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가끔씩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성화는 빠르게 경찰의 고민을 꿰뚫고 있었다. 윤성화는 작은 시골마을뿐만 아니라 이 도시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수재(秀才)로 어릴 때부터 법과 정치에 대해 친구들에게 강의를 할 정도로 법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다.
게다가 군복무도 경찰서에서 했기 때문에 경찰의 고민이 무엇인지, 어떤 질문이 나올지도, 어떤 대답을 할지도 준비된 상태로 경찰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날 밤 너희들은 어디 갔었어?”
윤성화가 지금 지어낸 표정은 본심이 아니었다. 하나의 비웃음에 불과했다. 민망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슬쩍 바꾼 후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근수가 휴가 나왔을 때 우리 붙잡으러 왔던 집요.”
“거기가 어딘데?”
“육군 중위보고 근수가 경례 안 했다고 귀사대기 맞고 술판 엎어버린 집요. 기억 안 나세요?”
경찰이 미간을 좁혀 기억을 끄집어 내더니 윤성화의 이마를 한대 쥐어박으며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이구 이 놈들아! 너희들 나이가 몇 살인데 거기를 드나드냐? 거긴 환갑이 넘은 어르신들만 가는 데잖아. 좋다. 너희들은 그 집에 있었다 치고 네 각시 될 사람은 근수 집에서 잤단 말이지?”
“예! 막걸리를 절어서 횡설수설하는 걸 보고 살짝이 나왔는데 우리가 나가는 것도 모를 정도였다니까요. 생각을 해보세요.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정도였으면 농약을 얼마나 많이 부었겠어요. 다리도 불편한 사람이, 술까지 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짓은 아니죠. 괜히 경찰 위신 세우려다가 전국민의 우스개 되지 말고 여기서 끝내죠. 우리 송희씨 뒷조사는 다 했을 거 아닙니까? 없는 일 꾸며내 건드리면 뒷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윤성화의 일장연설을 인내심 있게 전부 들은 경찰의 주먹이 또 윤성화에 이마로 날아갔다.
“그럴 줄 아는 놈이 근수처럼 문상을 가지 말았어야지. 왜 구설수에 오르내릴 짓을 자초해가지고 우리까지 피곤하게 만드냐? 너도 네 각시 될 사람도 조사를 마쳤으니 조만 간에 너희 부모님도 근수 부모님도 그날 있었던 사람들 전부 참고인으로 부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아이고 이 헛 똑똑아!”
“근수야 워낙 이런 데를 많이 다녀서 그랬지만 저는 처음이잖아요.”
“너는 여기서 살았잖아.”
“입장이 달랐잖아요. 그런데 미심쩍은 게 하나 있는데....... 제가 문상을 간 건 친구니까 당연히 갔는데 왜 우리 송희를 이런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범인으로 지목했어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냥 소문으로 우리를 잡아 올리는 없잖아요. 그렇죠?”
머리를 긁적이던 경찰이 눈에 힘을 주고 단호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상상 그만하고 앞으로 갈 자리 안 갈 자리 잘 구분해서 다녀라.”
경찰이 취조한 내용을 다시 보면서 윤성화 앞에 내놓았다. 윤성화가 서명을 하고 경찰이 벽에서 전원 버튼 하나를 누르자 깜빡이던 빨간 불도 사라졌다.
밖으로 나온 경찰이 커피를 한잔 뽑아와 주면서 말했다.
“너도 한때는 경찰 밥을 먹었잖아. 그걸 내가 얘기해 줄줄 알았어? 앞으로 살아온 세월보다 살아갈 세월이 훨씬 많이 남았으니까 친구도 가려가면서 사귀어라. 그렇다고 근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 사람도 마음도 이해는 해주고.”
빙긋이 웃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 백송희가 멀찌감치 손짓을 하고 있었다. 윤성화가 총총 걸음으로 쫓아갔다.
“벌써 끝났어? 나는 한참 기다려야 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지. 곁눈으로 본 것과 현장 경험의 차이잖아. 나 때문에 이런 데 오게 해서 미안해.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해 줘. 액땜! 호호호!”
백송희가 미안한 표정으로 배시시 웃으며 윤성화의 팔짱을 끼고 경찰서에서 나올 때 액땜으로 여기고 나오는 사람이 또 있었다. 김근수가 고향에 있는 경찰서까지 갈 수 없다며 부득부득 우겨, 학교 부근의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정미경의 손을 잡고 학교로 가고 있었다.
“뭐라던데?”
정미경이 물었다.
“뭐 별 거 없었어. 성화하고 내하고 그때 어디에 갔냐고 묻더라. 그래서 결혼도 안 했는데 합방을 할 수 없어 술집에서 술 마시다가 잠들었다고 했지 뭐!”
콧방귀를 한번 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김근수를 보던 정미경이 잡았던 손을 뿌리치면서 따졌다.
“술만 마셨어?”
김근수가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단호하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단골인 환갑 지난 할머니 집이다. 나를 뭐로 보고. 옛일로 자꾸 토를 달지 마라. 나도 후회 엄청 하고 있으니까.”
가끔 불같이 화를 냈다가 즉시 사그라지는 김근수의 성격에 적응해 있는데도 부라린 눈만은 여전히 무서웠던 정미경이 움찔하고 있었다. 곧 김근수는 한숨을 내쉬며 정미경 가슴에 담고 있는 안타까운 마음을 같이 나누자며, 부축이듯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이번에 새삼 또 느꼈다. 아직 숨통이 덜 끊어진 물고기들 봤지? 살아보려고 모래 위에서 퍼드득 거리는 걸 보고 내 숨통이 막히는 것 같더라. 배탈 났을 때도 떠오더라. 걔들 내장이 얼마나 아팠을까? 죽어가던 걔들이 몸부림치는 걸 보고 내 내장도 몸부림을 치더라. 모래 위에 하얗게 반짝이는 고기 봤지? 은어인데 앞으로 우리 동네에서는 그 고기는 절대 볼 수 없게 돼 버렸어. 벌써 산란을 마친 어미도 알도 부화한 애들도 다 죽었잖아. 게다가 농약이 바다까지 흘려갔으니 바다 물이 들어오는 하천 입구는 오죽하겠어. 씨를 말려 버렸어. 경찰이나 된 놈이 어떻게 그렇게 멍청한 짓을 했는지 이해가 안돼!”
김근수의 열변을 듣던 정미경의 몸이 다시 움츠려 들고 있었다. 뿌려 쳤던 손은 어느새 떨린 채로 김근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그날 후로 김근수는 고향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한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전보다 더 정미경 옆에 바짝 붙어 호위무사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이수현에게 남편과 동생이 인과응보의 죄값으로 목숨을 잃은 동네에서 더 이상 머물 수 가 없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도랑 옆을 지나칠 때마다 모래에서 비치는 하얀 빛들 속에서 남편과 동생의 허상이 늘 아지랑이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증오가 처음에는 서서히 생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영혼을 감싸듯이 이어오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인두를 눈이 타 들어갈 정도로 바짝 대고, 어떤 여학생을 막 지지고 오던 참이라며 협박을 했다. 인두에서는 살 굽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때 수현의 머리에 스치는 사람은 김근수에게 업힐 때 봤던 누워있던 여학생이었다.
그 여학생의 신체 어느 부위를 어떻게 구웠는지 모르지만 어느 한 부위가 구워질 게 뻔하다는 위기감에 항복을 하고 줄줄이 실토를 했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그때가 다시 악몽으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동생만 데려가지 않았다면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도 증오도 아닌 날아갈듯한 환호를 했을 것이다.
이수현의 눈가에 서러운 눈물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