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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안녕하세요, 검은머리 아가씨
작가 : 김뎃뎅
작품등록일 : 2019.3.18

교역이 끊긴 동 제국의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는 서 제국의 티보치나 백작가 둘째 딸로 입양된 로사의 이야기.

유일하게 동방문화를 배울 수 있는 제국학교에 입학한 로사. 모범생으로 학교 생활을 하지만 언제 들킬지 모르는 본 모습 때문에 속은 초조하다.

하지만 곁엔 본래의 모습까지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감추지마, 로사. 머리색이 검든 아니든 눈이 검은 색이든 아니든 로사 넌 예뻐. 그러니까 숨기지마. 네가 예쁜 건 다른 뭐도 아닌 로사라서 예쁜 거야."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하는 로사에게 내려온 황제의 명.

"동방과의 교역을 위해 네 스승이 들고 도망간 동 제국 시황제의 인장을 찾아오라. "

[아카데미물/ 여주성장물/ 동서양 혼합 배경/ 일편단심 남주/ 세계최강 든든한 언니/ 유일하게 서방에서 동양 문화를 공부한 동양인/ 스승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진짜 가족]


매주 월화수목 한편씩 차근차근 업로드 예정입니다.

 
11. 단죄(5)
작성일 : 19-06-19 09:42     조회 : 201     추천 : 0     분량 : 46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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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가 학교에 돌아온 날 이후, 아레나는 잠을 편히 자 본 적이 없었다.

 

 버지니아의 마법으로 말문이 막혀 3일간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었고, 자꾸만 특별하게 찢어 발겨준다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 서늘하던 눈빛이, 그 차가운 목소리가 자꾸만 떠올랐다.

 

 밤에 잠도 잘 수 없을 정도로.

 

 아레나는 깨달았다.

 

 수도 무도회에서 봤던 모습은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때는 정말 귀찮다는 듯 가만히 있었으니까.

 

 아레나는 어느 새벽,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머, 안 자네?”

 

 “아악!”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놀란 아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입이 틀어 막혀버렸지만.

 

 차갑고 보드라운 손이 아레나의 입을 틀어막았다.

 

 단박에 누군지 알았다. 아레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버지니아.”

 

 

 천천히 떨어지는 손바닥 아래로 아레나가 침입자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을 알아보는 아레나를 내려다보며 버지니아가 기쁘게 웃었다.

 

 

 “그래. 나야.”

 

 “뭐, 뭐 하러 온 거야!”

 

 

 강하게 나가려 목소리 크게 외쳤다.

 

 하지만 떨리는 건 어떻게 감출 수 없었다.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 버지니아가 가소롭단 듯 피식거렸다.

 

 

 “내가 말했잖아. 특별 취급 해주겠다고.”

 

 “그, 그런 건 필요 없어!”

 

 

 아레나가 뒤로 물러섰다.

 

 어두운 방. 달빛을 등진 버지니아는 악마 그 자체로 보였다.

 

 아레나가 한발 물러나면 버지니아는 두발 앞으로 다가왔다.

 

 그 발걸음의 차이 때문에 아레나는 더 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 바람에 몇 걸음 못가 벽에 부딪혔지만.

 

 

 “도망 다 갔어? 생각보다 싱겁네?”

 

 

 버지니아가 여전히 웃는 낯으로 말했다.

 

 어둠에 뒤덮인 침입자를 본 아레나가 피할 곳을 찾아 벽을 더듬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건지 손에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즈음에 문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 눈치 못 챘어? 여기 네 방 아니야.”

 

 

 그렇게 말한 버지니아가 휙 손짓하자 주변에 있던 물건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공간.

 

 당황한 아레나가 고개를 돌렸다.

 

 마법반에서 나름 성적이 좋았던 아레나였다.

 

 마법을 전공할 예정이었고, 로사에게 뻐길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마법이었는데.

 

 

 ‘차원이 다르잖아!’

 

 

 이건 아레나가 할 수 없는 차원의 마법이었다.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마법.

 

 피험자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정교하게 똑같은 공간을 만들어 분리시키는 마법.

 

 소문으로만 들었지 이렇게 격차가 날 줄은 몰랐기에 아레나는 입술을 물어뜯었다.

 

 

 “그냥이라고.”

 

 

 하얗게 된 머릿속을 정리하던 아레나에게 버지니아가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아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뭐?”

 

 “전에 너랑 로사가 하던 말 들었어. 넌 그냥 괴롭혔다더라. 내 동생은 엄청 괴로웠는데.

 

 차라리 좋아해서 괴롭혔다고 하지 그랬어. 그게 그나마 이해는 될 것 같으니까.

 

 근데 그 이유였대도 기분은 나쁘네.”

 

 

 버지니아가 공중에서 턱을 괴며 말했다. 어찌 보면 심드렁하고 어찌 보면 진지한 얼굴로,

 

 

 “나, 날 어떻게 할 거야!”

 

 

 안절부절 못한 아레나가 소리를 질렀다.

 

 가만히 아레나를 내려다보던 버지니아가 슬그머니 몸을 내려 앞으로 다가왔다.

 

 불쑥 버지니아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자 깜짝 놀란 아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 난 착한 사람이라 심하게 하진 않을 거야.”

 

 

 버지니아의 목이 옆으로 기울었다. 그리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특별’이라고.”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버지니아가 아레나의 뒷목을 잡아챘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놀란 아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아무리 질러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그들만의 공간에 시끄러운 소리가 퍼졌다.

 

 

 “귀 아파. 조용히 해.”

 

 

 그렇게 말한 버지니아가 아레나를 바닥에 짓눌렀다.

 

 놀란 아레나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마치 맹수에게 사냥당한 초식동물처럼.

 

 버지니아가 싱긋 웃었다.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이건 그저 어떤 행동을 하기 쉽게 만드는 동작이었으니까.

 

 

 “내가 유학을 가서 뭘 배웠는지 알아?”

 

 

 버지니아가 아레나의 목을 잡지 않은 다른 손을 들며 물었다.

 

 아레나가 부들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잡힌 것은 목뿐인데 왜 전신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모를 일이었다.

 

 

 “좋은 것이 있으면 경험을 해 봐야 한다는 거야. 그곳의 학생들은 체험학습이란 걸 즐겨 하더라고.

 

 우리도 그런 게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럼 나도 이런 귀찮은 짓 안 해도 되고. 안 그래?”

 

 

 그렇게 말하는 버지니아와 아레나의 시선이 맞았다.

 

 버지니아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동자는 차가웠다.

 

 아레나의 눈이 사방으로 흔들렸다.

 

 버지니아의 눈으로 입으로 몸으로 하늘로 땅으로 옆으로.

 

 그러다 아레나의 시선이 버지니아의 손에 닿았다.

 

 그 손이 검었다.

 

 

 “뭐, 뭐 하, 하려, 려고?”

 

 

 눈동자만큼이나 빠르게 아레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버지니아가 아레나의 시선을 따라 검게 변한 제 손을 바라봤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아레나에게 말했다.

 

 

 “너 체험 학습 시켜주려고.”

 

 

 그렇게 말한 버지니아의 검은 손이 아레나에게로 향했다.

 

 

 “뭐, 뭐하는 거야아아!”

 

 

 아레나의 울부짖음이 좁은 공간에 울렸다.

 

 냉정한 소녀의 손이 주황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정수리부터 끝까지.

 

 검은 손을 따라 주황빛 머리카락이 점점 검게 변했다.

 

 마치 교정에서 모습이 바뀌었던 남학생처럼.

 

 아레나는 변하는 자신의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좁은 공간 투명한 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찬란했던 머리카락이 검게 변했다.

 

 초승달처럼 예쁘던 눈썹도 속눈썹도 팔 다리도.

 

 다 검게 변했다.

 

 다 끝난 듯 만족스럽게 버지니아의 손이 아레나의 목에서 떨어졌다.

 

 아레나가 잽싸게 몸을 일으켰다.

 

 스르륵 떨어지는 검은 머리카락이 징그러웠다.

 

 마치 벌레가 붙은 듯 제 몸을 벅벅 긁어댔다.

 

 어떻게든 떼어보려고.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아아! 이게 뭐야! 무슨 짓이야!”

 

 

 아레나가 버지니아를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눈앞의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그러던 말던 무심하게 아레나를 바라보던 버지니아가 말했다.

 

 

 “아, 깜박했네.”

 

 

 버지니아가 다시 아레나에게 손을 뻗었다.

 

 아레나가 온 몸으로 버지니아의 손길을 거부했다.

 

 그마저도 순식간에 제압당해버렸지만.

 

 버지니아가 다리로 아레나의 다리를 찍어 눌렀다.

 

 아팠다.

 

 한 손으로 버둥거리는 아레나의 턱을 잡았다.

 

 무서웠다.

 

 버지니아의 붉은 눈과 마주본 아레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절박했다.

 

 

 “사, 살려줘.”

 

 “뭐래. 너 잘 살아있어.”

 

 

 그렇게 말한 버지니아가 검게 변한 손으로 아레나의 눈을 눌렀다.

 

 기분 나빴다.

 

 아레나가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버지니아가 손을 떼어냈을 때, 거기엔 검은 눈을 한 아레나가 있었다.

 

 온전한 검은 인간이었다.

 

 버지니아가 자신의 작품이 만족스러운지 웃었다.

 

 

 “그럼 어디, 학습을 시작해 볼까?”

 

 

 버지니아가 손뼉을 쳤다. 두어번 친 소리에 공간이 부서졌다.

 

 

 “아악!”

 

 

 자신이 공중에 떠 있을 줄 몰랐던 아레나가 비명을 질렀다.

 

 

 “놀랐어? 걱정하지 마. 곧 내려갈 거야.”

 

 

 그렇게 말한 버지니아가 아레나의 긴 머리채를 붙잡곤 그대로 집어 던졌다.

 

 비명이 하늘에 울렸다.

 

 환한 달빛에 검은 머리를 한 아레나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처음 보는 마을로 떨어졌다.

 

 가득 쌓인 지푸라기 위에 떨어져 다치진 않았지만 많이 놀라보였다.

 

 아레나가 시뻘게진 눈으로 버지니아를 향해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야!”

 

 “내 짓.”

 

 

 짧게 말하며 아레나가 있는 곳까지 내려온 버지니아가 허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아레나가 버지니아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일어서다 짚단에 발이 쑥 빠졌다.

 

 

 “못났네.”

 

 

 짚단 속에서 버둥거리는 아레나를 내려다보며 버지니아가 말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눈은 빨갛게 달아올라 눈물 흘린 모양이 정말 못생겨보였다.

 

 짧게 생각하던 버지니아가 아레나를 향해 물었다.

 

 

 “여기가 어디게?”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말하며 아레나가 주변을 둘러봤다.

 

 떨어지기 전 잠깐 봤던 마을은 생소한 곳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글자로 쉐이른이란 것은 알았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아레나를 바라보며 버지니아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여긴 남쪽의 블라다야.”

 

 

 아레나가 고개를 저었다.

 

 들어본 적 없는 마을이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버지니아가 씩 웃었다.

 

 

 “여기까진 아직 황제폐하의 칙령이 안 내려 온 모양이더라. 정말 다행이지 뭐야. 난 또, 체험학습 할 장소가 없으면 어쩌나 했지.”

 

 

 버지니아의 웃음을 보던 아레나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검은 머리. 검은 눈. 체험. 황제 폐하의 칙령.

 

 

 “……!”

 

 

 아레나의 눈이 커졌다.

 

 그 반응을 알아챈 버지니아가 짜릿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알았어?”

 

 

 이 사람은 자신에게 노예 체험을 시킬 셈인가!

 

 싫다고 벗어나려는데 소란스러움에 사람이 몰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등장한 사람들은 한눈에 봐도 노예상인들.

 

 아레나가 기겁하며 울부짖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노예에 노예 상인들이 죽자고 달려들었다.

 

 아레나의 비명소리가 하늘에 울렸다.

 

 노예 상인에게 끌려가던 아레나가 독기서린 눈으로 하늘 위에 있는 버지니아를 올려다봤다.

 

 터질듯 붉어진 눈동자가 익숙했다.

 

 버지니아는 거기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마력을 빼앗긴 남학생도 아레나도.

 

 이런 것을 두고 인과응보라고 하던가.

 

 그렇다면 저 둘을 괴롭게 만든 버지니아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지도 모르리라.

 

 갑자기 추웠다.

 

 버지니아는 부르르 떨리는 몸을 제 팔로 감싸 안았다.

 

 

 “물벼룩.”

 

 

 버지니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자 뒤에서 그에 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응?”

 

 “잘 지켜봐. 문제가 생기면 알아서 처리하고. 그래도 귀한 집 아가씬데 나중에 뒤탈이 생기면 안 되잖아.

 

 푸치 후작가에도 연락을 넣어. 여기에 딸이 있으니 찾아가라고. 데리러 올 시간 정도 겪어보면 정신 차리겠지.”

 

 “그럼 난 계속 여기 있어?”

 

 츠티지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버지니아가 무심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있으리?”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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