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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9화) 라벤더 모임에서
작성일 : 20-09-19 18:02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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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카페가 줄지어 있는 골목을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황규성이 알려준 장소가 나왔다. 하얀색과 파란색이 적절하게 섞인 카페 건물은 산토리니 여행기에서나 나올 법한 청량감이 느껴졌다.

  나는 건물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본 뒤 대문 앞으로 갔다. 허리만큼 오는 낮은 대문 안쪽으로 정원이 보였다. 정원엔 한 종류의 꽃만 심어져 있었는데 이미 꽃은 지고 꽃대만 남아 있었다.

  꽃대만으론 그 아이의 정체를 식별해 낼 수 없었다. 옅게 남아 있는 향으로 라벤더가 아닐까 유추해 봤다. 라벤더가 가득 핀 정원. 현수의 꿈. 휴. 여기까지 현수를 달고 온 내가 정말 미웠다.

  정원 옆으로 연결돼 있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현관문이 나왔다.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당겨보지만 열리지 않았다.

  ‘이번 주 금요일에 모임이 있어요. 관심 있으시면 연락해 놓을게요.’

  혹시 규성이 날짜를 착각한 걸까. 나는 다시 한 번 시도해 보려다 미처 보지 못한 안내문을 발견했다.

 

  안내말씀 드립니다.

 

  금일 21:00에 모임이 있는 관계로 20:00부터 카페 이용이 불가합니다.

  헛걸음 하시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 라벤더 모임 참석자분들께선 초인종을 눌러주세요.

 

  문 옆에 빨간 점이 달려있었다. 나는 안내문의 마지막 문장을 곱씹은 뒤 초인종으로 보이는 그 빨간 점을 눌렀다. 곧 나긋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라벤더 모임에 오셨나요?”

  “네.”

  “성함을 말씀해 주세요.”

  “고단비요.”

  “고단비 님. 네. 확인됐습니다. 들어오세요.”

  잠시 후 현관문이 열렸다. 내 의지로는 열 수 없었던 문이 이토록 쉽게 열리자 마치 허락된 자만이 들어올 수 있는 신성한 성전에 발을 들인 기분이 들었다. 문 뒤에서 나를 반긴 건 나보다는 조금 나이가 있어 보이는 여자였다.

  “처음이시죠? 시작하려면 30분은 더 있어야 하니까 우선 편히 쉬고 계세요. 준비된 다과는 자유롭게 드시면 돼요.”

  그녀의 한 마디로 그녀가 초인종 속의 여자라는 걸 알게 됐다. 목소리만큼이나 친절한 여자였다.

  그녀를 따라 복도처럼 생긴 공간을 지나가자 넓은 거실이 나왔다.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블들이 벽을 향해 밀착돼 있었고, 가운데엔 열한 개쯤 되는 의자가 동그랗게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그녀가 말한 대로 다양한 다과가 준비돼 있었다.

  규성에게 듣기론 카페 주인이 모임을 위해 무료로 공간을 내줬다고 했다. 나는 카페 주인이 이 모임에 얼마나 큰 애착을 갖고 있기에 장사까지 접어가며 공간을 대여해줬는지 궁금했다.

  그곳엔 이미 여섯 명의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모임의 시작을 기다렸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구석에 홀로 놓여 있는 의자로 가 앉았다.

  그러는 동안 누구도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각자가 정해놓은 공간에서 휴대폰을 보거나 멍하니 허공만 응시했다.

  그들의 서로 다른 행동 속에서 나는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표정이었다. 그들은 모두 지치고 무겁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순간 여기 모인 모두가 나와 같은 목적을 안고 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상기됐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사람들. 그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가련한 자들. 그리고 그들과 다르지 않은 나.

  갑자기 숨이 막혔다. 처참하게 찢기고 발겨진 사람들과 대체 뭘 하겠다고 여길 왔을까. 본인의 아픔조차 감당하지 못해 아스러지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 더는 생각할 것 없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고단비 님. 어디 가시려고요?”

  현관문에 다다르자 처음 만났던 여자가 나를 불러 세웠다. 친절하게 대해준 그녀에겐 미안함이 생겨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아요.”

  “그러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세요.”

  여자는 내게 이유를 묻지도, 붙잡지도 않았다. 정중히 묵례를 하는 그녀에게 똑같이 인사를 해주고 돌아서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내 안에 있는 수많은 나 중에서 비주류인 누군가는 그녀가 붙잡아주길 바라는 듯 했다.

 

  금요일 밤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거리는 활기찼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 이상이 서로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커플이었다. 그 속에서 나는 길을 잘못 들어선 이방인 같았다. 혹은 내릴 곳을 착각해 잘못 떨어진 부스러기나. 뭐가 됐든 나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았다.

  내게도 한때는 다정한 연인이 있었다는 걸 저들은 알까. 나도 그때는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었다는 걸 저들은 모를 테지.

  옷 가게의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몹시 처량했다. 현수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홀로 거리를 헤매는 게 아니라 그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에 있을 현수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허전함을 느끼고 있으면 좋겠다. 그가 행복하다면 아니 그만 행복하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이 좋은 날에 왜 혼자 있어요. 바람 맞았어요? 실은 나도 그런데. 심심하면 같이 놀래요?”

  내 옆으로 낯선 이가 다가왔다. 광이 나는 가죽자켓을 입은 남자는 불쾌할 정도로 느물거리며 내게 매력을 어필했다.

  나는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남자를 피해 걸음을 옮겼다. 혹여나 자신을 무시했다고 해코지를 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는 다른 목표물을 찾아 떠나갔다.

  그 후로도 몇몇이 더 말을 걸어왔다. 어떤 놈은 끈질기게 따라붙어서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현수와 만날 때는 혼자 있어도 남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금보다 훨씬 상태가 괜찮았는데도 말이다. 무슨 차이지. 솔로만의 냄새가 있는 걸까. 아니면 외로워 보여서 손쉽게 유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나는 할 수 있다면 그만 치근덕대라고 등에 써 붙이고 다니고 싶었다. 내게 필요한 건 하룻밤의 쾌락이 아니라 깊은 사랑이었다.

  의식 없이 걸어 다녔더니 회귀하는 연어처럼 어느새 처음의 그 카페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2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기왕에 왔으니 안으로 들어가 볼까 했지만 생각처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까 비겁하게 도망쳤으니 모임에서 다시 받아줄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고민하다 정원 옆에 비치된 테이블에 앉았다. 꽃대들이 잘 보이는 위치였다. 그것이 라벤더라는 전제하에 꽃을 하나하나 피워본다. 금세 보랏빛으로 물든 정원은 바람을 따라 하늘하늘 흔들렸다. 상상이지만 보고 나니 기분이 꽤 괜찮아졌다.

  “고단비 님. 여기서 뭐하세요?”

  모임에서 나를 맞이했던 여자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하곤 내게 물었다. 정원에 멋대로 들어왔다고 한 소리 하려나 했는데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나를 환영했다.

  “잘 오셨어요. 어서 들어가세요. 모임은 시작됐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다들 한 번씩은 그러는데요, 뭘.”

  무안하지 않게 달래는 솜씨가 능숙했다. 배려가 몸에 밴 사람 같았다.

  “혹시 혼자 들어가는 게 싫으신 거면 저랑 같이 가세요. 우선 심부름 하나만 하고요.”

  나는 별 고민 없이 여자의 뒤를 따라갔다. 그녀의 목적지는 큰 문구점이었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나는 그녀의 이름이 이준서라는 것과 그녀가 카페 주인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됐다. 그토록 궁금했던 카페 주인이 그녀라서 더 반가웠다.

  “모임 주최자는 따로 있어요. 저는 조수쯤 되려나. 그보다 더 아래일 수도 있고요.”

  모임에 대해 설명하던 그녀가 느닷없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그칠 줄 몰랐다.

  우리는 볼일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돌아왔다. 카페에선 처음에 맡아보지 못했던 향이 옅게 느껴졌다. 그 향은 비온 뒤 숲이나 흙에서 나는 축축한 자연의 향이었다.

  나는 이준서가 시키는 대로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그 향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몸은 물론 감정까지 릴렉스됐다.

  “어때요. 긴장이 좀 풀리시나요?”

  “네. 편안해졌어요.”

  “그래서인지 오시는 분마다 마음에 쌓인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으시더라고요. 단비 님에게도 오늘이 그런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준서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나를 들여보냈다. 그녀가 함께 있길 바랐지만 따로 일이 있다는 그녀를 계속 붙잡고 늘어질 순 없었다.

  입구에서 슬쩍 보니 의자가 두 개나 비어 있었다. 하나는 내 자리일 테고, 다른 하나는 누굴까. 용기가 없어 도망친 그 사람은 나처럼 되돌아올 수 있을까.

  나는 어디에 앉을지 고민했다. 새롭게 등장한 나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으니 어디에 앉으나 똑같았지만 골라 앉고 싶었다. 이상한 심리였다. 나는 상대적으로 얼굴에 생기가 도는 사람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까지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여자는 내가 낸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의 눈동자에서 뭔가가 일렁였다. 그건 호기심이 분명했다.

  “차였어요, 찼어요?”

  역시나 호기심. 내가 못 들은 척 가만히 있자 여자가 내 곁으로 의자를 바짝 끌어당겼다. 부담스러운 몸짓에 놀란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여자를 경계했다. 그때 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커트머리의 여자가 끼어들었다.

  “언니는 왜 오는 사람마다 그런 걸 물어봐요? 차면 어떻고 차이면 또 어때서. 여긴 이별에 아픈 사람이라면 누구나 올 수 있는 곳이라고요.”

  “아니. 그렇지 않아. 상대를 찬 사람은 절대로 올 수 없어. 그 인간들은 아파할 자격도 없다고. 알잖아.”

  여자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그 순간 그녀에게 있던 생기가 빨대로 빨아들인 것처럼 쪽 빨려 나갔다. 그녀는 그 서늘한 감정을 내게도 풍겼다.

  “그러니까 만약 차 놓고 후회하는 거라면 돌아가세요. 물론 상대방이 너무 힘들게 해서, 나쁜 놈이라서 이별을 고한 거라면 해당되지 않아요. 그런 경우라면 누구도 당신을 탓할 수 없어요.”

  우리의 이별에서 찬 사람은 현수였다. 여자의 생각대로라면 현수는 아파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난 현수가 아팠으면 좋겠다. 내가 아픈 것보다도 더. 더. 더. 훗날이 되더라도 나 때문에 아프고 슬퍼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내 미련한 사랑이 덜 억울할 테니까. 내 상처가 깨끗하게 아물 수 있을 테니까.

  “죄송해요. 갑자기 배가 아파서 참을 수가 없었어요.”

  한 남자가 서둘러 들어왔다. 물기어린 손을 손수건으로 닦는 그는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살짝 숙인 얼굴의 라인이 남자다우면서도 부드러웠다.

  어!

  나는 그 멋진 얼굴이 내가 아는 사람이라서 그만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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