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현대물
마지막 봄
작가 :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9.10.4

(정통소설/피폐)

전 세계의 질서가 무너져내린 이후 매서운 겨울이 찾아왔다.
남아있는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흩어졌고, 얼어붙은 세상에 남은 마지막 불씨는 꺼져버렸다.

이 버려진 도시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이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13.최후의 결전
작성일 : 19-11-08 22:26     조회 : 237     추천 : 0     분량 : 1429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13. 최후의 결전

 

  봄이가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의 불꽃이 타올랐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봄이는 입을 다문 채 눈으로 얼어붙은 허연 고깃덩이에 앙상하게 돋아난 핏줄만을 응시했다. 핏줄은 봄이의 생각과는 달리 새빨갛지 않았다. 특별히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갈고리에 걸린 고깃덩이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마치 자신을 발견한 봄이에게 신호를 보내기라도 하듯이. 지금이라도 발견해 주어서 고맙다고, 이제 어서 살점을 꿰뚫고 있는 이 갈고리를 빼내서 자신을 구해달라고라도 말하는 듯이.

 

  정신을 차렸을 때 봄이는 주저앉아 있었다. 특별히 주저앉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손에 들고 있던 라이터가 바닥에 부딪혀 떨어지는 쇳소리가 잠깐 동안 주방을 울렸다.

 

  그 후로부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 가지 기억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선이 위로 향해졌다는 것뿐이었다. 사람의 눈알은 초점이 뇌를 뚫고 올라갈 정도로 유연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동안 봄이는 자신의 눈꺼풀 속을 올려다볼 수 있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봄이의 뇌는 몸의 제어권을 잃었고, 몸에서 체온이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몸뚱이는 그대로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봄이가 정신을 잃기 전에 들었던 마지막 생각은 이랬다. 그래도 비명이 나오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잠시 봄이는 잠에 들었다. 봄이가 인신매매단의 창고에 소년과 함께 갇혔을 때 그가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쪽이나 우리들이나 정말로 운이 없구만.’ 처음 여왕과 만났었을 때 그녀가 했던 말도 떠올랐다. ‘너, 정말로 운이 좋았어.’ 그리고 봄이는 생각했었다. ‘운이 나빴다가 좋아질 수도 있나?’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운이 나빴다가 좋아진다는 것은 없었다. 창고가 까마귀들에 의해 불태워졌던 날, 봄이가 까마귀들에 의해 구출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창고로 온 것이 아니었고, 봄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봄이가 처음 인신매매단에게 붙잡혔을 때부터 예견되어 있던 운명이었다. 봄이는 분명히 하수도에서 살던 아이들에게 들었다. 사실 그 전에도 질리도록 들었었다. 어린아이들을 사고 판다는 인신매매단과 아이들만 잡아먹는다는 식인종 이야기를. 까마귀는 인신매매단으로부터 봄이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가야 할 상품을 넘겨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봄이를 깨운 것은 주방의 작은 문 너머에서 시끄럽게 흔들어대는 철창 소리였다. 봄이는 자신이 왜 여기서 자고 있었는지, 또 어떤 자세로 잠을 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상당히 비정상적인 자세로 잠을 잤던 것 같았다. 엉덩이와 무릎이 엄청나게 아팠고 머리도 쪼개질 것 같았다. 보통 정상적인 자세로 잠을 잤다면 이러진 않을 테니까.

 

  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아픈 머리를 쥐어싸자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자신이 여기 무엇을 확인하러 왔었는지, 이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기억났다. 그러나 그 전에 봄이를 기다리는 것은 엄청난 후폭풍이었다.

 

  봄이는 구토를 할 때마다 느껴지는 목넘김이 기분나빠서 토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렇지만 그 때 목으로 올라온 구토감은 각별했다. 봄이는 자신이 왜 토하는지조차 모른 채 토했다. 뱃속에 있던 내용물을 게워내기 시작한 지 족히 몇 분은 지났다. 하지만 3분이 지나고 4분이 지나도 토악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마치 먹은 것은 물론이고 몸 속의 장기까지 모조리 뱉어내는 기분이었다. 봄이 자신도 새삼 놀랐다. 내가 이렇게 먹은 게 많았나? 사실 먹은 건 얼마 없어서 거의 위액뿐이었다.

 

  머리는 여전히 어지러웠지만 봄이의 몸은 서서히 이성을 되찾았다. 여기서 멍청하게 먹은 걸 뱉어내고만 있는 게 무슨 소용인가. 자세히 들어보니 누군가가 계속해서 쇠창살을 쥐어 흔들고 있었다. 창살에 갇힌 소년이 외쳤다.

 

  “구해주러 온 게 아니었어. 구해주러 온 게 아니었다고. 믿을 수 없어. 여기요, 누구 없어요? 누가 철창에서 탈출한 것 같아요. 당신들이 가둔 사냥감이 도망치고 있어요. 도망치고 있다고요. 어서 빨리 사냥감을 붙잡아요. 사냥감이 도망친다! 도망치고 있다!”

 

  그는 마치 미친 짐승 같았다. 목젖이 찢어지도록 괴성을 질러대며 피 묻은 손으로 쇠창살을 흔들어대고 발로 걷어찼다. 방금 전 보았던 야위고 빼빼 마른 어린아이의 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본 봄이는 처음 소년을 보았을 때 느꼈던 동정심과 죄책감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봄이는 점점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고는 떨어진 자신의 배낭과 라이터를 챙기고 서둘러 주방에서 뛰쳐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도 없어야 할 주방 철문 앞에 누군가가 떡하니 서 있었던 것이다.

 

  전에 본 적이 있었던 그림자였다. 키는 철문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컸고, 덩치는 봄이의 두세 배는 되어보였다. 지저분한 외투에는 검붉은 얼룩이 가득했으며, 그가 두른 앞치마에 흥건히 묻은 혈흔 자국들이 삐걱이는 주방 전등에 빛났다. 깨진 방독면 때문인지 그것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지금 봄이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주방의 주인이었다.

 

 * * *

 

  봄이는 자기도 놀랄 만큼 빠르게 권총을 빼들었다.

 

  “꼼짝 마!”

 

  지금 겨눈 권총이 비었다는 사실은 봄이만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봄이에게 다가오던 거구는 잠시 발을 멈췄다. 잠깐 동안 시간이 흘렀다.

 

  그 순간 거구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속도로 앞에 있던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고기 찌꺼기가 담긴 통이었다. 엄청난 양의 오물과 살점들이 봄이를 덮치는 바람에 봄이는 온 몸에 오물을 뒤집어썼다. 봄이가 재빨리 정신을 차렸을 땐 거구의 육중한 몸뚱이가 봄이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빈 권총은 의미가 없었다.

 

  봄이는 권총을 내던지고 재빠르게 몸을 낮추고 굴렀다. 거구가 들이받은 싱크대에서 날카로운 연장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와르르 쏟아졌다. 큰 가위는 물론이고 하나같이 거대한 도살용 식칼 따위가 봄이의 코앞에서 굴러다녔다. 봄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큰 식칼 하나를 주워들었다. 하지만 거구는 더 큰 무기를 들고 있었다.

 

  언제 꺼냈는지 모를 거구의 몸체만한 거대한 전기톱이 부릉 소리를 내며 켜졌다. 톱에는 피가 흥건했고, 날을 갈았는지 잔혹한 톱날이 예리하게 빛났다. 거구는 봄이가 움켜쥔 칼 따위는 우습다는 듯이 톱을 높이 치켜들고 다시 봄이에게 달려들었다.

 

  넓어야 몇 평도 되지 않는 주방에서 둘은 죽음을 담보로 건 술래잡기를 시작했다. 도망쳐 다닐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봄이의 몸집이 작아서인지 거구의 톱날은 계속해서 엉뚱한 곳을 갈랐다. 거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톱으로 갈라버리며 계속해서 봄이를 쫓았다. 하지만 이렇게 도망쳐다니는 것도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봄이의 싸울 수 있다는 용기는 점점 죽음에 대한 공포로 바뀌어갔다. 특히 봄이가 마지막 힘을 다해 칼을 거구에게 던졌을 때, 거구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자신의 복부에 박힌 칼을 뽑아 내던져버리자 희망은 사라져버렸다.

 

  봄이는 결국 벽에 몰렸다. 거구는 봄이가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다는 걸 알자 전기톱의 모터를 더욱 강하게 켰다. 거구의 커다란 발이 한 걸음씩 봄이에게 다가올 때마다 가슴을 움켜쥐는 듯한 긴장감 때문에 봄이의 정신이 또다시 멍해졌다. 눈꺼풀이 뒤집어지려고 했고, 후들거리는 다리에서는 끝내 힘이 빠져나가려고 했다. 봄이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극한의 정신력을 쥐어짰다. 하지만 그것조차 두 다리로 서있는 것만이 고작이었다.

 

  봄이는 마지막 발악으로 거구가 미친 듯이 휘두르는 톱날을 피할 수 있었다. 다시 생각해봐도 그것은 정말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미 체력이 다할대로 다한 봄이는 발을 헛디뎌 아까 바닥에 쏟아진 오물을 밟고 미끄러졌다. 그 충격으로 목덜미를 바닥에 세게 부딪히고 만 봄이는 더 이상 남은 힘이 없었다. 일어날 힘도, 곧장 자신의 눈으로 가로질러 오는 톱날을 향해 두 손을 내저을 힘조차 이제는 없었다.

 

  그 순간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졌다. 봄이의 얼굴에 전기톱을 내리찍으려고 달려들던 거구 역시도 자신이 걷어찬 오물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거구의 힘이 너무나도 강력해서인지 거구가 들고 있던 전기톱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요란하게 폭주하며 돌아가던 전기톱은 두 사람 사이를 잠시 동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오물을 뒤집어쓴 가엾은 소녀가 아닌, 주방의 주인을 덮쳤다.

 

  이후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봄이는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렸다.

 

 * * *

 

 몇 분이 지났음에도 봄이는 귀를 막은 손을 떼려 하지 않았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지금 귀에서 손을 뗀다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무언가에 의해 뼈가 뒤틀리고, 마치 도살장에서 사용하는 고기 분쇄기에 살아있는 돼지를 집어넣을 때와 같은 소리 말이다. 귀는 막을 수 있어도 냄새는 어쩌지 못했다. 방금 전부터 풍기기 시작한 냄새만 맡아보아도 상황이 대충 머릿속에 그려졌다.

 

  봄이는 마치 다리가 없어 스스로 걷지 못하는 앉은뱅이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바닥에 웅크리고만 있었다. 사실은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 더 정확했다.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쫓아올 것만 같았던 사신(死神)은 봄이를 놓아주었고, 대신 다른 희생자를 찾아 옮겨갔다. 사신이 정한 운명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느라 봄이는 몸에 남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고, 땅에 미끄러져 목덜미를 부딪히는 바람에 피로는 더욱 쌓였다. 봄이는 손가락 다섯 개를 모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악취는 더 심해졌다.

 

  봄이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천천히 싱크대를 붙잡고 일어났다. 언제 부딪혔는지 팔꿈치와 무릎이 저렸고,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쓴 몸에서도 지독한 악취가 진동했다. 봄이는 아까부터 풍기는 악취가 바로 옆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서 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봄이는 빈 권총을 주운 다음 절름발이처럼 절뚝이며 힘겹게 철문을 나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분명히 주방에서 일어난 소동 때문에 놈들의 주의를 끌게 되었을 것이었다. 봄이는 그저 베티가 말했던 홀에서 행하는 특별 의식이란 게 더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까마귀들이 행하는 의식이 더 오래 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설령 그렇게 된다고 해도 시간은 얼마 없었다.

 

  주방 안에서는 아직도 소년이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봄이는 주방 밖으로 나간 다음 철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녹슨 철문이긴 했지만 다행히도 방음은 아주 잘 되었다.

 

 봄이는 전등이 깜빡이는 지하통로를 살펴보기 위해 움직였다. 분명히 지하에서도 빠져나갈 출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베티를 따라 지하를 한 바퀴 돌았을 때 그런 출구는 보이지 않았었다.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했다. 분명히 출구가 있을 것이었다. 분명히........

 

  봄이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지금껏 베티가 안내해주지 않은 곳들을 들쑤시고 다녔다. 1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옆에 있는 두 개의 문은 모두 잠겨있었다. 힘껏 어깨로 밀어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바닥 곳곳에 소화기가 비치되어 있었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문고리를 부수는 요란한 소리는 좁은 지하통로 뿐만 아니라 1층까지 들릴 것 같았다. 지금 봄이에게는 부담이 큰 도박보다는 조심스럽고도 확실한 방법이 필요했다.

 

  봄이는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벽을 두드려보기도 하고, 수도관에 바짝 귀를 기울여보기도 했다. 빠져나가는 출구가 존재한다면 분명히 바람 소리가 근처에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죄다 굳은 시멘트로 가득 채워져서인지 벽에서는 둔탁한 소리만 들렸고, 수도관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만 들렸다. 아니, 어쩌면 이 수도관을 따라가 보면 지상으로 나갈 수 있을 방법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봄이가 조용히 수도관 내부의 흐름을 느껴보려는 순간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렸다. 봄이는 수도관에서 귀를 떼고 발소리가 들리는 방향의 벽에 귀를 갖다댔다. 발소리는 장화 소리에 더 가까웠고 철퍽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진흙을 잔뜩 묻히고 걸어오는 모양이었다.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것을 보니 한 명이 아닌 모양이었다. 두 명 정도인 것 같았다. 아니면 다리가 네 개던지.

 

  봄이는 숨을 죽이고 벽에 기대어 섰다. 그러자 녀석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이번에 결정한 지하실 청소당번 말이야, 나는 그다지 마음에 안 들어. 벌써 2주가 넘게 4번대만 교대로 번갈아가면서 하잖아. 여왕님이 뭔가 편애한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라니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저번에 못 들었어? 4번대 녀석들이 이틀 전에 여왕의 명령에 불복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일부러 4번대만 당번을 시키는 거라는 소문이 있어.”

 

  누군가가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말해서........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우리들에게 삼시세끼 배급되는 식량이 인육이라는 사실을 아는 녀석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처음 인육을 먹었던 때를 잊을 수 없어. 두 달 전 살기 위해 죽은 친구를 먹었었지. 정말 끔찍한 추억으로 남은 기억이야. 하지만 어쩌겠어? 최근 들어서 암시장에서의 식량 가격도 올랐다나 봐. 산짐승들이 주로 많은 지역은 자경단이 점거하고 있어서 마음껏 사냥하지도 못해. 이제 인육은 진저리가 나. 처음 받은 충격에 비하면 익숙해지긴 했지만, 오히려 익숙해졌다는 게 점점 더 두려워져. 과연 우리가 하는 일이, 우리가 살기 위해 행하는 모든 행동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하고 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 생각해. 누군가가 명확한 해답을 내려줬으면 좋겠는데........”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이 멍청아, 여기에서 살면서 아직도 느낀 게 없어? 이제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세상이 되었어. 약한 동물은 강한 맹수에게 잡아먹히는 법이야. 지금껏 문명이라는 보호막 아래서 잠들어 있던 동물의 본능이란 게 인간에게도 드러났을 뿐이지. 미키가 그러는데 자경단 놈들은 매일 저녁으로 신문지가 섞인 쥐고기를 구워먹는대. 바퀴벌레도 먹는다는 소문이 있어. 튀길 기름이 없어서 솥에 담가서 푹 고아먹는다나. 그것보단 이곳 사정이 나을 거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런 소문을 듣고도 전향하고 싶어? 무엇보다 네가 이러는 거, 위에서 알면 절대로 그냥은 안 넘어갈 거야. 그러니까 말조심하는 게 좋아.”

 

  두 까마귀는 통로 한복판에 멈춰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헤어졌다.

 

  “넌 먼저 가봐. 난 주방에 잠깐 들러서 다희랑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고기가 요즘 들어서 비린내가 유독 심해졌단 말이지.”

 

  봄이는 가슴이 철렁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봄이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도 전에 까마귀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젠장, 무슨 일이야? 주방 꼴이 왜 이래?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맙소사........ 이럴 수가. 난 돌아가서 여왕님께 보고해야겠어. 넌 여기를 더 조사하고 있어. 식사가 배급된 지는 얼마 안 됐으니까 범인이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두 까마귀 중 하나가 계단을 뛰어 올라가려 했다. 더 이상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봄이는 바닥에 비치된 소화기를 뽑아들고 멍하니 입을 틀어막고 있는 까마귀에게 달려들었다.

 

  봄이의 기습은 성공적이었지만, 엄청나게 무거운 소화기를 자유롭게 다룰 정도의 힘은 없었다. 봄이가 휘두른 소화기는 까마귀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땅에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위력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부족했다. 무거운 소화기를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던 것이다.

 

  놈은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봄이가 떨어뜨린 소화기를 다시 주워들고 두 번째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봄이의 귓전에 총탄이 스쳤다.

 

  순간적으로 용기가 무너진 봄이는 두 번째 공격을 제대로 가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뒤통수를 맞은 까마귀가 정신을 차리고 봄이의 두 팔을 붙잡았다. 방금 전에 너무나도 많은 기력을 소모해서인지 저항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년을 쏴. 쏘라고!”

 

  놈은 팔로 봄이의 목을 휘감은 채 권총을 든 까마귀에게로 들이밀었다. 그러나 권총을 든 까마귀는 섣불리 쏘지 못했다. 봄이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쳐서 조준을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거나 자신의 조준 실력에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놈이 무리하게 사격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그 대신 봄이는 더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놈이 권총을 집어넣고 봄이를 제압하는 데에 거들었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꼼짝없이 얼굴에 주먹 두 방을 얻어맞고 자신의 두 팔을 움켜잡은 까마귀의 품 속에서 축 늘어졌다. 그래도 녀석들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봄이의 사타구니까지 걷어찼다. 봄이가 살면서 얼마 느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았지만 두 팔이 붙들린 상태라 가랑이를 움켜잡지도 못했다. 참으로 웃지 못할 광경이었다.

 

  지하실에서 벌인 소동이 꽤나 컸는지, 금방 엄청나게 많은 까마귀들이 지하실로 내려와 단단히 붙잡힌 봄이를 둘러쌌다. 봄이는 그놈들을 쳐다볼 힘조차 없었다. 다만 자신이 살면서 느낀 몇 안 되는 ‘진심으로 좆된’ 순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제 다 끝이구나.

 

  봄이를 둘러싼 까마귀들은 봄이가 벌인 난리통을 보고도 딱히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모두들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재판이고 자시고 굳이 내일 할 것도 없겠군.”

 

  까마귀 무리 사이를 헤치고 누군가가 봄이에게 다가왔다. 꽤 큰 키에 생머리, 지저분한 니트 위에 조잡한 방탄조끼를 걸치고 있었다. 여왕이었다.

 

  “넌 우리 모두를 배신했어, 봄아.”

 

  그렇게 말하며 여왕은 두 팔을 들어보였다.

 

  “그래서, 이제 뭐가 남았지?”

 

  봄이는 여왕이 자신에게 묻는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걸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여왕이 덧붙였다.

 

  “넌 이제 우리와 같은 가족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렸다는 뜻이야.”

 

  여왕은 웃고 있지 않았지만, 봄이에게는 왠지 여왕이 자신을 비웃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말은 또한, 네가 더 이상 새로운 가족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지.”

 

  끓어오르는 울분을 참지 못한 봄이가 소리쳤다.

 

  “개소리 집어치워요. 이제와서 왜 날 생각해주는 척 하는 거죠? 당신이 나에 대해서 뭘 알아요. 당신이 내 가족들에 대해서 뭘 아느냐고........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내가 가족을 찾을 수 없다느니, 이미 다 죽었을 거라느니 하지 말란 말이야. 당신도 똑같아. 당신뿐만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들 다 똑같아. 위선자........ 당신들의 그 추악한 내면을 가면으로 가리기밖에 하지 못하는 위선자들..........”

 

  봄이는 붙들린 채 차오르는 분노를 마치 악을 쓰듯 여왕에게 토해냈다. 몸 속에 품고 있던 독기가 하나도 남김없이 뿜어져나가는 것 같았다.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봄이의 욕설은 호흡곤란으로 인한 격렬한 기침 덕분에야 겨우 멈췄다.

 

  “당신들의 그 하찮은 광기 따위로 날 끌어들이려고 하지 마세요. 신념이니, 의무니 하면서 필연적으로 행해진 광기라는 건 반드시 무언가에 의해서 늘 보장되어 왔어요. 하지만 당신들은 어떻죠? 당신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당신들끼리 자체적으로 세운 기준만으로 행하는 그 어설픈 광기는 어디의 누가 보장해주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더 이상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꼬마를 처리할까요?”

 

  봄이의 코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얼굴을 쳐다보던 까마귀가 말했다.

 

  그러나 여왕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조금 더 들어보지.”

 

  봄이는 차오르는 숨 때문에 더 이상 말을 꺼내기도 벅찼다. 방금 전에 몸싸움을 벌일 때도 이렇게까지 숨이 차지는 않았다. 어째서 숨이 차는 걸까? 어째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갑갑하고 온 몸의 기력이 빠져나가는 것일까?

 

  봄이가 숨을 가쁘게 몰아쉬자 여왕이 말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니?”

 

  “구질구질하게 굴지 말고, 그냥 빨리 죽여요. 씨발새끼들아!”

 

  봄이는 그렇게 외쳤지만,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만만하게 외친 내용과는 달리 그들이 자신을 지금 당장 쏘지 않기만을 바랬다.

 

  “우리들끼리 세운 어설픈 광기라........ 그렇게 말해 주니 조금은 기쁘구나. 비록 잘못 왜곡되었기는 하지만, 그래도 네가 조금은 우리들의 관념에 대해 이해했다는 증거니까 말이야. 지금 몇 시지?”

 

  여왕이 봄이에게 말하다 말고 다른 까마귀를 돌아보며 물었다. 까마귀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오전 3시라고 대답해주었다.

 

  “첫 번째로, 봄이 네 말에는 어폐가 조금 있어. 광기라는 건 누군가 꼭 보장해주어야만 실현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인간이 존재하는 한 규율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 규율을 벗어나지 않는 한 그 어떤 행위든 정당화되는 법이지. 규율을 가진 인간들이 모여서 사회가 되고, 그 사회가 모여 하나의 문명이 만들어지고....... 그 문명이란 것이 지나온 길에는 과거라는 흔적이 뿌려지고, 뿌려진 과거는 시간이 지나면 곧 역사가 되지. 그 역사라는 과거가 보장하는 세상 아래서 인간은 살아왔어. 그리고 누구도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올 수 있었던 과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지. 왜인 줄 알아? 인류가 살아온 수천 년간 그들이 세운 규율이 지켜져 왔다고 믿기 때문이야.”

 

  여왕이 쭈그렸던 허리를 펴며 일어났다.

 

  “그리고 그 규율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순간, 그건 그저 광기가 되어버리고 말지.”

 

  여왕은 붙들린 채 주저앉아 있는 봄이의 주위를 천천히 돌아다녔다.

 

  “참 이상한 일이야. 그럼 지금까지의 인류가 정한 규율이란 건 뭐지? 그 규율이란 건 누가 정한 거야? 바로 그들이 정한 거야. 그 규율이란 것도 결국 인류가 자신들끼리 멋대로 세운 기준에 지나지 않아. 넌 지금 구시대의 인류가 세운 고리타분한 규율을 잊지 못하고 있어. 또 그런 구시대의 규율을 통해 지금 세상에 선과 악을 구분짓고 있는 거고. 그리고 그 중에서 악이라는 건, 방금 네가 말한 광기로 치부되어버리고 마는 거지.”

 

  붙들린 팔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봄이는 이제 어느 정도 호흡을 되찾았다. 가슴이 갑갑할 정도로 차오르던 숨도, 머릿속을 두들기는 것 같은 흥분도 상당히 가라앉았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을 어떻게 따돌리는 것이냐인데........ 과연 그럴 기회가 올까?

 

  “안타깝지 않니? 누군가가 세운 규율은 참된 교리나 선한 사상으로 인정받는데도, 또 다른 누군가가 세운 규율은 광기 따위로 치부되어버린다는 게 말이야. 늘 말했듯이 예전 세계는 이제 그 추한 과거의 흔적들과 함께 사라질 거야. 세상의 주인이 바뀌었으니까. 이제 이 황무지뿐인 땅에도 언젠가 새로운 꽃이 필 테고, 그 한 송이 꽃이 피는 순간부터 새로운 세계는 시작되는 거야. 우리는 그 때가 오면 시작될 새로운 세계에 적용될 규율을 만든 것 뿐이야. 물론 지금은 광기 따위로 인식될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을 이렇게 만든 모든 악인들이 죽고, 우리의 뒤를 이어 시작될 다음 세대에게 면목없게도 이 엉망이 된 세상을 물려줄 때가 되면 지금까지의 세계는 뒤바뀔 거야. 모든 인류가 우리가 정한 신세계의 규율을 따르게 될 테고, 지금 네가 말한 광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세계의 정당한 규율로 뿌리박게 되겠지.”

 

  지금 세계가 변화해야만 한다는 것에는 봄이도 어느 정도는 납득했다. 하지만 봄이가 생각하는 여왕의 사명은 더없이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모두가 인육을 섭취하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 또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세상........ 그렇다면 약자는 도태될 것이고, 그들을 위한 인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이건 옳지 않았다.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약자였던 자들은? 자기만의 잘못이 아니라 순전히 태생적으로 장애인으로 태어나거나, 유전자 시술의 부작용 등으로 태어나게 될 불구자나 기형아들은? 그들에게는 여왕이 말하는 새로운 세계에 살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뜻일까?

 

  “그런 변명이나 늘어놓으면서 죄 없는 사람들이나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풍습을 정당화시키려는 거예요?”

 

  봄이는 마지막으로 소리쳤다. 어차피 더 이상 이들과 논쟁해봤자 바뀌는 게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희생자들은 모두 악인이야. 그들이 악인인 이상, 그들의 죽음은 정당하지.”

 

  “강제로 끌려와서 저 망할 주방에 갇혀있는 어린아이도 그 좆같은 악인이라는 거냐고요!”

 

  여왕은 잠시 생각하더니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아, 어린아이들 말이니? 그들은 악인이 아니야. 다만 악인을 멸하는 전쟁에서 싸울 전사들의 식량일 뿐이지. 이를테면 제물 같은 거야. 거대한 사명에는 당연히 소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봄이의 손가락이 떨렸다. 도대체 어린아이들이 어째서, 또 무엇을 위해서 이들에게 희생되어야만 한단 말인가......

 

  “뭐, 예전 세계에서 인간들이 제멋대로 짐승들을 잡아먹던 것과 똑같지. 그렇지 않니?”

 

  “이 혐오스러운 야만인들!!!!”

 

  봄이는 더 이상 분노를 참지 못하고 여왕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움켜잡고 싶었다. 하지만 봄이가 발버둥치자 자신을 붙잡은 두 까마귀의 힘이 더욱 강해졌고, 지금 봄이의 힘으로는 두 까마귀의 완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쯤이면 알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해. 분명 그렇지?”

 

  “당신들은 인간도 아니야!”

 

  “그래, 우린 인간이 아냐. 까마귀지.”

 

  여왕은 봄이의 발악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허리에서 권총을 꺼내들었다.

 

  “정말 미안하구나, 봄아. 그리고 정말 안됐어. 이건 까마귀 여왕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진심으로 네게 표하는 유감이야. 우린 창고에서 죽어가는 네 눈빛을 보고 우리들의 가족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넌 우리를 배신했지. 마지막으로 다시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넌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구나.”

 

  여왕이 권총을 봄이의 이마에 겨눴다.

 

  “이렇게 몇 번 배신자를 처단한 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슬프기까지 하구나. 네가 끝내 우리들의 대의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도 슬프지만, 내가 진심으로 네게 베풀었던 기회를 꼭 이렇게 돌려주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정말 안타깝다.”

 

  봄이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여왕이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뇌수가 흘러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신 더 크고 시끄러운 굉음이 들렸다. 순간적으로 저택이 흔들리는 것 같았고, 녹슨 수도관이 달린 천장에서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젠장, 무슨 일이지?”

 

  “1번대 초소, 여왕 둥지에서 입감 요청한다. 무슨 일인가? 상황 보고하라.”

 

  어느새 여왕은 권총을 든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무전기를 꺼내 송신을 시도하고 있었다. 지직대는 잡음 끝에 무전기 너머에서 누군가가 응답했다.

 

  “여왕 둥지, 1번대 초소입니다. 현재 저택이 신원미상의 적대세력에게 공격받고 있습니다. 이상!”

 

  “1번대 초소, 적대세력을 확실히 식별하라. 정확한 적대세력의 규모 및 신원 확보를 최우선으로 행하라. 이상.”

 

  이윽고 다다다 하는 총성까지 울려퍼졌다. 총성의 크기로 확인해보건대 그렇게 멀지는 않은 것 같았다.

 

  “현재까지는 적들이 당소 측과 상당히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신원은 불명확합니다. 적대세력의 규모 및 신원 확보되는대로 보고하겠습니다. 이상.”

 

  “뻔한 일이지. 자경단 놈들의 보복공격일 거야.”

 

  “뭐라구요?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무전 너머의 상대는 요란한 총성과 폭음 때문에 정상적인 통신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무기 사용을 허가한다. 자유롭게 교전하라. 여왕 둥지 통신 종료.”

 

  여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무전기를 옆 까마귀에게 넘겨주었다.

 

  “뭐, 당연한 결과다. 전부 예상대로군. 3번대와 4번대는 저택 초소에서 교전하며 1번대를 지원하라. 2번대는 저택 2층으로 올라가서 놈들이 접근하면 철책선에 설치된 클레이모어(*원격 혹은 열감지로 작동하는 대인 지뢰)를 격발하라. 5번대는 지하 무기고를 통해 현재 교전중인 자매들에게 중화기와 탄약을 전달한다. 놈들의 침입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어서 움직여!”

 

  여왕의 명령에 따라 모든 까마귀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5번대가 지하 무기고로 향했고, 나머지는 계단을 올라 저택 홀로 향했다.

 

  “배신자 처단은 내가 직접 하겠다.”

 

  하지만 여왕이 내려다봤을 때 봄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봄이는 어느 틈에 여왕의 등에 올라타 여왕의 목을 꽉 옥죄고, 다른 팔로는 여왕이 쥔 권총을 온 힘을 다해 움켜잡았다. 생각지도 못한 기습에 여왕은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허리를 숙여 자신의 등에 올라탄 봄이를 붙잡고 앞으로 던져넘겼다.

 

  봄이는 등이 땅바닥에 곤두박질치자 숨을 쉬기 어려웠다. 봄이가 제대로 일어나기도 전에 여왕은 봄이의 배를 짓밟고 권총을 겨눴다.

 

  여왕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봄이가 소리쳤다.

 

  “잠깐, 나 임신했어요! 아이를 가졌다구요!”

 

  여왕이 순간적으로 멈칫하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봄이는 여왕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놀랍게도, 여왕은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충격에도 손에서 권총을 놓지 않았다. 봄이는 여기서 여왕과 싸울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재빨리 뛰어 지하 통로의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금방 정신을 차린 여왕이 도망치는 봄이를 향해 권총을 세 발 쏘았지만 두 발은 빗나가 벽에 맞았고, 한 발은 깜빡이던 백열등을 맞췄다. 백열등이 요란한 스파크를 내며 깨져버렸다.

 

  여왕이 뒷목을 잡고 일어나 다시 권총을 겨눴지만 봄이는 이미 어둠 속에 숨어버린 후였다. 계단 위에서 한 까마귀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왕님, 어서 가야 합니다!”

 

  여왕은 봄이가 사라진 어둠 속을 몇 초간 더 주시하더니 등을 돌려 되돌아갔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05 104화(그 후의 이야기) 2019 / 11 / 10 244 0 10184   
104 103화(마지막화) 2019 / 11 / 8 251 0 7150   
103 102화 2019 / 11 / 8 236 0 9365   
102 101화 2019 / 11 / 8 256 0 12720   
101 100화 2019 / 11 / 8 270 0 6491   
100 99화 2019 / 11 / 8 274 0 12040   
99 98화 2019 / 11 / 8 250 0 10197   
98 14.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2019 / 11 / 8 247 0 8345   
97 96화 2019 / 11 / 8 243 0 5686   
96 95화 2019 / 11 / 8 280 0 9160   
95 94화 2019 / 11 / 8 235 0 10760   
94 93화 2019 / 11 / 8 265 0 6631   
93 92화 2019 / 11 / 8 226 0 10034   
92 91화 2019 / 11 / 8 247 0 13252   
91 90화 2019 / 11 / 8 237 0 5434   
90 13.최후의 결전 2019 / 11 / 8 238 0 14296   
89 89화 2019 / 11 / 8 242 0 6525   
88 88화 2019 / 11 / 7 249 0 13724   
87 87화 2019 / 11 / 7 256 0 6876   
86 86화 2019 / 11 / 7 242 0 6670   
85 85화 2019 / 11 / 7 240 0 9450   
84 84화 2019 / 11 / 4 240 0 7691   
83 12.까마귀 2019 / 11 / 4 215 0 8834   
82 82화 2019 / 11 / 4 250 0 5374   
81 81화 2019 / 11 / 4 251 0 8794   
80 80화 2019 / 11 / 4 269 0 8167   
79 79화 2019 / 11 / 4 225 0 5245   
78 78화 2019 / 11 / 4 251 0 7057   
77 77화 2019 / 11 / 4 238 0 5426   
76 76화 2019 / 11 / 4 238 0 10576   
 1  2  3  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