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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뱀파이어 로망스
작가 : 꽃님발
작품등록일 : 2019.9.3

내가 왔어. 너 찾으러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네가 발이 묶여 나한테 못 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 발목을 잘라내서라도 널 다시 내 옆에 둘 거야.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겨 버린 뱀파이어 희선. 마지막 순간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를 찾으러 다시 한국을 찾아온다. 뱀파이어계 모든 사건 사고에 관여하는 그가 제발로 찾아오기를 바라며 인간 흡혈을 저지르는데….

영원을 살아가는 저주받은 존재, 뱀파이어와 인간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들 간의 엉켜버린 운명과 사랑이야기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집니다.

 
21화. 너는 차에 치이지 않았어. 내가 뛰어가서 그걸 막았으니까
작성일 : 19-09-25 00:01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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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지의 눈은 교실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뒷문에 고정되어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그에 대한 생각밖에 안했다. 사고 후유증이라고?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해대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사고가 날 뻔했던 거고 그걸 막아준건 동화였다. 도대체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논리적인 변명이 필요했던 그녀는 동화에게 아주 산더미 만큼의 볼일이 있었다.

 

 " 이동화. 나랑 이야기 좀 해. "

 

 그는 그런 예지를 힐끗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는다. 그 웃음에 가슴 언저리부터 무지막지한 화가 급하게 끓어오른다. 애태우고 있는건 항상 자신뿐이였다. 도대체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굴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건지.

 

 예지가 먼저 일어나서 교실을 빠져나갔다.

 

 " 그만 가. "

 

 학교 뒷 편으로 계속 걸어가던 예지가 동화의 말에 걸음을 우뚝 멈춰선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동화가 예상대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표정ㅡ속에 나는 니가 무슨 말을 할지 다 알고 있다, 하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하지만 일일히 짜증을 낼만큼 한가로운 건 아닐 뿐더러 괜히 동요했다는 걸 그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킨다. 오래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를 상대해 본 지금으로써는 감정의 동요가 정말 쓸데없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 내가 물어보는 것에 제대로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

 " 난 항상 솔직해. "

 " 거짓말 하지마, 넌 솔직하지 않아. “

 

 예지는 간신히 참을 인을 계속 곱씹으며 심호흡을 한다. 여기서 이성을 잃고 소리라도 지르거나 길길 날뛰는 것은 그를 여기까지 불러낸 이유를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 조금이라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길 원하는데, 그는 그게 안되는 것 같았다.

 

 " 아니, 난 적어도 너에게만큼은 솔직해. "

 

 동화의 마지막 말에 예지가 입을 딱 다문다. 그의 눈이 너무 진실 되었기 때문이다.

 

 " 그래 그렇다고 치자. "

 " 치는 게 아니라 그런거지. "

 " 그래!! 넌 항상 솔직해, 됐지? 제발 내 말 좀 진지하게 들어! "

 

 무거운 공기의 입자를 관통하는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의 눈 끝에 닿아있다. 한동안 이어지던 작은 눈싸움 끝에, 예지가 고개를 돌리며 동화의 시선을 외면한다. 평정심을 잃어서는 안되었다. 흥분하면 지는 거다. 그에 대한 자신의 궁금증을 풀기위해서는 그러는 수밖에 없다.

 

 학교 안에 커다랗게 울리는 소리로 보아 이제 막 일교시 종이 친 것 이 분명했다. 항상 성실하게만 살아온 자신에게 한 번의 일탈쯤은 상관 없을거라 믿는다. 사실 그 모든 것 을 다 제껴두고 일단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다.

 

 " 난 진지하니까, 미쳤다고만 생각하지 말아줬음 좋겠어. "

 " 넌 미치지 않았어. "

 " 그래, 고마워. 너, 어제 내가 교통사고 날 뻔 한날. "

 

 잠시 말을 마치고 동화의 눈치를 살핀다. 그의 눈치를 보며 이야기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다. 급식실에서 물었을 때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진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정확히 내가 횡단보도로 달렸을 때 부터 어떻게 된건지 설명해줘. "

 

 예지는 차분하고 냉철하게 생각하기 위해서 지긋하게 동화를 바라보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그를 담아내려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자제하며 쳐다본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면 조금이라도 티가나길 바라며, 만약 진실을 말한다면 조금이라도 자세히 듣기위해.

 

 " 좋아,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 "

 " …… "

 " 니 말대로 난 정확히 그 때 그 상황만 이야기 해 줄꺼야, 넌 듣기만해 "

 " 그런 게 어딨어! "

 " 약속하지 않으면, 난 말하지 않을 꺼야. "

 

 딱 부러지게 말하는 동화에 태도에 예지가 입술을 꾹 깨문다. 순간적인 갈등을 빚는다. 과연 이야기를 들어야 할지, 하지만 더 이상 묻지 못한다면 궁금증만 더 커질 수도 있다.

 

 " 그럼 …정말 거짓말하지마. "

 " 약속할게. "

 " …좋아. "

 

 하지만 그를 불러낸 이유가 사건이 일어난 경위였기 때문에 약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인다. 허나 그 약속을 똑바로 지킬 자신은 없다. 내가 여기 까지 널 불러낸 이유가 뭔데.

 

 " 너는 차에 치이지 않았어. 내가 뛰어가서 그걸 막았으니까. "

 " 말이 다르잖…!! "

 " 듣기로만 했잖아. 그리고 널 안은채 너희 집으로 뛰어가서 눕혔지. "

 

 예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우리집은 또 어떻게 알았는데?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수가 없다. 일단은 묻지 않기로 했으니까. 꼭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그의 입은 열리는 족족 바로 말을 쏟아낸다. 하지만 말하는 내용은 차라리 거짓말이라고 믿는 게 나을 정도로 어이없는 말이다. 그 당시의 상황이 생생히 기억되는 예지의 머릿속에서는 더더군다나.

 

 그때 동화는 큰 사거리 반대편에 있었고 그는 자신이 치이기 직전, 눈감기 직전에도 그곳에 있었다. 그랬다는 건 겨우 일초도 안되는 사이에 뛰어왔다는 것인데, 사람인 이상 그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트럭을 한손으로 막는다니. 분명 트럭 본네트 앞에 난 손자국을 봤지만 사실 확인을 하니 더 믿기지가 않는다. 혼란스러워 하는 게 뻔히 들어나 있는 자신을 보고 여적 웃고 있는 동화를 보자 화가 마구 솟구친다. 거짓말 같다. 다 믿을 수가 없어 어느 게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이 불가능하다.

 

 " 거짓말 하지마. "

 " 안타깝게도 사실이야. "

 

 동화가 또 웃는다. 또 웃어, 또 웃어!!! 이제 화는 용암이 끓어오르듯 부글부글 제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흐릿한 영상이 머릿속을 헤집고 반복 되던 의문의 기억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 정신없이 관자놀이를 공격한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해서 비틀한다. 한손을 이마 위에 얹는다. 곧 중심을 잡고 그를 노려보다.

 

 " 너 지금 내가 짜증으로 죽게 만드려는 거야? "

 " 전혀. "

 " 제발 진지해질 수….. "

 " 너 이거 뭐야. "

 

 동화가 신경질적으로 이마 위에 얹혀져 있던 예지의 손을 잡아 채서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간다. 어느새 떠있던 실실대는 웃음끼를 싹 지운 그가 예지의 손등에 난 상처를 바라본다. 굳어진 얼굴로 목소리까지 화악 가라앉히고 물어오는 그에 의해 당황해도 심하게 당황한 예지가 손을 빼내려 한다. 아니 사실 정말 오랜간만에 닿는 그의 접촉에 온몸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진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 닿아도 시릴듯이 차가운 그 온기만을 간직하고 있는 그의 손이 너무 냉해서.

 

 " 이거, 치료도 안한거야? “

 

 예지의 손등엔 언제 다쳤는지 모를 제법 큰 상처가 헤져 보기 좋게 딱지가 앉아 있었다. 오래 치료따위도 하지 않은 건지 그대로 곪아버려서 조금만 건드려도 피가 베어 나올 것 같은 상처. 동화의 손아귀에서 자신의 손을 뻬던게 잘 안되자 예지는 고개를 홰 돌려버린다. 그게 너랑 무슨상관인데.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으로 봐선 절대 그런 말을 하면 안될 것 같았다.

 

 " 치료… 했어…. "

 

 거짓말을 하는게 눈에 뻔하게 들어나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듯 말하는 예지를 본다. 동화는 뭔가 굉장히 속상한 표정으로 한숨을 쉰다. 동화의 한숨에 묻어나온 그의 향기가 콧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무섭게 내달리던 화가 순간 뚝 하고 멈춰버리는 것을 느낀다.

 

 동화는 지금 자신을… 걱정하고 있는거다. 지금 날 걱정해? 나를… 걱정하는거… 야? 이 손등에 난 코딱지 만한 상처가 그의 표정을 저렇게나 동요 시킨다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좋았다. 아까전에, 아니 방금전까지만해도 짜증났던건 물론이고 내달리던 화마저 다 사라져 증발한다.

 

 " 치료 했는데 이래? 이렇게 곪아? 너 자꾸 거짓말 할래? "

 " … 치료했다구. "

 " 한번만 더 내 눈에 상처 띄기만해봐. "

 

 여전히 예지의 손을 잡은 그대로 주머니를 뒤지던 동화가 데일밴드를 하나 꺼내든다. 동화의 주머니에서 생각지도 못한 기다란 데일벤드가 나오자 왠지 그 모습이 부조화스러워서 결국 입꼬리를 올린다.

 

 왜 그는 항상 이렇게 자신을 챙겨주는 건지 몰랐지만 그 모습이 좋았다. 그의 얼굴을 점령했던 장난끼가 싸악 사라진 모습은 사뭇 진지했는데 그 진지함이 데일벤드를 붙이는 그 모습에 들어있다는 사실이 웃기다. 항상 복잡하게 만들기만 했지 정작 동화 그 자신은 한 번도 이렇게 진지한 적 없었는데. 예지가 자신의 손을 잡아 붙여주는 그를 빤히 바라본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어째 또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들었다는 생각이다. 그게 슬프게도 사실이지만.

 

 " 오늘은 이만하자, 수업 들어야지. "

 

 데일벤드를 붙이고 웃어 보인 동화가 쥐죽은 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는 학교를 가리킨다. 물어 보고 싶다는 갈증은 아직도 태산같지만 입을 열 수가 없어서 고개를 숙인다. 도대체나 언제쯤이면 그와 제대로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인 느낌 덕에 예지는 동화의 손에 이끌려 교실에 떼기 힘든 발걸음을 들여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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