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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섀도 햇
작가 : 다온하람
작품등록일 : 2020.9.11

학교 사람들의 뇌가 해킹당했다!


한 해커의 소행으로 지옥이 되어버린 학교.

매일 접속기를 통해 가상현실 학교 서버로 등교하던 학생도,

전자뇌를 달고 학생들을 가르치러 가는 교사도,

뒤틀린 기계를 몸에 달고 비명을 질러대는 짐승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지옥 속에서도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모든 것이 정지된 학교 안.

구조대도, 구세주도 없는, 오직 놈들만이 존재하는 학교에서 그들은 아직 숨쉬고 있었다.


원하는 것은 단 하나. 그저 살아남아 일상을 지키는 것.

 
10화
작성일 : 20-09-13 13:24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6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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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자명종이 울리지 않는지는 제쳐 두고. 하랑을 선두로 그들은 탁자 사이를 질주했다. 놈들이 침방울을 튀기며 달려들자 하랑은 방패를 내리쳤다. 콰직, 얼굴부터 부딪친 놈이 바닥에 나자빠진다.

 

  나중의 일을 생각할 여유는 없다. 달려라! 그 생각만이 뇌리를 가득 채웠다. 하랑은 삼단봉을 휘두르며 앞으로 향했다.

 

  “따라와!”

 

  하랑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속도를 높였다. 제트 노즐이 달아오르면서 그의 발을 앞으로 밀었다. 비명 속에 웅웅거리는 소리가 섞이고, 그는 다가오는 놈들을 방패로 쳐내며 달렸다.

 

  그의 뒤에 놈들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덕분에 나머지 셋은 앞으로만 달릴 수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놈들만 없었더라면 더 빠르게라도 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래는 고개를 돌려 따라오는 놈들을 확인했다. 저 뒤에서 몰려드는 놈들의 파도와, 그 앞에 달려드는 선봉. 제일 가까운 놈들만 세자면 일곱, 여덟, 아홉! 그녀는 뒤로 손바닥을 뻗었다.

 

  노란 섬광이 번쩍이고, 제일 가까이에 있던 놈이 경련하며 쓰러졌다. 그렇게 쓰러진 놈을 밟고 새로운 놈이 다가왔다. 나래는 숨을 삼키고 발을 재촉했다.

 

  “먼저 가!”

 

  모도리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란 해늘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가오는 놈의 의수를 잡아 꺾는다. 동시에 뒤따라오는 놈을 잡고 있던 놈으로 밀치고, 그새 새로 다가온 놈의 발을 걸어 쓰러뜨렸다. 의족을 밟아 뭉개준 뒤 새로운 놈의 얼굴에 주먹을 먹였다. 바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강화복의 힘이 있었기 때문일까. 둘은 그녀를 믿고 하랑을 따라 뛰었다.

 

  “모도리는?”

 

  하랑이 또 한 놈을 옆으로 쳐내면서 물었다. 나래가 뒤에 있다고 대답하자마자 놈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모도리가 탁자를 들고 놈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삼단봉을 내려쳤다. 달려오던 놈이 파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 무너졌다. 곧 코너였다. 즉 계단이 있다.

 

  “모도리! 빨리 와!”

 

  그렇게 외치는 순간, 눈앞으로 놈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5층에서 내려온 놈들을 포함해,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날뛰던 놈들 중 일부가 결국 그들을 목표로 잡은 것이었다. 하랑은 혀를 차면서 방패를 앞으로 내밀었다.

 

  “밀어버릴 거니까 바로 지나가. 안 잡히게 조심하고.”

 

  해늘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 고개를 끄덕여 준 뒤, 제트 노즐의 출력을 높였다. 은은한 푸른빛과 함께 웅웅거리던 금속 관이 시퍼렇게 번쩍거렸다. 그는 멈출 듯 살짝 속도를 낮췄다. 놈들이 발광하며 달려드는 그때.

 

  “지금!”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거칠게 흔들리던 푸른빛을 터뜨렸다. 제트 노즐에서 시작된 찬란함이 공중에 길게 이어지고, 그의 몸은 무언가에 튕겨 나가는 것처럼 놈들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삼단봉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방패를 잡았다. 몸에 바짝 붙인 방패가 붉은빛을 주변에 흩뿌리며 놈들에게로 돌진했다.

 

  굉음이 일었다. 뭉쳐 있던 몇 놈이 공중을 수놓고, 주위에 있던 몇 놈이 바닥을 굴렀다. 방패를 집어넣고 욱신거리는 기계팔을 몇 번 흔들어준 뒤, 그는 삼단봉을 촥 펼쳤다. 그 위로 푸른 전기가 치직거렸다.

 

  날아간 놈들은 비틀거릴 뿐 일어나지 못한다. 구른 놈들은 다시 일어나 쫓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놈들까지 포함해 상대해야 할 수는.

 

  ‘열둘.’

 

  작전을 생각할 새도 없이 놈이 달려들었다. 그는 먼저 놈의 팔뚝을 후려쳤다. 중심이 흐트러진 놈에게 다가가 전기충격기를 꽂았다. 놈의 몸이 부들거리다가 털썩 쓰러진다. 하나.

 

  그새 다가온 놈의 대가리를 손으로 잡아 아래로 쭉 잡아당긴다. 새로 다가오는 놈의 정강이를 후려친 뒤 전기로 지지고, 한 손으로 잡고 있던 놈의 대가리를 들어 올렸다. 그새 다가온 놈에게 잡고 있던 놈을 밀어붙였다. 그 사이로 삼단봉을 뻗어 놈을 전기로 지진다. 넷.

 

  “하랑!”

 

  나래가 소리치자 놈들이 대가리를 흔들면서 비명을 지른다. 하랑은 그에게 달려드는 두 놈을 양팔로 잡아 밀어붙였다. 놈들이 쓰러지자마자 전기로 지졌다. 여섯.

 

  ‘더 빨리!’

 

  해늘과 나래가 등 뒤에 있다. 빨리 갈 수 있게 길을 열어야 한다.

 

  하랑은 방패를 꺼내 놈들에게 돌진했다. 다시 제트 노즐이 빛을 뿜어내고, 짧은 거리를 도약해 놈들을 밀쳤다. 직격으로 맞은 놈들이 공중을 날았다. 풀썩 쓰러진 뒤 움직이질 않는다. 여덟.

 

  남은 넷은 앞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계단이 코앞이다. 넷만 제압한다면 뒤따라오는 몇 놈은 무시할 수 있다. 등 뒤로 고개를 돌려 열심히 뛰는 둘과 그 뒤를 따라오는 모도리를 바라보았다. 역시나, 그 뒤에도 쫓아오는 놈들이 있다.

 

  ‘멈추게 하면 안 돼.’

 

  그는 삼단봉을 치켜들고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제일 앞에 있던 놈의 손을 피해 옆으로 돌아 허벅지를 후려친다. 푸른 전기가 번쩍거리자 놈이 풀썩 쓰러진다. 아홉.

 

  한 놈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린 뒤, 그 너머에서 달려드는 놈의 가슴을 팔꿈치로 찍는다. 컥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놈이 쓰러지자마자 새로운 놈이 달려든다. 열하나. 남은 건 하나. 해늘과 나래가 가까이 있다.

 

  ‘이 놈만 끝내면!’

 

  놈이 팔을 쭉 뻗었다. 그는 왼손으로 놈의 팔을 잡아 옆으로 흘린 뒤, 삼단봉을 내리쳤다.

 

  넘어져 있던 놈이 그의 발목을 잡아챘다. 세계가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하랑의 중심이 무너지고, 후려치려던 삼단봉은 맥없이 허공을 갈랐다.

 

  “하랑!”

 

  이번에는 해늘이 소리쳤다. 보내야 한다. 낙법을 취할 새도 없이 바닥에 쓰러졌지만, 머리는 오직 그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하랑은 삼단봉을 수납하고 후려치려던 놈의 발목을 휙 잡아챘다. 놈은 그가 방금 보여준 모습과 똑같이 바닥에 엎어졌다. 발버둥치는 놈을 끌어당겨 온몸으로 짓눌렀다.

 

  삼단봉으로 놈의 어깻죽지를 지진 뒤 소리친다.

 

  “당장 계단으로 가서 문 닫아!”

 

  해늘과 나래는 그를 한참 바라보더니, 다가오는 놈을 보고, 다시 시선을 그에게 넘겼다. 하랑은 고개를 몇 번이고 끄덕였다. 가라. 가야 한다. 당장 문으로 뛰어가!

 

  둘은 고개를 돌리고 계단을 향해 뛰었다. 놈들에게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비명 속에서 유유히 울린다. 하랑의 귓바퀴를 타고 그 소리는 흘러들었다. 마침내 쿵, 하고 문 닫혔다.

 

  ‘잘했어.’

 

  하랑은 안심하고 발목을 붙잡은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발을 여러 번 흔들었지만 놈은 떨어지질 않았다. 삼단봉을 뻗어 놈의 손을 지졌다.

 

  하랑은 신음을 흘리면서 바닥을 짚었다. 놈은 맥없이 떨어져 나갔지만, 새로운 놈들이 그새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간신히 일어나 달리기 시작하자마자 묵직한 무언가가 등 뒤를 짓눌렀다. 덜컥 무너진 균형에 놈들이 점점 달려든다. 그는 등에 달라붙은 놈을 떼어냈지만, 놈들은 여전히 달려들고 있었다.

 

  하랑은 도망치지 못하고 방패를 꺼내 들었다. 달팽이처럼 방패 아래 웅크리자마자 놈들이 그 위로 부딪쳐 왔다. 충격이 방패를 쥔 손을 타고 온전히 전해져 온다.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일격이 방패를 내려치던 놈들을 날려 보냈다. 이어서 작은 손이 놈들의 목을 잡고 방패에서 떼어냈다. 단단한 바닥 위로 놈들이 내팽개쳐졌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귀에 똑똑히 박혀 든다.

 

  “일어나.”

 

  모도리는 손을 뻗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하랑은 살짝 웃으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한 놈을 방패로 밀치고, 모도리의 옆에서 뛰었다.

 

  모도리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놈들의 의수를 비틀고 지나갔다. 만약 개조하지 않은 사람의 팔일 경우에는 간단하게 가슴을 밀쳐 뒤로 넘어뜨릴 뿐이었다.

 

  나래와 해늘이 지나간 문은 닫혀 있다. 그렇다면 다른 문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하면 될 것이다. 15층의 놈들은 대부분 이쪽으로 내려온 모양이니 나래만으로도 놈들에 대처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오른쪽 계단으로!”

 

  대부분은 왼쪽 코너에서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들은 비교적 적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튀어나간 것은 모도리였다. 그녀의 발목에 얼핏 드러난 흰 선이 밝게 빛나면서, 그녀는 공중을 도약해 제일 가까이에 있던 놈에게 달려들었다.

 

  놈의 어깨를 밟아 넘어뜨리고, 그 상태에서 뛰어 달려오던 둘의 티셔츠를 뒤로 잡아끌었다. 순식간에 세 놈이 바닥을 기는 가운데, 하랑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제트 노즐을 가동했다.

 

  푸른빛이 바닥 위를 종횡하고, 하랑은 놈의 등 뒤로 파고들어 삼단봉을 휘둘렀다. 놈의 팔뚝을 지진 뒤에 달려드는 놈을 방패로 밀어붙이면서 방패 너머로 삼단봉을 찔러 지졌다.

 

  그들이 지나간 길 뒤, 쓰러진 놈들을 밟고 새로운 놈들이 달려들었다. 하랑은 놈의 손을 방패로 막으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뜨거운 땀이 공중에 흩날린다. 하랑은 방패로 놈들을 밀치면서 삼단봉을 휘둘렀다. 앞으로 몇 미터나 남았지? 뒤에서 다가오는 놈들과의 거리는? 머릿속 퍼즐이 순식간에 그림 한 장을 그려냈다.

 

  ‘이 정도면 된다!’

 

  “모도리! 뒤로! 대략 삼 미터 정도!”

 

  하랑은 뒤로 빠지면서 소리쳤다. 주머니를 뒤져 작은 구슬 몇 개를 꺼냈다. 전기탄은 세 개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 없어서 아끼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등 뒤로 홀로그램 연막탄을 집어던졌다. 진한 연기가 터졌다.

 

  모도리가 뒤로 빠진 것을 확인한 그는 손에 남은 구슬을 골랐다. 구슬 몇 개가 주머니 속으로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놈들이 다가오고 있다. 거리는 충분했다. 그는 팔을 뒤로 젖히고 놈들의 중심을 찾았다.

 

  ‘저기다.’

 

  그는 숨을 들이마시고 그곳을 향해 구슬을 던졌다. 버둥대며 달려오는 놈들의 머리 위를 날아, 원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구슬이 떨어지는 광경이 눈에 선명히 박혀 들었다. 그는 모도리의 눈을 가리는 동시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벽을 타고 날아든 새하얀 빛이 번쩍거렸다. 고개를 다시 돌리자 달려오던 놈들은 모조리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비살상용 전기탄 중에서도 대형의 효과였다. 그는 모도리의 등 뒤를 툭 치면서 앞으로 돌진했다.

 

  “계단으로!”

 

  뒤에 풀어 놓았던 연막을 헤치고 놈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금방이었다. 모도리는 푸른 전기가 아직도 점멸하는 바닥을 밟고 달렸다. 그녀를 쫓아 놈들이 쓰러진 놈들 위로 비틀어진 발을 내딛는다.

 

  날카롭게 비틀어진 의수, 침을 질질 흘리는 아가리나 버둥거리며 공중을 휘젓는 팔 따위가 그녀의 머리카락 바로 뒤에서 흔들렸다. 그녀는 속도를 높이면서 계단의 문을 향해 뛰었다.

 

  먼저 도착한 하랑은 문의 잠금 장치를 풀고 문고리를 잡았다. 고개를 내밀어 땀에 얼룩진 시선을 그녀에게 쏘았다.

 

  “빨리!”

 

  모도리는 총알처럼 계단을 향해 뛰어들었다. 마침내 그녀의 발이 계단 문을 넘어서고, 하랑은 문을 그대로 닫으려 했다.

 

  문에서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문은 닫히지 않고 문틈 사이에 끼인 손이나 발 따위가 꿈틀거렸다. 문이 크게 흔들리면서 문고리를 잡은 하랑의 팔에 압력이 전해져 온다.

 

  모도리가 가세했지만 문틈에 끼인 놈들의 팔다리 탓에 문은 덜컥거리며 닫힐 줄을 몰랐다. 모도리가 문을 밀면서 그를 불렀다.

 

  “전기충격기!”

 

  하랑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오른손에서 삼단봉을 뽑아 들었다. 온몸으로 문을 밀면서 뻗은 손끝, 꽉 잡힌 삼단봉 위로 푸른 전기가 튀었다. 그는 그것으로 문틈을 쓸어내렸다. 한순간 일어난 경련에 강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마침내 문틈에 끼인 놈들이 경련을 멈췄다. 하랑은 진땀을 흘리면서 놈들의 팔다리를 문밖으로 밀어냈다.

 

  마침내 마지막 놈의 손마저 밀어내자 모도리가 문을 쾅 닫았다. 문을 걸어 잠그고, 그들은 한숨을 푹 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16층은 비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게 끝난 셈이다.

 

  “수고했어.”

 

  “너도.”

 

  그녀의 얼굴은 땀에 절어 있었다. 그토록 무표정했던 그녀의 얼굴에도 피곤함은 잔뜩 스며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올라 15층으로 향했다. 놈들은 없고 14층의 비명만 요란했다. 다행이었다.

 

  해늘과 나래가 기다리고 있을 계단으로 향하자 제일 먼저 쓰러진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랑은 기겁하면서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지만, 둘은 계단 중간쯤에서 무사히 거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계단 아래로 내려온다. 불규칙적인 발걸음이 계단을 밟고 그들을 향했다.

 

  “괜찮아?”

 

  하랑의 첫말은 그것이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은 소매로 훔치고, 쿵쿵 뛰는 심장을 긴 호흡으로 가라앉히면서도 그는 벽에 기대 있던 둘을 걱정했다. 모도리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계단 위에 우뚝 서 있기만 했다.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나래는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가방 줘. 내가 들게.”

 

  “어어? 아니야, 됐어. 이 정도는.”

 

  “이게 꼴에 여자 앞이라고 허세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내놔. 당장.”

 

  나래가 하랑의 가방을 받아들자마자 해늘이 앞으로 나섰다. 평소라면 농담으로 걸고넘어졌을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가라앉은 얼굴로 계단을 밟았다. 그는 지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모도리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가방 좀 받아갈게. 피곤할 테니까.”

 

  “웬일이냐? 네가?”

 

  해늘은 어깨를 으쓱하며 모도리가 내민 가방을 받아들었다. 그때, 모도리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도록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모도리?”

 

  그녀의 모습이 휘청 기울었다. 해늘이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무너지는 그녀를 받쳤다. 툭, 가벼운 몸뚱이가 그의 팔 위로 떨어졌다. 해늘의 몸이 덜컥, 흔들린다.

 

  “모도리!”

 

  그녀는 팔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푹 떨궜다. 힘없이 툭 추락한 얼굴에서는 식은땀 몇 방울만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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