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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21세기 도사
작가 : 단단
작품등록일 : 2019.10.3

21세기에도 도사는 존재한다.
도사라고 하여 잔뜩 기른 수염과 정돈되지 않은 머리로 산 속에서 뿌리채소만 캐먹고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면 그것 참 안타깝다. 단지 일반인에게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 그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간다.
도사학당을 다니는 사방신 중 청룡과 현무의 후예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한편, 한반도의 평화를 막는 세력에 대항해, 한국은 마침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21세기 도사 29
작성일 : 20-09-20 21:57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7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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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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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로 수현은 민석의 집에 자주 놀러갔다. 굳이 따지자면 저 일이 있고 좀 후의 일이지만. 한 번 민석의 집에서 식사를 한 후로 수현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렵냐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뻔질나게 들어 닥쳤다.

  그날따라 늦게 끝난 동아리에 동아리장인 수현은 얼른 기숙사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어 발바닥이 드릉드릉했다. 근데 웬걸 저 놈의 민석이가 왜 이렇게 밍기적 거리는지. 다른 애들 다 붕붕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떠난 와중에 왜 저자만 혼자 저러고 꼼지락대고 있는가! 민석이 네 이놈 앞으로 밍석이 해라.

 "야. 김민석! 아 뭐하냐고. 집 좀 가자고~!"

 그 말에 눈에 띄게 움찔한 민석은 몸을 돌려 난감한 듯 눈을 굴렸다.

 "저.. 그니까. 음..."

 "뭐! 뭐! 대체 뭐가 문제야!"

 문 앞에 서있던 수현이 성큼성큼 민석을 향해 돌진하듯 걸어갔다.

 “왜. 뭐 잃어버렸어? 왜 못가고 이러는 건데~?!”

 “그러니까. 밥... 밥 먹자고.”

 “아~ 진짜 사내자식이 그 말을 못해서 이러고 있냐? 먹어! 먹으면 되지!”

 호탕한 수현의 반응에도 민석은 여즉 뒷통수를 긁적이며 뜨뜨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근데, 그게... 우리 집에 가서.. 먹자고..”

 “엥?”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에엥?”

  그렇게 입성한 민석의 집이었다. 어린 아이를 홀로 키운 민석의 할아버지는 요리도 수준급이었던지라 갈비찜이며 잡채며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수현을 대접했다. 수현도 남의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수 없다며 민석을 끌고 시내를 돌았다. 어차피 저번 일로 약속했던 거 대접하는 거니 상관없다는 민석의 말에도 수현은 예의범절 국밥으로 말아먹은 놈들도 이건 하는 거라며 하염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수현도 자신의 친할아버지 앞에서나 기가죽고, 학교에서 애들이 시비걸때나 비웃으며 흘겨봤지 어화둥둥 내 새끼 예뻐라하는 부모와 외갓댁에서는 그야말로 예쁨 받는 사랑둥이 그 자체였다. 자신 손자의 일로 고마워 초대한 아이가 양손가득 선물을 들고 방싯방싯 웃으며 밥도 맛있게 잘 먹는데, 그런 아이가 학의 눈에 안 예뻐 보일 리가. 앞으로도 자주 놀러오라며 첫 만남에 이 집 프리패스 끊었다.

 

 “한수현 집 안가냐? 니네 그 궁궐 같은 집 두고 퍽하면 우리 집에 와.”

 “야, 이게 니 집이냐? 할아버지 집이지? 할아버지! 얘가 저 괴롭혀요!”

 “야.. 내가 또 언제 괴롭혔냐?”

 “아이고 얼른 둘 다 와서 밥 먹어.”

 “아싸 김민석보다 내가 더 많이 먹어야지.”

 수현은 민석을 밀어내고 부엌을 향해 오도도 달려갔다. 부엌으로 달려간 수현은 학의 옆에서 수저를 놓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민석은 쇼파에 반쯤 누워 허, 하고 허탈한 숨을 내쉬었다.

 “아주 지네 집이지.”

  물끄러미 둘을 보던 그는 결국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더 자신을 부르는 학에 천천히 몸을 일으킨 그는 수현과 학의 곁으로 갔다. 여느 집 같은, 조금은 시끌벅적한 저녁식사가 이어졌다. 수현은 할아버지의 음식이 본인의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고 학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며 웃었다.

  민석이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면서 조용히 잔잔하기만 하던 이 집에 활기찬 바람이 분 것은 수현이 저녁을 먹기 시작한 그 날 이후였다. 민석도 덕분에 밝아진 할아버지의 모습에 그 날 그렇게 싸웠던 일이 본인에게 나쁘기만 한 일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실기시험을 앞둔 어느 날, 늦은 저녁 실기연습실을 기웃거리던 민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실기 연습하는 수현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수현은 모든 수업이 끝난 후 실기연습실을 차지하고 마감시간까지 땀을 흘렸다. 하루는 시험을 앞두고 점검이 있어 체육관을 제외한 모든 실기실 사용이 어려웠다. 그날도 수현은 아무도 없는 체육관으로 갔다. 체육관은 일반 실기실이 일, 이 인실인데 반해 넓고 낙후된 시설이라 학생들의 선호도가 낮았다. 그래서인지 이른 시간에도 체육관은 텅 비어 있었다.

  한창 수현이 개인 연습을 하다 한복판에 누워 숨을 고를 때, 필기시험 공부를 하고 실기 연습을 하러 온 민석이 그 모습을 마주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고개만 힐끗 돌렸다 다시 천장을 바라보는 수현. 여전히 숨이 가쁘다. 그런 수현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온 건지 민석은 금방 뽑아 시원한 음료수를 건넸다.

 “마셔.”

  고개만 살짝 돌려 민석을 보던 수현은 그제야 몸을 천천히 일으켜 민석이 주는 음료수를 받아 들었다.

 “정신 사나우니까 앉아.”

 그 말에 수현의 옆에 자리를 틀고 앉았다. 음료수를 반 즈음 마셨을 때 민석이 수현에 물었다.

 “왜 그렇게 까지 열심히 해?”

 민석이 물어볼 줄 몰랐다는 듯 수현은 음료수를 마시다 민석을 힐끗 쳐다봤다. 질문은 민석이 했음에도 민석은 앞만 보고 있었다.

 “비꼬는 거 아니야. 그냥, 진심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시험이 코앞이잖아.”

 “이미 잘하면서.”

 “그래도 더 잘해야지.”

 “뭐가 그렇게 불안하냐.”

  수현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수현은 학당에 입학한 이래 단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학당에 입학하기 전에도 그는 줄곧 1등을 해왔다. 아니 그냥 그는 살아온 세월 줄곧 1등이었다. 압박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언제나 그 주위로 최고의 사교육 교사들이 붙었다. 청룡가의 종손으로 차기 주인이 될 그녀는 집안의 기대를 받았다. 단지 어린 수현에게 충분한 칭찬의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의 부모를 제외한 가족들에겐 오히려 탐탁치 않는 존재였을 뿐. 엄밀히 따지자면 기대도 아니었다. 다들 눈 꼬리를 삐죽이며 쳐다봤다. ‘네가 그 우리 청룡가문의 주인이 될 거라며. 어디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다들 눈을 크게 뜨고 수현이 실수하는 그 순간만 기대하며 지켜봤다.

  심적인 압박은 나날이 심해져가 1등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차이의 1등. 최고. 그것만이 수현이 가지는 불안감을 탈피할 수 있으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오직 제 부모만이 수현을 달랬다. ‘아가.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 꼭 1등이 아니어도 좋고 청룡가의 주인이 아니어도 좋아.’ 부모가 백날 천날 수현에게 사랑을 속삭여도 부모의 시야에서 떨어지는 순간, 온 세상에 수현을 향해 날을 세웠다. 적어도 수현은 그렇게 느꼈다. 모두가 자신을 향해 칼날 끝을 목 끝에 대고 있는 것 같다고.

 “넌 항상 절벽에 매달린 사람 같아. 매번 절실하고 절박해보여.”

  잠잠히 듣고 있던 수현이 한참 만에 답했다.

 “친구들이나 선생님은 다들 잘한다고, 넌 어떻게 쉽게 쉽게 하냐고 그러던데 니 눈에도 그렇게 보이냐?”

 “쉽지 않은 일을 쉬워 보이게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잖아.”“... 그치.”

 그 말을 끝으로 체육관은 정적이 흘렀다. 민석은 괜한 소리를 했나 싶었다. 사실은 약간 후회도 되었다. 자신도 그랬듯 남의 힘든 부분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건데. 아무리 수현이 일 년 넘게 자신의 집을 들락거렸다고 해도. 시간이 모든 서로의 선을 허락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짐을 덜어주고 싶어 꺼낸 말이 오히려 수현에겐 부담이 되었을 거라 판단했다. 그만 자리를 비켜줘야 생각했다. 다 마신 캔을 갈무리하며 자리를 뜨려는 민석에 수현이 입을 열었다. 아직 떼지 못한 민석의 엉덩이는 계속 땅에 붙어있어야 했다.

 “넌, 성인이 되면 어디로 갈 거야?”

 “나? 난... 인사부나 대외협력부.”

 “중앙부가 아니라? 네 성적이면 충분히 가잖아. 성적도 항상 상위권에 드는 주제에.”

 “중앙부 돈 많이 주는 대신 빡세잖아. 돈 많이 안 줘도 안 빡센 곳이 좋아.”

 “왜?”

 “나 때문에 고생한 우리 할아버지 모시고 북한 가야돼서 내가 바쁘면 안 돼.”

 “월북하게? 간첩이냐?”

 “할머니가 북한에 계시 대. 죽기 전 소원이 고향에서 할머니 만나시는 거라는데...”

 의외의 대답에 장난스레 말한 수현은 그저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번에도 금강산관광 신청해서 됐는데, 내가 성인이 아니라서 최종 탈락했거든.”

 “너 말고 다른 친척이나.. 같이 가면 되는 거 아니야?”

 “없어. 세상에 가족은 나랑 할아버지 둘이라.”

 “아.. 미안.”

 “괜찮아. 딱히 미안할 일도 아니고.. 너는? 중앙부?”

 “어. 중앙부.”

 “중앙부 어디?”

 “그건 아직 못 정했어.”

 “그래..”

 수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열심히 무탈하게 잘 지내다가 졸업하고 중앙부 가서 마지막엔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것. 그게 본인의 운명이자 삶이라 생각했다.

 “너한텐 중앙부가 절실한 거야?”

 “글쎄...”

  민석의 질문은 그거였다. 그래서 네가 이렇게까지 혹사하며 열심히인 것이냐고. 중앙부가 너에겐 그렇게까지 절실한 것이라. 수현은 생각했다. 본인에게 중요한 게 중앙부일까. 아니 굳이 따지자면 가문의 주인이 절실했다. 원래라면 본인이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게 맞다. 태어난 날 증표로 따지나 능력으로 따지나 본인이 가문의 차기 주인이었다. 하지만 수현은 잘 알고 있다. 가문의 원로들은 본인을 좋아하지 않고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걸. 그리고 그걸 막아 줄 현재 가문의 주인인 자신의 할아버지조차.

  수현은 기다리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대관식은 자신이 스무살이 되는 해에 열릴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그때까지 자신의 성을 견고히 쌓으며 이 악물며 버티자 생각했다. 하지만 대관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도 쥐죽은 듯 잠잠한 집안에 이때다 싶어 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피라미들도. 그 중 하나인 지혁도 그걸 알고 학교에서 날뛰는 걸 수현도 잘 안다. 하지만 수현은 자신 있었다. 그들을 모두 누르고 차기 주인이 될 자신이 있었다.

  해가 거듭할수록 무거워지는 압박감에도 줄어드는 자신감에도 그래도 곧 자신이 차기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 대관식이 끝나면 이 모든 지겨운 견제도 끝날 것이라고. 자신의 생일이 오기만을 동앗줄마냥 붙들고 늘어졌다. 그래야 버텨낼 수 있어서. 그래야 살아갈 수 있어서.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종종 자신과 자신의 엄마를 보며 혀를 차던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리고 종종 그 옆에서 -저게 계집애가 아니라 사내애였어야 했는데-라며 말을 얹던 어른들을 기억한다. 그렇게 보면 가문이 절실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

 “난,”

 “내가 절실해.”

 

 -

 

  수현은 민석의 집에 갔던 그 어떤 날을 기억한다. 그날의 학교는 방학식을 막 마친 참이라 교실이고 기숙사고 할 것 없이 부산스러웠다. 수현은 넓은 운동장 한켠에서 하나 둘 아이들이 가족들과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만 보았다. 집에 오냐며 데리러 갈까 묻는 엄마의 연락에 이곳에 남겠다 했다. 그에 엄마도 그저 알겠다 대답했다. 지난주 다녀온 본가는 숨이 막혔다. 이러다 죽지 싶었다. 외가댁에 갈까 싶었지만 정작 본가에 가면 싸늘한 시선만 주면서 또 외가댁에 가면 눈치를 그렇게 줬다. 눈 딱 감고 갈까 싶었지만 본가에 있을 엄마는 무슨 죄인가 싶었다.

  시끄러운 한낮이 지나가고 하늘을 붉게 물들여 가는 오후가 한창일 때, 수현은 아무도 남지 않은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터덜터덜 한 칸씩 스탠드를 내려가는데 그제야 커다란 짐을 지고 나오는 민석이 보였다. 먼 거리에서 눈이 마주친 둘은 잠깐 자리에 멈춰 섰고, 먼저 걸음을 옮긴 건 수현이었다.

 “집 가냐?”

 “어. 아직 안 갔네.”

 “난 집에 안가.”

 “그래?”

 “어. 방학동안 학교에서 지내. 어차피 방학도 짧고 그게 편해서.”

 “밥은 먹었냐.”

 “내가 애냐.”

 “안 먹었나보네.”

 “됐다. 집에 가라.”

 “야 한수현.”

  주머니에 손을 꼽은 채 민석을 스쳐 지나가던 수현은 민석의 부름에 다시 몸을 돌렸다. 대답 없이 빤히 바라보는데 저 멀리 교문을 넘어 오래된 연식의 차 한 대가 검은 매연을 뿜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밥 먹고 가.”

  자신이 서있는 곳 근처에 와서야 멈춘 자동차의 차문이 급히 열리고 거기에서 학이 내렸다.

 “민석아! 할아버지가 늦었지.”

 학이 분주한 모습으로 민석에게 다가왔다.

 “아이고 수현이도 같이 있었네.”

 “안녕하세요.”

  다소 어색한 인사와 웃음이 오가는 사이 민석은 짐을 차에 실었고, 정신차려보니 수현은 차에 타있었다.

 “그래~ 집에 가서 식사라도 하고 가. 학당이랑 가까워서 금방이잖니.”

  도착한 학의 집은 작지만 언제나 따뜻했다. 어디하나 본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성으로 가꾼 집이었다. 거실 가운데 진열된 몇 장의 사진 속 사람들은 모두 젊었다. 그 중 단 한 장의 사진은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것 같았다. 그럼에도 소중히 액자에 끼워진 채 가장 오른쪽에 위치했다. 조금 삐뚤어진 액자를 수현이 바로 고쳤다.

 “우리 할머니.”

 “아...”

 “난 한 번도 뵌 적이 없는데, 항상 함께하는 기분이야. 할아버지가 엄청 자주 말씀하시거든.”

 어느 새 다가온 건지 본인 옆에 선 민석이 말을 걸었다. 조심스레 위치를 고쳤던 손이 더욱 조심스러워 졌다. 힐끗 본 민석은 한 번도 뵌 적 없다면서 꽤나 애틋한 눈을 하고 있었다.

 “얘들아 손 씻고 밥 먹자. 민석아 와서 수저 좀 놓아.”

 “야 너도 와.”

 “민석아 손님에게 일을 시키면 쓰니.”

 “쟤가 뭔 손님이야. 여기에 온 게 몇 번인데.”

 “아휴, 그래 수현이도 이제 우리 식구지. 오늘 수현이 오는 거 알았음 수현이 좋아하는 잡채라도 해둘걸 그랬네.”

  소박한 식탁에 단출한 가족이었다. 끝을 모르게 늘어진 음식과 그 식탁을 둘러싼 어른들. 그럼에도 분위기는 항상 차가워 맛을 느끼기도 전에 체기부터 느껴졌던 수현의 본가 식사시간과는 영 딴판인. 그래서 더 따뜻했던. 그날의 식사였다.

 

 -

 

  민석이 돌아간 수현의 방은 마치 새벽의 어느 때처럼 고요했다. 창밖 너머로 보이는 차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다면 다들 시간이 멈췄다 생각했을 것이다. 흐르는 시간 속, 수현은 기억에 갇혀있었다. 기억은 추억의 한 편으로 데려가기도 했고, 악몽의 한 편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수현의 시간은 여전히 기억 속을 부유하고 있었다. 한 번 빠진 기억의 바다는 홀로 빠져나오기 힘들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 빠져나오길 포기하고 모든 힘을 뺀 순간에야 하늘이 보였다. 그리고 마치 물고기를 건져 올리듯 순식간에 현실의 뭍으로 내동댕이 처졌다.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김비서가 들어왔다.

 “대표님.”

 김비서의 부름에 수현은 시선만 올려 그를 보곤 말하라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만약 다시 바꾸시려면 오늘이 지나기 전에 하셔야 해요.”

  그의 말에도 수현은 대답이 없었다. 김비서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이 문제로 고뇌할 사람은 수현이라는 걸, 하지만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이대로 명단이 고정이라면 상관없었지만 만약 바꿔야 한다면 오늘을 넘기면 안됐다.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짙어지는 노을빛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말해줬다. 여긴 명분이 중요했다. 빌미도 중요했다. 명분은 만들면 되지만 빌미는 내주면 안 되는 곳이었다. 김비서에겐 대의도 중요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모시는 수현이었다. 그가 원한다면 명분이야 만들면 됐고 빌미야 없애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자신의 주인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길 바랐다. 남들이 아닌 자신을 위해, 자신이 원한. 테이블 위를 두드리던 수현의 검지손가락이 멈췄다.

 “김비서.”

 “네. 대표님.”

 “김비서라면 어떻게 할 거 같아요?”

 김비서는 말없이 수현을 바라봤다.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을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 김비서는 그 순간에 스치듯 수현의 여린 얼굴을 봤다고 생각했다. .

  지극히 평화로운 오후였다. 나는 항상 쟁취해야 했는데 저 밖은 항상 쉬운 것 같다고 수현은 생각했다. 오후의 붉은 햇빛이 수현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붉은 빛은 눈가며 볼이며 수현의 얼굴 곳곳을 물들였다.

 

 “내가 한 선택은 항상 틀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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