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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3화) 간밤의 흑기사
작성일 : 20-09-21 21:34     조회 : 231     추천 : 0     분량 : 5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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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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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똑바로 앉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이번만은 제발 다정하게 받아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했다.

  “여보세요.”

  엄마의 목소리가 천천히 울렸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에 가슴 한편이 그리움으로 몽글거렸고, 엄마가 피하지 않고 전화를 받아줘서 고마웠다.

  “엄마.”

  배에 잔뜩 힘을 줬는데도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나는 반대쪽에선 안 들리게 가만히 목을 가다듬은 뒤 다시 엄마를 불렀다.

  “네가 웬일이니.”

  엄마는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졌는지 아니면 여전히 그대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주눅 들지 않으려고 온 몸에 힘을 줬다.

  “오늘 집에 갈까하는데……”

  “오지 마. 약속 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잽싸게 차단시키는 엄마. 여전하시구나. 바뀌었기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순 없다.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나는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언제 나가시는데요? 전 늦게 가서 하룻밤 자고 오는 것도 괜찮아요. 그게 더 좋아요.”

  “거긴 그만 둔 거니?”

  회사를 말하는 거였다. 나 선배의 목숨이자 내가 행복을 느끼는 그곳은 엄마의 기준에선 회사가 아니라 놀이터 수준이었다. 그래서 입에 올릴 가치도 없다는 듯이 ‘거기’라고 낮게 말하곤 했다.

  “대답 못하는 걸 보니 아직 아닌가 보구나. 거길 그만 두기 전엔 보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한 것 같은데. 그새 머리가 나빠졌니?”

  엄마의 냉랭함은 한 여름의 시냇물도 얼릴 수 있을 만큼 차가웠다. 그래서 내 감정의 기온은 뚝뚝 떨어졌다.

  “안 하던 짓을 하기에 이젠 철이 들었나 싶었더니. 쯧쯧.”

  화가 났다. 시작은 엄마의 냉랭함이었지만 그게 단초가 되어 꽁꽁 담아뒀던 갖가지 화가 화수분처럼 분출했다. 그동안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면서. 얼마나 힘든지 모르면서. 알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이별을 맞닥뜨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건 엄마의 품이었다. 어린 내가 무서운 꿈을 꿀 때면 엄마는 다정하게 안아줬다. 화장품인지 향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품에선 살며시 톡 쏘는 분내가 났고, 나는 그 냄새를 맡으면 언제나 진정됐다. 그래서 이별한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 내게 이별은 다시는 꾸고 싶지 않은 악몽이었으니까.

  “제발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어렸을 때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세요. 부탁드려요.”

  나는 화를 감추며 정중하게 말했다. 내가 노력한다면 엄마도 노력을 해줄 테니까. 한심하게도 그건 계산 오류였다.

  “뭐?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자식이 안 하던 짓을 하면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부터 하는 게 부모니까요.”

  “딸 자리를 포기한 건 너야. 그러니 강요하지 말거라.”

  “정말 이대로 괜찮으세요? 저를 보지 않고 살 수 있으세요?”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끝났다. 이런 사람이 제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이름 있는 교수라니. 실상은 딸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못된 부모라고 확 폭로해 버릴까.

  전화를 하기 전보다 더 쓸쓸해졌다. 엄마와 한바탕하고 나자 생각나는 건 오로지 한 사람뿐이었다.

  현수는 나와 부모님 사이에 대해서 나만큼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마다 제 일처럼 위로해 줬다.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랬을 텐데.

  ‘현수야. 나 또 엄마한테 모진 소릴 들었어. 엄마는 언제쯤이면 나를 이해하고 존중해줄까.’

  나는 몇 번이나 휴대폰을 들었다가 놓았다. 엄마와의 통화가 낳은 부작용으로 인해 현수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난 밤 일을 사과하는 척 하며 통화를 유도해 볼까. 함께 있던 여자에 대해 물어보는 건 자존심을 버리는 일이겠지.

  문득 그와 얼마나 통화했는지 궁금해져 통화목록을 살폈다. 그러다 나는 기함하고 말았다. 목록에 있어야 할 번호는 없고 없어야 할 번호가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나는 분명 현수에게……으아아아.

  뒤늦게 생각이 났다. 취기로 인해 현수의 번호가 생각나지 않았던 나는 연락처를 뒤졌고, 거기서부터 일이 꼬였다.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손이 미끄러졌든 폰이 흔들렸든 해서 현수가 아닌 현수 앞에 저장된 번호를 잘못 누르고 말았다.

  처음 보는 것 같은 이 번호의 주인은 누구지. 그냥 ‘모임’이라고 저장돼 있는 이것은……맞다. 이별모임. 이준서 번호였으니까 내가 통화한 것은 그녀였다. 하지만 아무리 취했어도 여자와 남자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했을까.

  잠깐. 그렇다는 건 간밤에 현수를 만나지 않았다는 건데. 현수가 내게 오지 않았다는 건데. 하지만 나는 분명 현수를 봤는데. 내 손에는 아직도 현수의 감촉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꿈이었나. 그리움이 만들어낸 허상이었나.

  다른 건 몰라도 이준서와 통화를 한 건 사실이었다. 엄연한 증거가 있으니 발뺌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머릿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추태들을 번호의 주인에게 했을지도 모른다.

  끔찍하고 한심스러운 일이었다. 필름이 끊겨 생각나지 않는다고 시치미를 뗄 수도 있었지만 양심상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게다가 내가 모임에 나가면 앞으로도 계속 볼 사이가 될 테니 이런 일로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장문의 문자를 고심하며 작성했다.

 

  [간밤엔 실례가 많았습니다. 얼마나 황당하셨을지 짐작도 되지 않네요. 술 때문에 벌어진 실수지만 그렇다고 너그럽게 용서해달라고 하진 않겠습니다. 혹시 제게 청구할 게 있으시다면 보내주세요. 송구하게도 생각나지 않는 부분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그래도 고마움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정말 죄송하고 고마웠습니다.]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곳은 없는지 읽고 또 읽어 확인했다. 전송한 다음에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욕이니 힐난이니 다 받을 준비가 되었는데도 휴대폰은 좀체 울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 이곳저곳을 기웃대다 오랜만에 사진첩을 열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해서 현수와의 추억이 많이 담겨 있는 곳. 결국엔 없애야겠지만 아직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손가락을 놀리자 의문의 그림자가 찍힌 사진이 화면에 떴다.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뭉개진 걸 보면 휴대폰이 떨어졌을 때 제멋대로 찍힌 것 같았다. 찍힌 시간은 내가 현수를 만났다고 생각한 그 시점이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 현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현수라고 착각한 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참동안 들여다봤다. 보다보면 생각날지도 모르니까. 음. 확실히 여자는 아니군. 생소하면서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누구지.

  불현 듯 윤완이 떠올랐다. 나를 부축하던 얼굴이, 걱정스럽게 나를 보살피던 얼굴이, 내게 멱살을 잡히고 욕을 먹고 더 심한 짓을 당하던 얼굴이 현수에서 그로 바뀌어 갔다. 설마.

  “에이. 아닐 거야. 이번에도 분명 기억이 왜곡됐겠지.”

  이렇게 흘러가면 앞으로 그 사람을 어찌 본담. 이준서라면 몰라도 윤완은 자신 없었다.

  “그래. 아닐 거야. 윤완일 리가 없어. 그 사람이 내가 부른다고 쫓아오겠어? 아무리 이웃사촌이라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돼. 하긴. 말이 안 되기는 이준서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현관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밀어 401호를 살폈다. 401호는 한 번도 열린 적 없었던 것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일요일이니 푹 자고 있겠지. 아니면 데이트를 나갔거나.

  그와 함께 라벤더 차를 마셨던 복도로 눈길이 옮겨 갔다. 돌이켜 보면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간을 떠올리자 라벤더 향이 맡고 싶어졌다.

  포트에 물을 끓였다. 라벤더 향으로 마음을 안정시킨 뒤 기억에 집중해 봐야지. 인퓨저에 차를 가득 넣고 천천히 물을 따랐다. 따뜻하고 그윽한 향이 내 주변으로 풍부하게 감돌았다. 자. 마음이 편안해 졌으니 시도해 볼까.

  눈을 감고 어제 일에 집중해 본다. 짧은 머리. 남자. 따뜻한 온기. 떠오른다. 떠오른다. 떠오른다.

  단단한 어깨와 포근한 향기. 아, 향기. 향기. 좋은 향기. 마침내 떠올랐……

  그때였다.

  “배달이요.”

  검은 모자에 마스크를 쓴 사람이 인터폰 모니터에 나타났다. 배달을 시킨 적도 없거니와 모습이 수상해 저절로 경계가 됐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없는 척을 하는 것이었다.

  내 쪽에서 반응이 없자 모니터 속 남자는 다시 초인종을 누르며 배달 왔다고 소리쳤다. 목소리가 제법 커 건물 안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자는 잠깐 기다리다가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나 했더니 곧 내 휴대폰이 울렸다. 벨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는지 배달원이 문을 두드리며 짜증을 냈다.

  “계셨으면서 왜 대답을 안 하세요. 앞에 그냥 두고 갈까요?”

  나는 체인을 걸어두고 문을 살짝 열었다. 남자가 들고 있던 쇼핑백엔 깔끔한 포트로 건강죽이라고 적혀 있었다.

  “죄송한데요. 저는 시킨 적이 없어요.”

  “그래요? 그럼 누가 보낸 거겠죠.”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배달원은 귀찮은 고객을 만났다는 표정으로 배달점표를 읽어 내려가다 비웃듯 입 꼬리를 살짝 올렸다.

  “간밤의 흑기사? 라네요.”

  만화를 많이 본 사람의 작명 센스였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는지 더듬어 보지만 성과는 없었다.

  문틈으로 쇼핑백을 건네받은 나는 식탁에 두고 내용물을 살폈다. 해물이 든 해장죽이었다. 어찌나 시원한지 한 입만 먹어도 절로 해장이 된다는 바로 그 죽.

  먹고 싶었다. 지금 내게 딱 필요한 거라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누가 보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것을 함부로 입에 넣을 순 없었다. 안에 이상한 거라도 들었으면 피해는 고스란히 내게 온다. 나만 받는다. 소중한 나를 위해서 신중하게 행동해야 했다.

  결국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내 눈엔 가끔 별이 보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하루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편의점에 들어가 1인용 죽을 골라 들었다. 내용물을 보니 해물 죽과 비슷했다.

  “그것보단 전문점 죽이 훨씬 맛있을 텐데요. 영양도 풍부하고요.”

  머리맡에서 울리는 목소리는 이젠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굳이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해물 해장죽이라든가.”

  “네? 그거 윤완 씨가 보낸 거예요?”

  나는 너무 놀라 고개를 획 돌렸다.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어서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런. 들켰네요. 네. 제가 바로 흑기사입니다.”

  윤완이 해맑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그렇다는 건. 정말로. 확인, 확인이 필요했다.

  “이 번호가 윤완 씨 번호인가요?”

  나는 통화목록을 열어 윤완에게 보였다. 그가 거침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으로 인해 발밑의 땅이 푹 꺼져서 내가 그 밑으로 빨려 들어갔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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