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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2_5
작성일 : 16-10-14 11:07     조회 : 456     추천 : 3     분량 : 5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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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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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고 형사를 바라봤다. 형사는 무언가 내가 몰랐던 대답을 가지고 있을 거로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모른다는 얼굴로, 그러나 무관심한 말투로 물었다. “왜 우리 아파트에서 그러셨을까?” 그죠? 형사 아저씨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죠? 뭔가 잘못된 거에요. 우리 엄마가 그랬을 리 없어요. “누가 밀어내거나 한 거 아니에요?” 형사는 짐짓 매정한 표정으로 “현장 상황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데, 뭐 원한관계가 있다거나 짐작 가는 게 있다면 몰라도.” 하고선 나와 그의 얼굴을 살핀다. 자기 집에서 자살하는 사람 뉴스가 나올 때마다 “저거 우에 치우노.” “동네 챙피해서 우야노.” 했던 엄마였다. 우리 집에서 죽지 않은 건 나와 그를 위한 마지막 배려였을까? 단순히 맺고 끊음이 확실한 평소 성격대로 끽해야 3층 높이인 우리 빌리지보다는 성공 확률이 높은 고층 아파트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엄만 하다 마는 걸 싫어했다. 그의 술에 물 탄 듯 물에 물 탄 듯한 성격과 두루뭉술함을 싫어했다. 나한테도 자주 “뭘 하다 그만두면 안 되는 기라. 그럼 안 하느니만 못하니까, 한번 한다 카면 반드시 해야 하는 기다.” 하던 엄마였다. 그런 거야? 한번 죽는다 하면 죽는 거야, 엄마? 근데 엄마, 왜 살다가 그만뒀어? 그럼 안 사느니만 못한 거 아니야? 그와 내가 먼 산만 쳐다보자 이미 수첩을 접은 형사가 확인차 물어본다. “그 아파트에 누구 아는 사람은 없고?” 한숨만 내쉬는 나 대신 그가 고개를 젓는다. 형사는 자신의 명함과 돈 만 원을 쥐여주고 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다. 그에게서 휴대전화를 빌려 담임에게 전화하기 전부터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까, 수십 번 머릿속으로 대사를 적고 고쳤다. “어떻게 돌아가셨니?” 하는 질문이 가장 두려웠지만, 행여나 애들한테 말할까 봐, 아니면 찾아온다고 할까 봐도 걱정됐다. 쓸데없는 쑥덕거림은 이미 이력이나 있었지만, 동정은 받기 싫었다. “어머님이 돌아가셔서 학교에 며칠 못 가게 됐는데요, 장례는 지방에서 치러서 오실 필욘 없고요, 반 애들한테는 말씀 안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감정을 절제하고 속사포같이 내뱉자 다행히도 담임이 알겠다는 말만 했다.

 

 막내 이모가 옷을 갈아입혀 줬다. 돌 때도 한복을 못 입었으니 아마 태어나서 처음 입은 한복이었나 보다. 까끌까끌한 옷감이 살을 아려왔다. 엄마는 옷감만 만져 봐도 순면인지 아닌지, 늘어지지 않고 오래 빨아 입을 수 있는 옷인지 아닌지 알았는데, 이모가 입혀준 옷은 엄마가 사줄 만한 옷은 아니었다. 이젠 엄마가 사주는 옷 말고 이런 까끌까끌한 옷만 입어야 하는가 싶었다. 둘째 이몬지 셋째 이몬지 모를 이모가 절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모가 하도 여럿이라 첫째 이모와 막내 이모를 빼곤 그들의 순서와 이름이 헷갈렸지만, 그녀들도 나도 우느라 바빠 일일이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녀들이 차례로 내게 와서 용돈을 쥐여 줄 때면 조용히 받았다가 화장실에 가서 책가방 속의 장지갑을 꺼내 넣어놓았다.

 

 이미 상복을 입은 사람을 빼고는 엄마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은 손에 꼽을 수준이었으니, 찾아오는 사람은 그의 친척들이나 그가 일 때문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외삼촌과 이모들은 식장에 사람이 너무 없다며 마치 자기들 탓인 양 걱정을 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하고 절을 할 때마다, 내 이름도 얼굴도 모르던 그 사람들이 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아일 보듯 쳐다볼 때마다 가슴이 더 옥죄여오고 죽을 것 같았던 난 외려 다행이다 싶었다. 후줄근한 차림의 문상객들이 술을 마시고 언성이 높아지는 것도 맘에 안 들었다. 엄마는 조용한 걸 좋아했다. 가는귀먹은 그가 티브이 볼륨을 올리면 잔소리를 해댔다. 그러면 그는 볼륨을 줄인 다음 못 알아들을 때마다 “뭐라 했는데?” 하고 엄마를 귀찮게 했다. 엄마가 지금 여기 있다면 아마 저 술 취한 사람들을 다 내쫓았을 거다.

 

 한 조문객이 비틀거리며 나가다가 떨어뜨린 담배 한 갑을 화장실에 가는 길에 아무도 몰래 주워들은 건 우발적 범행이었다. 펴보고 싶다기보단 내가 가지고 있어선 안 되는 물건을 가지고 있는 쾌감이 맘에 들었다. 변기에 앉아 담뱃갑을 열어보니 꽉 찬 담배에 라이터까지 들어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였다. 내 조그만 손으로 라이터에 불을 붙이기는 쉽지 않았다. 난 왜 등신같이 이거 하나도 못하나. 화가 나서 손가락이 까져라, 힘을 꽉 줘 휠을 돌리니까 버튼이 눌러지며 불이 붙었다. 엉겁결에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전에 그에게서 났던 익숙한 냄새가 났다. 입담배를 피웠는데도 머리가 핑 돌고 기침이 났다. 그래도 왠지 그 매캐한 것을 한 번 더 들이마시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 담배를 빨아들였다. 필터가 보일 때까지 계속 뻐끔대며 빨았더니 어질어질해질 뿐 기분은 좋아지지 않았다. 담뱃갑을 가방 깊숙이 숨기고 서둘러 나왔다.

 

 밥상마다 엄마가 좋아하던 절편이 남아 꾸덕꾸덕해지고 있었다. 떡보였던 엄마는 떡이란 떡은 다 좋아했지만, 내 입에선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절편이나 가래떡을 특히 좋아했다. 쫄깃쫄깃하고 쌀 맛이 구수하다고. 엄마라면 저 떡을 다 먹었을 텐데, 싶어서 주워 먹고 있었더니 불쌍해 보였던지 술 취한 아저씨들이 돈을 찔러줬다. 난 거절하지 않고 넙죽넙죽 받아 양말 속에 쑤셔 넣었다. 갑자기 지하철이나 시장 길바닥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된 느낌이었지만 그들의 처지나 나의 처지나 거지가 된 건 매한가지란 생각에 떡을 계속 입에 밀어 넣었다. 언제 왔는지 그가 돼지머리 편육을 내 앞에 놓았다. 그에게서 나는 술 냄새, 땀에 쩔은 쉰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머리를 아프게 했다. “니 이거 좋아하지 않나? 물도 마셔가며 찬찬히 무라.” 난 접시를 밀치며 말했다. “엄만 돼지머리 싫어했어. 누린내 난다고.” 그가 날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난 개의치 않고 떡을 계속 입에 쑤셔 넣었다.

 

 다음날 새벽까지 구겨 넣은 떡은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정확히 내 배 한가운데에 얹혀있었다. 새하얗게 질려있는 나를 이모들이 에워싸고 손을 따고 난리가 났다. 그가 허겁지겁 약국에서 사 온 약을 먹고 다시 잠깐 잠이 들었다가 꿈을 꿨다. 엄마가 자주색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와 얼싸안고 울고 있었다. “엄니.” 하는 엄마를 외할머니가 보듬어 안으며 “그려, 그려.”를 반복했다. 나도 따라 울다가 잠이 깼다. 울음이 딸꾹질로 바뀌고 트림을 두어 번 하자 속이 조금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화로 안으로 들어가는 엄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엄만 이미 외할머니랑 같이 있어.” 외삼촌과 이모들이 눈물을 닦으며 날 딱하게 쳐다본다. 어리고 순수한 마음에 한 소리인 줄 아나 보다. 아닌데. 진짠데. 난 이미 봤는데.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무섭게 타올라 가는 엄마만 노려봤다. 내가 엄마 젖을 만지고 싶은 만큼 엄마도 외할머니 젖을 만지고 싶었을까? 그래서 엄만 외할머니를 찾아간 걸까? 그럴 거면 나도 데려가지 왜 혼자 갔을까? 나도 이제 엄마를 보려면 엄마를 따라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싶었다. 그 이상 생각하기는 그냥 무서웠고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내 뇌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주절댔다. 가면 되지. 못 갈 건 또 뭐야. 소름이 돋았다. 내 뒤에 서 있던 그가 내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를 소름과 함께 떨쳐냈다.

 

 사람은 죽으면 한 줌의 재가 된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작은 유골함에 담겨있는 회백색의 가루를 보자 재를 한 번이라도 뿌려본 사람이 만들어낸 말인가 보다 싶었다. 화장장 직원이 유골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며 화장장에서 가까운 납골당에 모시라고 얘기했다. 여기 화장장에서 왔다고 말하면 디스카운트를 받을 수 있다고 입을 쉴 새 없이 놀리는 직원의 눈빛이 사뭇 절박해 보였다. 그는 직원의 말을 끊을 성격이 못됐다. 내가 들은 체 만 체하며 “엄마가 납골당 하지 말랬어요.”하고 유골함을 들었다. 보기보다도 가벼웠다.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뼈 몇 개를 빼고 담은 건 아닌가 싶었다.

 

 그는 나보고 어디로 가고 싶으냐고 물었고 난 “그냥, 바다.” 했다. 바다는 뭐 다 같은 바다지. 어차피 물은 돌고 도니까. 그는 소래포구가 제일 가까우니까 거기로 가자고 했다.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본 바다였다. 빼어난 절경도, 모래사장도 없었고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바람이 세차 파도도 셌다. 바다 냄새보단 생선 비린내라 부르고 싶은 그 낯선 냄새를 맡으며 코를 훌찌럭 댔다. 시멘트 바닥에서 신문지를 깔고 회를 먹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엄마는 뭍 고기보다 물고기를 더 좋아했다. 회는 비싸서 먹어보지 못했지만, 당시에 쌌던 고등어, 양미리, 갈치, 조기, 임연수는 구워져서, 조려져서 가끔 상 위에 올랐다. 특히 무와 감자를 잔뜩 넣고 만든 엄마의 고등어조림은 무나 감자만 먹어도 맛있었다. 어렸을 땐 무가 제일 맛있다는 엄마의 말을 믿었지만, 조금 철이 들고 나선 무만 먹고 있는 엄마 밥 위에 고등어 살을 발라 올려줬고, 엄마는 고등어살을 더 크게 발라 내 밥 위에 얹어줬었다.

 

 재를 뿌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금씩, 조금씩 엄마를 바다에 씻겨 내려보냈다. 엄마. 혹시 다음 생애에 태어나거들랑 비행기 타보고, 여행도 많이 하고, 저 인간 같은 사람 만나지 말고, 평생 빚 걱정 없이 살아. 행복해. 다음번엔 행복 같은 거도 할 줄 아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엄마도. 나도. 우리 이번 생에선 너무 슬픈 냄새만 맡고 산 것 같아. 그에게 유골함을 건네줬다. 그도 엄마한테 할 말이 있겠지. 엄마가 그에게 할 말이 더 많으려나?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재를 집어 들었다. 재를 뿌리고 나선 무슨 생각을 하는지 혼자서 한참을 고개를 저었다 끄덕였다 했다.

 

 회는 없지만 가져온 북어포를 뜯어 먹었다. 맛이 없었다. 엄만 이렇게 맛없는 거 가지고도 맛있는 북엇국을 끓였었구나. 해가 뉘엿뉘엿해지고 순식간에 사방이 깜깜해질 때까지 바닷가에 앉은 우린 말이 없었다. 내가 몸을 부르르 떨자 그가 재킷을 벗어 주었다. 천천히 일어났지만 다리가 저려 풀썩 쓰러졌다. 나를 일으켜 세우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 이제 뭐 해?” 그도 몰랐는지 잠시 생각했다. “집에 가야지.” 작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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