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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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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6 08:19     조회 : 634     추천 : 3     분량 : 5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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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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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게 안 임신이어서 그나마 몇 달 안 되었던 엄마의 임산부 대접받기는 내가 태어나기 직전 그의 사진관과 함께 허망하게 그 끝을 본다. 그의 사진관이 정확히 돈을 얼마나 버는지, 그가 얼마의 돈을 벌고 얼마의 돈을 쓰는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엄마는 그 손바닥만 한 사진관이 빚에 의해 굴러가고 있었던 것을, 그가 사오던 족발과 후식으로 챙겨 먹던 달달한 포도, 딸기, 배들도 다 그 빚쟁이들 덕에 산 거였다는 사실을 빚쟁이들이 집으로 쳐들어올 때까지 꿈에도 몰랐다.

 

 빚쟁이들은 임산부를 에워쌌다. 배를 툭툭 치며 가진 돈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함을 질러 동네 사람을 불러내 망신을 주었다. 살림살이를 부수며 그의 행방을 물었다. 정작 그의 행방이 궁금한 건 엄마였다. 엄마의 부른 배가 아팠다. 오줌이 마려웠지만 성난 빚쟁이들이 임산부에게 오줌을 싸게 할 아량을 베풀 것 같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억울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배 속의 아이에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 이 아이만 아니었어도, 김대물 그 인간만 아니었어도 내가 지금 빚쟁이들에게 이 꼴을 안 당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이유로 배 속의 아이에게 더 미안해졌다. 배를 부둥켜안고 ‘아이야, 니가 무슨 잘못이노. 그 인간을 만난 내가 잘못이제.’ 하며 꿈틀대는 아이를 달랬다. 왈칵. 결국 오줌을 지리고 말았는가 싶었는데 다리 사이로 붉은 액체가 흘렀다. 배를 갈라 애를 팔아먹을 듯 달려들던 빚쟁이들마저 흠칫했다. 엄마는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옮겨졌다.

 

 조산에 난산이었다. 난 엄마 뱃속이 내 집 거실인 마냥 옆으로 누워있었고 심장박동이 잘 잡히지 않았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갈 때까지 그는 사진관에서 다른 빚쟁이 무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사실을 몰랐던 엄마는 그 인간이 도망을 갔구나 싶었고 이 아이를 데리고 나 혼자 어떻게 살아 나가나 걱정이 태산이었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외삼촌과 이모들은 의사에게 아이는 어떻게 돼도 전혀 상관없으니 산모는 꼭 살려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엄마는 나를 처음 본 순간까지 자신의 심약함과 무지가, 자기 몸 낫자고 먹은 약들과 주사들이 나를 해쳤을까 봐 걱정했지만, 부지런히 먹어둔 족발 덕분인지 난 2.4kg의 작지만 정상적인 몸으로 세상에 나왔다. 엄마는 제일 먼저 내 눈코입귀가 제대로 달렸는지, 내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가 10개씩인지, 팔다리는 제대로 움직이는지 찬찬히 확인했다. 고추가 없었지만 그건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너무도 작은 이 아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기는 한 건지, 그 안에 오장육부가 제대로 들어있기나 한지, 요 작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다 접히고 펴지기는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다행히도 금방 젖이 돌았고 아이는 꼬물꼬물 젖을 잘 빨았다.

 

 뒤늦게 도착한 그는 출산의 순간을 같이하지 못해 미안해할 겨를도, 득녀의 기쁨을 즐길 여유도 없었다. 빚쟁이들은 병원까지 찾아왔고 그는 그들이 엄마 병실에 못 들어가게, 나를 해치지 않게 몸으로 막고 빌었다. 외삼촌과 이모들도 그를 닦달했다. 그로서는 성공의 지름길이라 믿고 시작한 사진관이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빌린 돈이 조금 있었지만, 열심히만 일하면 갚아 나갈 거라 확신했다. 신혼집을 마련하느라 빚을 빚으로 갚고 그 위에 또 빚을 얻었지만 난 이제 아빠니까, 난 이제 더 열심히 일 할 거니까 다 괜찮아질 거다, 생각했다. 하지만 알금알금 얻은 빚들은 그의 보금자리를, 생활의 터전을, 그가 매일 만지고 닦던 사진기와 엄마가 아끼던 살림살이를 모두 집어삼켰다.

 

 엄마는 그 인간이 싫었다. 어쩌면 그렇게 무책임할 수가. 어쩌면 그렇게 무지할 수가. 어떻게 나와 내 딸에게 이런 꼴을 보게 하는가. 엄마는 퇴원하고 첫째 이모네 집에서 몸조리를 하며 그와는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서 돈이 났는지 기장미역과 소고기를 사 들고 아침저녁으로 찾아왔지만 문전박대를 면치 못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딸 얼굴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지만 본인의 잘못이 큼을 알기에 엄마를 이해하고 장문의 편지로 용서를 빌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엄마는 그에게 한마디 했다. “인간아. 와 그랬노?”

 

 내가 세상 빛을 본 지 열닷새가 지나서야 그는 처음으로 나를 안아볼 수 있었다. 터무니없이 작은 아이였지만 본인의 눈과 코, 엄마의 입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귀 위쪽이 남들보다 살짝 더 많이 접어진 것마저 본인을 똑 닮은 이 아이는 분명 본인의 아이였다. 쌕쌕 잠을 자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미련하게 불려놓은 빚도, 당장 무슨 일을 해야 하고 어디서 잠을 자야 할지 모를 막막함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 아이를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뭐라도 할 수 있다 생각했다. 그는 중동에 가서 돈을 벌어오길 다짐했다. 80년대 중반이었으니 중동 붐은 이미 한풀 꺾인 뒤였지만 배운 것도, 가진 것도, 빽도 없는 그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흔치 않았다.

 

 엄마는 이 작고 예쁜 아이에게 대물이나 말년이 같은 촌스런 이름이 아닌, 예쁘고 귀여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많은(多) 지혜(慧)란 뜻의 다혜와 무성한(盛) 지혜(慧)란 뜻의 성혜중에 고민하다가 외삼촌이 빌려 다 준 이름 짓기 책에서 마음에 꼭 드는 순 한글 이름을 찾았다. ‘하늘이 내린’이란 뜻의 ‘나린.’ 흔하지 않은 이름이라는 게 더 마음에 들었다. 그의 동의를 받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의 그는 엄마에게 싫은 말을 할 염치가 없었으니까 내 이름을 똥개라 하자 해도 그러자 했을 거다. 하늘이 내린 이 귀한 아이, 귀하게 키우자. 그렇게 둘이 다짐하고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나와 엄마는 그나마 형편이 좋았던 외삼촌 집으로 생이별을 했다.

 

 얹혀사는 신세인지를 알아서였던지, 나는 잘 울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젖을 찾았지만, 그때도 칭얼대는 수준이었지 다른 아이처럼 빽빽 울어대지는 않았다. 심지어 예방접종을 위해 그 작은 팔에 주사를 꽂아도 얼굴만 슬쩍 찡그리며 엄마를 원망스레 쳐다볼 뿐 울지 않았다. 그 희한한 광경에 의사마저 신기해서 아이의 신체발달과 장애 여부를 무료로 검진해주었다. “제가 원체 둔해서 임신한 지 5개월이 될 때까지 아 들어선 줄도 모르고 감기약도 먹고 주사도 맞고 보약도 먹고 했는데, 그거 때매 아가 이렇게 된 거 아인교?” 하며 엄마는 눈물을 보였다. 한동안 아이 여기저기를 만져보고 들춰보던 의사는 “아주 멀쩡합니다. 이렇게 순한 아이는 제 의사 생활 34년에 처음입니다. 복 받았다, 생각하시고 불편한데 없이 잘 돌봐주시면 됩니다.” 했다.

 

 아무렴, 복을 받았구말구. 내가 남편 복은 없어도 자식 복은 있구만. 엄마는 더욱 내게 정성을 쏟았다. 외삼촌은 그가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자신의 집에서 애나 보라 했지만, 엄마는 극성을 떨었다. 아니, 극성을 떨어야 했다. 이 작은 아이를, 이 복덩이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본인이 못 배운 만큼 남들보다 많이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필요한 건 돈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돈을 모아서 빚을 갚아야 했고, 집을 구해야 했고,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했다. 다행히 손재주가 있고 손이 재발랐다. 바느질을 했고, 뜨개질을 했다. 마늘을 까기도 했고, 김을 구워 팔기도 했다.

 

 나는 젖만 먹여도 포시럽게 살이 오르더니, 백일이 지나자 우량아 대회에 내보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잠도 잘 잤다. 밤중에 깨는 법도 없이 잘 잤고 아침에 일어나도 눈만 멀뚱멀뚱 뜬 채 천장만 바라보며 젖 주기를 기다렸지 보채는 법이 없었다. 애를 들쳐 매고 쑥을 뜯으러 가도, 뜯은 쑥을 팔러 장에 가도 아기는 울지도 않고 식식대며 잠을 잤고, 보는 사람마다 칭찬 일색이었다. 아이가 크게 될 모양이라고. 어린 게 벌써부터 효도한다고. 커서도 엄마 속 안 썩이고 효도할 애라고. 엄마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계속 걱정이 되었다. 내 자식이 혹시 어디 모자란 게 아닌가.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사람이 좀 울고 보채며 자기가 원하는 걸 쟁취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밥 달라고 울지도 못하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사우디에 있는 그는 매일같이 편지를 보내 엄마를 귀찮게 했다. 본디 말이 많지 않던 엄마였고 그런 엄마를 대신해 두 배로 수다스럽던 그였지만 서로 떨어져 있게 되자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그는 자신의 하루를 시시콜콜 엄마에게 일러바쳤다. 그날 날씨는 어떻고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사우디는 술이 귀한지라 소주, 맥주가 먹고 싶다고 앙탈을 부리기도 했다. 가끔은 자신의 일상뿐만이 아니라 같은 방에서 지내는 백 씨와 최 씨의 일상과 그들의 생김새, 가족사까지도 생생히 전달했다. 엄마는 주로 본인의 근황과 나의 발달상황을 간략히 적어 보냈다. 어떤 백신을 맞았는지. 키는 얼마가 되었고 몸무게는 얼마나 되었는지. 돈은 얼마나 갚았고 얼마나 모였는지. 당시 개인 일기엔 자신의 일상을 꽤나 소상히 적던 엄마였으니, 어쩌면 짧은 편지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그에 대한 원망의 산물이었는지도 몰랐다.

 

 울지 않아 걱정이었던 아이는 의외로 말을 빨리했다. 머리가 아이치고도 너무 커 앉기조차 힘들 때, 처음으로 엄마를 가리키며 ‘엄마’인지 ‘맘마’인지 모를 말을 했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젖을 완전히 떼기도 전에 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그 의사소통은 대부분 먹을 거였다. 처음엔 젖을 달라 했고, 곧 이도 몇 개 없는 주제 “빱. 빱.” 하며 어른들이 먹는 밥을 달라 했다. 그렇게 자율적으로 이유식도 건너뛰고 밥을 먹기 시작한 나는 돌이 지나서는 ‘까꿍(깍두기),’ ‘짐찌(김치),’ ‘우가지(우거지)’같은 단어를 말하며 내 밥숟가락 위에 반찬을 얹어 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돌잡이로 연필을 잡자 엄마와 그는 하나같이 크게 기뻐했다. 공부를 잘할 거라고. 성격이 참 다른 둘이었지만, 하늘이 내린 이 아이를 반드시 공부시켜 몸이 아닌 머리로 성공하게 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없는 돈에 무리해서 돌 사진도 찍었다. 백일사진도 못 찍었으니 돌 사진은 반드시 찍어야 한다고 그가 사정사정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당신이 사진관을 빚 없이 잘 운영했으면 직접 공짜로 찍을 수 있었지 않았냐며 툴툴대면서도 그에게 사진 한 장을 보내주었다. 그는 혹시 닳아 없어질까, 작은 사진을 비닐에 꽁꽁 싸맨 뒤 가슴에 품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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