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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독기
작가 : Lulla
작품등록일 : 2019.11.10

신을 배척하고 인간만의 삶을 추구하는 안개와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눈부신 발전 뒤에 가려진 빈민굴에서 태어난 로렌스는 언제나 자신이 평균 이하의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그의 꿈 속에 검은 뱀이 나타났고, 그에게 새로운 삶을 거머쥘 기회를 주겠노라고 속삭인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었던 로렌스는 검은 뱀의 꼬드김에 넘어가 그의 말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한다.

 
8화. 신님의 논리
작성일 : 19-11-10 19:18     조회 : 200     추천 : 8     분량 : 8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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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몇 개 있다. 선행, 친절 같은 긍정적인 단어부터 희생, 체벌 같은 부정적인 단어까지.

 

  모리스와 아이들의 경우는 부정적인 의미가 훨씬 컸다. 주섬주섬 방호복을 껴입는 모습이 봉사라기보단 사지로 끌려가는 도축장 돼지와 같은 느낌이었다. 매사에 불만투성이던 제시카가 오히려 밝아 보일 지경이었다.

 

  "야, 우리가 거기다가 놀이터 만들어뒀잖아. 썩어 넘치는 게 고철이니 심심풀이로 딱 좋았지. 카일 너는 모르지?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여기 것들이랑 시설이 별 차이가 없다니까. 그거 설계는 얘가 했다? 그때부터 머리 좋은 게 티가 났다니까."

 

  제시카의 입은 좀처럼 쉬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입을 쉬면 분위기가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이었다. 요란한 제시카의 목소리가 잠시라도 끊기면 지옥 같은 정적이 이어졌다.

 

  "우리가 언제 관문을 넘어왔더라? 한 삼 년쯤 됐나? 시간 참 빠르다. 그러고 보니까 키 좀 크지 않았냐? 예전에는 문고리랑 눈싸움하더니 이제 내려다보더라? 이게 자식 키우는 부모의 마음인가 봐."

 

  "..."

 

  로렌스는 제시카와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14구역 관문 탈의실에서 환복중이었는데, 고아원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한 마디도 말을 섞지 않았다. 아무 관계도 없는 카일까지 말이다. 다만 카일은 그 상황에 상당히 만족했던 것 같다.

 

  "제발 십 초만 조용히 할 수 없을까?"

 

  옆 칸에서 카일이 소리를 질렀다.

 

  "누나 목소리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고. 그러니까 적어도 밖에 나갈 때까지만 말하지 말아줘."

 

  "그래, 그래. 네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제시카가 쾌활하게 대꾸했다. 조금 조용히 하나 싶더니 이번에는 열정적으로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소리는 작았지만, 카일의 너덜너덜한 신경을 긁기에는 충분했다.

 

  "하...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카일의 혼잣말은 제시의 콧노래에 묻혀 누구도 듣지 못했다.

 

  제시카도 괜히 이러는 게 아니었다. 사실 징계 소식을 듣자마자 로렌스가 얼굴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감독관을 포함해서 인원이 다섯 명인데, 두 명이 사이가 안 좋으면 이후 상황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별 시덥잖은 이야기로 무리하게 분위기를 띄어보려 하는 것이다.

 

  성격은 어디 안 가서 카일의 말투에 몇 번 터질 뻔했지만, 상기했던 이유로 오늘은 '친절한 위즐 씨'가 될 예정이었다. 평소라면 생각도 안 할 '내 돈으로 간식 쏘기'부터 '무슨 말에도 웃어주기', '주머니에 손 넣고 있기' 등 다짐은 아직까진 잘 지켜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카일은 골이 잔뜩 났고, 로렌스 역시 똑같았다. 애초에 원인 제공을 한 본인이 혼자만 큰 소리로 떠들어대면 당사자들은 오히려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즉, 사과도 않고 과장된 행동으로 들떠 있는 제시카의 인간성이 '친절한 위즐 씨' 프로젝트의 가장 큰 패착이라 하겠다.

 

  "얼른 나와라!"

 

  "네넹~!"

 

  대답과 함께 칸막이 문이 열렸다. 앞이 푸른색 비닐로 덮인 방독면을 옆구리에 낀 제시카, 로렌스와 다르게 카일은 끈까지 조여 단단히 쓰고 나왔다.

 

  탈의실을 나가 오른쪽 방으로 들어가자, 산소통이 잔뜩 들어있는 카트 앞에 모리스가 있었다. 모리스의 옆에 키 작은 남자가 서 있었는데, 로렌스는 뒷짐을 진 그의 자세에서 감독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너네는 왜 그딴 거를 가지고 있냐?"

 

  카일에게 산소통을 끼워 주다가 모리스가 제시의 방독면을 가리켰다. 제시의 흰색 방독면 후두부에는 토끼 귀가 달려 있었고, 로렌스는 대놓고 생쥐 머리 모양이었다.

 

  "패션이에요 패션."

 

  "패션이고 나발이고, 당장 갖다 버리지 못해?"

 

  "안돼요. 이거 튜닝하는 데 얼만지나 아세요?"

 

  제시카는 마치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처럼 자기 방독면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 그 바람에 너덜거리는 토끼 귀의 뿌리 부분이 살짝 찢어져 버렸다.

 

  "시간 없으니까 이대로 갑시다. 어차피 저쪽 주민들인데 별일이야 있겠어요?"

 

  "아유, 그럴까요? 하긴 우리보다 훨씬 잘 알겠죠."

 

  모리스가 양손을 모으며 실실거렸다. 감독관은 뒷짐을 지고 아이들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휙 뒤돌아 가버렸다. 모리스는 그 뒤에 바싹 붙어 아이들에게 건성으로 손짓했다.

 

  "저쪽 주민?"

 

  제시카가 귀에 거슬렸던 단어를 혼자 되새기며 미간을 찡그렸다.

 

  길게 이어진 지하 철도를 따라가면 두꺼운 강철문이 나온다. 총 세 개의 문이 있으며, 각 문 사이에는 정화시설이 즐비해 있다. 그곳을 통과하면 비로소 외곽 구역의 초입으로 들어선다.

 

  외곽 구역 초입까지 일련의 과정은 모두 2H사 직원이 관리한다. 봉사 단원을 보내는 역할도 겸하고 있어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관문에 찾아가 길게는 일 년까지 외곽 구역에서 체류가 가능하다. 모리스 일행은 일주일 코스를 신청하여 현지 파견된 직원에게 교육을 받으며 함께 활동할 예정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전하게 나갔다 올 수 있는 것은 다 우리 회사 덕분이다, 이거야."

 

  지하로 내려가며 모리스가 떠들어댔다. 모리스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떠들어도 저 앞에서 움직이는 감독관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네, 네. 그러시겠죠. 그러니까 빨리 다리나 움직여요."

 

  제시카가 모리스의 등을 탁탁 쳤다. 설명한답시고 이따금 멈춰서는 모리스 때문에 로렌스가 자꾸 등에 코를 박았기 때문이다.

 

  "야, 이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들이야. 너네는 직접 은혜를 입었으면서 고마움도 없냐?"

 

  "아, 우리 나오고 시작된 프로젝트인데 뭐가 고마워요. 무슨 호루라기야 뭐야. 숨만 내쉬면 말이 튀어나오네."

 

  제시카가 궁시렁거렸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돌을 깎아 만든 것이었는데, 중반부터 습기를 가득 머금어 미끄러웠다. 일행 중에 가장 키가 큰 모리스는 그 구간을 내려가려다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다.

 

  지하라 그런지 철도역은 습도가 높아 엄청나게 더웠다. 이끼가 잔뜩 낀 벽과는 대조되게 최근까지 운행한 듯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다만, 왠지 모르게 일행이 타고 갈 기관차는 움직이긴 하나 싶을 정도로 녹이 슬어 있었다.

 

  "동굴에 원래 안개가 끼나?"

 

  카일이 손을 위로 내밀며 중얼거렸다. 제시카가 보기에도 기관차의 연기와는 전혀 다른 안개가 역 위쪽을 뒤덮고 있었다.

 

  "여기에는 물도 차 있어."

 

  로렌스가 철로를 가리켰다. 바로 옆에 활짝 웃는 제시카가 있어, 그는 카일 쪽을 보려다 아예 휙 돌아 서버렸다. 공교롭게도 그의 뒤엔 감독관이 산소통을 내려놓으며 한숨 돌리고 있었다.

 

  "왜, 뭐 할 말 있나?"

 

  "아, 아니요."

 

  감독관이 말을 걸자, 로렌스가 화들짝 놀라 다시 철로로 시선을 돌렸다. 괜히 머쓱해진 제시카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철로를 내려다 봤다. 과연 철로의 쇠 부분을 덮을 만큼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이거, 벌써 옷을 다 갈아입으셨군요."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나이가 지긋한 기관사가 모리스와 함께 나왔다. 방금 자다 일어났는지 눈이 풀려 상태가 안 좋아 보였다. 특이하게도, 기관사는 목장갑 대신 빨간 고무장갑을 착용한 상태였다.

 

  '저걸 끼고 잤다고?'

 

  제시카의 머리에 의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럼 내려왔다 올라가서 갈아입었어야 했다는 말입니까?"

 

  감독관이 딱딱하게 말했다.

 

  "아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오랜만에 새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서 그렇지요."

 

  기관사는 곱추처럼 허리가 굽어 덩치가 매우 작아 보였다. 키가 백 사십 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카일과 눈높이가 같았다.

 

  "빠르게 준비해주시죠. 저 그렇게 느긋한 사람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밑 작업이 좀 필요해서..."

 

  기관사는 기관차 안쪽으로 들어가 막대 같은 것을 밀고 당기고, 스패너로 두들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뭔가 잘 안 풀리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계기판을 살펴보더니, 밖으로 걸어 나와 느닷없이 몸체를 발로 걷어찼다.

 

  쾅- 지지직-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기관차가 부르르 떨렸다. 동시에 물에 잠긴 철로에 스파크가 튀며 기관차 전신이 푸른 전기로 휩싸였다.

 

  "됐습니다. 일 분만 있다가 올라타시면 됩니다."

 

  "이게 된 거라고요?"

 

  모리스가 공포에 질린 얼굴로 속삭였다. 확실히 엔진 소리가 우렁찬 게 시동은 걸린 것 같았다. 근데 그거랑은 전혀 다른 문제가 방금 모리스 일행의 심장을 대차게 강타했던 참이었다.

 

  "방금 못 보셨어요? 이거 낡은 수준이 아니라 폐기물이잖습니까! 우리가 봉사 나왔지 어디 자살 명소라도 찾고 있는 줄 압니까?"

 

  "괜찮아요~ 물에만 안 닿으면 죽지는 않을 거요."

 

  "그러니까 왜 기관차 타겠다고 목숨을 걸어야 하냐고요!"

 

  모리스가 악에 받쳐 울부짖었다. 카일과 로렌스는 이미 멀찍이 떨어져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조심성이 많아. 아무 이상 없으니 걱정 안 해도 돼요."

 

  기관사는 보란 듯이 훌쩍 운전실에 올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리스는 기관사의 얼마 안 남은 머리칼이 공중에 서서히 뜨고 있는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미친..."

 

  모리스는 이미 충분한 내적갈등을 겪고 있었다. 가뜩이나 제자들 때문에 억지로 봉사에 참여한 것도 서러운데, 감독관은 붙임성 없고 기관사는 안전 불감증이니 거의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장갑을 벗어 손가락으로 기관차 몸체를 슬쩍 건드려보았다. 저릿한 전기가 손끝에서부터 파고 들어와 따끔하게 아팠다. 스리슬쩍 카일도 손을 움직였다. 비닐이 찢어지듯 '파직' 소리가 나며 정전기가 일었다.

 

  "제가 먼저 탈게요.“

 

  옆으로 다가온 로렌스가 모리스를 제치고 훌쩍 내부로 들어갔다.

 

  "뭐? 어어, 그래."

 

  넋이 나간 모리스의 말투가 살짝 어벙해졌다. 뒤를 이어 제시카가 올라타고, 카일, 모리스, 감독관 순으로 자리가 정해졌다.

 

  “기관차를 타는 날이 올 줄이야.”

 

  특이한 경험을 좋아하는 카일은 설렘이고 뭐고 없는 기차 여행에 깊게 한탄했다. 그러면서 습관처럼 카메라 필름을 돌리며 창밖을 이리저리 살피며 사진 찍을 곳이 없나 물색했다.

 

  “좋게 생각하자고. 어디에서도 보라색 사과나 녹색 강은 볼 수 없을걸.”

 

  “전혀 좋게 생각할 게 아니잖아, 누나.”

 

  거의 고물이었던 외견과는 다르게 기관차는 나름 빠른 속도로 어두운 터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번에 카일은 항상 차고 다니던 폴라로이드 대신 필름 카메라를 들고 왔는데, 기관차의 속도에 따라 셔터 누르는 속도도 빨라져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만 필름 두 통을 써버렸다.

 

  “항상 궁금했는데, 사진은 왜 찍는 거야?”

 

  로렌스가 질문했다. 제시카는 저 멀리 의자 칸을 혼자 차지하고 이미 벌렁 누워버린 뒤였다.

 

  “기자가 되고 싶다며? 신문사에 입사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러면 학교에도 나올 필요 없는데.”

 

  “단순하게 생각해봐. 내가 기자가 되겠다고 학교를 뛰쳐나가면 학비나 보조금은 누가 지원해주는데. 우리 원장님이 허락해 줄 것 같아? 그 인간이라면 내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서 공장촌에 던져 놓을걸.”

 

  “나름 많이 투고했잖아. 지역 신문에 실릴 정도니까 받아주지 않을까?”

 

  “형 머릿속에는 나비가 날아다니는구나.”

 

  카일이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어느 신문사에서 열한 살짜리 애를 받아주겠어? 물론 내 실력은 진짜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그걸 알아차리면 독심 술사던가 점쟁이던가 둘 중 하나겠지. 아니면 신님이던가.”

 

  “너도 신을 믿어?”

 

  로렌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카일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신이 아니라 신님이야. 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전지전능한 존재시라고.”

 

  “거북 신님은 바다 깊은 곳에 있다고 제시가 그랬는데.”

 

  “누가 거북 신님이래?”

 

  카일이 짜증스럽게 말하며 주머니에서 필름 통을 하나 꺼냈다.

 

  “형 사진 한 장 찍을래? 자세 잡아봐.”

 

  “응?”

 

  로렌스는 카일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화제가 바뀌어 혼란스럽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카일은 지금 카메라를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카일은 눈에 필름 통을 가져다 대고 셔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손을 올려 사진을 찍는 시늉을 했다.

 

  “구도 나오네. 얼굴만 좀 잘생겼으면 괜찮았을 텐데. 자, 셋 세면 찍는다.”

 

  “카일,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카메라는 네 가방에 있다고.”

 

  “내 눈이 있잖아. 필름도 있고. 형은 내가 사진을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해?”

 

  “...?”

 

  로렌스의 머릿속에 셀 수 없이 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 손가락으로 아무리 허공을 연타해도, 필름 통을 렌즈처럼 돌려도 사진이 찍힐 리가 없었다.

 

  “당연히 못 찍지. 뭘 고민하고 있어?”

 

  로렌스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카일이 뺏어버렸다. 심지어 세상 멍청이를 보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네가 그런 질문을 하니까...!”

 

  울컥 화가 치민 로렌스가 격렬하게 항의했다.

 

  “형은 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거야. 나는 맨손으로 사진도 찍을 수 있고, 입에서 금을 뿜어내 세상 사람들에게 열 돈씩 나누어 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나를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재능기부를 할 의리는 없잖아? 돌아오는 게 없는데.”

 

  “계속 말장난할 거면 그만하자. 기껏 대화 좀 하려니까...”

 

  “말장난 같지? 짜증 나고 한 대 쥐어박고 싶지?”

 

  대놓고 열 받으라는 말투로 카일이 깐족거렸다. 그리고 사진기를 들어 바깥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이게 거북 신님의 논리야. 믿음만 있으면 죽은 사람도 되살아날 수 있는 것처럼 군다고. 심지어 검증할 방법도 없고, 실체를 보이지도 않는데 사람들은 그걸 믿어. 제시 누나 말대로 바다에 있다고 누가 증명할 수 있겠어?”

 

  “너 조금 전까지 신을 믿는다고 하지 않았냐?”

 

  로렌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의 신님은 그런 허세에 찌든 사람이 아니지.”

 

  카일이 신나서 재잘거렸다.

 

  “강철의 나라 스팀 헤이즈 건국 신화의 주력, 검은 망토를 걸치고 손대는 것만으로 자본을 창출하는 기적의 사나이, 돈과 재능을 한 몸에 갖춘 위풍당당한 자태에 나님은 경외심을 담아 이렇게 불렀다지!”

 

  올해의 미인 선발 대회 우승자를 소개하듯 화려한 발재간과 함께 카일은 양손을 높이 들며 외쳤다.

 

  “블랙 케이프!”

 

  동시에 ‘파직’하고 스파크 소리가 울렸다. 문자 그대로 펄쩍 뛰어오른 카일의 가방에서 다 쓴 필름 통이 우수수 떨어졌다.

 

  “뭐야 그게, 촌스러워.”

 

  짧은 비난의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호랑이를 본 토끼처럼 카일은 어느새 로렌스의 옆자리를 차지해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직역하면 그냥 검은 망토잖아?”

 

  로렌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카일은 벌벌 떨면서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심지어 세 배속 돌린 오페라 가수 같은 목소리에 ‘블랙 케이프’의 발음을 뭉개서 ‘뷁 켎’이라는 다소 당황스럽게 단어가 조합되어 들렸던 터라 경박하기만 했다.

 

  “됐어, 형이랑은 말이 안 통하네! 혼자 삐져서 누나랑 말도 안 하는 주제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뚫고 색이 보일 정도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멋대로 ‘수업 끝’ 같은 멘트를 던지고 카일은 맨 뒷자리로 달려가 의자 뒤에 모습을 숨겼다.

 

  “야, 나라고...!”

 

  당황한 로렌스가 뭔가를 말하려 하는데, 바로 머리 위에서 시끄러운 잡음과 함께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켜져 말소리가 완전히 묻혀버렸다.

 

  “어- 승객 여러분, 잠시 후면 관문을 나와 외곽 구역 초입이오니, 방독면을 착용하고 밸브를 열어주시길 바랍니다. 각 봉사단의 수장은 단원들의 복장을 확인하여 문제가 있는지 최종적으로 점검해주시길 바랍니다.”

 

  “크헉?! 스읍... 야, 그만 자고 일어나라!”

 

  코를 골며 자고 있던 주제에 모리스는 방송이 모기 날갯짓 소리만큼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공교롭게도 모리스를 제외하면 자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를 제외하고 이미 준비를 거의 마친 상태였다.

 

  즉, 제시카도 줄곧 깬 상태에서 카일이 한 말을 흥미롭게 경청하고 있었다. 의자 팔걸이에 누워 눈을 까뒤집고 올려다보는 제시카의 모습은 호러가 따로 없었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은 카일의 산소통 밸브를 풀어주며 제시카는 귀에다 대고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었다. 내용은 간단하고 직설적이었다. “죽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차마 보지는 못하고 로렌스는 스스로 밸브를 풀며 속으로 고소해했다. 가만히 있으면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아서 일부러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불과 한 시간 전만 해도 푸르렀던 하늘은 이제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짙은 녹색의 안개가 도시 전역에 퍼져 태풍의 영향권을 연상케 했다. 로렌스는 물끄러미 바깥을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버튼을 눌렀다.

 

  [H : 3 / P : 3 / Y : 1066 / M : 08 / D : 16]

 

  창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오염도를 9까지 나타내는 측정기가 3까지 올라가 있었다. 아직까진 장시간 흡입하면 가벼운 몸살 증세가 일어나는 정도였다.

 

  회중시계를 다시 집어넣으려는데, 딸깍 소리와 함께 수치가 하나 더 올라갔다. H로 표기된 안개 농도도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불안정하게 떨렸다. 로렌스는 새삼 이 상황이 피부로 와닿는 기분이었다. 그는 확실하게 외곽 구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회중시계를 주머니에 깊숙이 찔러넣으며 얼른 창문에서 시선을 돌렸다. 더는 녹색의 안개 따위에게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았다. 기억하면 또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다. 기관차의 속도가 줄어갈수록 로렌스는 제발 역에 도착한 게 아니기를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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