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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나를 잊은 그대에게
작가 : 하나
작품등록일 : 2020.9.14

7년을 만난 애인에게 예고도 없이 차인 단비.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던 그녀 앞에 옆집 남자 윤완이 나타났다. 이별 극복을 도와준다는 모임 '라벤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단비의 삶에 조금씩 스며드는데....과연 단비는 새로운 사랑을 붙잡을 수 있을까.

이별을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여자 이야기.

 
2화) 눈물짓는 삐에로
작성일 : 20-09-14 21:00     조회 : 241     추천 : 0     분량 : 5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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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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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날의 기억은 순식간에 증발된 것처럼 깜깜했다. 현수와 헤어지고서 어떻게 집에 왔더라. 눈이 붓지 않은 걸 보면 울진 않은 모양이었다. 속이 멀쩡한 걸 보면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왜 기억이 나지 않는 걸까.

  현수는 끝내 떠났다. 나는 처절하게 버려졌지만 비련의 여주처럼 그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그냥 가라고 했다. 비참하다거나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했던 마지막 말은 내게서 붙잡을 용기는 물론 실수일 거란 희망마저 앗아가 버렸다. 마음이 변했다는 건 누구의 힘으로도 되돌려놓을 수 없는 것이니 난 그를 보내야만 했다.

  -고단비 씨. 왜 아직까지 출근하지 않는 거지? 대표인 나하고 친하다고 제멋대로 구는 건 아니지? 설마.

  나는 이별했다. 7년 동안 함께했던, 영원히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람과 아무 준비도 없이 이별을 했다. 아침마다 듣던 다정한 인사, 수줍게 뱉던 사랑의 떨림, 따뜻한 손길과 숨결 등 7년 동안 오로지 내 것이었던 것들이 이젠 그 사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지만 슬퍼할 겨를이 없다. 세상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세상은 내 이별엔 관심이 없었다.

 

  “죄송해요. 늦었어요.”

  출근을 하니 곧 점심시간이었다. 내 책상 위엔 해야 될 일이 잔뜩 쌓여 있었다. 무단지각을 해서 동료들이 따가운 시선을 보냈지만 나는 모른 척 했다. 내 마음이 지옥이니 그들까지 달래줄 여력이 없었다.

  나는 점심도 마다하고 일에 전념했다. 머릿속이 비면 그 틈을 비집고 현수가 들어오니 쉼 없이 뭔가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집중을 하자 일은 금세 끝났다. 잠깐의 휴식. 어김없이 현수가 떠올랐다. 지금쯤 현수는 뭘 하고 있을까. 현수는 괜찮을까. 현수는 내가 정말 생각이 안 날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현수의 톡 상태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언제나 내 이니셜로 채워져 있던 그곳은 그새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마음도 이렇겠지. 그러나 얼룩은 남아 있을 것이다. 감정이란 건 백스페이스키를 누름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글자가 아니니까.

  현수의 톡을 보고나자 하고자하는 기운이 전부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몸에 꼭 맞는 아늑한 곳으로 들어가 상처 입은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을 뿐. 그러나 내게 진짜 필요한 건 다른 거였다. 예를 들자면 몸을 혹사시키는 것.

  “정한 씨. 삐에로 내가 할게.”

  마침 아이의 생일 파티가 있었고, 아이의 부모는 삐에로를 옵션으로 추가했다. 삐에로 같은 분장이 필요한 일엔 투입되는 연기자가 따로 있었지만 만일을 대비해 우린 마임과 풍선 다루는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만일은 지금이었다. 피에로 연기자가 손목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됐으니까.

  “정말요? 그럼 땡큐죠.”

  제비뽑기에 걸려 하기 싫은 피에로 역할을 해야 했던 정한은 고민 없이 그 일을 내게 넘겼다.

 

  우리는 약속 시간이 되자 의뢰인 집으로 찾아갔다. 다른 이들이 파티 장식을 꾸미는 동안 나는 삐에로 의상을 입고 분장을 했다.

  “여기에 들어가서 기다려 주세요.”

  아이의 엄마가 인형을 넣겠다며 준비해 달라했던 커다란 상자를 가리켰다. 사전에 얘기된 사항이 아니라 당황했지만 어려운 일이 아니라 부탁을 들어줬다.

  상자 안은 보기보다 비좁았다. 그래서 뒤쪽 벽에 체중을 싣고 양팔로 무릎을 감싸 안은 자세로 있어야 했다.

  잠시 그렇게 있어보니 이곳이야 말로 내가 찾던 아늑한 공간이었다. 포근한 이불이 아쉬웠지만 그런대로 좋았다. 출근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편안함에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희미하게 들리는 소란스러움에 눈이 절로 떠졌다. 무심코 다리를 뻗으려다 사방이 막혀 있는 걸 깨닫고는 도로 자세를 잡았다. 피가 안 통해 다리가 뻣뻣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길게 하품을 해서 눈 위에 남아 있던 잠을 말끔히 털어냈다. 그러자 상자의 얇은 벽 너머로 바깥의 풍경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들의 웃음, 어른들의 웃음. 이어지는 생일 축하 노래.

  노래가 끝나면 주인공 아이가 케이크 촛불을 끄고 부모가 선물을 건넬 것이다. 삐에로가 들어 있는 이 큰 상자는 가장 마지막에 아이에게 닿을 것이다. 아이가 상자 뚜껑을 열려고 하면 삐에로가 짠하고 등장하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보람된 일이 될 것이었다.

  “아빠, 엄마. 감사해요. 사랑해요.”

  파티의 주인공인 듯한 아이가 깜찍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뻐하는 아이의 반응에 부모가 어떻게 나올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가 결혼을 한다면, 아이를 갖는다면 상대는 당연히 현수일 거라 생각했다. 오래 사귄 만큼 결혼까지 갈 거라고 믿은 것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현수를 많이 사랑했으니까. 나에게 있어 현수 외에는 남자가 아니었으니까.

  간혹 상상했다. 턱시도를 입고 내 옆에 서 있는 현수를. 퇴근 후 나와 함께 장을 보는 현수를. tv채널을 두고 나와 다투는 현수를. 임신한 나를 위해 야식을 사다 나르는 현수를. 아이와 주말마다 좋아하는 축구를 하는 현수를. 주름이 많아진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여전히 예쁘다고 말해주는 현수를. 그런 현수로 인해 한 세상 참 행복하게 살다간다고 웃음 짓는 나를.

  이제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게 혼자만의 착각이었다. 현수에겐 나와의 미래가 없었다. 현수는 자신의 미래에 나를 넣지 않았다. 나는 그저 오늘과 어제의 여자일 뿐이었다.

  ‘나쁜 자식. 나쁜 놈. 이럴 거면 세상에 둘도 없는 사람처럼 잘해주지나 말지.’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슬프고 속상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애써 한 분장이 지워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을 닦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내가 느끼는 감정을 고스란히 내놓고 싶었다.

  눈물방울이 코끝을 간질였다. 손등으로 쓱 문지르다가 불현 듯 현수가 사준 손수건이 떠올랐다. 슬픈 영화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나를 위해 선물한 손수건. 가지고 다니기 귀찮아서 어딘가에 박아둔 손수건. 가만. 어디에 있더라.

  “이제 이거 열어봐도 돼요? 네?”

  한층 더 높아진 아이의 목소리에 이어 아이 엄마가 상자 옆면을 툭툭 쳐서 나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이에겐 미안했지만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낯선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기다려도 내가 나오지 않자 지쳤는지 곧 상자 뚜껑이 열렸다.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게 하려고 더욱 몸을 웅크렸다.

  “이봐요.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우리 애가 기다리잖아요.”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조용히 울렸다. 이어서 내 팔에 손을 껴 넣으며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어머나. 삐에로가 왜 이러지? 부끄럽나봐.”

  “그러게. 우리가 도와줘야겠다.”

  내가 있는 힘껏 버티자 다른 손이 반대쪽 팔로 들어왔다. 여자의 손보다 크고 단단한 것으로 보아 남자인 듯 했다.

  그들은 나를 봐주지 않았다. 소중한 아이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해한다. 안다. 나라도 그럴 테니까.

  그들에게 이끌려 반강제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운 나는 고개를 들다가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토끼 귀 머리띠와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한 마리의 새끼 토끼처럼 앙증맞았다. 아이는 큰 눈을 천천히 깜빡거리며 나를 살폈다. 그러더니 이내 울상이 되었다.

  “엄마. 삐에로 언니가 울어.”

  아이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일체 내게 꽂혔다. 어른들은 가십거리를 발견한 것처럼 호기심 짙은 표정을 했고, 아이들은 화장 번진 내 얼굴이 무서운지 울거나 달아났다.

  “울어요? 지금 우는 거예요?”

  아이의 엄마는 기가 막힌 듯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삐에로. 어디 아파요?”

  파티의 주인공은 주인공답게 용감하고 다정했다. 그 따뜻한 마음에 나는 겨우 진정이 됐다. 동시에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밀려와 어서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나는 상자에서 빠져나와 사람들을 밀어내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등 뒤에선 아이의 엄마가 어서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귀를 막고 걸음을 빨리 했다.

  그 집에서 한참을 벗어나고 보니 휴대폰과 지갑이 든 가방을 두고 온 게 생각났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순 없었다. 파티를 망친 나에게 쌍심지를 켜고 있을 부부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졌으니까.

 

  회사로 가야하는데 걸어가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돈은 없었지만 화장이 번진 삐에로인 채로 거리를 활보할 순 없어서 일단 택시를 잡아탔다.

  기사 아저씨에게 휴대폰을 빌려 나 선배에게 시간 맞춰 택시비를 가지고 나와 달라 부탁했다. 다행히 나 선배는 불평하지 않았다.

  이동하는 동안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기사 아저씨가 백미러로 힐끗거리는 게 느껴져 불편했지만 모른 척 했다.

  다정한 연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여전히 서로만을 바라보며 잘 지내고 있는 그들이 부럽기만 했다. 한때 나도 누군가의 부러움을 샀겠지. 그때는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매일매일이 처음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행복했으니까. 언제까지나 그럴 거라고 굳세게 믿고 있었으니까.

  ‘두세 달 됐어. 처음엔 권태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관련 서적을 읽어가며 극복하려고 노력했어. 근데 그럴수록 내가 느끼는 게 단순한 권태로움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더라. 너와 하고 싶은 게 없어. 네가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이제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건 미안함뿐이야. 이런데도 너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나도 널 놓는 게 쉽진 않아. 하지만 붙잡고 있는 게 더 힘들어. 그러니까 그만 하자. 제발.’

  현수의 목소리가 또다시 생생하게 가슴을 후벼 팠다. 현수는 그토록 잔인한 말을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그전까지 내내 한숨을 쉬고 불안해하던 모습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게다가 말을 마친 후에는 너무도 후련해 보여서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내가 느낀 건 딱 하나였다. 7년, 별거 아니구나. 님에다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더니 맞네. 맞아. 이젠 남이 되어버린 현수. 과거로만 내게 머물 수 있는 현수.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현수.

 

  답답해진 마음에 숨을 크게 내쉬었더니 창에 김이 서렸다. 나는 거기다 현수의 이름을 천천히 써 넣었다. 현수의 이름이 완성되자 어디선가 현수가 나타나 그 옆에다 내 이름을 썼다.

  단비. 그리고 하트.

  ‘내 이름 옆엔 항상 네 이름이 있을 거야. 떨어지면 안 되는 짝꿍처럼.’

  현수는 거짓말을 했다. 떨어지지 않겠다더니, 항상 옆에 있겠다더니, 말릴 틈도 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그래. 가라. 가.

  김 서린 부분을 손바닥으로 거칠게 문질렀다. 그러자 현수의 이름이 쓴 시간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그건 사랑과 이별의 모습과 닮았다. 하나하나 마음 다해 사랑한 시간은 긴데 이별한 시간은 순식간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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