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 그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자도 아니고 ‘카톡’메시지이다. 며칠 전 그에게 전화를 안 한 지가 너무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전화를 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 미국에 유학을 왔을 땐 한 달에 한 번 그와 통화를 했다. 사실 전화를 거는 건 늘 그였으니 난 받기만 했다. “국제전화 돈 많이 드니까 그냥 연락 없으면 멀쩡히 살아 있는 줄 알아.” 하는 나에게 그는 “내가 전화할게. 내가.” 하고 큰소리를 치더니 정말 매달 1일 아침 9시, 내가 살던 뉴욕 시간으론 매달 마지막 날 오후 7시쯤이 되면 전화를 하였다. 그의 말로는 가장 싼 국제 전화 요금이라 별로 안 비싸다고 했지만, 그래도 늘 쫓기듯이 용건만 간단히 주고받았다. 용건이라곤 “몸 건강히 잘 있느냐?” “공부는 할 만하냐?”가 전부이고, 내 대답 역시 “어.” “그럼.”이 다였으니까 통화는 보통 1분을 넘어서지 않았다.
한번은 핸드폰 배터리가 다 된 줄 모르고 있다가 전화를 못 받은 적이 있었는데, 서너 시간 뒤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나가봤더니 캠퍼스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간단히 내 이름과 신변을 확인한 경찰은 “아버지한테 전화를 드려라.” 하고는 돌아갔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고 전원을 켜자 그에게서 온 전화가 득달같이 울렸다.
그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나에게 무슨 큰일이 생겼다고 확신했다. 처음으로 그가 찾아간 곳은 경찰서였다. 경찰들은 설사 따님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한국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뿐더러, 따님이 바쁜 일이 있거나 핸드폰 배터리가 없거나 해서 전화를 못 받은 것일 수 있으니 하루 정도 차분히 기다려 보라며 그를 돌려보냈다. 차분히 기다릴 수 있는 양반이었으면 애초에 경찰서에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성질 같아선 당장에 날 찾아왔겠지만, 비행기는 어떻게 타는 줄도 모르고 너무 비싸다는 것만 아는 그는 막연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에 갈까 했지만 차도 막힐 것 같고 한국말이랑 영어를 다 잘하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 공무원들은 시험을 쳐서 뽑으니까 똑똑하고 영어를 할 줄 알 것으로 생각한 그는 동사무소로 들어갔다. 거기서 다짜고짜 통사정하자 한 착한 여자 공무원이 인터넷으로 내가 다니는 학교 연락처를 찾아 전화를 걸어 통역을 해주었다. 학교에서 딸이 어디에 사느냐고 물어보자 그는 집에 가서 내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적어둔 주소를 찾아들고 동사무소로 돌아가 점심을 먹으러 가는 착한 여자를 붙잡고 다시 통역을 부탁했다.
그는 경상도 남자답지 않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자신이 어떻게 미국에 있는 내 집 앞에 경찰을 출동시켰는지 설명해 주었다. 나의 무사함을 확인한 뒤라서 인지, 아니면 자신이 극성을 부린 게 쑥스러웠는지, 그는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뭇 자랑스러운 듯, 부끄러운 듯 “느그 아바이 능력이 이 정도다. 니가 전 세계 어디 있든, 낸 니가 어데서 뭘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난 일부러 깔깔 웃으며 “리암 니슨 안 부럽네.” 하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리앙 뭐?”라고 물었고 난 그가 못 알아들을 거란 걸 알면서도 “영화 <테이큰> 주인공.”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직장을 잡고 눌러살게 된 이후로 하루 일찍 한 달의 시작을 알리던 그의 전화는 이렇다 할 예고나 설명 없이 멎었다. 이제 서른이 다 돼가는 온전한 성인이니 더는 간섭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가 알아서 안부를 물을 거라고 기대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가 전화를 하지 않자 내가 전화를 걸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요새는 내가 일 년에 세 번, 설 즈음, 추석 즈음, 그리고 5월에 그의 생일과 어버이날 즈음해서 전화를 건다.
물론 더 자주 걸 수도 있었겠지만, 딱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일 년에 세 번 걸더라도 막상 “잘 있어?” “아픈 데는 없고?” 하면 할 말이 없었다. 가끔 그가 나에게 한국에 돌아올 것을 종용하거나 사귀는 남자가 있느냐고 묻기도 했지만, 내가 늘 단답형으로 “싫어.” “없어.” 하자 그도 지친 모양이었다. 아니면, 나에게 아무리 뭐라 해봤자 내가 말을 들을 리가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며칠 전에도 5월이 벌써 반도 넘게 지나갔길래 그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를 하기도 전에 그는 “내 친구 딸은 미국에 있어도 매일 문자도 하고 얼굴 보고 통화하고 해도 공짜라는데 니는 우에 된 게 배운 아가 그런 것도 할 줄 모르노?” 하며 다그쳤다. 난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내가 왜 할 줄을 몰라. 아빠가 인터넷을 할 줄 몰라서 못하는 거지. 아빠 문자 보낼 줄도 모르잖아.” 하고 받아쳤다. “인터넷? 그거 뭐 얼만데?” 하며 허풍을 치길래 “비싸. 그리고 인터넷 하려면 핸드폰도 비싼 거로 바꿔야 돼.” 하고 서둘러 안부를 묻곤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잊고 있었는데 오늘 그에게서 카톡메시지가 온 거다.
「미안ㅎ」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