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고함을 지르고 주먹질하고 발을 굴렀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 주먹은 까져서 피가 흘렀다. 이해할 만하다. 누구나 1인용 관 크기의 유리상자 안에 갇히면 화가 나 미칠 테니까. 게다가 사방은 깜깜했다. 냄새도 없다.
유리상자 너머로 한 얼굴이 떠올랐다.
이도의 아버지이자 소른 대륙 동방의 도림 왕국의 왕이었다.
이도는 그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헛수고이다.
이도는 목에 핏줄을 툭툭 세우며 외쳤다.
전쟁을 멈춰! 당장!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전쟁에! 아무런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죽고 있다고!
이도는 당황했다. 말은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이도는 또 다시 그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아버지의 얼굴이 말했다.
“...... 하겠소.”
아버지의 얼굴이 사라졌다.
이도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등에 유리상자가 닿았다. 차갑다.
또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소른 대륙 서방의 제국이자 곧 서방이나 마찬가지인 라니냐 제국의 대장군이다.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그는 도림의 땅을 짓밟았다.
결국에는 항복시켰다.
“제국의 대장군으로서, 황제를 대신하여 선고한다.”
말 하지 마!
“자네의 두 자식은 황제의 대자가 될 것이다.”
누구 맘대로! 누구 맘대로! 이도는 울부짖으며 유리 상자를 손톱으로 긁었다. 손톱이 투두둑 부러져나가며 피가 줄줄 흘렀다.
핏줄기 사이로 보리스의 얼굴이 이도를 쳐다봤다.
“제국의 대자는 제국법 내 대자법에 의거하여 특별히 황위계승권을 가지고, 정치사안 개입권을 가지며......”
이도는 괴성을 질렀다.
닥쳐! 이도는 발길질했다. 발만 아프다.
얼굴이 다른 얼굴로 바꿨다. 어머니의 얼굴이다.
이도는 헉하고 숨을 집어삼켰다. 유리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댔다.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 왜 그러셨어요, 왜 제발 한 명만 대자로 삼아달라고 간청했습니까? 선화가 많이 상처받았어요.
어머니의 얼굴이 스르륵 변했다.
‘한 소녀’의 얼굴이다.
이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도는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누군가 나를 구해줘, 나를 여기서 꺼내줘.
제발!
세계가 휙 하고 돌았다. 아니다. 세계가 돈 것이 아니라 이도가 쓰러진 것이다. 소리들. 시야가 좁아진다. 소리만 남아간다. 웅웅거리는 소리. 소리만이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의식의 해변에서 차올랐다.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야가 좁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곧이어 소리도 점점 작아진다. 시각과 청각을 잃은 이도. 그는 공허 속에서 표류한다.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가, 어디로. 갑자기 알 수 없는 냄새가 난다. 이도는 코를 킁킁 거린다. 냄새를 깊이 마신다. 익숙한 냄새이다. 그 냄새는 머리를 파고 들어가, 기억의 저편으로 향하는 문을 노크한다. 그래, 이 냄새는......
라벤더와 라즈베리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