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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키퍼 (Keeper)
작가 : 신쓰
작품등록일 : 2016.10.10

스토리를 지키는 사서 키퍼들의 이야기.

 
4. 을의 반란 (2)
작성일 : 16-10-17 21:13     조회 : 338     추천 : 0     분량 : 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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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세상에나.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거야? 소설이라서 더 과장한 건 아닐까? 이 소설이 사실이라면 한국은 정말 살기 힘든 동네인 것 같은데?”

 “뭘 보고 있는데?”

 “이번에 새로 번역된 한국 로맨스 소설. 을의 연애라는데?”

 

 헤롤드는 에리카가 읽고 있는 소설의 표지를 보곤 고개를 돌려버렸다. 에리카야 로맨스소설을 잘 보니 상관없지만 헤롤드는 얼마 전 로맨스소설로 변해버린 복수극 덕분에 로맨스라는 장르에 심리적 거부감이 생겨버렸다.

 

 “아, 헤롤드는 로맨스가 취향이 아니었지?”

 

 로맨스도 로맨스인데 표지도 소녀감성이 묻어나는 일러스트여서 여러모로 느낌이 맞지 않았다. 다 큰 아저씨인 그가 저런 표지의 책을 들고 본다면 변태 같아 보일 것 같다. 헤롤드는 그의 이미지에 누가 될 일은 사서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 에리카가 말하는 주제는 궁금했다. 그녀는 책 내의 로맨스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배경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살기 힘든 동네라는 말이 무슨 말이야?”

 “정말이지 대단하다니까? 여주가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오픈부터 맞이하는 손님들이 하나같이 다 진상이야. 나 같으면 당장 멱살 잡고 너 같은 손님 필요 없다고 외쳤을 정도의 레벨이랄까?”

 

 헤롤드는 방금 에리카가 하는 말에서 궁금증의 절반이 사그라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에리카는 성격이 와일드한 편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그것이 사소한 일이더라도 말이다. 그녀가 사소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과민 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궁금증을 접어갈 때였다.

 

 “아이스아메리카노 얼음양이 많다고 다 완성 되서 나간 걸 얼음 빼달라는 미친놈이 있질 않나, 완제품 안 내용물 뜯어볼 수도 없을 텐데 그 내용물 모른다고 직원이 뭐 이런 것도 모르냐고 까고 가질 않나. 마지막은 완전 대박이야. 하루 전에 먹은 음료수, 내용물도 안 남아있는데 자긴 그거 맛없어서 안 먹었다고 전액 환불하러 왔어.”

 “미쳤네.”

 

 에리카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이해하지 못할 행동들이었다.

 

 “보다 보니까 너무 미친놈들이 많이 나와서 화가 나서 잠시 쉬어야겠어. 이래서는 로맨스 들어가기도 전에 지칠 판이야. 진상 고객들한테.”

 “잘 생각했다.”

 

 책 내용이 불편할 때 그것을 억지로 참고 넘어가다보면 정말 얹힌 것처럼 턱 막혀버릴 때가 있다. ‘참고참고 읽다가 도저히 못 읽어서 손 놨다.’ 이런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럴 땐 잠깐 쉬면서 머리를 비웠다가 다시 읽는 것도 방법이 된다.

 

 사서가 모든 책의 내용을 다 숙지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사서에게도 취향이 있고 모든 책이 다 취향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야기를 좋아해 신학서를 주로 읽는 사람들이 있고, 로맨스만 골라서 보는 소녀들이 있고, 필요한 교양서적만 보는 실속파도 있고, 액션이나 통쾌함을 찾는 독자들도 있다.

 

 사서들 또한 영역을 확장해서 보면 독자였다. 우리는 모든 책을 다 읽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책의 내용을 다 알지는 못하더라도 다 알도록 노력은 해야 했다. 그것은 우리가 사서이자 키퍼이기 때문이었다.

 

 에리카는 그런 이유에서 독서를 하고 있었다. 그녀가 담당하고 있는 파트가 로맨스였다. 도서관에 소속된 키퍼 중 유일한 여성이었고, 그나마 로맨스를 읽을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기도 했다.

 

 “나도 게임판타지 좋아하는데.”

 “알아, 아주 잘 알아.”

 

 에리카는 백마 탄 왕자와의 사랑보다는 아이템을 파밍하고 렙업을 하고 먼치킨이 되어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선호했다. 그녀의 취미는 RPG 게임이었지만 키퍼가 되면서 그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면서 더 게임판타지를 열광하고 갈망했다.

 

 그렇지만 담당하고 있는 영역은 로맨스, 에리카는 내년 신규로 들어올 키퍼에 로맨스를 좋아하는 여자가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매일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헤롤드는 에리카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희망이라도 가져야 에리카가 잘 버텨주지.

 

 공급이 많아지고 수요 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키퍼의 필요성도 높아지게 된다. 지금은 키퍼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굳이 더 많은 인력을 뽑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었다. 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필요하지 않은 잉여 인력을 채용하고 돈을 낭비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도서관에 신규 키퍼가 들어올 확률은 무척이나 낮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로맨스 여주. 성격이 너무 답답해. 속에 쌓인 걸 풀어내지 못하고 다 참고 인내하는 성격이야. 그래서 제목이 을의 연애인가?”

 “그렇군. 에리카의 성격이라면 가장 안 맞을 내용이기도 하겠어.”

 

 독자들이 글을 읽을 때는 어떤 시점에서 글을 읽게 될까? 그것은 독자마다 다르다. 전지적 화분시점에서 모든 것을 제 3자의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주인공이나 기타 등장인물에 자신을 대입하여 몰입하는 경우도 많다.

 

 에리카는 몰입해서 보는 타입이었다. 차라리 전지적 화분시점이라면 지금도 이런 식으로 열 받는다는 감정을 표현하며 쉬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에리카는 소설 속 여주가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도 본인과 성격과 정 반대인 참고 인내하는 캐릭터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저런 상식 밖의 행동들에도 뭐라고 하지 못하고 참아야 한다면 무척이나 지옥 같은 나라인 것 같아. 돈을 내면 다 왕이라고 생각하나? 손님은 손님이지 왕이 아닌데.”

 “모든 사람이 그렇지는 않겠지. 작가의 상황이 되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의도적으로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과하게 쓰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너무 리얼하잖아. 게다가 그런 행동들에 화를 내고 정상적인 대응을 하면 오히려 욕을 먹고 직장에서 잘리는 구조 같다고.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만약 그게 모두 사실이라면 문화적인 차이겠지. 그만큼 아직 덜 성숙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넘겨. 어쨌거나 읽긴 읽어야 하잖아.”

 “그렇지. 나는 로맨스 담당이니까.”

 

 에리카의 표정을 보니 안타깝긴 했다. 에리카라고 좋아서 로맨스를 담당하고 있겠는가. 가장 하고 싶은 영역을 도맡지 못하고 팔자에도 없는 로맨스를 읽게 된 사람. 그것은 어쩌면 내가 되었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만약 에리카가 로맨스를 전혀 읽지 않는다고 답했었다면, 그랬다면 마지막으로 남은 로맨스 영역은 팀장인 그가 떠맡게 되었겠지. 헤롤드는 몸을 떨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상황이었다.

 

 “팀장님, 에리카누님. 뭐하십니까?”

 

 로저였다. 현직 키퍼 중 가장 어린 막내였지만 오히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주이를 챙기며 형 노릇을 하고 있는 애늙은이. 헤롤드는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로저를 볼 때마다 묘한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괜한 느낌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

 

 “헤롤드는 시간 죽이고 있고, 나는 일하는 중이야.”

 “아, 리얼북 연계한 신간 들어왔군요?”

 “어. 이번 소설은 진도를 빼기 힘들 것 같아. 요새 한국 쪽 로맨스 인기가 무척 많던데. 감정 노동이 심해서 진도 빼기 힘들어. 아! 너는 그런 감정 노동으로 진 빼는 소설류 좋아하니 취향일 수도 있겠네.”

 “아, 누님. 그렇게 몰아가지 마세요. 제가 좋아하는 것은 오로지 이것 하나라고요.”

 

 헤롤드는 로저의 오른손을 흘끗 흘겼다. 매일 들려있는 그 책이었다. 1일 1독을 한다더니. 정말이었구나. 로저의 손에 들려있는 책은 ‘황제의 길’이었다. 주인공은 제국의 황자였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형제간에도 혈전을 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인정받고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국들을 토벌하는 일대기였다. 스케일이 크고 장엄하지만 다소 지루한 맛이 있는데 로저에게는 이 책이 무엇보다도 재밌는 책인가 보다. 역시 취향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고 책은 누군가에게 꼭 소비되기 마련이다.

 

 “키퍼니까 여러 책을 봐야 한다고. 로저, 너는 아직 제대로 담당하는 장르 없지?”

 “그렇죠. 전 특채로 갑자기 들어온데다가 형님이나 누님들에 비하면 완독한 책들이 형편없게 적거든요.”

 “그러면 더더욱 다양한 책들을 읽어야겠네. 자 내 일을 좀 덜어주는 건 어때? 남자가 로맨스 읽는 것도 생각보다 매력적일 수 있어.”

 

 에리카의 권유-를 가장한 강요-에 로저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헤롤드는 에리카가 무모하다 생각했다. 장엄하고 스케일 큰 소설을 좋아하는 자에게 아기자기하고 알콩달콩하고 때론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 오가는 소설을 보라고? 아니, 그건 아니지.

 

 “차라리 종교 쪽을 파겠습니다. 과학 도서도 괜찮아요.”

 “크흡. 아, 미안. 비웃은 거 아니다.”

 

 가만히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던 헤롤드는 로저의 한 마디에 웃음을 터트렸다. 에리카의 따가운 눈빛이 느껴져 급히 사과를 했지만 웃음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종교와 과학도서도 인기가 없기는 했다. 종교는 믿음이 없이는 즐겁게 읽기가 어려웠고 과학도서는 그야말로 사실의 나열이기 때문이었다.

 

 키퍼들은 대부분 스토리를 중시하고, 스토리를 즐기는 이들이 시험을 봤기에 과학도서는 인기 없음의 최고봉이었다. 그런데 로맨스를 읽을 바에 과학 도서를 파겠다니. 이것은 분명한 거절의 의미였다.

 

 “삐뚤어질 거야. 도와 달라 아무리 마음속으로 빌어도 진하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이렇게 급한 때에 승준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을 수습하는 것이 매니저의 역할 아니었나. 진상을 부리는 여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갔고 기다리는 손님들의 얼굴에 짜증이 떠올랐다. 맛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서있던 줄에서 벗어나 카페 밖으로 벗어나는 사람도 있었다. 이건 영업방해인데. 그렇다고 이걸 신고할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도와주려 나왔던 신애도 대응하지 못했다.”

 

 헤롤드는 소리 내어 책을 읽기 시작한 에리카의 모습에 쓰게 웃었다. 아직 로맨스로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잠깐 듣는 것만으로도 내용이 피곤했다. 진상 고객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들어가서 한 대 때려주고는 싶었다.

 

 보통 음식이 맛이 없으면 다신 안 가야지, 돈 버렸지만 좋은 경험 했다.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대부분인데. 내용물도 남지 않은 것을 가지고 와서 환불을 요청하다니. 몰상식이 정도를 넘어섰다.

 

 “대체 무슨 내용인데 그래요?”

 

 앞의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로저가 헤롤드에게 물었다. 헤롤드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궁금하면 나중에 저 책을 한 번 봐.”

 “별로 보고 싶지는 않은데요.”

 “그래, 사실은 나도 뒷내용을 알고 싶진 않아.”

 

 이런 순간에는 죽이 잘 맞았다. 좋은 것을 공유하는 것도 분명 좋지만 싫은 것을 공유하는 것이 어쩌면 더 빠르게 친해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 것도 같다.

 

 헤롤드는 지금 에리카의 이미지를 소설 속 진상고객과 동일시하게 보고 있었다. 크게 소리를 내며 일이 진행될 수 없게 방해하는 것이 꼭 닮아 있었다.

 

 “승준이 카페로 들어왔다. 진상 손님 덕에 다른 손님들은 다 카페를 떠난 지… 어! 호출이다.”

 

 책을 읽다 말고 무전기를 확인한 에리카가 소리쳤다. 오랜만에 잘못된 로맨스소설이 있는 것 같다. 에리카는 읽고 있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리얼북 리더기로 움직였다. 헤롤드와 로저도 그 뒤를 따랐다.

 

 “아… 이건, 이건 아니잖아.”

 

 에리카의 절규와도 같은 목소리가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 헤롤드는 리더기에 꽂혀있는, 레드라이트가 반짝이는 소설을 확인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에리카가 바로잡아야 할 소설은 ‘을의 연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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