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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2화) 이런, 진상
작성일 : 20-09-21 21:33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5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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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주말이구나. 그러네.”

  나조차도 들리지 않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신경질이 나 ‘주말이다!’ 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성난 코뿔소마냥 쿵쿵 발을 굴리며 집 안을 돌아다녔다. 손바닥만큼 작은 집이라 거의 제자리를 왔다갔다 거리는 수준이었지만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 징글징글한 주말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매일이 힘겨웠지만 주말은 특히나 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현수와 붙어있던 날이었으니까.

  우리는 보통의 연인들이 그렇듯 영화관에 가거나 근교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맛집 탐방을 하거나 재밌는 것을 하며 주말을 보냈다.

  현수가 일을 해야 하면 가까운 카페나 현수의 집으로 갔다. 현수가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그의 옆에서 밀린 드라마를 보고 책을 보고 때로는 낮잠도 잤다. 모든 게 귀찮을 때면 그냥 그를 보고만 있었다.

  난 현수의 일하는 옆모습이 좋았다. 거기엔 진실성과 성실함이 있었고 책임감과 발전성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로가 쌓인 눈과 목을 스트레칭 할 때면 그가 너무 섹시해서 나도 모르게 뽀뽀세례를 날렸다. 나에게 주말은 그런 것이었다.

  ‘우린 결혼해서도 주말을 이렇게 보내자.’

  생생히 파고드는 그의 말에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쁜 놈. 그는 내 미래뿐만이 아니라 현재와 주말도 앗아가 버렸다. 멍하니 있다 무릎을 세워 얼굴을 묻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나는 울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정수리에서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살짝 열린 커튼 사이로 들어온 태양의 한 조각이 얼굴을 매만졌다.

  오늘은 태양이 떴구나. 날이 좋네.

  이렇게 좋은 날을 슬픔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방구석에서 보내기에는 왠지 억울했다.

  “고단비. 나가자.”

  마음이 굳혀지자 몸은 가볍게 따라왔다. 주스 한 잔을 마시고 양치질을 했다. 그러다 진짜로 화장실의 방음이 그토록 허술한지 궁금해졌다. 내 쪽의 모든 물을 끄고 벽에다 귀를 대보았다. 뭔가 울리는 소리가 나는가 싶었는데, 결국 내 착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윤완의 청력이 뛰어나게 발달한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니면 그가 외출을 했거나.

 

  무작정 걸었다. 목적지는 물론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마음 내키는 대로 여유롭게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익숙한 동네, 현수의 집 앞이었다.

  ‘바보. 멍청이. 자존심도 없는 못난이 같으니라고.’

  나는 내 자신을 비난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현수에게 들키기 전에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으므로 왔던 길로 빠르게 돌아섰다. 그때 어떤 기운이 내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바로 현수의 집이었다.

  기왕 여기까지 온 거.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다.

  ‘그래. 기왕 온 거.’

  나는 현수의 집이 있는 5층을 올려다봤다. 길가로 나 있는 창문은 꼭 닫혀 있었고 불도 꺼져 있었다. 이것만으론 현수가 집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노란색 차가 건물과 내 사이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깜짝 놀란 내가 뒤로 물러나자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미안해요.”

  건방진 말투로 내게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건넨 건 젊은 여자였다.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자에게선 내게 없는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한 마디 하려는데 빌라의 현관문이 열렸다. 혹시나 현수일까 봐 후다닥 다른 차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현수가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마음을 놓는데 또다시 현관문이 열렸다.

  이번엔 현수였다. 단정하게 매만진 머리하며 주름 하나 없이 반듯한 옷차림하며, 어디 하나 달라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그토록 그립던 그가 한치 앞에 있었다.

  나는 달려가 그의 넓은 품에 안기고 싶었다. 너를 용서하겠노라고, 그러니 다시 돌아와 달라고 뜨겁게 전하고 싶었다.

  지금 그에게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했다. 알고 싶었다. 이런 나를 반기진 않더라도 안쓰러워는 해줄는지 아님 학을 떼며 거북해할는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복잡함을 모르는 현수는 밝은 얼굴로 노란색 차에 다가갔다. 그러자 여자가 내렸다. 두 사람은 가볍게 포옹한 뒤 자리를 바꿔 올라탔다. 곧 노란색 차는 엉덩이를 의기양양하게 흔들며 골목을 빠져 나갔다.

  나는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현수에게. 벌써. 여자가. 생기다니. 나랑 헤어진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 7년이나 만난 내가 그렇게 쉽게 잊히는 존재였단 말인가.

  아니다. 저 둘은 절대로 그런 사이가 아닐 것이다. 여자는 현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의 이상형은 나처럼 은은한 여성이지 저렇게 색깔이 강한 여성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러나 반박할 수 없는 증거가 있었다. 바로 두 사람이 포옹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현수는 아무리 친한 사이래도 쉽게 스킨십을 하지 않았다. 그의 스킨십 대상은 오로지 여자친구였던 나뿐이었다. 그럼으로 포옹은 두 사람이 긴밀한 사이라는 걸 보여주는 신호였다.

  벌써 다른 여자를 만나는 현수에게 헤어질 때보다 더한 배신감이 들었다. 더불어 비참했다.

  나는 여전히 너 때문에 힘든데, 너와의 이별로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밤에 잠드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일 하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는 벌써 새 사랑과 함께 희희낙락하다니.

  비참해도 이리 비참할 수가 없었다. 왜 나와서, 왜 하필 이쪽으로 걸음을 해서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내 자신도 밉고 싫었다.

 

  꿀꿀해진 기분으론 도저히 들어갈 수가 없어서 집 근처 식당을 배회했다. 어쩌다 가게에 발을 들이면 1인분은 안 판다고 차갑게 쏘았다. 은영 씨의 백반집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에게 내 초라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곳은 건너뛰었다.

  그렇게 쫓겨나길 몇 번, 1인분도 괜찮다는 식당을 발견했다. 허름하고 좁았지만 정겨운 느낌이 드는 그런 곳이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끝이 닳아빠진 앞치마를 둘러맨 할머니가 밑반찬을 내왔다.

  “제육복음으로 주세요. 아주 맵게 해주세요. 그리고 소주도 한 병 부탁드려요.”

  사랑했던 남자의 애인을 본 오늘 같은 날에는 소주가 약이 될 수 있었다. 내게도 가끔은 이런 게 필요했다.

  “아가씨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네.”

  할머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소주병이 아닌 작은 단지를 가져왔다.

  “내가 담근 석류술이요. 어차피 마실 거라면 몸에 좋은 술로 마셔요. 손녀 같아서 그냥 내주는 거니 돈 걱정은 말고.”

  할머니는 내가 고맙단 말을 전하기도 전에 주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단지를 가만히 내려 보다가 함께 준 소형 국자로 술을 떠 잔에 담았다.

  잔을 채우는 붉은 색은 탐스러운 석류와 꼭 닮아 있었다. 그냥 마시기가 아까워 의식처럼 향을 맡고 혀만 살짝 대봤다. 새콤달콤한 향과 맛이 불쾌했던 기분을 살짝 눌렀다.

  주방에선 할머니의 콧노래와 팬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돼지고기 냄새가 흘러 나왔다. 이곳의 정겨운 분위기가 하루 종일 힘들었던 마음을 살살 풀어줬다. 그러나 술을 마시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나는 술과 고기를 적절히 분배해가며 먹었다. 아무리 감정에 상처가 났어도 실수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어느 순간 눈앞이 흐릿했다. 마시는 속도보다 흡수되는 속도가 빠른지 얼마 마시지도 않았는데 몸이 흐느적거렸다.

  나는 내 자신이 불어터진 미역처럼 움직인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신도 불어버려서 제어가 안 됐다. 그 제어가 안 되는 몸은 멋대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찾았다. 쿨하게 지워버리지 못한 그 번호를 말이다.

  그리곤 고민 없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가는 동안 그가 받지 않을까봐 초조했다. 이미 내 정신이 아니었지만 그 감정만큼은 확실히 살아 꿈틀댔다. 딸깍.

  “여보세요.”

  정겨운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렸다. 나도 따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단비야.”

  단비. 단비야. 그가 내 이름을 불러줬다. 그 순간 나는 으앙-하고 목 놓아 울었다. 내가 누구고, 어디에 있으며, 현수와 헤어졌다는 사실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중요한 건 현수가 전화를 받았고, 아직도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다는 거였다.

 

 *

  아침까지도 숙취가 지독하게 달라붙어 나를 괴롭혔다. 담금주가 일반 술보다 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머리에선 작은 요정들이 콩콩콩 돌아다녔고 위에선 다른 요정들이 창으로 마구 찔러댔다. 쉬지 않고 반복되는 이 같은 증상에 나는 손쉽게 너덜너덜해졌다.

  일어나기가 힘들어 다시 자려다가 심한 갈증을 느껴 냉장고로 갔다. 차가운 생수 두 컵을 연거푸 마시자 머리가 아픈 것과는 별개로 잠이 확 달아났다. 그래서 침대에 몸을 뉘였지만 눈은 말똥말똥했다.

  “근데 어떻게 들어온 거지. 흠.”

  나는 자는 대신 간밤의 일을 더듬어 갔다. 쉽지 않았지만 한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 내자 다음부터는 순조로웠다. 내 전화를 받은 현수는 금방 식당으로 왔다. 현수는 침착하게 상황을 관철했다. 우리 사이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태연한 얼굴로 나를 대하는 그를 보자 화가 났다.

  그래서 몹쓸 짓을 했다. 그의 멱살을 잡고 나쁜 놈이라고 욕했다. 배신에 대한 대가라며 뒤통수를 갈겼다. 가지 말라고 사정하면서 바짓가랑일 붙들기도 했다. 골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별을 따주겠다던 약속을 지키라며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으헉. 생각났다. 나를 부축하는 그를 혼자 갈 수 있다며 밀어내다 그만 그의 옷에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말았다. 중간 중간 필름이 끊긴 곳이 있었지만 현수를 만난 건, 추태를 부리는 나를 보는 그의 눈빛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사귈 때도 하지 않았던 진상을 부렸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현수는 그런 나를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사랑을 잃어 방황하는 내가 가엾고 원인을 제공한 게 자신이라서 미안했을까. 그런 것도 잠시 내가 참 하찮게 느껴졌겠지.

  슬프고 비참했다. 안 하던 실수를 한 내가 짜증스럽다가도 얼마나 견딜 수 없었으면 그랬을까 연민을 느꼈다. 거기다 숙취는 여전하고. 몸도 마음도 아파서인지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가 끓여준 해장국이 먹고 싶었다.

  엄마와 통화를 한 건 몇 달 전, 엄마의 생신날이었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나를 딸 취급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라고 마음이 쓰였다.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스카프를 샀다. 그러나 엄마는 약속 장소로 나오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약속에 응하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나에 대한 마음은 여전히 딱딱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절 당할까봐 두려웠고, 상처받을까봐 겁이 났다. 이런 관계는 내가 선택한 인생에 대한 대가일 테니 덤덤하게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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