서 그런 건 왜 묻는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순간 막내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도 그리 생각하는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연애, 하고 싶죠.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도 되어 있다고요. 그저 아직 상대를 못 만난 것뿐이에요.”

  “그 상대의 조건이 뭔데요? 따지는 게 많으신가요?”

  “조건 같은 건 없어요. 저처럼 가슴 속에 사랑만 많으면 돼요.”

  도정하의 무례한 질문에도 규성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나는 같은 팀원인 그녀가 너무 창피해서 빨리 식사를 끝내고 싶었다.

  “단비 씨는 저와 얘기 좀 하고 들어가세요.”

  회사로 돌아가려는 나를 규성이 붙잡았다. 다른 두 사람이 수상쩍게 바라봤지만 연극 때문이라는 말을 덧붙이자 수긍하고 돌아섰다.

  “사실 연극은 핑계고요. 커피가 마시고 싶었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혼자 하고 싶지 않아서요. 괜찮으시죠?”

  마주앉은 그가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그럼 다른 사람들과도 같이 마시지 그러셨어요.”

  “커피만큼은 편하게 마시고 싶었거든요.”

  그 말인즉, 나는 편하다는 건가.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우리는 비밀을 공유한 사이니까.

  “흉보려는 건 아니지만 도정하 씨는 항상 날이 선 느낌이네요. 어떨 땐 무서워요.”

  규성은 정하의 큰 단점을 콕 집었다. 그건 그녀를 몇 번 만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그녀의 친한 친구였다면 고칠 수 있도록 마구 잔소리를 해댔을 텐데. 어째서 그녀의 주변엔 그런 사람이 없는지 안타까웠다.

  규성과 나는 대화 없이 커피만 마시다가 어느 순간 말문이 트여 주제 없이 닥치는 대로 서로에게 전달했다. 그러다 결국엔 프러포즈 연극으로 넘어갔다.

  “형 때문에 안 해도 되는 고생을 하시죠?”

  “전부 돈 받고 하는 일인데요, 뭘.”

  “그래도 너무 까다롭고 요구사항도 많잖아요.”

  “돈 많이 주시니까 괜찮아요. 하하. 제가 너무 돈돈 했나요? 농담이에요. 아시죠?”

  규성이 너무 미안해해서 살짝 장난을 쳤다. 나는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짧게 내보일 뿐이었다. 무안해진 내가 커피 잔에 얼굴을 묻자 그가 말했다.

  “제가 일급비밀을 알려드릴게요. 단비 씨한테만 특별히 알려드리는 거니까 어디 가서 소문내시면 안 돼요.”

  규성이 비장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잡았다. 비밀에 ‘일급’이 붙으면 주로 부정적인 이야기라 듣기도 전에 가슴이 답답하고 뻐근했다.

  “사실 사촌 형이 많이 아파요. 그래서 그날 이벤트는 프러포즈가 아니라 이별식이 될 거예요.”

  갑자기 고지대에 올라선 것처럼 귓속이 먹먹하고 눈앞이 흐려졌다. 그래서 규성이 계속 무슨 말을 하는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비 씨. 비밀 지켜줄 거죠?”

  차라리 잘 됐다.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상태가 금방 호전돼 주변의 소음이 하나씩 귀로 들어왔다. 규성의 목소리도.

  “비밀 지켜줄 거죠?”

  “그 여자 분은 알고 계세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내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규성은 말이 아닌 고갯짓으로 답을 보냈다. 고개를 앞뒤로 두 번 꾸벅꾸벅. 슬픈 고갯짓.

  다행이었다. 만약 그녀가 모른다는 대답을 내놓았다면 나는 이 일에서 손을 뗐을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고, 그래서 준비도 없이 뒤통수를 얻어맞으면 얼마나 처참한지 아니까.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주 다르지는 않으니 나는 그녀가 느낄 고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는 왜 하시는 거예요?”

  지금까지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던 얘기를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듯 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가십거리를 내뱉듯 심심해서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히 말할게요. 같이 일하게 됐으니 그 팀에서 한 사람 정도는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혹시 모를 문제가 생겨도 모두가 패닉에 빠지진 않을 테니까요.”

  “패닉이요?”

  무엇에 대해 말하는 걸까. ‘패닉’이란 단어까지 사용한 걸 보면 생각으로라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일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다는 건 그의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린 것보다 몇 배는 더 슬픈 일이겠지.

  그런 현실을 앞두고 있는 여자가 가여웠다. 나무 냄새 때문에 수목원을 좋아하고, 아직도 불량식품을 사먹고, 재채기 할 때면 윙크를 하듯 한쪽 눈을 감고, 사귀기도 전에 키스를 허락한,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정작 얼굴은 모르는 그녀가 측은했다. 옆에 있다면 꽉 안아주고 싶을 만큼.

  “그게 왜 저인 거죠? 대표님한테 말씀하시지. 아님 다른 사람들도 있잖아요.”

  규성이 원망스러웠다. 나는 아직 내 이별도 소화 시키지 못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이별까지 담아두고 있어야 한다니. 불공평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건 단비 씨니까요.”

  “저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믿음까지…….”

  말을 하다 보니 원망이 분노로 둔갑했다. 내 이별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나한테 이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 거지?

  “제가 어떻게 보이세요?”

  “네?”

  “괜찮아 보여요? 웃고, 먹고, 잠자고, 일하고, 똑바로 걸어 다니니 멀쩡하게 보여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비로소 이해한 규성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일그러져 갔다. 내게 미안하고, 동시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당신도 이별해 봤잖아요. 힘들어 봤잖아. 그럼 진짜 내 상태가 어떤지는 보일 거 아니에요.”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면서 낸 소리가 요란했는지 주변의 이목이 집중됐다. 창피해진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카페에서 나와 첫 번째 골목의 끝에 당도할 때까지 뜀박질을 멈추지 않았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오로지 아픈 내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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