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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30
작성일 : 20-09-22 22:57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8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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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이산가족상봉명단의 도사는 단 둘이었지만 둘 다 ‘특별관리요청자’였던 지라 한나와 진우는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녔다. 한 분은 서울에 한 분은 전남 여수. 너무 극과 극 아닌가요? 그래도 서울에서 여수 갈 때 비행기로 보내줘서 천만다행이었다. 회사차로 가라했으면 기어코 도사로 발현하든 회사를 엎든 뭐라도 했을 것이다. 여수가서 바다 좀 봤더니 이 그지같은 출장도 할만하다고 느껴지는건 아마 한나도 어쩔수 없는 찐코리안 바이브인 것이다.마지막으로 서류 전달하고 청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아주 도오가 뻥뻥 뚫렸다. 아주 그냥 주작대로일세. 단지 회사에서 제공해 주는 차가 청사 샷다 올릴 때 산건지 탈탈 거리는 것만 빼고서야...

 “아무리 차량 제공해주지만 이건 진짜 좀 너무 구식 같지 않나요.”

 “이런 일 하라고 돈 받는 거 아니겠어요. 아해는 발로 뛰어야지 뭐. 구름을 잡아 탈 수도 없고.”

 “전 구름 말고 학 타고 싶었는데.”

 “학이요? 천연기념물을 탈 생각을 하시다니. 철창직행열차네요.”

 “이런. 그럼 요샌 뭐 타요?”

 “구름 탄다니까요.”

 “구름 타기 싫은데... 동물 안타요?”

 “동물보호단체한테 규탄 받고 싶으세요? 약간 민원을 즐기시는 편?”

 “그럴 리가요. 세상이 많이 진보했네요.”

 “그럼요 21세기인걸요.”

 “이제 사무실 들어가요?”

 “그냥 퇴근하면 안 되나. 팀장님께 연락 드려 봐요.”

 때마침 한나와 진우의 핸드폰이 요란히 울렸다. 도사청 직통 긴급연락이었다.

 “난 저 알람 울릴 때마다 퇴사하고 싶어.”

 “가실 때 같이 가요.”

 “딱히 그럴 필요가... 뭐래요 확인 좀 해봐요.”

 “중앙청 민원과 2팀 긴급호출이요. 15층 제 1회의실로 바로 모이라는데요.”

 “왜 또 긴급호출이야.. 천천히 갑시다. 목숨은 한 개니까.”

 또 다시 둘의 핸드폰이 요란히 울렸다.

 “뭐! 왜 또!”

 “5분 내로 하던 일 마무리하고 전원 모이라는데요?”

 “아니, 여기서 적어도 30분은 걸릴 텐데. 어떻게 5분 내로 가. 차에 날개라도 붙여주고 말하든가. 탁상행정이 바로 이런 거 아니겠어요.”

 쿵짝쿵짝 한나의 핸드폰이 요란히 울렸다. 이번엔 전화였다. 유치찬란한 벨소리에 진우는 눈썹을 들썩였다. 한나가 버튼을 누르자 자동으로 연결된 블루투스로 연결됐다.

 “아주 여러 방법으로 사람을 말려 죽여. 날 죽여. 네 김한,”

 “어! 한나씨 어디야!”

 “하.. 아직 가는 중입니다. 네.”

 “아니 위치를 말해줘야, 아 찾았어?”

 “뭘 찾아요. 팀장니, 으악!!!!!!!”

 “악!!!!!!”

  차량 안은 비명을 끝으로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나타난 인영에 한나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전화는 신경 쓸 틈도 없었지만 이미 끊겨있었다. 핸들을 꼭 쥔 한나의 두 손이 새하얗게 질렸다.

 “선배님., 사람 친 거 아니에요?”

 “그런 끔찍한 소리 말아요. 나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밥이 콩밥이라구요.”

  어떤 미친놈이 차 앞으로 뛰어드나. 목숨이 여러 개인가. 핸들만 붙잡고 오들오들 떨며 서로 후배인 너가 나가봐라 선배인 네가 나가봐라 범퍼 앞 확인을 떠미는데, 똑똑- 누가 운전석 창문을 두드렸다.

  바짝 긴장한 둘은 미어캣 마냥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문을 두드린 이는 아빠다리를 한 채 둥둥 떠 있었다. 평일 오후, 그것도 시골 한복판이었으니 망정이었지. 여기가 시내 한복판이었다면 정말 끔찍했다. 몰려오는 안도감과 반사적으로 드는 뒷수습생각에 한나는 뒷목이 쩌릿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일반인 유무부터 확인했다. 다시 핸들에 머리를 박으며 낮게 읇조렸다.

 “미친놈이 21세기에 구름을 잡아타고 지랄이야...”

 

  구름을 타고 15층 제 1회의실에 도착한 한나와 진우는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자리에 착석했다. 둘이 오는 걸 확인하고 창문을 활짝 연 팀장은 웃으며 둘을 맞이했다. 오느라 수고했어~. 아니 미친 15층 창문이 왜 3연동 미닫이야!

 “창문이 미닫이인 이유가 이런 거일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네요...”

 “내가 스발, 살다 살다 제 1회의실을 창문으로 입장한 건 처음이네”

 “저두요.. 구름은 두 번 다시 안 탈거라고 다짐했는데.. 아 토할 것 같아.”

 “말하지 마요. 듣는 나도 나올 것 같아.”

  저, 저 새끼 난폭운전으로 신고합시다. 우리. 도로 위, 아니 하늘 위의 안전이 말이야.. 하...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끙끙대길 십여초. 책상에 엎어져 있다 청장님 오신단 소리에 고개를 겨우 들었다. 동시에 비서가 제 1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 자리마다 자료를 배부했다. 한나는 자리 앞에 놓아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뭐야 시벌.”

  놓아진 서류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2020년도 이산가족상봉자 추첨자 발표 명단- 그리고 그 옆에 써진 ‘최종/긴급’

 “아니.. 누가 서류 처리를 소꿉장난처럼 하냐. 대체..!”

 “선배님! 선배님! 진정하세요! 청장님 들으신다구요!”

 

 -

 

 학은 현관 앞의 거울을 보고 옷을 매만졌다. 마침 방에서 나온 민석의 양 손에는 선물 보따리가 가득했다.

 “아이고 누구 할아버진지 진짜 멋있네?”

 민석의 장난에 학은 기분 좋은 듯 껄껄 웃었다.

 “짐 싣고 다시 올라 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리셔.”

 “번거롭게 무얼, 같이 내려가지.”

 “거 참, 기다리셔. 자, 여기 앉아서 빠진 거 없나. 잘 생각해보시고.”

 “알았네. 알았어.”

 민석이 의자를 끌어다 현관 앞에 두고 학을 앉혔다. 민석이 집을 빠져나가고 학은 고요해진 집안을 둘러보았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일렬로 놓여있는 액자들로 향했다. 그 중에서도 학이 잡은 건 가장 오른쪽에 놓아진 액자였다. 어찌나 집었는지 액자의 오른쪽 틀이 손자국을 따라 색이 바랬다. 그런 액자에 끼워진 건 액자보다도 더 낡아 누래진 오래된 사진 한 장이었다. 앳된 여자와 남자가 나란히 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은 어색해 보이는 사진 속 둘은 아마 사진 기사의 지시에 따라 손을 맞잡았으리라. 그리고 웃어 보라는 마지막 요구에 살며시 입꼬리를 올려 보았으리라.

 “자네. 드디어 만나러 가는 구만. 이리 오랠 줄 몰랐는데... ”

 같이 산 세월이 3년, 다시 만나길 염원한 세월이 70년이었다.

 

 북으로 떠나는 버스는 오랜 가족을 만나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만큼 챙긴 선물이 한 가득이었다. 학은 휙휙 바뀌는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조금만 있으면 만나리. 만나면 지금까지 살아주어 고맙네, 빨리 오지 못해 미안하네. 내 그간 자네가 너무 보고 싶었네. 전할 말이 너무 많았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어쩐지 결혼을 앞둔 그 옛날보다 더 떨리었다.

 북에 도착한 버스는 인솔자의 지시에 따라 방을 배정 받았다. 휴식시간을 받은 학과 민석은 방으로 올라와 짐을 풀었다. 천천히 창가로 다가간 학은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그대로 인 듯 많이 바뀌었네.”

 그런 학을 위해 민석은 창가에 의자를 놓아주었다. 학은 옛 기억이 떠올랐다. 덕희와 함께했던 기억이.

 

 고운 손으로 그림을 그리던 덕희와 그 옆에서 책을 읽는 학. 덕희가 붓을 내려놓으면 읽던 책을 덮고 덕희 손을 잡고 시내를 거닐던 그 시절의 기억이.

 “오늘은 사생을 나갈까 합니다.”

 “나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까?”

 조용히 도구를 챙기던 덕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 실은 앞 내천을 건너면 있는 뒤쪽 산에 가고 싶은데...무겁기도 하고.”

  천천히 말을 건네는 덕희에 학은 조용히 짐을 챙기며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

 “시내로 가로 질러가면 빠르지만, 사람들의 눈이 너무 많아 돌아갈지 다른 곳으로 갈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학은 그 말에 선반 위에 올려둔 짐을 내리다 말고 껄껄 웃었다.

 “왜 웃으십니까? 제 말이 웃기신지요.”

 “아니오, 그것이 아니라. 도사 남편을 두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네의 생각이 귀여워 웃었습니다. 미안하오. 그대 이제 나와 함께인데 무엇이 문제겠습니까.”

 학은 덕희가 챙긴 모든 짐을 어깨에 멨다. 그런 학에 덕희는 주변을 맴돌며 안절부절 했다.

 “무겁지 않습니까. 저와 함께 나눠 드시지요.”

 전혀 무겁지 않다 말해도 통 포기하지 않는 덕희에 학은 짐 하나를 덕희에 건넸다.

 “그럼. 그대는 이걸 드시지요.”

 게 중에 가장 크고 무거워 보이는 짐이었다. 덕희는 결의에 찬 입모양으로 받아들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과 달리 가벼운 짐에 덕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짐을 챙겼다 생각했는데 빠친 모양이다. 기껏 사생을 나갔는데 헛수고를 할 뻔했다. 놀란 덕희는 급히 짐을 내려두고 열어보았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이상한 마음에 가득할 때 학이 껄껄 웃었다.

 “내 가볍다 하지 않았습니까. 덕희 자네 어찌 내 말을 믿지 못하오.”

 “어째, 어째서...”

 놀란 덕희가 학을 바라봤다. 학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움직였고 가방은 다시 닫혀 학의 손으로 들어왔다.

 “이제 내가 항상 같이 할 터이니. 자네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사생을 나갑시다.”

 

 “할아버지. 이제 내려 가야돼.”

 민석이 천천히 학을 흔들어 깨웠다. 깜빡 잠이 들었다. 평범했지만 어느 날보다 그리운 꿈이었다.

 

 공식적인 첫 만남이었다. 1차 단체 상봉시간이었다. 해당 번호의 테이블에 앉은 학은 바싹바싹 입이 말랐다. 모든 남측 가족의 착석이 끝나자 북측 가족이 입장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얼싸안았다. 학은 무리지어 입장하는 사람들 속에서 덕희를 찾느라 고개를 빼고 이리저리 눈을 돌렸다. 그 중 분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다른 이의 부축을 받으며 문을 넘었다.

 

 아, 사랑하는 덕희, 자네여. 세상이 우리를 갈라 서로가 몰라볼 듯 변했어도. 나는 단번에 알아보겠네. 기나긴 세월 속에서도 내 사랑은 그대로일 지어니.

 

 “덕희, 자네... 잘 있었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학은 덕희의 손을 꼭 붙들었다. 몇날 며칠을 밤새워 고민한 말 중에서 처음으로 꺼낸 말이 ‘잘 있었는가.’ 라니 학은 스스로가 참 멋없다 생각했다. 그리움으로 차곡차곡 쌓았던 마음은 덕희의 얼굴을 보는 순간 터진 둑처럼 쏟아졌다. 마음이 쏟아져 말들을 훔쳐갔다.

 “우리가 몇 년 만입니까.”

 “70년... 70년이지요.”

 70년 참 긴 세월이었다.

 “우리, 아이는 잘 있습니까.”

 “...”

 학은 차마 대답을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학을 덕희는 다 안다는 듯 말없이 토닥였다.

 “미안하오 자네. 내가 정말 미안해요.”

 “괜찮습니다. 그간 고생 많았습니다.”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다 끝난 1차 상봉 후 학은 방으로 돌아왔다. 기운이 쭉 빠졌다. 그런 학의 옆에서 바삐 움직이던 민석 덕에 빨리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민석아.”

 “어, 할아버지. 뭐 줄까?”

 “아니.. 아까 할머니 만났을 때 내 별로 멋없었지.”

 “아냐. 무슨 소리야. 멋있었어.”

 “그랬니.”

 “그럼. 할머니도 오랜만에 할아버지 봤는데 엄청 멋있어서 깜짝 놀라셨을걸.”

 그에 학은 힘없이 허허 웃었다.

 “그러면. 다행이구나.”

 “,,,”

 방안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몇몇 관계자들 목소리만 닫힌 창문을 두드렸다.

 “시간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구나.”

 창가에 바투 앉은 학은 멀거니 밖을 바라봤다.

 2차 상봉 때 학은 덕희를 위해 그림도구를 챙겨갔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고 잘 그리던 이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서도 여러 번 상을 탔던 이였다. 다른 선물들을 하나하나 풀어보고 설명해주던 학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가장 먼저 챙겼던, 소중히도 품고 왔던 것을 오래전 얘기와 함께 꺼내었다. 민석에 부탁했던 것들이었다. 민석은 홍대 유명 화방까지 가 거의 쓸어 담아왔다. 학이 꺼낸 그림도구에 덕희는 머뭇거렸다.

 “그 때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아. 잘 그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 한마디에 학은 마음이 저렸다. 어찌 그림을 좋아하던 자네가. 모든 게 자신의 탓 같았다. 무슨 일이 있었어도 같이 있어야 했는데. 덕희의 옆을 지켜야 했는데 말이다.

 “못하여도 괜찮습니다. 그 때처럼 내가 그대와 함께이지 않소.”

 학이 가져온 붓과 연필들을 한참이나 쓰다듬던 덕희는 이내 결심한 듯 집어 들었다. 고왔던 두 손엔 주름이 가득했고, 부친 힘에 손이 떨렸지만 일필휘지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 두 사람 사이의 70년의 공백을 메워가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동네를 그려갔다. 우리 집이 여기 있던 거 기억하시오. 집에서 나와 이쪽으로 가면 자네가 좋아하던 국시집이 있었지요. 여기엔 여름에 발 담그던 내천이 있었고요. 시원하다고 자네가 참 좋아했지요. 이쪽이 자네가 사생가길 좋아하던 그 뒷산이 있지 않았습니까. 산에는 그릴 것도 많고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고 참 좋아했었는데.. 덕희 자네가 여기 앉아 그림을 그리면 나는...

 “만찬장에 계신 이산가족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립니다. 2차 상봉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산가족여러분께서는 마무리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립니다.”

 하얀 도화지를 누비던 손이 일순간 굳어버렸다. 하얀 도화지 위에 추억을 쏟아내던 말도 멈추었다. 굳은 두 사람 주위로 안내방송이 웅웅 울렸고, 또 다시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70년의 회포를 풀기엔 2박3일은 너무나도 짧았다. 먼저 덤덤히 그림 도구를 정리 하던 건 학이었다.

 “그림은.. 내가 가져가도 되겠소?”

 “아직 저밖에 그리지 못한 미완성인데...”

 “그대가 있으니 나에겐 완벽한 그림이오.”

  덕희가 그린 그림에는 옛날 그들이 함께했던 동네가 있었고 그림을 그리러 자주 가던 뒷산 언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언덕에는 그림을 그리는 모습의 덕희가 있었다. 막 학을 그리려던 참이었다. 학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의연한 얼굴을 하였다. 덕희도 아무렇지 않은 듯 학을 따라 정리했다. 하지만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눈물을 따라 속절없이 마음이 무너졌다.

 “어찌 그리 우십니까. 내 마음이 아파...어찌 자넬 두고 가라고..”

 “와주어 고맙습니다. 날 잊지 않고 찾아주어 고맙습니다.”

 “어찌 또 그런 말씀을 하시오.”

 잡고 있던 손 대신 학은 덕희를 안았다.

 “시간이 어찌 이리 빨리 가누. 자네 없는 70년은 그리도 더디더니. 자네와 함께하는 순간은 왜 이리 빠를까.”

 

 민석이 학을 부축해 나왔다. 차에 오른 학이 창가에 앉아 차문을 열었다. 따라 나온 덕희가 학의 앞에 섰다. 학이 손을 내밀자 덕희가 맞잡았다.

 “일평생 많이 사랑했네.. 덕희 자네. 내가. 많이..

 “저도요. 저도 그랬습니다.”

  차에 시동이 걸렸다. 70년 전 손을 놓쳤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고된 피난길에 짐을 짊어진 학은 아들도 본인이 옮겨 들었다. 이 길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한 곳이 나온다 하였다. 그 말만 믿고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었다. 셋만 숨어 갈 수도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군인이 나타날지 몰랐기에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이동하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 생각했다. 그게 덕희와 강보에 쌓인 갓난쟁이 아들을 위한 선택이라 믿었다. 그 선택이 덕희와 학을 찢어놓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갑자기 들이닥친 총알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습격이었다.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사람들이 밀고 밀치고 쏟아지는 총과 칼을 피해 도망치기 바빴다. 학도 한손엔 덕희를 붙잡고 다른 팔엔 아들을 품고 부지런히 달렸다. 빨리 인적 드문 곳으로 자리를 옮겨 잠시라도 자취를 감추든 대처를 취해야 했다. 학은 덕희를 꼭 붙잡고 부지런히 달렸다. 그리고 부지런히 눈을 굴렸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디로 가야 이 둘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지.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에 치이고 치이던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 뒤쪽에서 쾅-하고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어지러운 곳이 아비규환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아차하는 순간 놓친 손에 다급히 뒤를 돌았지만 학과 덕희의 사이로 사람들이 들어찼다. 그 상태로 학은 사람들에 떠밀렸다. 그렇게 헤어졌다. 잘 가라 잘 있어라 그 흔한 인사 한마디 못하고 헤어졌다. 헤어지는 순간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헤어졌다.

  놓친 것은 맞잡았던 두 손인데, 찢겨진 건 마음이었다. 한번만 다시 잡게 해준다면, 그 순간이 다시 온다면. 두 번 다시 놓지 않으리라 다짐 했는데,

  시동을 건 천천히 차가 움직였다. 맞잡은 손이 거리를 이겨내지 못하고 떨어졌다. 이렇게 또 놓아야 했다. 맞잡았던 손도. 70년 넘게 품어온 다짐도. 내려놓아야만 했다. 놓은 것은 맞잡았던 두 손인데, 찢어진 건 마음이었다.

  학이 탄 차가 덕희로부터 멀어졌다. 학의 모습이 뿌연 먼지와 검은 매연에 흐려졌다. 이미 다 흘렸다 생각한 눈물이 다시 차올랐다. 차의 매연도 흙먼지도 다 사라졌는데 여전히 덕희의 시야는 뿌옇기만 했다.

 왜 이번에도 절 두고 가십니까. 어찌 또 그대의 뒷모습만 보게 하십니까. 참 야속하십니다.

 또 다시 기약 없는 이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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