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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털며 돌아다니다 보니 긴장이 풀렸는지 눈꺼풀이 내려온다. 작은 선배도 눈치를 챘는지 어깨를 톡톡 친다. 정리는 본인이 할 테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자라고 한다. 갑작스럽게 오게 된 곳에 잘 곳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하지만 곧 괜한 걱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안방 구석에 두 명은 거뜬히 잘 수 있는 침대 매트릭스가 자신의 자리니 같이 자면 된단다. 벽으로 막히지 않은 두면에는 커튼도 달려있다. 별이 예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게 예민하다면 커튼으로 해결이 가능하냐고 물어볼 뻔했지만 넘어갔다. 따듯한 회색 이불이 부드러워서 얼른 자고 싶었던 탓이다. 편안하게 누워 이불을 안듯이 몸을 웅크렸다. 무언가 어깨를 토닥이다가 등을 맞댄다. 중간중간 여러 소리가 들린다. 점점 조용해진다.
또 추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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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 아래 온 세상이 하얗다. 함박눈이 지도 위에 나린다. 하얀 생명이 태어나면서 동시에 사라진다. 변한 건 없지만 시간은 흘렀다. 지나간 자리가 차갑고도 안타깝다. 하나하나 발자국을 남긴다. 목적이나 방향은 없다. 그러나 어디로든 가야만 한다. 이제는 집을 찾고 싶다. 진짜 우리 집으로 가야 한다. 겹겹이 껴입은 옷은 움직임만 둔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 온기는 남아있지 않다. 갑자기 깨달은 매사운 냉기에 소름이 돋는다. 안 된다. 이대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달려 나가야 한다.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소리를 질러야 한다. 울어야 한다. 손으로 두 눈을 잡았다.
파란 물감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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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로 뻗은 구메구메 덕분에 벽과 마주 본 구석에서 눈을 떴다. 벽에 비치는 햇살이 은은한 아침이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하늘은 노르스름한 빛깔이 사라져 가며 떠오른다.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무력한 기분은 아니다.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세수를 하고 바로 청소를 시작해도 된다. 다 보지 못한 집안을 둘러볼 필요도 있다. 다시 눈을 감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잠은 오지 않았다. 우선 옆에서 자고 있는 친구를 깨우지 않고 일어나야겠다. 소리가 나지 않게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이불을 걷어내는 건 통과지만 이제부터가 문제다. 몸을 서서히 들어 올려 보지만 쉽지 않다. 관절 마디마디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러다 덜컹 움직여버리고 놀라 그대로 멈춘다. 다행히 구메구메는 깨지 않는다.
“부엌은 깨끗하게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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