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했던 이선근이 체육복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자기 어디가? 운동가? 나도 같이 갈까?”

　이들 부부의 최근 기상상태는 맑았다가 흐려졌다 반복하던 중이었다가 엄청 맑은 중이었다. 밝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아내를 본 이선근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이 참에 끙끙 앓던 말을 꺼냈다.

　“그냥 갑갑해서 천사장님에게나 가 볼까 해서. 당신 혹시 주두희 신랑이 어떻게 됐는지 들은 거 있어?

　내키지 않는 표정부터 보여주며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얘기는 들었어. 난동부리다가 미끄러져서 그랬다던데. 죄받았지 뭐. 당신 그래서 요즘 또 내한테 의심 병 도진 거였어?”

　이때는 이선근도 오락가락 했다. 이 사람의 성격이 밝은 건지 모자란 건지, 일기예보처럼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간혹! 껴안아서 방으로 들어가듯이, 그런 충동이 일렁거렸다.

　“아이고!”

　꿀밤을 한대 먹이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애리가 쫓아가서 주머니에 현금을 푹 쑤셔 넣으며 말했다.

　“올 땐 택시 타고 와!”

　이선근이 피씩 웃으며 물었다.

　“갈 땐?”

　“어! 저기 버스 오네.”

　버스에 올라 멀뚱히 강변을 보면서 혼자 웃기도 하면서 천명구에게 가고 있을 때 천명구의 인상은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기억을 상실한 사람에게 명예훼손과 영업손실에 인한 피해 보상 청구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 한숨만 나왔다. 천명구는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앓으며, 세월이 지나면 잊혀지기 마련이듯이, 잠잠해지면 연습장에 다시 회원들이 온다는 기대를 품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의문이 있었다.

　주두희의 신랑이 왜 그렇게 광분을 했을까? 이선근은 왜 공을 주두희 신랑에게 던졌을까? 서로 미워하더라도 친구의 남편들 아닌가? 이유가 늘 궁금했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양반이 왜 그런 짓을 했을까?

　숲 속에 숨어있던 공이나 대량을 헐값으로 구매해 공의 가치는 천 원도 되지 않았다. 천원도 되지 않는 공 하나가 준 피해를 생각하면 억장도 무너졌다. 당연히 원망도 앞으로 나란히 해서 꽁무니를 따라오듯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선근이 연습장에 자주 오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날 후로는 일체 왕래를 끊어버린 것도 섭섭했다. 원인이야 어떻게 됐던 이런 사단이 나게 한 결과를 가져 온 사람이 자기 속이 시끄럽다고 찾아오지 않은 이기적인 사람이었나? 이런 생각이 더 섭섭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그렇다고 이유를 물어보려고 기억을 상실한, 인간 같지도 않은 주두희 남편이나 주두희에게도 물어 볼 수도 없어 더 답답했다.

　그런 인간 쓰레기 같은 놈이 혹시 기억을 되찾고 나면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고발은 하지 않을까? 연습 타석 뒤에 굴러 다니는 공을 치우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에라도 그 놈의 난동 때문에 입은 피해손해배상 소송 준비나 할까? 그러면 지금까지 쌓아온 나의 이미지는 어떻게 될까?

　친구들과 가끔씩 하는 말인 내일 모레면 저 세상으로 갈 건데 없는 분란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떠날 준비나 하자. 이 말도 떠올랐다. 천명구는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15층에 빽빽하게 들어가 있는 전등이 절반도 불을 켜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에라도 팔아버릴까? 오늘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벌써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허병식이었다.

　“허사장! 잠시 만날까?”

　“예! 정리 좀 하고 가겠습니다. 먼저 가서 시켜 놓으십시오. 바로 가겠습니다.”

　늘 가던 선술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동안 고개는 자꾸 건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런 자신을 보고 헛웃음을 치기도 했다. 말년에 뭐 하려고 지었다가 이 고생을 하는지. 애들이 말 한대로 뿔뿔이 나눠줄걸. 다 내 욕심이 가져온 업보지. 이 동네서 제일 높은 건물을 짓고 싶었던 어릴 적 꿈을 이루려고 했던 짓을 지금에야 후회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올린 건물이 제일 놓은 건물도 아닌 그저 그런 건물인데. 허망하다는 생각도 같이 하고 있었다.

　그 건물 앞에 도착한 이선근이 입구에서 레슨프로를 만났다.

　“사장님 계시죠?”

　“방금 나가셨는데 전화 해보시죠.”

　천명구가 바로 전화를 받고 늘 오던 대로 오라고 했다. 선술집 주인인 예순은 훨씬 넘어 보이는 여사장이 빙긋이 웃으며 천명구에게 소주를 따르며 말했다.

　“사장님이 항상 그랬잖아요. 세월 지나면 다 잊혀진다고. 너무 걱정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사장님 고민을 들으면 배부른 옹알이나 돈에 바람난 주책으로 들립니다. 자! 한잔 하세요!”

　“에이! 이 사람이 섭섭하게. 허허허! 허긴 맞지.”

　“자네도 한잔 하게!”

　여사장이 잠시 망설이다가 채운 잔에 입술만 대 홀짝 하며 말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그때 허병식과 이선근이 동시에 들어왔다.

　“누님! 잘 지냈어요? 형님! 애리 아니! 애리씨 부군을 앞에서 만났습니다. 허허!”

　허병식이 인사를 하고 허리가 아픈지 안쪽 의자에 앉아 벽에 허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래! 허사장 요즘 신수가 좋아 보이네. 이 영감한테도 복 좀 줘! 여기 앉으세요.”

　여주인이 허병식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이선근을 안쪽으로 가리켰다. 이선근은 허병식 맞은편 벽 쪽에 앉아 인사만 하고 묵묵히 있었다.

　“아이고 그 뭐! 다 타고난 복 아닙니까! 그나저나 형님! 이미지 쇄신을 좀 해야겠는데, 이 참에 지하에 있는 연습장을 싹 뭉개고 주차장이나 헬스장으로 바꾸죠.”

　천명구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속 시끄러워.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 주차장을 만들던 헬스장을 만들던 알아서 하는 건 좋은데 떼 먹지만 마!”

　허병식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옆 눈으로 슬쩍 흘기고는 껄껄거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한 푼도 안 떼먹겠습니다. 그나저나 팔 때가 있는지 모르겠네.”

　천명구의 예상대로 벌써 허병식은 떼먹을 궁리에 이윤 계산에 들어가는 중이었다. 아주머니의 주먹이 허병식의 머리로 날아갔다.

　“아이고 이놈아!”

　한바탕 웃음이 터질 때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허병식도 천명구도 고개를 숙여 버렸다. 이선근은 아예 탁자 밑으로 숨어 버렸다. 작은 칸막이가 있어 두 사람을 보지 못한 중년의 남녀가 자리에 앉았다. 허병식이 씁쓰레하게 웃으며 귀를 뒤쪽으로 갖다 대 듣고 있었다.

　“뭐 먹을래? 요즘 마음 고생도 많은데 먹고 싶은 거 시켜. 이 오빠가 실컷 사 주마!”

　김인태와 주두희가 손만 붙잡지 않았지 부부처럼 다정하게 들어와서 오누이처럼 말을 하고 있었다. 이 선술집에서 실컷 먹을 수 있는 안주는 파전에, 바닷가 갯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섭조개 삶은 뜨거운 국물에, 갈치나 고등어가 들어간 해물탕에, 오징어 다리에, 쥐포가 전부였다.

　“오빠! 정말 섭섭해. 나는 바로 전화가 올 줄 알았지. 너무 한 거 아냐?”

　박서방이 기억상실에 걸릴 정도로 심하게 다쳤는데 지금에야 찾아온 친 오빠에게 섭섭한 마음으로 어리광을 부리듯이 울먹이며 목젖이 젖은 목소리로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