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술집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이들을 보면 본인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별했다가 상봉하는 오누이간의 눈물 나는 재회의 자리나 우애 좋은 오누이의 아름다운 자리로 잠시만 보였을 것이다.
“나는 신랑이 그렇게 된 거 전혀 모르고 있었어. 다른 연습장에 가니까 그 늙은이 연습장에 난리가 났다고 해서 알았지.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다 죽어가는 주제에 몇 푼 더 벌려고 스크린을 차려 그런 개망신을 당할지 내가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지. 참! 그 새끼는 잘 있어? 허 머시기라고 하는 놈? 그 놈이 비겁하게 바로 코 앞에서 연습장을 차린 걸 보고 똑 같은 놈으로밖에 안 보이더라. 게다가 여자들까지 끌려 들여서 하는 짓을 보고 이 놈 저 놈 할 것 없이 더럽고 비겁한 놈으로 보여 그 동네에서 발을 딱 끊어버렸지. 요즘 그 새끼들 잘 있어?”
사각 턱 주걱을 쳐들어 올려, 뒷덜미서 두둑소리도 내게 하면서 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 집엔 난잡한 소문이 많아서 나도 같은 년으로 취급 받을 것 같아서 그 근처엔 얼씬도 안 한지 오래 됐어!”
“그래! 그런데 가면 같은 놈으로 소문나는 건 한 순간이지. 필연적이야! 몸가짐을 아무리 잘 하면 뭐해? 그런데 가면 사람들이 벌써 다른 눈으로 보는데. 참! 그 누구라 했지. 우리 직원마누라? 반반하게 생긴 그년도 요즘 다른 데서 연습하겠네.”
주두희가 김인태의 말에 감격을 하면서 눈물도 찔끔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그 입에서 이 질문이 빨리 나와라. 입이 근질근질해 미칠 지경이었다.
“누구? 애리? 몰라! 걔하고 연락 안 한지 오래 됐어. 그 년 정말 웃기는 년이야. 오래 전에 허병식이가 남자 하나 소개해줬는데 그날 후로 얼씬도 안 하는 거 있지. 한 놈 물어서 깨가 쏟아지는 모양이야. 얼마나 주둥이가 무거운 지 자기 가게에 늘 가는 사람들에게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혼자만 신난 것 같더라.”
화까지 내면서 숨가쁘게 떠들어대는 말에 자칫 잘못 들으면 그 놈을 애리에게 뺏긴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주두희는 흥분해 있는 게 분명했다. 간만보고 기회를 엿보다가 놓친 사람처럼 보였다.
엿듣고 있던 허병식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천명구를 쳐다봤다. 이건 뭔 소린가? 허병식의 성질로는 놀라고만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와장창 소리가 났다. 그러나 허병식이 밥상을 엎은 건 아니었다. 숨어있다가 주두희의 말에 이성을 잃어버린 이선근이 밖으로 튀어 나오다가 그의 정수리가 밥상 아래를 박아버렸다. 탁자에 있던 음식과 병과 잔들이 지진에 흔들린 것처럼 굴러 내리며 내는 소리였다.
“아이 씨! 대가리야!”
눈물 콧물이 이선근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쏟아져 흘러내렸다. 정수리를 감싸 쥔 이선근의 목구멍에서 작은 선술집의 천장이 날아갈 정도의 고함소리가 울려 나와 퍼졌다. 다른 자리에서 수다를 떨다가 김인태와 주두희의 흥미로운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중년의 여자들이 날벼락 같은 이선근의 고함소리에 전부 기절을 해버렸다.
“야! 너! 그 주둥이 안 닫아! 어디다가 함부로 나불거려!”
허병식도 가세했다.
“이 년이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고 나자빠졌어. 왜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어. 너 지금 소설 쓰냐? 이게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어디서 함부로 나불거려. 사람들이 전부 네놈들 같은 줄 알아?”
허병식의 손가락이 김인태와 주두희의 눈알을 당장 파헤칠 정도로 날카롭게 겨냥하고 있었다.
“으악! 엄마야!”
이번에는 주두희와 김인태가 앉은 자리에 밥상이 와장창 했다. 깜짝 놀란 주두희가 뻘떡 일어서 돌아서던 중에, 펑퍼짐한 궁둥이가 탁자를 밀려버렸다. 술병과 안주들이 한 순간에 우르르 몰려 김인태의 품으로 주두희 대신에 안기고 있었다. 주두희는 자기의 역할을 술과 안주에게 맡기고 아이스하키 선수처럼 날렵하게 바닥으로 미끄러져 나가다가,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휘청거리기도 하고 비틀대기도 하다가, 끝내는 바로 문 앞 탁자에 이마를 꽝하고 박아버렸다.
누군가는 도와줘야만 했다. 어쩔 수없이 아내의 친구를 보살펴야 할 의무를 지닌 이선근이 자기도 탁자 아래를 쥐어박아 정수리가 얼얼하게 아픈 와중에도,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주두희를 부축하려고,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 같은 발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때 “이런 비겁한 새끼!”가 이선근의 입뿐이 아니라 선술집에 있던 모든 사람 입에서 한꺼번에 쏟아졌다. 김인태가 쏟아진 해물탕과 안주들을 덮어쓴 채로 바닥에 쓰러져 꿈틀대는 주두희를 피해 밖으로 쏜살같이 도망치는 뒤통수를 향한 “비겁한 새끼!” 소리가 멈추지 않고 귀청을 뚫을 듯이 나오고 있었다. 그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악!”
주두희 입에서 또 한번 비명소리가 나오게 했다. 일어서려고 바닥을 받히던 손등을 김인태가 밟고 도망쳐버린 것이었다. 몇 명 되지 않은 손님들의 안쓰러운 눈이 주두희에게 향해 있었다. 그러나 몇 명 되지 않는 눈은 주두희에게는 수많은, 전세계의 눈과도 같았다. 그들의 눈은 측은하게 바뀌고 있었다. 이선근이 다가가 부축해 일으켰다. 주두희도 막막했던 모양이었다. 이선근의 가슴에 얼굴을 숨기고 숨을 잠시 고르고 말했다.
“괜찮아요.”
한마디만 남기고 힘없이 밖으로 나갔다. 이선근이 뒤를 따를 때 천명구가 못 가게 불렀다.
“놔두세요. 얼마나 창피하겠어. 그냥 이리 와 앉아요.”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에 이선근이 자리로 돌아올 때 선술집 사장이 허병식에게 급하게 말하며 밖으로 나갔다.
“동생! 가게 잠시 봐 줘! 택시를 잡아 주던지, 병원에 데려 가던가 해야겠다. 갔다 올게.”
산천수전 다 겪은 여사장이 발걸음이 허둥대고 있었다. 그때 천명구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계셔. 그 정도로 생각할 년 같았으면 동네에서 저럴까? 허허허!”
잠시 뒤에 여사장이 들어와서 바로 부엌으로 가서 소금을 들고 나와 바닥에 뿌리고 밖으로 나가서 도로에도 획획 뿌리고 들어왔다.
“어이 재수없어. 허긴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네. 내 같으면 바로 목을 그어 버릴 건데.”
여사장이 그어진 흔적이 남아있는 자기가 목을 보여주며 마실 잔을 가지고 와서 허병식에게 따르라고 하면서 말했다.
“창피한지 고개도 못 들고 들어 가라고 하더라. 아이고 지저분한 년! 하여튼 저년 근처에 있는 년들은 한 년도 올바른 년을 본적이 없어.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애리는 또 누구야? 처음 듣는 이름인데. 그 놈은 또 누구고? 둘이 이거 해?”
불끈 쥔 왼 손의 엄지와 검지 사이의 구멍이 난 구석을 오른 손바닥으로 툭툭 치면서 섹스 하는 시늉을 보여주며 물었다. 순간! 이선근은 눈을 꽉 감고 이를 악물었다. 금방이라도 미친 사람처럼 폭발할 것 같았다. 그때 천명구가 급하게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