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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로즈 앤 스노우
작가 : 쿠페
작품등록일 : 2018.12.31

옛 동료들에게 쫓기게 된 두 킬러의 이야기

 
14
작성일 : 18-12-31 23:57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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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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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랑코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항상 입던 재킷은 여기저기 잘려 볼품없었고 하얀색이던 수트는 땀과 먼지와 오수에 지저분하게 변해 있었다.

  “너 이 자식. 아까는 멋대로 나불거렸겠다.”

  블랑코가 마론의 멱살을 잡아 눈앞으로 끌어올렸다. 마론은 당연히 블랑코보다 작은 신장이었고 강제로 그와 눈맞춤을 하게 된 마론의 발은 지상에서 떨어져 대롱거렸다. 사람 하나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지만 블랑코는 별로 힘들어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사실 그는 열이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마론을 향해 막 입을 열던 블랑코는 그의 복부를 붉게 물들인 얼룩을 발견했다. 그것을 주시하던 블랑코는 얼굴을 찌푸리며 그를 내려놓았다.

  “뭐야. 이미 다 죽어가잖아?”

  쓰러진 마론을 뒤로 하고 블랑코는 로제에게 걸어갔다. 블랑코는 로제의 눈을 까뒤집고 맥을 짚는 등 상황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그 약을 썼구만. 어지간히도 급했나보네.”

  블랑코는 로제의 옷 주머니에서 앰플과 주사기를 꺼냈다. 주사기를 앰플 뚜껑에 박고 약물을 빨아올린 블랑코는 익숙한 동작으로 주사기를 탁탁 치고 바늘을 로제의 팔에 꽂아 넣었다.

  그 일련의 과정을 바라보던 마론이 멍하니 물었다.

  “당신… 원래 그렇게 섬세한 성격이었나요?”

  “인생이 기구하면 싫어도 익숙해지게 돼.”

  대답을 기대한 질문은 아니었는데 뜻밖에도 대답이 돌아왔다. 마론은 블랑코의 반응에 낯섦을 느꼈다. 마론이 소문으로 들은 블랑코의 이미지와 지금 눈앞에 있는 블랑코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마론이 아는 블랑코는 좀 더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주체하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블랑코는 조금 단순한 방식을 선호하지만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론이 인식의 괴리에 혼란스러워하도록 내버려둔 채 블랑코는 로제를 어깨에 들쳐 업었다. 본래 의식이 없는 사람을 운반하기란 쉽지 않다. 의식이 있는 상태에선 무의식적으로 통제하게 되는 근육이 모든 힘을 잃은 채 그저 무게만 나가는 고깃덩어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랑코는 기절한 로제를 마치 짚 인형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볍게 들쳐 멨다.

  블랑코는 그 상태로 마론을 뒤로 했다. 지하공동은 벨 마르셀 쪽으로 이어진 터널과 그와 반대쪽으로 난 다른 터널이 한 군데 더 있었다. 반대쪽 터널을 향해 걸어가는 블랑코의 뒤에서 마론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가는 겁니까?”

  “너와는 상관없는 곳에.”

  의외로 블랑코는 마론의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퉁명스런 대답이었지만 무시당하는 것보단 나았다. 마론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내가 이곳을 빠져나가게 둘 것 같나요?”

  “너와는 이미 결판이 났다 멍청아. 로제가 이겼어. 가만 놔둬도 죽을 놈이 우릴 어떻게 막겠다는 거야?”

  마론이 킬킬대며 웃었다. 웃음의 사이사이에 토혈이 올라왔다.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쉽지만 할 말을 빨리 마쳐야 했다.

  “여길 죽 걸어 나가면 에펠강으로 통합니다. 일단 에펠강으로 나가면 에펠 외곽까지 강을 따라서 갈 수 있죠. 후앙 씨는 이런 수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저도 따로 매복은 준비해두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그 수로만 통과하면 당신들을 쫓을 사람은 당분간 없어요.”

  블랑코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상처가 쑤셔오는지 얼굴 근육에 힘을 줬지만 마론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수로는 이곳에서 빠져나갈 유일한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 통로가 막히면 당신들은 다시 에펠의 낡은 술집으로 올라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예요. 당연히 후앙 씨가 당신들을 놓칠 리 없겠죠.”

  블랑코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숨을 조금 들이쉰 마론이 분명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이 공동과 수로의 천장에 C4 폭탄을 설치해뒀습니다.”

  처음으로 블랑코가 반응을 보였다. 발걸음을 멈춘 블랑코가 마론을 돌아보았다.

  “혹시 제가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보험이었어요. 당연히 사용할 생각은 없었어요. 만에 하나 사용하는 일이 있다 해도 제가 그 밑에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고요.”

  마론은 손에 든 뭔가를 들어보였다. 많이 파손되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마론이 개발한 복합 기폭장치였다.

  블랑코가 느릿하게 말했다.

  “우릴 길동무 삼겠다는 거야?”

  “말해두지만 혼자 가는 게 억울하다던가 하는 이유는 아니에요. 저는 진심으로 선배를 존경하고 있고 되도록 선배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말하자면 제 나름의 자존심이에요. 저도 프로로서 한 번 맡은 일은 제대로 완수하고 싶거든요. 사적인 감정과 일을 구분하는 게 프로의 기본이라잖아요?”

  블랑코는 솥뚜껑만한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말하고 싶은 게 있지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마론을 빤히 바라보던 블랑코가 말했다.

  “난 잘 모르겠다. 자기 목숨보다 우선시 되는 가치 같은 거, 난 이해하기 어려워. 하지만 네가 네 목숨을 불 질러서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게 그거라면 존중해 주마.”

  뜻밖의 반응에 마론이 잠시 멈칫했다.

  “……당신은 정말 내가 듣던 얘기와는 많이 다르군요. 당장 흥분해서 리모컨을 뺏으러 달려들 줄 알았는데요.”

  “그런 거 아냐. 곧 죽을 놈 소원 들어주는 거랑 비슷한 거지. 어차피 죽을 놈인데 편히 가라는 의미로.”

  마뜩찮은 표정으로 말한 블랑코가 덧붙였다.

  “게다가 결국은 헛수고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네 소원 존중해주는 거랑 별개로 눈뜨고 당해줄 생각은 없거든. ‘너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나는 내 하고 싶은 대로 할게’ 같은 거지.”

  “…….”

  잠시 말문이 막힌 마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디에서부터 반박을 해야 할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머리 위에 설치돼 있을 C4 폭탄에 아랑곳 않고 당연히 살아나갈 것이라고 믿는 듯한 태도가 마론을 기가 막히게 했다. 뭔가 반박하고 싶었지만 목구멍까지 들어찬 피가 그것도 방해했다. 어느새 마론의 손까지 떨려오고 있었다.

  “한 가지만 묻겠는데요… 혹시 낙석만 피하면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이 폐쇄된 공간에서 낙석을 피하는 것도 불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어차피 수로는 매몰되는데요. 그러면 당신과 선배가 탈출할 수 있는 통로도 막히게 되고요.”

  “그럼 통로가 막히기 전에 탈출하면 되지.”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하단 겁니까?”

  “궁금하면 터뜨려봐. 보여줄 테니.”

  마론은 메마른 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나지막이 시작된 웃음은 이내 공동을 울렸다. 소리에 이미 힘은 없었지만 배에 구멍이 뚫려서 피가 줄줄 새고 있는 사람치고는 무척 활기찬 웃음이었다.

  한참 웃던 마론이 블랑코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제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이 선배가 아니라서 아쉬웠는데, 지금은 당신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블랑코가 피식 웃었다. 마론이 스위치를 눌렀다.

  그리고 마론은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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