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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작가 : 코리아구삼공일
작품등록일 : 2020.9.10
버들밭아이들(작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연재 쉽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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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배경을 제외하고, 모두 허구이며 인물들은 가공의 인물들입니다.>
이젠 사라져가는 대가족세대와 시골의 마을공동체생활을 겪은 70,80세대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그저 평범한 아이의 눈으로 부모님세대를 바라본 옛 이야기입니다.

 
겨울 사과포장하기 & 장날 사과팔던 날
작성일 : 20-09-25 06:52     조회 : 288     추천 : 2     분량 : 9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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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사과포장하는 날

 

  가장 늦게 따는 사과는 국광과 부사이다. 국광은 크기가 작고 과육이 딴딴하고 맛이 짭잘한 맛이라고 할까? 국광은 겉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볼품이 없다. 그러나 오래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부사는 크기가 크고 적갈색을 띤다. 과육도 비교적 단단하면서 아삭하다.

 국광은 들여온지 가장 오래된 품종일 것이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 사과가 홍옥, 국광이 대부분이었고 부사는 그 후에 들여왔다.

  우리 사과밭에서는 12월 초까지 국광을 땄던 기억이 난다. 사과를 따서 지하실에 저장하기도 하고 수확해서 바로 사과박스에 포장을 해서 공판장에 싣고 가기도 한다.

 우리아부지는 한달쯤 지하실에 저장했다가 설날 전에 사과포장을 해서 커다란 트럭에 500상자 정도 싣고 공판장에 출하했다. 그 사과를 포장할 때는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

 엄마는 사과를 딸 때, 사과포장을 할 때 작업경험이 있으면서 일을 도와줄 아주머니를 구하는 것이 큰 걱정이었다. 온갖 인맥을 총동원하여 일하실 분을 구해야한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일해주시는 분들중에 할머니들도 많았다. 할머니들은 겨울 사과포장을 하러 아침 일찍 오신다. 겨울에 굉장히 추울 때는 냇가가 꽁꽁 얼어붙는데 강 건너에 사시는 분들은 멀리 있는 다리를 건너오는 것보다 얼어붙은 강물이 꽁꽁 언 얼음 위로 건너오는 것이 더 빠른 지름길이라서 얼음판 위로 오셨다. 아버지는 아주머니들이 얼음판 위로 건너올 정도로 얼음이 두껍게 얼었나 보기 위해서 직접 얼어붙은 강 위의 얼음판을 일일이 걸어다녔다. 그리고 커다란 돌로 얼음판 위를 찍어 보기도 했다. 얼음이 깨져서 아주머니들이 혹시 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 그랬나보다. 나도 아버지를 따라갔다.

 강 표면 위에 흰 눈이 내린 것처럼 하얀 얼음이 꽝꽝 얼어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이 얼어있었다. 그곳으로 강바닥을 내려다보면 강 아래쪽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고 피라미, 버들치가 어슬렁어슬렁 헤엄치다가 큰 돌 밑으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었다.

 겨울에 큰 돌 밑을 들추어보면 흔히 물고기가 눈을 뜨고 도망을 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물고기는 눈을 뜬 채로 잠을 잔다고 한다. 왜냐하면 눈꺼풀이 없으니까.

  마당에는 화롯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아주머니들이 차가운 날씨 속에 작업을 해야하니까 간간이 손발을 녹이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아주머니들과 우리들의 간식 고구마, 감자를 구워먹기 위해서이다. 화롯불 위에는 물이 가득 담긴 주전자가 김을 무럭무럭 뿜고 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커피를 한잔 달라고 하면 내가 옆에 있다가 대기업공장에 다니는 말자이모가 보내준 커피 두 숟가락, 프리마 두 숟가락, 설탕 세 숟가락을 잘 섞어서 재빨리 갖다드린다.

 사과포장은 노련한 경험이 있으면서도 힘든 작업이라서 일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잘 모셔야

 내년에 사과솎아내기, 사과따기, 사과포장할 때 우리집에 와서 일해주시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동네 사람이 몇 집 안살아서 항상 심심했는데 일해주시는 아주머니들이 오시는 날이면 잔칫집처럼 사람이 많아서 신이 났다. 그래서 작업하는 곳에 앉아서 아주머니들이 갖다달라는 사과박스나, 간식심부름을 하면서 아주머니들 시댁이야기, 남편흉을 보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아주머니들이 오면 아부지가 지하실에 쌓아놓은 사과궤짝을 일일이 꺼낸다.

 깊은 지하실에서 땅 위로 무거운 사과상자를 몇 백상자씩 들어내는 일은 굉장히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아부지는 주로 해이아재와 복이아재랑 일을 했다.

 지하실은 내가 학교가기 전에 해이아재와 복이아재랑 다른 아저씨 여러 명과 포크레인을 가져와서 집 옆에 우리집보다 더 큰 구멍을 파서 만들었다. 지하에는 지하실을 만들고, 1층에는 높다란 창고를 만들어서 사과궤짝을 쌓아두기도 하고 사과, 땅콩, 감자, 참깨들깨, 늙은 호박 등등 농사지은 것들을 넣어둔다.

 새로 지은 지하실과 창고는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옆으로 붙여서 슬레터지붕을 얹은 허름한 우리집보다 훨씬 더 좋아보였다. 사과상자를 쌓아놓은 지하실은 겨울에는 훈훈하고 습기가 있었고, 여름에는 대단히 시원해서 나와 동생들, 사촌 뽀얀이, 간혹 외갓집 석필이아재가 오면 지하실에서 놀았다. 석필이아재는 엄마의 사촌동생인데 나이는 우리랑 비슷해서 우리랑 놀았다.

 “우와, 너거집은 지하실도 있고 좋다!”

 석필이아재는 지하실을 처음보는 듯 신기해하면서 감탄했다.

 

 아주머니들은 마당에 펴놓은 파란 나일론 가파 위에 사과들을 궤짝에서 꺼내어 늘어놓는다.

 그 후에는 사과를 대, 중, 소 크기별로 선별해서 바구니에 20kg 정도의 중량에 맞추어 저울에 단다. 예전에는 사과선별기가 없어서 아주머니들은 철저하게 크기를 눈으로 가늠해서 대, 중, 소로 분간을 해야한다. 산더미같은 사과를 쳐다보노라면 헷갈려서 중간크기 바구니에 큰놈이 들어가있곤 했다. 저울 옆에 있다가 사과박스에 아부지 이름을 새긴 도장을 찍고, 사과개수를 적어서 아주머니들에게 갖다주는 일은 내가 맡았다.

 내가 학교에 다니고 숫자를 쓰게 되면서 사과박스 포장일을 같이 도왔다.

 원래는 오빠가 했었는데 오빠는 일을 시키려고 하면 입이 툭 튀어나와서 오만인상을 찌푸리고 신경질을 내니까 엄마가 나에게 시켰던 것 같다.

 우리집은 가축이나 사과상자 개수를 늘 세어야했기 때문에 나는 어릴 때부터 오빠 오만상에게 숫자세기만 특별훈련을 받았다. 다른 것은 전혀 가르쳐준 일이 없다.

 “얘도 이제 학교 일 년 다녀서 숫자는 알아.”

 오빠는 이 바쁜 날에도 자전거를 타고 사라지고 없었다.

 어쩐 일로 공부를 가르쳐주나 했더니만 이럴 때 써먹으려고 그랬나보다.

 

 내가 이학년쯤 되고 나서는 나도 사과포장을 직접 도왔다.

 사과를 포장할 때는 두꺼운 마분지박스를 접어서 바닥에 골판지를 깐다.

 사과를 한 줄 깔고, 그 위에 두꺼운 골판지를 깐다. 그리고 2층에 또 사과를 깔고 다시 골판지를 깐다. 다시 3층에 사과를 깐다. 이런 식으로 4층 정도 깔면 끝나는데 종이박스에 사과를 모조리 담아야지 남는 사과가 있어서는 안된다.

 똑같은 20kg이지만 대자 사과는 보통 40~50여개, 중간 크기는 60~70개, 작은 소자 사과는 80~90여개 정도 되는데 바구니마다 사과 개수가 다 다르다. 그래서 박스 한 층에 몇 개를 넣어야 하는지도 경우마다 달라서 그때그때 계산을 해서 맞춰넣어야한다. 나누기도 할 줄 알아야한다. 같은 사이즈의 사과라도 크기가 조금 큰 사과는 박스 한구석에 돌려서 끼워넣어야 한다. 안그러면 다음 줄에 사과를 쌓을 때 골판지를 깔아도 바닥이 울퉁불퉁하다.

 과일 선별부터 포장까지 요령과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해주러 오시는 분들도 숙련된 경험자들 뿐이다.

  내가 사과박스에 사과를 담으면 항상 한 개나 두 개 정도는 남았다. 그러면 모든 걸 다시 해야한다. 그러면 아부지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것이었다.

 “으이구, 바보야! 개수를 나눠보고 대충 한 층에 몇 개씩 들어가야되는지 계산을 해서 사과를 담으라고! 나누기모르나?”

 ‘나누기가 머꼬?’

 이제 이학년인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아부지는 사과를 포장하는 법을 누누이 설명을 하면서도 아무래도 내가 좀 모자라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부지는 내가 국민학교 이학년이라는 사실을 항상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아직 나누기를 배운 적이 없는데 자꾸 뭘 생각하라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학교 산수책에는 구구단 곱하기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나오면서 곱하기에 대한 역연산에 대한 개념으로 옆에 나누기 개념에 대한 그림이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

 산수책에는 사탕 두 개씩 여섯 봉지면 열두 개인데, 사탕 열두 개를 여섯 봉지에 나누어담으면 한 봉지에 두 개씩 담긴다는 그림이 그려져있다. 그러니 내가 나누기를 암산으로 계산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데 우리 아부지는 나를 전혀 이해하지 않았다.

 학교만 보내면 저절로 다 주워듣고 알 수 있다는 식이다.

 나는 아부지에게 욕을 먹지 않으려고 내 나름대로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냥 일단 밑에 최대한 사과를 촘촘하게 많이 집어넣고, 마지막 층에는 사과가 모자라더라도 남는 사과가 없도록 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사과박스에 사과를 모두 담고나면 마지막엔 나일론 끈으로 단단히 박스를 양쪽 끝에 2줄씩 묶어서 마무리한다.

 포장을 끝내고 마당에 쌓아놓은 사과박스의 개수를 혹시 틀리지 않았나하고 대여섯번은 세어야한다. 박스개수를 자칫 잘못세면 받을 돈이 달라지니까 말이다.

 “하나, 둘, 셋, 넷......이백구십구, 삼백......오백 두 개. 오백 두 개요!”

 “다시 한 번 더 세어봐라”

 아버지는 나의 말을 미심쩍어하면서 말했다.

 “하나, 둘, 셋, 넷,,삼백 구십구, 사백.....오백 두 개. 오백 두 개 맞다니까!”

 수계열을 익히기에는 사과박스 세는 것만한게 없었던 것 같다.

 천재 수학자 가우스도 방앗간집 아들이라서 매일 밀가루 포대기를 세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이점은 난 산수를 너무너무 싫어했다는 점이다. 산수를 할 때는 상상을 할 수 없으니까 재미가 없고, 학교에서 산수숙제를 내주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사람은 굉장히 착했는데, 바쁘고 애들이 많아서 일일이 답이 맞는지 틀리는지 검사할 시간이 없어서 빈칸만 채워놓으면 그냥 통과시켜준다. 그래서 난 항상 산수숙제를 한 것처럼 적당한 답을 쓰고 나머지 시간에는 학교에서 빌려온 동화책을 읽거나 내가 상상하고 싶은 걸 상상하고 놀곤 했다.

 

 일학년 때 스파르타식으로 나머지공부를 강제적으로 했던 나는 갑자기 국어실력이 늘어나서

 이학년부터는 교실 안에 독서문고에 있는 모든 책을 독파했다. 동화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전자계산기로 소사료값을 계산하던 아버지가 난생처음 내가 대충 그려넣은 산수숙제를 검사하자면서 공책을 낚아채갔다.

 순식간에 아버지는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내 머리통을 주먹으로 한 대 콱 쥐어박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모든 산수문제를 다시 풀어야했다.

 아버지는 내가 숙제를 해놓은 것이 다 틀렸고 내가 몰라서 다 틀렸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내가 너무 돌대가리라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 이후로도 항상 무언가를 할 때면 아부지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아마 작년에 일학년 때 선생님이 나보고 모자란다고 하면서 특수반에 보내라고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35 더하기 7을 89라고 써놓을 수가 있노? 저거 돌대가리 아니가?

  우리 집에는 사관학교 간 애도 있고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 간 애도 있는데 저건 누굴 닮았 노?”

 아버지가 엄마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더 화를 냈다.

 “잘난 당신집안 자랑 듣고 싶지도 않다! 그 돌대가리 내 혼자 낳았나! 자기 동생들 챙긴다고 자식은 내팽개치고 일만 시킨게 누군데! 그래서 저게 저 모양 저 꼴이 안됐나!”

 그날 밤에도 부모님은 싸우다가 다른 방에서 잠들었다.

 내가 빨리 동화책을 읽고 싶어서 일부러 산수문제 답을 아무거나 적어넣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더 맞았을 것이다. 우리아부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야지 대충대충하는 건 용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부모님은 내 산수숙제검사를 오빠에게 시켰다.

 안그래도 귀찮게하는 걸 딱 싫어하는 오빠는 나만 보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다가 내가 한 개만 실수로 틀려도 알밤을 세게 쥐어박았다.

 싹수없는 오빠놈이 내 머리통을 쥐어박아서 내 뇌세포가 엄청나게 파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오빠보다 공부를 못했나보다.

 하지만 우리 집에 일해주러 오시는 아주머니들은 내가 말귀도 잘 알아듣고, 똘똘하게 사과개수도 잘 적고, 커피도 입맛에 맞게 잘 탄다고 항상 칭찬을 해주셨다.

  저녁무렵에 우리집보다 더 큰 트럭이 오면 사과박스를 일일이 쌓는다. 그리고 난 후 커다란 파란 나일론 천을 트럭에 덮어씌우고 트럭 양쪽에 밧줄로 사과를 실은 트럭짐칸을 수십 번 꽁꽁 동여맨다음 공판장으로 출발한다. 작업하다가 흠집이 있는 사과들은 따로 모아놓는다.

 일이 끝나면 작업을 해준 아주머니들은 각자 자기몫으로 가져갈 사과를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담아 커다란 봉지에 싸간다. 모두 얼굴에 행복한 웃음을 띠면서.

 

 

 장날 사과팔기

 

  공판장으로 실어나르고 다 못 판 사과는 장날 시장에 내다판다. 흠집있는 사과도 좀 싸게 내다판다. 엄마가 오빠에게 장날에 사과 팔 때 따라가자고 했다. 시장 안에 오일장이 서는데 우리가족이 다니는 치과 앞에서 흠있는 못난이 사과를 판다. 혹시 누가 사과상자를 집까지 배달해달라고 하면 엄마랑 아부지가 배달을 해줄 때 누군가 지키고 앉아있어야하는 것이다.

 사과는 한 상자에 25kg이나 되어서 보통 여자들은 그걸 사고 싶어도 혼자서는 들고 갈 수 없다.

  오빠는 또 오만상을 찌푸리면서 안가겠다고 했다. 아마 오빠는 학교에서 부반장도 하고 그러는데 학교 친구들이 사과파는 걸 볼까봐 창피해서 그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빠가 동생들이랑 집을 보고 내가 따라가게 되었다. 난 반장이고 뭐고 그런데 관심이 없었다.

 사과를 팔아야 겨울에 우리가 입을 두툼한 외투와 신발을 모두 살 수 있다. 그리고 사과는 비싼데 엄마가 배달해주러가고 없을 때 누가 홀랑 들고 가기라도 하면 우리만 손해가 아닌가?

  아버지가 시장 안 치과 옆에 사과상자를 모두 내려놓고 우시장에 소시세를 알아본다면서 자리를 떴다. 그 사이 친척아주머니라는 분이 오셔서 사과 한 상자를 사면서 집 앞까지 좀 같이 들어다달라고 했다. 엄마가 그 사과상자를 아주머니와 마주 들고 떠났다.

 나 혼자 사과상자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불량기가 넘치고 몸을 건들건들거리는 젊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사과상자 안의 사과를 이리저리 만져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제일 큰 사과를 집어서 한 입 깨물더니 나에게 물었다. 곁에는 남자의 친구들이 히죽 히죽 웃으면서 담배를 피우면서 내 주위에 둘러섰다.

 “사과팔러 나왔나?”

 ‘아니? 누군지도 모르는 인간이 왜 우리 사과를 집어먹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나왔다.

 “사과가 좀 싱겁네.”

 남자는 실실 웃으면서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난 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난 순간 벌떡 일어나서 젊은 남자에게 발차기를 날리고 난 후 땅바닥에 메다꽂았다.

 그러자 젊은 남자와 그 똘마니들은 나에게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형님! 몰라뵈어서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물론 이 상상은 내가 이소룡이나 성룡처럼 무술을 잘 했다면 하는 희망사항일뿐이다. 난 오빠 때문에 늘 무술영화를 함께 봐야해서 이소룡과 성룡을 존경했었다. 신데렐라나 캔디는 오빠가 너무 경멸해서 자주 못봤다)

 

 마음과는 달리 나는 젊고 건들대는 남자에게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물었을뿐이다.

 “아..아..아저씨는 누군데요?”

 나는 강하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내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난 국민학교 이학년인데 상대방이 어른남자라 주눅이 들었다. 엄마는 언제 올지도 몰랐다.

 남자는 낄낄낄 몸까지 떨면서 웃었다. 그러더니 순간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 몰라? 헤헤헤헤. 너희 엄마애인?”

 젊은 남자는 지멋대로 사과를 몇 개 집어서 돌아서더니 옆의 남자들에게 던져주는 것이었다. 남자의 친구들로 보였다. 그 남자들은 담배를 피우면서 시시껄렁한 잡담을 하면서 웃는 것이었다. 그냥 사과는 먹고 싶은데 돈 주고 사먹기는 싫고 어린 내가 사과상자를 지키는 것을 보고 만만하게 생각해서 되는대로 씨부린 것이다.

 ‘미친놈!’

 나 혼자 속으로 욕을 했을 뿐, 소리내어 말하진 못했다. 엄마도 없고 아부지도 없는데 나 혼자 그 남자에게 욕했다가는 봉변을 당할 것 같았다. 거기다가 그 남자의 친구들도 불량기가 있어보였다. 난 긴장이 되었다. 앞을 보고 있었지만 곁눈질로 그 남자들을 경계하고 있었다.

 ‘아부지는 와 안오노?’

 우리집 남자들은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곁에 없었다.

 잠시 후 엄마가 돌아왔다. 하지만 남자들이 바로 곁에 있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그 남자들을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말은 못하고 건들대던 그 남자를 뚫어지게 꼬나보았다. 분해서 눈물이 나왔다.

 그런데 그 남자는 내가 째려보자 TV에서 미국사람이 ‘아이돈노’ 할 때처럼 어이없다는 듯, 어깨를 들썩이면서 두 손을 뒤집어보였다. 그리고 또 실실 웃으면서 사라졌다.

 “엄마, 저 남자가 엄마없을 때 사과를 막 가져갔데이.”

 “응..그래 그래.”

 엄마는 남자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하지만 장바닥에서 싸워봤자 시끄럽기만 하니까 그냥 넘어가는 것 같았다. 젊은 남자들은 담배를 다 피우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지가 상이군인도 아니고 와 남의 물건을 막 가져가노?”

 엄마가 혼자 중얼거렸다. 6.25전쟁 때 참전했던 상이군인들은 다친 팔에 갈고리같은 것이 달려있었다. 그래서 가끔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달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유공자였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만큼의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해 살기가 어려웠다. 상이군인들이 몇 명씩 떼지어 다니면서 뭔가를 요구하면 상인들은 들어주었다. 야채가게 주인은 검은 비닐봉지에 야채를 담아주었고 떡집주인은 떡을 담아주었다.

 모두 그들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까 그 젊은 또라이들은 웃겼다. 사지육신이 멀쩡해가지고.

 장날에는 별 또라이들이 다 돌아다닌다.

 손님들은 끊임없이 사과를 사러왔고 점심때쯤엔 거의 다 팔고 조금 남았다.

 그런데 저쪽에서 우리 반 애들 몇 명이 나를 쳐다보면서 다가왔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는 것이 아는 척을 할까 말까 망설였다. 좀 부끄럽기도 하고.

 하지만 그 애들은 무척이나 반가운 듯 말했다.

 “어머머, 얘 너희집 사과밭하나? 너무 좋겠따아.”

 “다음에 사과밭 구경가고싶다.”

 ‘구경오는 건 좀 쪽팔리는데~~~’

 엄마는 친구들 모두에게 양손에 사과를 쥐어주었다.

 친구들은 좋아서 웃으면서 손까지 흔들면서 사라졌다.

 엄마는 사과를 모두 팔고 번 돈으로 육소간에 가서 쇠고기, 돼지고기를 샀다.

 우리가 가는 단골 육소간아주머니는 고기를 신문지에 싸주었다.

 “비계도 좀 주이소.”

 엄마가 알뜰하게 말했다.

 맘씨좋은 육소간아주머니는 돼지비계 한 뭉텅이를 따로 신문지에 싸주었다.

 비계는 삶아서 강아지들에게 줄 것이다.

 엄마는 어물전에 가서 동태를 사고 나는 길가에 있는 호떡파는 리어카에서 호떡을 열 개 샀다. 추운 겨울에 기름에 지글지글 굽는 호떡은 최고로 인기있는 간식이었다.

 호떡 열개를 사고 천 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나는 당장 먹고 싶었지만 집에 가서 막둥이와 위선자가 목에 걸려서 참았다.

 함께 먹으면 왠지 더 맛있게 느껴졌다.

 내가 호떡을 들고 집에 돌아오자 막둥이와 위선자는 ‘와아’하고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동생들은 호떡에서 나온 검은 설탕물을 온 얼굴과 손에 묻히고 먹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호떡을 먹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잠이 몰려왔다.

 ‘오늘은 참 피곤한 하루였다.’

 

 이렇게 겨울에 사과를 공판장에 모두 출하하고 흠집이 난 사과까지 팔고 나면 일 년 농사가 끝이 난다. 겨울방학 때는 또 한겨울에 사과나무가지치기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방은 아저씨들의 담배냄새로 너구리굴처럼 뿌연 연기로 가득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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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버들밭아이들 2부-가디건 2020 / 10 / 9 283 2 4139   
32 버들밭아이들 1부 종결 (2) 2020 / 9 / 28 358 2 619   
31 겨울 메주만들기 & 친할아버지 2020 / 9 / 28 289 2 4138   
30 막둥이 낳던 날 & 앵두네 살구밭 2020 / 9 / 28 282 2 5206   
29 초상날 & 삼청교육대 2020 / 9 / 25 279 2 3935   
28 겨울 사과포장하기 & 장날 사과팔던 날 2020 / 9 / 25 289 2 9267   
27 팥죽, 호박죽 그리고 귀신 (2) 2020 / 9 / 23 346 2 9514   
26 학교생활-변소청소 & 토끼고기 2020 / 9 / 23 272 2 4884   
25 80년 봄, 구식이삼촌 2020 / 9 / 21 288 2 3924   
24 강아지 키우기 & 개도둑 2020 / 9 / 21 282 2 5423   
23 두더지고기 먹던 날 2020 / 9 / 21 281 2 3433   
22 물귀신 2020 / 9 / 21 308 2 3317   
21 감자캐던 날.(굼벵이술) (3) 2020 / 9 / 21 347 2 6683   
20 일학년 입학 & 봄소풍 (1) 2020 / 9 / 20 336 2 7738   
19 외삼촌 2020 / 9 / 20 275 2 4643   
18 말자이모 (2) 2020 / 9 / 19 336 2 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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