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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4화) 이별 뒤, 하루
작성일 : 20-09-14 21:06     조회 : 244     추천 : 0     분량 : 5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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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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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란한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차가운 공기가 코를 간질여서 재채기가 나왔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러나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잠은 캄캄한 밤에만 자신을 허락한다는 듯이 무정하게 지나갔다. 지난밤에도 울다가 겨우 잠에 들었는데, 그 평화로운 순간은 또다시 날아가 버렸다.

  잠에 취했던 정신이 또렷해지자 저 멀리 밀어뒀던 갖가지 생각들이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싣고 떠내려 왔다.

  현수가 이별을 고한 이유, 이유, 이유. 여전히 절절한 내 사랑. 현수와 함께 거닐었던 밤바다. 차에 누워서 듣던 빗소리. 밤새 나누던 대화. 그와 내가 만든 수많은 꿈. 나무 그늘 아래에서의 낮잠. 함께 했던 모든 것의 시작점……

  소소하지만 큰 행복을 안겨줬던 그와의 시간들이 머릿속 깊숙한 곳에서 나와 가슴을 마구 두드렸다. 특히 그와 처음 만났던 날이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또렷하게 기억나 감정을 휘저었다.

 

  그때 나는 3학년이었고 현수는 제대한지 얼마 안 된 1학년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현수는 까까머리를 숨기기 위해 언제나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했다.

  그날 나는 과에 상관없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특강을 들었다. 현수도 그곳에 있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물론 현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속하지 않는 각각의 낯선 우주였다. 그랬던 우리가 하나의 우주로 합쳐질 수 있었던 건 교수님께서 한 남자를 지적한 순간, 지루한 수업에 내 집중력이 흐트러진 그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네는 수업 시간에 모자를 쓰고 있는 게 예의라고 생각하나?”

  점잖던 교수님의 목소리가 한톤 올라가자 강의실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현수에게 꽂혔다. 나도 은근슬쩍 그를 돌아봤다.

  현수는 냉큼 모자를 벗고선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매만지며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때까지 웃는 입 꼬리가 그렇게 예쁜 남자는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순간 그를 빼고는 모든 게 멈췄다.

  강의가 끝난 뒤 그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때는 꿀 냄새까지 맡았다. 자꾸만 맡고 싶은 달콤함에 나는 취했고, 취했고, 또 취했다.

  그래. 첫눈에 반한 쪽은 내 쪽이었다. 멀어져가는 그를 붙잡고 뭐라도 얘기해보고 싶었던 것도 내 쪽이었고, 연락처를 알고 싶어서 안달 낸 것도 내 쪽이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서 그 앞에 나설 수 없었다. 그때는.

  그 후로 난 교정을 거닐 때마다 주변에 현수가 있진 않은지 돌아봤다. 슬프게도 행동반경이 다른 우리는 한 번도 부딪히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몇 날 며칠 학교 식당만 찾았지만 그것 역시 수확이 없었다. 이름은 물론 과도 모르는 그를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별 과제 때문에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날이었다. 나는 내기에 져 간식 당번이 되었고, 홀로 편의점에 가 간식을 고르고 있었다.

  “저기요. 이거.”

  과자를 한 아름 든 내 앞으로 언제 들어왔는지 모를 현수가 다가왔다. 그는 단지 모양의 바나나 우유를 내게 내밀었다.

  “괜찮으면 드실래요? 원 플러스 원인데 나눠줄 사람이 없네요.”

  그렇게 찾아 헤매던 그가 내 앞에 있다는 사실은 물론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 또한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내 겉옷 주머니에 우유를 넣었다. 그리곤 눈인사를 보내며 편의점 밖으로 나갔다.

  이대로 그를 놓치면 다신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됐다. 그래서 서둘러 쫓아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우유 잘 먹을게요. 저도 다음에 사드리고 싶은데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아니면 이름이라도. 정 싫으시면 과라……도…….”

  현수가 나를 너무 빤히 바라봐서 말을 제대로 이어갈 수가 없었다. 현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뭔가를 생각했다. 그게 내 눈엔 어떻게 거절할까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땐 쿨하게 돌아서야 한다고 머리가 신호를 보내는데도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겁을 먹은 건지, 그와 떨어지기 싫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나는 속으로 제어가 안 되는 이 몸뚱이를 욕했다. 그러나 이내 후회했다. 그로인해 현수의 번호를 얻는데 성공했으니까.

  현수와 사귀기로 한 날 나는 물었다. 알바생도 있었는데 왜 내게 우유를 줬느냐고. 현수는 알바생보단 내가 좋아할 것 같아서 그랬노라고 대답했다. 어째서란 물음엔 그때의 느낌이 그랬었다고 했다.

  만약 현수의 우유를 내가 아닌 알바생이 받았더라면 우린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나는 며칠 더 현수를 찾아다녔겠지만 머지않아 그만뒀을 것이다.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한 것에 아쉽고 안타깝긴 해도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아프지는 않았을 테고.

  그 영향은 오늘의 나에게까지 미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렇게 시체처럼 누워 그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디선가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오늘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일의 나는 좀 괜찮으려나.

 

  -뭘 하든지 밥은 먹으면서 해. 밥심이 있어야 뭐든 잘 할 수 있으니까. 굶으면 혼난다.

  나 선배가 톡과 함께 죽 기프트콘을 보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점심을 먹고 후식으로 커피를 마실 때였다. 나는 알겠다고 답톡을 보낸 뒤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갑자기 느껴지는 요의에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 잠깐이지만 눈앞이 아른거렸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탓인 듯 했다.

  겨우 화장실로 간 나는 힘겹게 소변을 보고 손을 씻었다. 무심코 쳐다본 거울 속엔 꼴이 엉망인 내가 있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눈물만 빼서인지 살갗이 버석버석 말랐고, 눈은 바람을 불어넣은 것처럼 잔뜩 부풀어 있었다.

  현수가 이 모습을 본다면 조금이라도 가슴 아파해줄까. 아니야. 아니지. 이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니 가슴 아파하는 것도 우습지.

  딩동.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건물 현관엔 도어락이 달려있었기 때문에 아무나 드나들 수 없었다. 그래서 초인종을 누르는 건 택배나 배달이 대부분인데, 둘 다 시킨 지 한참 됐으므로 우리 집을 찾은 건 다른 용무가 있는 사람이었다.

  난 대답은 하지 않고 인터폰 모니터만 들여다보았다. 상대는 초인종을 한 번 더 누르더니 카메라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하면 이쪽을 볼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까만 눈이 모니터 속에서 빠르게 깜빡이더니 다시 멀어졌다.

  “실례합니다. 401호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인데요. 아무도 안 계세요?”

  남자가 문 가까이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도무지 떠날 것 같지 않았고, 어딘지 위압감도 들어서 주인아주머니께 확인 전화를 걸었다.

  “401호에 젊은 남자가 이사 온 거 맞아요?”

  “어, 맞는데. 왜 그래요?”

  “계속 우리 집 초인종을 눌러서요.”

  “그래요? 그거 이상하네. 일단 열어주지 말고 있어 봐요. 내 확인해 볼 테니.”

  은영 씨는 참 친절한 사람이었다. 어떨 때는 엄마 같고 어떨 때는 이모 같다. 그동안 이사를 참 많이 다녔는데 여기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이사 들어오던 날 그녀는 내게 한 가지 당부했다.

  ‘나를 부를 땐 아주머니 말고 은영 씨라고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나도 아가씨 말고 단비 씨라고 부를 테니. 좋은 이름들이 있는데 왜 그렇게 부르는지 몰라. 안 그래요?’

  곧 은영 씨의 전화를 받았다.

  “완이 씨는 이사 기념 떡을 돌리려고 했을 뿐이래요.”

  요즘도 이사 떡을 돌리는 사람이 있구나. 그것도 젊은 사람이.

  “단비 씨처럼 착한 사람이니까 안심해도 돼요. 만약 그 이상 불편하게 하거나 수상쩍으면 나한테 바로 전화해요.”

  “네. 고맙습니다.”

  “근데 단비 씨. 요즘 회사 일이 많아요? 며칠 전에 보니까 얼굴이 핼쑥하던데. 언제 밥 먹으러 와요. 거하게는 아니지만 정성껏 한 상 차려줄게요.”

  은영 씨는 근처에서 백반집을 운영했다. 목적은 돈이 아니라 선행이었다.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지금 보다 젊었을 때 한날한시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다고 한다. 그 뒤로 사람들에게 베푸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소문은 있지만 실체는 없는 이 이야길 누구도 확인하려고 들지 않았다. 은영 씨에겐 상처였고, 솔직히 말하자면 알려고 들었다가 은영 씨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어 지금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될까봐 쉬쉬하는 거였다.

  물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은영 씨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로 은영 씨가 항상 행복하기를 바란다.

  딩동. 딩동.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돌아간 줄 알았던 옆집 남자였다.

  “저 때문에 불편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요. 떡은 문 앞에 두고 갈게요. 뽑은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따뜻하고 진짜 맛있으니까 꼭 드세요.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부탁? 부탁이라니. 나는 허리를 굽히는 모니터 속 남자를 비웃었다. 세입자들 간에 왕래는 없었다. 21세기의 이웃이란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게 미덕이고 예의였다.

  간혹 은영 씨를 통해 사정을 듣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웃이 어떤 사람이니 안심해라 라는 맛보기용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내게 부탁할 것은 조금도 없었다.

  남자가 모니터에서 사라지자 나는 마음 편히 이불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자려고 마법을 부려본다.

  양 네 마리. 양 다섯 마리. 아무리 해도 잠은 안 오고.

  양 여섯 마리. 양 일곱 마리. 양 여덟 마리. 배만 고파졌다. 배가 고프다 못해 살살 아팠다.

  며칠 동안 장을 보지 않아서 집에 먹을 거라곤 생수뿐이었다. 나 선배가 보내준 기프트콘으로 배달을 시킬 순 있었지만 당장 입에 들어갈 게 필요했다. 순간 뭔가가 떠오른 나는 벌떡 일어나 싱크대 첫 번째 서랍을 열어봤다.

  예상대로 아직 뜯지 않은 초코바 상자가 나왔다. 현수는 항상 이 서랍에 내가 좋아하는 초코바를 가득 채워 넣어줬다.

  배고플 때 하나, 심심할 때 하나, 단 게 당길 때 하나……그렇게 먹을 때마다 자신을 생각하라고 신신당부 했었고, 나는 그의 말대로 초코바를 먹으며 언제나 그를 생각했다. 지금 포장지를 뜯으면 또 그렇게 되겠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건 먹을 수 없겠다.”

  초코바는 죄가 없었지만 거기에 남아 있는 현수의 온기와 사랑 때문에 괴로웠다.

  나는 초코바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쳐 넣었다. 내 사랑도 그렇게 현수가 버렸다. 단단하게 포장된 초코바는 다시 주워 먹을 수 있다지만 사랑은? 처참히 버려진 내 사랑은 이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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