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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인코그니토
작가 : BD번
작품등록일 : 2019.9.1

추기경 살해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귀족 청년 에드먼드. 무죄를 증명하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위한 그의 이야기.

 
2. 거래(2)
작성일 : 19-09-25 08:31     조회 : 71     추천 : 0     분량 : 5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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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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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에 대해선 기대하지 않았지만, 상상했던 그 이하라면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에드먼드는 살아보면서 처음으로 어휘력의 한계를 느끼며, 눈앞의 음식을 씹어 삼켰다.

  그라고 해서 평생 고급스러운 음식만 먹고 살았던 건 아니었다. 물론 비율을 따지자면 고급요리의 비중이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던 시절 친구들과 길거리의 아무 펍에나 들어가, 싸구려 맥주와 반쯤 식은 튀김으로 배를 채운 적도 많았다.

  의무복무 기간에 군에서 먹은, 특히 훈련 중에 먹었던 전투식량이 그가 살아오면서 먹어본 최악의 음식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것보다는 조금은 나은 정도였다. 단지 그때 먹었던 건 특별한 경우였지만, 지금 눈앞의 식사는 한동안 일상적으로 먹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아무래도 이 식당 자체는 갱단의 일과는 별개로 운영되는 탓인지, 가격도 그렇게 비싸지 않고 품질도 그것에 맞게 높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근본적인 문제로 이 지역에서 유통되는 식재의 상태가 문제였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그냥 먹을 수만 있는 정도였다. 인간이 먹고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정도. 아니, 어쩌면 종종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저 그 불운에 당첨되는 게 자신이 아니길 기도하는 수밖에.

 

 "매일 이런 밥만 먹으니까 다들 얼굴에 그늘져 있을 수밖에 없지."

 

  에드먼드는 정체 모를 고기 조림을 빵과 함께 씹어 삼키며 투덜거렸다. 고기에서 나는 묘한 누린내에 속에서 다시 올라오려는 걸, 향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저 쓴맛만 남은 커피로 다시 삼켰다.

  그 와중에 테이블 매너를 지켜가며 차근히 그릇을 비워가는 모습이 어딘가 우스운지, 라나는 연신 입가의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접시 바닥의 소스까지 빵조각으로 닦아 먹는 라나의 모습에, 에드먼드는 여러 의미로 비위 상해 보이는 표정이 절로 지어졌다.

 

 "이래 봬도 여기 밥이 그래도 나은 편이야. 보통의 집에선 맛을 낼 재료를 넣는 것도, 조리할 시간도 모두 사치니까. 이런 데서 식사를 하는 것도 그나마 주머니 사정이 나은 사람 한정이라고? 혹시나 궁금하면 나중에 그 보통의 식사에 초대라도 해줄까?"

 "이런, 이것보다 더한 심연을 들여다보고 싶진 않아. 정중하게 사양하지."

 

  에드먼드는 진지하게 교도소에서의 식사와 이곳의 식사 중 어느 것이 나았을까 비교하고 싶었지만, 그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간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기에 생각을 그만두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생각은 더욱 건설적인 생각, 이를테면 좀처럼 진행되지 않는 한 대화의 주제가 필요했다.

 

 "그래서 대체 언제쯤이면 우리의 대화가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걸까? 카라바스 후작에 대한 정보의 대가로 내가 해줬으면 하는 일. 그게 대체 뭐지?"

 "그냥 간단한 거야. 당신이 암호로 된 문서의 해독을 해줬으면 해."

 

  라나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말을 꺼냈다. 이야기를 꺼내고 곧바로 다시 음식을 입에 넣는 모습을, 에드먼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단 표정으로 쏘아보았다.

 

 "혹시 납치할 사람을 잘못 고른 거 아닌가? 암호에 능통한 언어학자나 수학자를 찾는 거라면 내가 소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귀족 장남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지? 그리고 당신은 내가 있었던 제 6 전략 사령부에서 정보장교로 복무했고. 그 부대가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지 피차 잘 아는 사이끼리 불필요한 말싸움이 필요할까?"

 "생각보다 나에 대한 사전 조사를 충실히 했나 보네. 훌륭해."

 

  에드먼드는 진심이라곤 단 1퍼센트도 담기지 않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라나의 말은 정확했다. 비록 사관학교 시절을 제외하면 2년밖에 되지 않던 군 생활이었지만, 귀족이란 지위 특성상 꽤 높은 보안등급의 기밀문서를 취급했었다.

  물론 주된 업무는 정보의 해석이었지만, 그 안에 암호의 해독이 포함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암호의 해독이 가능하다고 묻는다면 가능하다고 답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암호 해독의 전문가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굳이 나여야만 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지적이야 에디."

 

  라나는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라는 듯, 손에 든 포크로 에드먼드를 가리켰다. 에드먼드는 불쾌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키는 포크를 조용히 손으로 밀어 치워버렸다.

 

 "하지만 그 문서를 보면 바로 납득이 갈 거야. 우린 단순히 암호를 해석할 수 있는 사람만 필요 한 게 아니야. 내 주변에 암호 해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그들이 모두 그 문서의 해독에 손을 든 이유는 동일해. 그 문서를 해독하려면 귀족이 꼭 필요하단 사실을 알았거든. "

 "중세 왕실 언어인가."

 "제법 예리하네! 확실치는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높은가 보더라고."

 

  라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지만, 에드먼드는 신경 쓰이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라나의 말은 그를 더욱더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장담하는데 문서를 보면 당신도 꽤 흥미가 생길 거야."

 "그것참 기대가 되는걸."

 

  겉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에드먼드의 머릿속에선 많은 생각이 급류처럼 흘러갔다. 지금 당장 신경 쓰이는 부분은 문서의 내용 자체보다 문서의 출처였다.

  중세의 왕족과 귀족은 평민들과 차이를 만들기 위해, 자신들만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그 관습은 현대에 와선 사라지긴 했지만, 가문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의 교양으로 배우긴 했었다. 사실상 실용성이라곤 한 톨의 밀알만큼도 없는 교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그 중세 왕실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귀족 중에서도 많지 않았다. 즉, 그런 언어를 기반으로 한 암호라면 그 출처나 입수 경로 등 여러 가지가 신경 쓰였다.

 

 "그래서 그 암호로 된 문서를 제공한 게 카라바스 후작인가?"

 "천만에! 우리가 그의 원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설마 내 특기가 사람 머리에 총알 박아넣는 것 말곤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에드먼드는 조용히 라나의 말에 긍정했다. 라나가 속했던 부대는 그녀를 단순한 전투 병기로만 만들었던 게 아니다. 지난 대륙전쟁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특수작전부대의 주된 임무는 중엔 적지에 직접 침투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 방면의 스패셜리스트인 특징을 고려하면, 그녀가 가진 정보수집 능력은 높이 평가할만했다. 그녀만이 아니라 자유혁명군 안에서 라나의 훈련을 받은 자라면, 분명 평균 이상의 스파이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거라 짐작 가능했다.

  오히려 어느 정도의 규모로 정부와 귀족 사회에 스파이들을 숨겨놓은 건지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저택의 고용인들, 정부 관공서의 청소부부터 시작하여 사무원 등등 의심을 할 사람은 너무나 많았다.

 

 "당신이 직접 수집한 건가? 아니면 어딘가에 스파이라도 심어놓았나?"

 "그 문서는 우리 쪽 정보원을 통해서 얻은 거야. 문제는 그 정보원이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만."

 

  동료의 죽음을 얘기하는 라나의 표정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랫동안 전장에서 뛰었던 그녀였지만, 동료의 죽음이란 결코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우리 정보원이 시신으로 발견된 게 추기경 살해가 있기 전 일주일 전이야. 두 사건의 시기가 비슷한 건 단순히 우연인지 아닌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내 직감으론 그게 우연이라고 생각하기 힘들어."

 "그래서 정보원이 발각되어 제거당한 게 추기경의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카라바스 후작이 추기경 살해의 진범이라면, 그가 우리를 통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직접 처리하고자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됐을 수도 있고."

 "결국 솔직하게 말하면 동료의 복수를 위한 단서를 위해, 그 문서의 해독이 필요하단 거네. 참으로 복수귀 다운 생각인걸."

 

  딸그락하고 조금 신경질적으로 접시 위로 포크를 내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식사를 마친 베네딕트가 서슬이 퍼런 눈으로 에드먼드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에드먼드의 눈길은 그의 시선보단, 새벽에 보았던 검은 안개가 스며 나오고 있는 손으로 향했다.

 

 "베니."

 

  라나가 짧게 다그치자 베네딕트의 손에서 나오던 검은 안개가 사라졌다. 아직 표정에선 못마땅한 기색이 남아있었지만, 노려보던 시선은 다시 무관심한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뭐 당신 말대로 내가 복수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단 건 인정해. 하지만 내가 그 문서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 때문만이 아니야. 사실 당신도 아까부터 궁금하지 않았어? 그 문서가 어디서 나온 건지를."

 "솔직히 여러모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잖아. 귀족 중에서도 중세 왕실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심지어 그것을 기반으로 암호를 작성한다면, 어지간히 전통 있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고선 힘들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정말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지. 베크햄 공작과 래컴 주교. 두 사람이 주고받던 문서니까."

 

  또 한 번 딸그락하고 접시와 포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번은 에드먼드 쪽에서 난 소리였다. 라나의 입에서 나온 두 이름을 들은 에드먼드는 포크를 떨어트렸단 사실도 자각하지 못하고, 얼어붙은 자세만큼이나 굳은 얼굴로 라나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무슨..."

 "어때? 당신도 문서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해지지 않아?"

 

  당황하는 기색을 전혀 감추지 못하는 에드먼드의 반응에, 라나는 건배하듯 커피잔을 들어 올리며 홀짝였다.

  에드먼드의 떨리는 동공만큼 그의 뇌세포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베크햄 공작과 래컴 주교. 자신의 머릿속 데이터베이스에 그와 같은 이름의 다른 사람이 있는지, 무의미한 검색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떠올려봤자 그 이름과 그 직위의 다른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브리카 왕국의 재상이자 귀족 의회의 의장인 베크햄 공작. 그리고 교회의회의 의장이며 추기경 사후에 실질적으로 현 교회의 일인자가 된 래컴 주교. 브리카 왕국 양대 권력의 중심인물이 서로 암호로 된 문서를 주고받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그 파급이 얼마나 될까? 안 그래도 골칫거리를 잔뜩 안고 있는 에드먼드는, 그런 상상까지 하기엔 오전부터 그의 뇌가 너무 지쳐있었다.

 

 "잘도 그런 정보를 안 터트리고 쥐고만 있었네..."

 "확실한 증거를 잡을 때까진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게 나아. 현 단계에서 그 사실을 터트려봤자 공작과 주교 쪽에서 거짓 선전으로 몰아가면 끝일 테고. 물론 전혀 타격을 받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그 내용을 알고 나서 행동하는 쪽이 더욱 확실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하아... 제길. 결국 나더러 정부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지도 모를 정보를 밝혀내란 거나 마찬가지잖아."

 

  에드먼드에겐 재판받던 지난 3개월보다 오늘 하루 반나절이 더 골치 아픈 것 같았다. 재판은 비록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진 못했어도 차근히 준비하며 풀어나갔지만, 오늘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의 연속이었다.

  수명을 깎아 먹을 피로에 그의 안에 무언가가 무너져내릴 것만 같았다. 지금 그의 속을 꺼내 교회의 독실한 신자에게 보여준다면, 신의 벌을 받은 거라고 비웃을 것 같았다.

 

 "뭘 새삼스럽게 그래? 우리의 목적이 뭔지 잊었어? 현재의 귀족과 교회 중심의 체제를 끝내고, 시민에 의한 정부를 세우는 것이 우리 목표야."

 "나 참, 나로선 차라리 그 암호의 내용이 시답잖은 것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군."

 

  축 처진 어깨로 한탄하는 그의 두 눈엔 묘한 독기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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