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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11화) 복도에 차린 둘만의 카페
작성일 : 20-09-21 21:32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5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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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현관 도어락의 번호를 누르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 틈에 온 윤완이 서 있었다. 모임에서 만났을 때보다 한층 밝은 얼굴이었다.

  “단비 씨도 이제 오는 거예요?”

  “네.”

  나는 대답과 함께 재빨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냉랭하게 굴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차인 사실을 이젠 그가 공식적으로 알게 됐으니 마주보기가 껄끄러웠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나는 목을 빳빳이 들고 층의 숫자가 줄어들기만을 기다렸다. 시간이 유달리 길게 느껴지던 그때였다.

  “저도 차였어요.”

  윤완이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슬쩍 보니 그는 나와 똑같은 포즈로 줄어드는 숫자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럴 땐 어떻게 반응해야 예의인 걸까.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했다는 건 들어달라는 신호 같은데 마냥 모른 척 하기도 그렇고.

  “그러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어요.”

  예상이 빗나갔다. 그는 들어달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에 대한 배려로 사생활을 오픈한 것이었다. 과연 이별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모임을 주최할 만한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우리는 나란히 올랐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내 표정이 조금씩 풀어지는 게 느껴졌는지 윤완이 수다스럽게 말했다.

  “제 차 타고 왔으면 편했을 텐데 왜 먼저 가셨어요.”

  그리 말해줘서 고마웠지만 난 가벼운 미소로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는 상관하지 않고 다음번엔 꼭 같이 오자고 강조했다.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던 그의 눈동자가 내 손에 들린 쇼핑백에 고정됐다. 핑크색으로 블링블링한 쇼핑백에 든 것은 쇼핑백만큼이나 화려한 미니 케이크였다. 요즘 sns에서 가장 핫한 베이커리의 제품이었다.

  그동안 먹어보고 싶었음에도 사러가지 않은 건 좀체 시간이 나지 않은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오랜 시간 줄 서도 허탕을 칠 수 있다는 여러 사람의 정보에 감히 도전하지 못했다. 나는 맛집을 좋아하지만 줄 서서 사먹는 스타일이 아니라 그런 건 참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모임이 그 베이커리 카페 근처에서 열렸고, 나는 그냥 돌아오기가 아쉬워 카페에 한 번 들려봤다. 마감시간이라 줄을 서진 않았지만 역시나 진열장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망연히 발길을 돌리는데 구석을 청소하던 알바생이 나를 불러 세웠다.

  “괜찮으시면 이거라도 가져가실래요? 예약자가 찾으러 안 오시네요. 연락도 안 되고요. 오늘이 지나면 신선도가 떨어져 팔지도 못하니까 그냥 드릴게요.”

  알고 보니 그녀는 알바생이 아니었고, 덕분에 나는 케이크를 다섯 종류나 얻을 수 있었다.

  “혼자 먹기엔 많은데 하나 드셔보실래요?”

  공짜로 생긴 것이라 선뜻 선심이 쓰였다. 게다가 일종의 비밀을 공유하게 됐으니 잘 지켜달라는 의미로 뇌물을 주고 싶었다. 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윤완은 사양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 거나 괜찮다는 그에게 선택권을 줬다. 쇼핑백에 얼굴을 들이밀고 케이크를 고르는 옆얼굴이 꽤나 진지해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입술 사이로 빠져나오기 전에 붙잡아 꾹 삼켰다.

  “도저히 못 고르겠어요. 다 맛있어 보이는데요?”

  윤완은 몹시 힘들어 했다. 하긴. 케이크를 보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하나같이 먹음직스럽고 유명했으니까.

  “게다가 제가 하나를 가져가 버리면 단비 씨는 그 하나를 아예 못 드시게 되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그냥 단비 씨가 드실 때 제 포크도 살짝 챙겨 주시면 안 될까요?”

  같이 먹자는 말은 나를 놀라게 했다. 고작 몇 번 본 게 다인 낯선 사람을 집에 들이기 싫다. 그렇다고 그의 집에 들어가는 건 더 싫은데.

  난감해하는 내 표정에 그가 실언을 했다며 그 말을 취소했다. 그리곤 엘리베이터의 문이 땡 하고 열리자 곧장 나갔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이 케이크를 다 먹을 수 있을까. 그동안 잘 먹지를 않아서 뱃속을 가득 채우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게 뻔했다. 겪지 않아도 명백한 사실이라 괜한 욕심은 부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윤완을 쫓아가 그냥 다 주겠다고 말했다.

  “별로 생각이 없어서요.”

  “에이. 그래도 그건 안 될 말이죠.”

  “전 정말 괜찮아요.”

  쇼핑백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또 저쪽에서 이쪽으로 몇 번이나 이동했다. 서로가 너무 확고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윤완이 잠시만 기다리라더니 제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기다렸다. 이유도 모른 채 기다리다가 의구심이 들었다. 대체 내가 왜 저 사람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그래서 쇼핑백을 401호 앞에 두고 집으로 가려했다.

  그러나 그가 한발 빨랐다. 그는 401호와 402호 사이에다 담요를 깔았다. 내가 앉을 자리엔 푹신하게 방석까지 더 깔아줬다.

  “여기서 먹자고요?”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몇 번이나 확인했다.

  “우리 집도 단비 씨 집도 안 되잖아요. 서로 가져가는 것도 싫고. 그러니 이게 최선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집 앞인데 뭐 어때요. 나쁜 짓을 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케이크를 먹는 거잖아요.”

  그가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리된 거 그냥 빨리 먹고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다. 내가 방석 위에 앉자 윤완은 겉옷을 벗어 내 무릎을 덮어줬다.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겉옷은 그대로 내 무릎 위에 있었다.

  “혹시 몰라서 가지고 나왔어요. 라벤더 차예요.”

  그는 보온병에 담긴 따뜻한 차를 컵에 따라 내게 줬다. 아까 본 꽃대가 떠올라 넌지시 카페에서 기른 라벤더냐고 물었다.

  “네. 기르는 것에서부터 말리는 것까지 제 손으로 직접 다 했죠.”

  알아봐준 게 기쁜지 그의 입 꼬리가 슬슬 올라갔다.

  “많이 있으니까 좀 드릴게요. 라벤더가 숙면에 좋거든요.”

  그가 라벤더 얘기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케이크를 나눠 먹기 좋게 잘랐다. 마지막 케이크를 자르다가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무화과가 올라간 케이크였다.

  현수는 무화과를 좋아했다. 제철인 가을만 되면 냉동고고 냉장고고 무화과로 가득했다. 잼도 무화과만 고집했고 심지어 향수도 무화과 향만 소장했다.

  국숫집의 닭튀김과 무화과에서 알 수 있듯이 현수는 한 가지에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나하고도 오래 사귈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 마법은 이제 끝났지만.

  “단비 씨는 맛있는 걸 보면 눈물을 흘리시는 군요. 저는 침을 흘리는데.”

  윤완이 개그맨 흉내를 내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똑같은 구석이 없어서 누군지 모르겠는 건 물론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눈물을 훔친 뒤 무화과 케이크를 온전히 내밀었다.

  “얘는 도저히 못 먹겠어요.”

  눈치가 빠른 그는 그 케이크를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아무 것도 아닌 나를 위해 이토록 애써준 게 고맙고 또 미안했다.

  “이렇게 후하신 거 제가 모임 사람이라서 그러시는 거죠?”

  “아니요. 그것보다 더 끈끈한 사이라서요.”

  “네?”

  “우린 그거잖아요, 그거. 이. 웃. 사. 촌.”

  피식 웃음이 났다. 처음에는 변태로 오인했고, 그 다음은 백수로 생각했고, 지금은 나처럼 이별을 경험한 사람일 뿐 이웃사촌이라고는, 어딘지 정감 있는 그런 사이라고는 조금도 여기지 않았는데 저 사람은 벌써 그렇게 느끼고 있다니. 그래서였을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고 싶어졌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물어봐도 될지……모르겠지만.”

  “괜찮으니 다 물어봐요. 이런 게 바로 이웃사촌의 특권이니까.”

  그에게 허락은 받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 생크림만 짓이겼다. 그러다 조금 떠 입에 넣었는데 비릿한 우유 향이 고스란히 느껴져 넘기기 힘들었다. 예민해진 탓이리라.

  “뭔데 그리 심각해요?”

  윤완이 포크를 내려놓고 나를 빤히 봤다. 마주친 눈이 말갛게 빛났다. 그 안엔 영혼이 있었다. 살아 있는 눈이었다. 저 눈이 한때 잃어버린 사랑 때문에 울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저렇게 되려면 얼마나 지나야 할까.

  “헤어진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무례한 질문이었다. 그가 나를 끈끈한 이웃사촌으로 여긴다 해도 불쾌할 수 있는 호기심이었다.

  “죄송해요. 괜한 걸 물었네요. 잊어버리세요.”

  잘못을 느끼면 즉시 사과하는 것. 나나 상대에게 옳은 행동.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5년이요. 덧붙이자면 자그마치 10년을 만났고, 2년을 지독하게 앓았어요.”

  윤완은 남의 얘기를 하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그의 눈이 보여줬듯이 이젠 정말로 괜찮은 듯 했다.

  “그리고 마침내 멀쩡해 졌어요.”

  자신의 현재 상태를 확인시켜주며 활짝 웃는 그. 편안한 생기가 돌았다. 그의 영혼은 잔잔한 물결처럼 고요하게 숨 쉬고 있었다. 이제는 괜찮아졌으면서 왜 이별 모임 같은 걸 주최하는 걸까.

  “그런 모임을 주최하실 줄은 몰랐어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죠.”

  “모임은 어떻게 열게 되신 거예요?”

  “이별의 첫 단계는 인정하는 거예요. 인정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거든요. 저는 그걸 몰라서 긴 시간을 허비했어요.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시간을 더 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람에게 써버렸어요. 그 시간동안 혼자서 많이 아팠고 외로웠죠.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함께 해주고 싶었어요. 그게 이유에요.”

  얘기를 마친 윤완은 다시 포크를 들었다. 답변에 만족한 나는 남은 케이크를 전부 그에게 몰아주고 다시 말없는 이웃으로 돌아갔다.

  소박한 자리는 금세 끝났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뒤 윤완에게 얻은 라벤더를 진하게 우려 마셨다. 온수 샤워와 라벤더 차는 피로를 푸는 기막힌 조합이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남겨두고 가만히 보았다. 무색의 물을 자신의 색으로 완벽히 물들인 라벤더. 과연 윤완도 슬픔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행복이란 색으로 물들일 수 있을까. 나에게도 그 색이 전해질 수 있을까.

 

 *

  머리맡을 비행하는 파리 때문에 잠에서 깼다. 간밤엔 라벤더 차의 효능 때문인지 잘 잤다. 중간에 깨서 울지도 않았다. 현수 꿈을 꾸지도 않았고, 초 간격으로 마음이 쿵 내려앉지도 않았다. 평화로운 밤이었다. 그러나 깨어있는 지금은 또다시 슬픔에 젖어들어 갔다.

  여전히 내게 깨어 있다는 건 독에 취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몽롱할 만큼 아프고 쓰리고 괴로웠다. 어떨 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그런 내게 필요한 약은 잠이었다. 잠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그새 파리는 어디로 가버렸는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제 어둠 속에서 들리는 건 얕은 나의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안심이 되는 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현수의 목소리가 사방에 둥실 떠다녔다.

  단비야. 바보. 잘 잤어. 보고 싶다. 밥 먹자. 아프지 마. 예쁘다. 괜찮아. 사랑해……

  함께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이 들었던 낱말들이 현수의 목소리가 되어 나를 압박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던 난 허공을 향해 두 팔을 내저었다. 실체가 없는 말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였다.

  날 또다시 괴롭히기에 하는 수 없이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시간을 보니 9시였다. 그리고 오늘은 토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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