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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혼란한 세상, 이상한 사람
작가 : 토토
작품등록일 : 2016.9.28

 
사방이 꽉 막혔어
작성일 : 16-09-28 17:09     조회 : 465     추천 : 0     분량 : 8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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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이 꽉 막혔어

 

  TV 뉴스에서 앵커가 긴박한 어투로 속보를 전했다.

 

  뉴스 속보입니다. 훈네 섬에서 발생한 몽큐 바이러스 환자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되었습니다. 서울에 사는 56세 김 모 씨는 지난 달 훈네 섬에 해외여행 갔다 왔다고 하는데요. 3주가 지난 후에 머리털이 빠지면서 온몸에 가려운 증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김 모 씨는 피부과 동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보았지만, 탈모는 유전적 영향이 있으니 별 문제는 없으나, 가려움증은 발진이 나타나지 않아 신경계 이상이라는 소견을 들었습니다. 이에 김 모 씨는 종합병원에 가서 혈액 검사 등의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체내에서 몽큐 바이러스가 발견되어, 국내 1호 몽큐 바이러스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김모씨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온몸을 긁는 등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가려움과 함께 웃음을 동반한 이상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뉴스 보도 이후 인터넷과 SNS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저거 전염병 맞아? 열도 없고 오한도 없고 긁어대기만 하니..

  -인간이 원숭이 되는 거 한 순간이네, 참 나.

  -저 사람한테 미안한데... 진짜 엄청나게 웃겼어. 점심 때 밥 먹다가 뿜어서 식탁이 초토화됐거든. 동료들한테 맞아 죽을 뻔 했지.

  -정신병을 바이러스라고 오진한 거 같은데?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믿을 만한 게 없어.

  -저 병이 정말 궁금하다. 머리 빠지는 거 말고 저 병에 한 번 걸려보고 싶다. 웃겨죽는 병. 사는 것도 꿀꿀하고....

  -이 정도면 망조야 망조. 핵무기 터지기 전에 인류 스스로 다 멸망할지 몰라.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거야.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

  -사람과 원숭이의 유전자가 비슷하다고 하는데 그럴 수도 있다고 봐, 나는.

  -난 요즘 몸이 근질근질한데 걱정돼 죽겠어. 오늘도 버스 안에서 겨드랑이를 긁었더니 사람들이 원숭이 쳐다보듯이 나를 보며 뒤로 물러서는 거야. 헐, 병원 가야 하나?

  -아버지가 대머리라서 근래 머리 빠지는 중인데, 오 제발 몽큐가 아니기를...

  보건 당국은 아직 병에 의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지나친 불안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다만 전염 경로가 확실하진 않지만 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누군가와 악수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버스와 전철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며 직장에서는 두터운 갑옷을 입고 생활하라는 얘기와 비슷했다. 국내 환자 발생 이후 체감 적 전염속도는 아주 빠르게 번져나갔다. 메르스가 한국을 덮쳤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관심의 덩어리들이 도처에서 산처럼 솟아났다. 막상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인간 이하의 하층 생물로 저하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사람이 원숭이 화 되어간다는 것은 죽음보다 더 가혹한 것으로 다가왔다. 그럴 바엔 차라리 다른 질병으로 죽는 게 낫다는 말도 들린다. 장삼이 중얼거렸다.

  내 살다보니 별 희한한 병을 다 보네. 하긴.. 살다 살다 그림자를 잃을 줄이야....

  며칠이 지났다. 쾌청한 날이 지속되었다. 장삼은 그림자 없는 제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냥 그러했던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길바닥에 그림자 없는 사람이 걸어간다는 걸 눈치 채는 사람이 아직은 없어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오전에 어떤 젊은 여자가 애를 업고 와서 복지 담당 직원에게 기초 생활수급자로 지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남편이 일하다 다쳤는데 산재보험 혜택도 못 받고 생활이 곤란하다는 거였다. 복지 담당 직원은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이러이러한 요건에 해당되지 않아 지정이 어렵다고 했다. 여자는 계속 사정을 하소연을 했지만 통하지 않자 떼를 쓰기 시작했다.

  다쳐서 일을 못하는데 어떻게 먹고 살라구요.

  그 정도 상해로는 인정이 안 돼요. 남편 분은 충분히 노동력이 있는 분이에요. 아주머니도 일할 능력이 있으시고.

  그럼 이 아기는 누가 돌보나요?

  그런 개인적인 사정을 일일이 다 들어드릴 수가 없어요.

  당신들이 우리 집 사정을 알기나 해! 쌀이 얼마나 있고 분유와 기저귀가 얼마나 남았는지, 월세 금이 얼마나 밀렸는지. 번개탄 피워놓고 죽는 게 남의 일이 아니야.

  장삼은 얼굴이 훅 달아올랐다. 집안 사정이야 나름 있겠지만 저렇게 대놓고 신세타령하는 사람도 낯이 보통 두껍지 않으면 엄두를 못 낼 일이다. 복지는 사각 지대가 여전히 많고 정말 어려운 가정들이 벙어리 냉가슴 앓으며 시련의 날들을 견디어 간다. 여자는 눈물을 쏟아내며 악을 지르고는 나갔다. 주민 센터는 다시 평온한 공기가 흘렀다.

  퇴근 시간이 됐다. 오늘은 영주가 교육원 강의가 없는 요일이라 집에 있을 게 뻔하다. 장삼은 영주와 집안에 함께 있으면 히말라야 고산에 오른 듯 호흡이 곤란함을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모든 걸 환기시키려는 듯 창가에 가서 창문을 열어젖히기도 했다.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다..’

  이럴 때는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는 공무원 생활이 불편했다. 할 일이 쌓여 밤늦도록 야근하는 셀러리맨들이 문득 부러웠다. 너무 바쁘면 괴로워할 틈조차도 없는 것 아닐까. 장삼은 서점에 가보기로 했다. 대형서점에 가서 구경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았다. 퇴근 시간 전철은 만원이다. 노선 갈아타는 역에 이르자 개미 떼 같은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꾹꾹 누르며 밀려들어왔다. 미처 사람을 다 못 태우고 전철 문이 닫혔다. 사방에서 옥죄어와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이곳은 몽큐 바이러스의 해방구나 다름이 없다. 타이트한 접촉을 할 수밖에 없는 공간. 전철이 흔들릴 때마다 압박이 가해졌다. 장삼 앞에 젊은 아가씨가 서 있었다. 아가씨는 핸드백을 뒤로 돌려 밀착된 틈을 확보했다. 장삼도 일밀리라도 떨어지려고 숨 호흡마저 조심하며 내쉬었다. 전철이 달리다가 속도를 줄이자 사람들이 일시에 확 쏠렸다. 장삼은 쏠린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장삼의 벨트 아래가 여자의 엉덩이가 밀착되었다. 굴곡진 협곡의 선이 뚜렷이 느껴졌다. 장삼은 몸을 뒤틀려고 했으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르면서 장삼의 몸 일부에 변화가 생겼다. 목덜미가 화끈거렸다. 아가씨가 눈길을 휙 돌리더니 장삼을 쏘아 보았다.

  미, 미안해요. 사람들이 많아서...

  마침 출입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내렸다. 공간을 조금 확보할 수 있었다. 아가씨가 불쾌한 눈으로 장삼을 계속 노려보았다. 장삼은 황급히 몸을 틀어 다른 방향으로 돌려세웠다. 장삼은 이 여자가 혹시 성추행 범으로 신고하는 건 아닌지 몹시 신경이 쓰였다. 다행히 아가씨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의외로 선한 여자였다. 몇 개 역이 지나고 객차 안은 조금 간격이 확보되었다. 지하철은 출입문의 기둥이 장삼을 지켜주지 못 한다. 버스와 달리 지하철 문은 역에 따라 왼쪽 오른쪽 문이 번갈아 열리기 때문에, 오히려 출입문 부근이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는 길목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장삼은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선호했으나, 지하철이 더 빠르므로 버스만 고수할 수도 없었다. 장삼은 지하철을 갈아타고 광화문 인근 역에서 내렸다. 역 밖으로 나오니 광화문 일대가 어수선했다. 경찰이 태평로 쪽 방향으로 차량을 통제하기 시작했고, 경찰차들이 열을 지어 다가섰다. 넓은 도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깃발들이 나부끼고 확성기를 통해 선창을 하자 사람들이 제창을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군중들이 모인 건지 어느 단체 사람들인지 장삼은 궁금했지만, 별개의 일이라 여기며 지하 대형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장삼은 코너를 돌며 책들을 구경했다. 장삼에게 흥미가 가는 책은 없었다. 자기 개발 서적을 본적이 없으며 문학에 별 취향이 없으며 여행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가는 책이 없으니 그냥 눈에 띠는 책을 골라 읽다가 다시 꽂아두고 다른 코너에 가서 계속 책 구경을 하였다. 근 한 시간이 되어가자 장삼은 따분했다. 서점을 나왔다. 다시 사거리 밖으로 나오자 구호소리가 함성이 되어 일대를 울리고 있었다. 사거리 한쪽에 경찰차들이 견고하게 일렬로 차벽을 쳤다. 과격 시위는 엄단 하겠다는 경고방송이 흘러나왔다. 장삼은 현장을 보고 싶어 길을 건너 시위대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많은 사람들이 집결해서 엄청난 인파로 불어나 있었다. 시위대 맨 앞 사람들이 차벽을 철거하라며 사다리로 경찰차 유리창을 깼다. 전경들은 단단히 모여 방패로 막고 있었다. 물대포를 발사하자 시위대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사람들은 물을 고스란히 맞으며 저항을 했다. 경찰의 경고 방송이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시위대들은 각목을 든 사람과 깨진 벽돌을 힘껏 던지는 사람들이 한데 섞여 있었다. 물대포가 계속 발사되었다. 그런데 도로 가장자리에 있던 시위대 한명의 잠바 속에서 뭔가가 툭 떨어졌다. 장삼이 다가가보니 리모컨 자동차 키였다. 장삼은 리모컨 키를 주워 시위대 속으로 들어가 줄무늬 잠바 입은 사람을 찾았다. 저만치에 그가 보이자 장삼은 그에게로 뛰어갔다.

  저기요, 이거 떨어졌어요.

  아, 고마워요. 큰 일 날 뻔 했네.

  그 사람은 웃음을 내보였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각목 하나를 주워 장삼에게 건네주었다.

  오늘은 물러서면 안 돼요. 우리가 약하면 약할수록 저 벽은 더욱 높아질 거예요. 끝까지 갑시다!

  장삼은 각목을 어설프게 쥐고 내려 보았다. 시위대속에 있으니 저 멀리 겹겹의 경찰 차벽이 만리장성이 되어 눈에 들어왔다. 장삼은 여기서 빠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시위대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아가자 장삼도 보조를 맞추며 몇 걸음 걸었다. 그때 경찰의 확성기 방송이 크게 울렸다.

  시위대를 전격 진압하라!!

  둑이 터지듯 방패를 든 전경들이 우루루 달려 나왔다. 몇 중대가 모였는지 모르겠으나 셀 수도 없이 많은 병력이었다. 시위대들이 뒤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삼도 그들을 따라 뛰어갔다. 많은 시위대들이 서로 몸을 부딪치며 달아났다. 장삼은 앞사람 발에 제 발이 걸려 고꾸라지고 말았다. 앞 사람은 얼른 일어나 빨리 가라고 외쳤다. 헬멧과 방패를 든 새까만 전경들이 도적 떼처럼 일제히 밀고 올라왔다. 장삼은 일어나 달렸지만 다리가 후들거려서 속력을 내기가 힘들었다. 벌써 선두에 선 전경들이 여기저기서 시위대를 잡아들이고 있었다. 어디선가 군화발 하나가 장삼의 허리를 세게 찼다. 장삼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도로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서 너 명의 전경이 달려들어 발길질을 퍼부었다.

  나, 난 아니에요! 시위대가 아니라고! 아니라니까!!

  전경들은 아무 대꾸도 없이 발로 내리눌렀다. 장삼은 온몸에 통증을 느끼며 아스팔트 위에 애벌레마냥 바짝 옴츠렸다. 그리고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전경 두 명이 위에서 누르고 있어 꼼짝할 수가 없었다. 위력과 무력보다 더한 압박감이 전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장삼은 이대로 싱크 홀이 일어나 모든 게 다 꺼져 내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삼은 눈을 떴다. 그때 저만치 버스 정류장 벽면에 걸린 광고용 포스터 하나가 장삼의 눈에 들어왔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 중절모를 쓴 남자가 장미 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그림. 저 멀리 차벽을 치고 있는 경찰차의 대열과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장삼에겐 선명한 이미지로 대비되면서 머리에 깊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전경 두 명이 장삼을 일으켜 세우더니 어디로 끌고 갔다. 경찰차 앞에는 이미 시위대들이 잡혀와 차례로 차안에 떠밀려 들어갔다. 주변에 전경들이 에워싸고 있어 도저히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장삼도 차안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여러 명의 전경들이 차안 통로에 서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신나게 두들겨 팼다. 시위대는 무방비로 맞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폐쇄된 곳에서의 공포감. 장삼은 결백을 증명하고 싶어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제 말을 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먹이 양쪽에서 날아들었다. 별이 몇 개 번쩍하더니 그는 짐짝처럼 좌석에 내팽겨 쳐졌다. 장삼은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여기서는 어떠한 말이나 변명도 통하지 않음을 알았다. 시위대들이 계속 꾸역꾸역 차안으로 들어왔다. 그들도 예외 없이 탑승 신고식을 받으며 좌석을 배정 받았다. 검게 선팅이 된 차창 밖에는 철망이 쳐져 있어 가슴이 답답했다. 밀폐된 양계장 우리안의 닭들 신세가 이런 거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 안은 흡사 시장판 풍경이었다. 붙들려온 시위대들이 경찰서 안에 가득했고 차례대로 조사를 받았다. 아까 리모콘 키를 분실했던 그 남자가 저 구석배기에 서있었다. 그가 장삼을 보자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아는 체 했다. 장삼은 눈을 질끈 감았다.

  ‘다, 당신 때문이라고....’

  장삼의 차례가 되자 장삼은 형사 앞에 마주 앉았다.

  신분증 좀 제시해주시죠.

  장삼은 지갑에서 주민증을 꺼내 건넸다. 형사가 컴퓨터 자판을 치며 물었다.

  노조 소속입니까? 시민단체입니까?

  예? 저는 그냥 단지 구경하다가..

  단순 가담자란 말씀이시죠. 저희가 취재한 영상이 있으니 다 밝혀집니다.

  형사는 사무적으로 넘겨짚었다. 장삼이 말했다.

  그게 아니라 저는 길을 걸어가다가 우연찮게..

  우연찮게 폭력시위에 가담한 분들도 다 입건 대상입니다.

  장삼은 지갑 안에서 공무원증을 꺼내 형사 앞으로 내밀었다. 형사는 공무원증을 유심히 보더니 장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니, 공무원께서 왜...

  장삼은 자초지종을 형사에게 설명했다. 장삼의 말을 들은 형사는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상황에선 시위대와 일반인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거 유감스럽게 됐습니다.

  형사는 순경을 불러 장삼을 배웅하도록 했다. 경찰서 문 입구에서 순경이 장삼에게 경례를 붙였다. 잘 들어가라는 인사였다. 장삼은 할 말이 많았지만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신나게 두들겨 맞은 매 값은 고사하고 사과 대신 유감이라는 애매한 대답에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사지가 욱신거렸다. 종아리, 대퇴부, 옆구리, 오른쪽 어깨와 팔, 그리고 얼굴 광대 부분이 바닥에 쓸려서 매우 쓰라렸다. 오늘 시위에 참가해 연행된 사람들은 뭔가 원숭이 처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의 열망은 벽에 가로막혀 있고 그 안에서 한 바탕 쇼를 보여준 몸과 몸의 싸움. 장삼은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 그 이유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가슴이 답답한 집안을 피해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미세먼지와 몽큐 바이러스보다 더한 바깥바람에 휘말려 험한 꼴 당한 걸 생각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장삼은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이다 캔을 샀다. 톡 쏘는 사이다를 벌컥 들이켰다. 어린 시절 사이다를 마실 때면 온몸의 기운이 뻥 뚫리는 신세계였다. 사이다가 가슴에서 무지근하게 걸리면서 체증이 일었다. 장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시절의 사이다가 아니다. 뻥 뚫어주는 것은 없었다. 차라리 바나나를 까먹을까.

  장삼은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했다. 상처 난 얼굴 부위에 찬물이 닿으니 쓰라리다. 냉장고에서 찬을 꺼내 식은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 안방에서 영주가 나와 장삼을 보았다.

  차려주려고 했는데... 국 데워서 먹어.

  영주는 다시 들어가 드라마를 시청했다. 드라마에 울고 웃는 여자. 드라마가 없다면 저 여자의 삶도 없을 것이다. 장삼은 TV를 대충 읽어나가지만 영주는 TV 한 장르에 깊이 빠져있다. 발췌해서 책을 읽는 것과 정독해서 책을 읽는 것의 효용성은 어느 것이 낫다 아니다 할 수 없는 것. 자기 취향에 또 필요에 따라 읽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축적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리라.

  장삼은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퀭한 눈길과 표정으로 채널을 돌리다가 뉴스 채널에서 멈췄다. 헤드라인 뉴스는 어디서나 몽큐 바이러스 소식이었다. 어떤 방송에서는 M바이러스라 했고 다른 방송에서는 H바이러스라고 했다. 정부가 M바이러스라 정의했는데 아직 교통정리가 덜 된 모양이었다. 뉴스 말미에 광화문 시위 현장이 화면에 나왔다. 장삼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오늘 저녁 광화문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노조탄압에 반대하는 전국노조회원들과 바이러스 방역 대책을 비판하는 시민단체가 연대를 한 시위였는데요. 무력 충돌이 일어난 가운데 경찰은 가담자 다수를 연행했습니다. 보도에 최전선 기잡니다.

 

  화면에는 시민들이 돌을 던지고 각목을 휘두르는 장면이 주로 잡혔다. 경찰의 진압은 잠깐 보여주었다. 그리고 호송차에 올라가는 시위대들의 뒷모습이 나왔다. 장삼은 눈을 크게 뜨며 그 자신이 잡히지 않았는지 유심히 살피려 TV 앞에 다가갔다. 인원수도 많고 까만 뒤통수만 나와서 그 자신이 저 안에 있는지 없는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검게 선팅 된 경찰버스. 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카메라는 알지 못한다. 번개가 번쩍이는 탑승 신고식. 장삼은 자신의 얼굴이 조금이나마 나오지 않을까 궁금했지만 연행 무리들 속에 묻혀 알아내지 못했다. 다행스럽기도 했지만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해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장삼은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뒤척일 때마다 다리와 허리, 어깨에 통증이 전해져 끙 소리가 새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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