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자유연재 > 기타
엄마, 그 인간, 그리고 나린
작가 : 세가잘놀
작품등록일 : 2016.10.5

'가난'이란 한 단어로 정의하기엔 조금은 부족한 듯한,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 85년생 나린이의 굴곡진 삶.
과거를 지나 현재까지의 우리, 우리 부모님 이야기.

 
1_2
작성일 : 16-10-06 08:18     조회 : 531     추천 : 3     분량 : 5059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엄마 열한 살 때 외할아버지마저 위암으로 돌아가시자 외삼촌은 어린 나이에 장남이란 이유로 순식간에 일곱 명의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 되었고, 엄마 자매들은 외삼촌의 서울 자췻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었다. 엄마가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건 당연히 피치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엄만 이 사실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했다. 아줌마들끼리 모여 학창시절 이야기를 하면 내가 집에 가고 싶어 한다며 핑계를 대고 은근슬쩍 자리를 떴다. 명절 때 오랜만에 만난 외삼촌한테 왜 학교에 안 보내줬냐고 울고 불며 따져서 이모들이 한참이나 어르고 달랜 적도 있다.

 

 지금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나 어렸을 땐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란 이유로 부모의 학벌과 직업 등을 적어내게 했다. 엄마는 “그 사람들이 뭐 일일이 핵교에 전화해서 확인을 하나?” 하며 본인의 학벌을 초졸, 아니, 옛날 말로 ‘국졸’로 적으라 했다. 난 한술 더 떠서 “학벌을 올리려면 아예 고졸이나 대졸이라 하지, 왜 소심하게 국졸이라고 적으래?” 했고 엄마는 얼굴이 발개진 채 수줍게 웃으며 “고등학교랑 대학교는 구경도 못 해 봤는데, 뭐 물어보기라도 하면 우야노?” 했다. 난 괜히 열을 내며 “설마 뭐 수학 문제라도 풀어보라 할까 봐?” 하면서도 어쩐지 무서워서 엄마 말대로 ‘국졸’이라고 적었다. 그때 국졸이라고 적어도 아무 일이 없었던 거로 미루어 보아 아마 고졸이나 대졸로 적어도 아무 일 없었을 것 같다.

 

 엄만 옛날 사람답지 않게, 그리고 애 엄마답지 않게 키도 크고 늘씬한 서구형 몸매에 쌍꺼풀이 짙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애기 때부터 엄마의 별명은 ‘이쁜이’였고 동네 아주머니들마저 엄마를 이쁜이라고 불러서 나도 한동안 엄마 이름이 ‘이쁜이’인 줄 알았다. 어릴 적, 운동회라도 있어 엄마가 학교에 오면, 면바지에 티 쪼가리를 걸치고 화장기 하나 없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친구들은 모두 “너희 엄마 진짜 예쁘다.” “너희 엄마 연예인이야?”를 연발했고, 난 그 말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내심 왜 난 엄마를 닮지 못하고 그를 닮았나 하고 한탄했다. 그가 길거리서 봄나물을 팔고 있던 스물한 살의 엄마를 보고 한눈에 반한 건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와 엄마의 연애 시절에 대해 주워들은 몇몇 이야기만 보더라도 둘은 정말 절절한 사랑을 한 것 같긴 하다. 태생적으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말 붙이길 좋아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참견이란 참견은 다 하고 다니는 그는 이상하게 엄마에게는 말 붙이기가 두려웠다. 대신 그는 매일같이 엄마에게 꽃 한 다발을 건네주었다. 내가 이 소리를 처음 듣고 “꽃을? 아빠가?” 하고 놀라자 엄마는 “느그 아빠가 원래 좀 씨잘데기 없이 허툰데 돈을 잘 쓴다 아이가.” 하며 괜스레 성을 냈다. 듣고 있던 그는 “느그 엄마가 요상한 기라. 여자가 꽃을 안 좋아하는 게 말이 되나? 꽃을 안 좋아하는 여자가 여자가?” 하며 정색을 하다가 이내 “하기사 느그 엄마가 원체 이뻐 부려 가꼬, 뭔 꽃을 사다 줘도 느그 엄마 미모를 당최 당해 내질 모했다. 꽃을 사다 주면 꽃이 확 죽어삐맀다. 느그 엄마 미모에 놀라가꼬.” 하곤 게슴츠레 눈을 떠 엄마에게 곁눈질을 보냈다. 엄마는 그제야 못 이기는 척 피식 웃어 보였다.

 

 엄마는 매정하게도 그가 말없이 넘겨준 꽃을 좌판 옆에 두기만 하고 한 번도 집에 가져가지 않았다. 안달이 난 그는 이번엔 자신의 차마 말 못할 감정을 편지에 적어 전해주기로 한다. 그가 사진관 문까지 닫고 장장 이틀에 걸쳐 썼다는 이 연애편지는 편지지 20장을 앞뒤로 꽉꽉 채울 분량이었다는데 안타깝게도 엄마와 그 모두 그 편지의 행방을 몰랐다. 도대체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았냐고 내가 물어보자 그는 “사랑한다고 썼지.”라고 말했고 “사랑한다 카긴. 뭐 나비가 날고 꽃이 피고 이딴 소리만 지껄여 쌌고. 마 암 내용도 없었다.”가 엄마의 대답이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는 정장 한 벌을 빌려 입고 늘 가던 꽃집에서 특대형 꽃다발을 주문하여 엄마를 찾아갔다.

 

 다시 엄마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에게 엄마가 대뜸 “요 며칠 새 안 보이데요.” 했다. 그는 엉겁결에 “꽃을 받았으면 가지고 가야지 와 버리고 가는교?” 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 엄마는 안 그래도 큰 두 눈을 동그랗게 치켜뜨고 “버리긴 누가 버렸다꼬?” 했고, 그는 그때까지도 엄마의 좌판 주변에 널려 있던 꽃들을 가리키며 “사람이 꽃을 받으면, 준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버리려도 그 사람 안 보는데 버리든가.” 하고 신경질까지 부렸다. 엄마는 “버린 거 아닌데.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라꼬 여기 둔건데.” 하며 그의 맥을 빠지게 한 뒤 “그라고, 꽃을 와 주는지 알아야 집에 가꼬 가든 버리든 하지, 암 말도 없이 꽃만 줘 놓고 어데서 큰 소린교?” 하며 뻘쭘히 서 있는 그를 몰아세웠다. 할 말을 잃고 한참을 서 있던 그가 던진 말은 “그쪽도 갱상도서 올라 왔심니꺼?”였다.

 

 엄마는 그보다 여덟 살이나 어렸지만 그를 오빠라고 부르긴 괜히 남사스러워 그냥 대충 ‘저기요’나 ‘그쪽’이라고 불렀고, 말도 그보다 먼저 은근슬쩍 놓았다. “꽃을 와 자꾸 주노? 암짝에도 씨잘데기 없는 거. 줄라 카면 뭐 필요한 거, 먹을 거라도 주던가.” 하는 엄마의 말에 그의 선물은 꽃에서 떡 한 봉지로 바뀌었다. 둘의 데이트 장소는 주로 시장 안에 있던 한 국밥집이었다. 점심시간 때에는 국밥이나 국수로 허기를 면하고, 저녁에는 술국 한 그릇에 잔술을 주고받았다. 엄마는 작은 체구지만 국밥 두 그릇을 거뜬히 비워 낼 수 있는 그의 식성이 맘에 들었고, 그는 밥을 꼭꼭 씹어 그 단맛을 즐기는 엄마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국밥집은 지금도 영업을 할 뿐만 아니라 방송에도 여러 차례 나온 맛집으로 유명해졌는데, 언젠가 내가 가서 먹어본 기억으로는 크게 감탄할 만한 맛은 아니었지만 삼삼하니 친할머니가 끓여줄 만한 맛이었다. 가게에 들어서며 “저희 엄마 아빠가 옛날에 연애할 때 여기 맨날 왔었데요.” 하자, 아흔도 훌쩍 넘어 보이던 주인 할머니는 내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그래? 학생 얼굴이 낯이 익는데.” 했다. 난 그날 처음 온 거라 말하긴 좀 미안해서 미소만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다른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던 할머니는 무릎을 탁 치면서 “학생 혹시 대물이 여식인가?” 하며 나에게 달려왔다. 난 같이 온 친구 앞이라 민망했지만, 도둑이 얼굴에 도둑이라 써 놓고 도둑이 아니라 할 수도 없고, 태연하게 웃으며 “어떻게 아셨어요?” 했다. 할머니는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히며 날 얼싸안고 “아이고 대물이 딸이구먼. 워메, 대물이를 똑 닮아 인물이 훤하니 내 한눈에 알아봤지.” 하고는 부엌으로 달려갔다. 내가 친구에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부엌에서 할아버지 한 분과 같이 나와선 다시 내 얼굴을 조목조목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대물이 딸이 맞네.” “빼닮았구먼. 빼닮았어.” 하며 내게 그의 근황을 물었고, 선지를 산더미 같이 쌓은 국밥 두 그릇을 나와 친구 앞에 놓아 주었다. 우리가 예의상 국밥을 꾸역꾸역 비우자, 할머니는 가게에 있던 먹을 거란 먹을 건 다 끌어모아 커다란 쟁반 한가득 또 음식을 차려주며 “역시 대물이 닮아 복시럽게 잘 먹는구먼.” 해 우리를 난처하게 했다. 나올 때는 하도 돈을 사양하는 바람에 계산대 옆에 몰래 천 원짜리 몇 장을 놓고 나와야 했다. 내가 이 일을 그에게 말하자 그는 “내 팬을 만났구만. 그때 그 시장 천지가 다 내 팬이었다.” 하며 웃는 듯 우는 듯 이해 못 할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엄마의 뱃속에 자리 잡은 건 이듬해 겨울이었다. 워낙 허약한 체질이라 원래 고르지 못했던 월경이 너무 오랫동안 오지 않자 동네 의원을 찾은 엄마가 들은 소식은 임신 5개월이었다. 그쯤 되면 배도 나오고 입덧도 있었을 법한데 미련한 엄마는 꿈에도 임신인 줄은 몰랐다고 한다. 스물두 살. 당시로 치면 어린 나이도 아니었지만, 겁이 많이 났을 것이다. 엄마의 가장 큰 걱정은 그동안 먹었던 각종 감기약, 몸살약, 보약이었다. 애한테 무슨 안 좋은 영향이라도 있을까 봐.

 

 가장 신났던 사람은 그였다. 그는 이미 엄마와 결혼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고 서른이 된 그의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해 아이가 있었다. 외삼촌은 고아에 집안도 좋지 못한 그가 탐탁지 않았지만, 엄마의 처지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결혼은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 서울서 식을 올리고 경주에 살던 그의 이모할머니 댁에서 하룻밤, 영천에 있던 엄마의 고모 댁에서 하룻밤을 자고 올라온 게 신혼여행 아닌 신혼여행이었다.

 

 “포항 가서 바다라도 보고 올걸.” 엄마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할 때면 난 “후회를 하려면 외국이나 하다못해 제주도라도 갈 걸 하고 후회를 하지 왜 하필 포항이야?” 하며 엄마의 소박함을 꾸짖었다. 엄마는 “뱅기 타고 가는 덴 애당초 실현 가능성도 없었고, 포항은 그나마 갈 수는 있었다 아이가.”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그때까지도 엄마는 바다를 한 번도 못 보았었을 거다.

 

 엄마와 엄마 뱃속의 나는 그가 마련한 방 한 칸짜리 신혼집으로 이사했다. 그는 아무 근거도 없이 배 속의 아이가 아들이라 확신했다. 어쩌면 그가 옛날 사람이라 아들을 선호했거나, 그냥 아들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작명 센스가 없는 것도 유전인지, 그는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 태명을 ‘대식’이라고 지었다. 많이 아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자기 이름에도 쓰인 큰 대(大)자에 알 식(識)자를 붙였다. 후에 그의 이름만큼이나 촌스러운 이 이름을 듣고 난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무척 감사히 여겼다.

 

 뱃속의 나는 될성부른 먹보였나 보다. 늦게 시작된 먹는 입덧 덕에 엄마는 전에 없던 강한 식성을 보였고, 그때마다 동분서주한 건 그였다. 그가 사다 준 비싼 생크림 케이크를 한번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 깨끗이 해치우는 엄마를 보며, 그는 ‘대식이 이놈이 씨름선수가 될 모양이제. 밥값을 부지런히 벌어야 쓰겠구먼.’ 하고 생각했다. 평소 고기를 많이 좋아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징그러운 음식은 잘 못 먹던 엄마는 임신 후 전에는 쳐다보기도 싫어하던 족발이 유독 당겼다. 하루 세끼를 족발로 먹은 날은 혹시나 아기의 발이 족발로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그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매일 저녁 족발과 과일을 사 들고 퇴근했고, 하루가 멀다고 마시던 술도 엄마가 못 마시게 됐다는 이유로 같이 끊는 배려심도 보였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0 4_2 2017 / 12 / 16 310 0 4931   
29 4_1 2017 / 12 / 15 296 0 4733   
28 3_8 2017 / 12 / 14 303 0 4125   
27 3_7 2017 / 12 / 12 304 0 4880   
26 3_6 2017 / 12 / 12 304 0 5332   
25 3_5 2016 / 10 / 31 454 0 5337   
24 3_4 2016 / 10 / 27 501 2 5300   
23 3_3 2016 / 10 / 25 448 2 5034   
22 3_2 2016 / 10 / 23 405 2 5434   
21 3_1 2016 / 10 / 22 416 3 5235   
20 2_11 2016 / 10 / 21 543 3 5917   
19 2_10 2016 / 10 / 20 536 3 5070   
18 2_9 2016 / 10 / 18 425 3 5279   
17 2_8 2016 / 10 / 17 464 3 5350   
16 2_7 2016 / 10 / 16 474 2 5606   
15 2_6 2016 / 10 / 15 519 3 5296   
14 2_5 2016 / 10 / 14 456 3 5013   
13 2_4 2016 / 10 / 13 514 3 5025   
12 2_3 2016 / 10 / 12 468 3 5428   
11 2_2 2016 / 10 / 11 463 4 5005   
10 2_1 2016 / 10 / 11 479 3 4875   
9 1_8 2016 / 10 / 11 425 4 2835   
8 1_7 2016 / 10 / 9 440 3 5315   
7 1_6 2016 / 10 / 9 522 3 4916   
6 1_5 2016 / 10 / 8 444 3 4947   
5 1_4 2016 / 10 / 7 448 3 5155   
4 1_3 2016 / 10 / 6 634 3 5022   
3 1_2 2016 / 10 / 6 532 3 5059   
2 1_1 2016 / 10 / 5 437 3 5008   
1 프롤로그 (2) 2016 / 10 / 5 727 4 2485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